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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에 우리의 할 일 (눅 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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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눅 2:15-20)

다음 주일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나 감정,  그들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린 아이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기쁘고 즐겁지만 고독한 사람들이 맞이하는 성탄절은 쓸쓸합니다.
오랜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환자가 맞이하는 성탄절, 최전선의 철조망을 지키면서  맞이하는 성탄절,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헤어 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맞이하는 실향민들의 성탄절,  각각의 느낌은 서로 크게 다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탄생하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으나 목자들은  아무것도 예물로 드린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 속에 그들이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회적인 신분이나 위치로 보아 언제든지 선물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목자들에게는 예물이 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현재 나의 입장에서 나의 개인과 가정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여 보고자 합니다.
목자들의 앞길을 인도하던 별이, 그들로 예수님에게 찾아가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것처럼 우리들의 생에 있어서도 샛별이 떠오를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찾아봅시다.

첫째. 베들레헴을 향한 신앙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까지 가서 ....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15절
"빨리 가서 ..... " 16절
이 말은 들에서 양을 지키다가 생각 밖의 장엄한 광경을 목격한 목자들의 최초의 고백입니다. 
전에 듣거나 본 일도 없는 천사들의 대 합창을 듣고 난 후, 저들은 즉시로 발걸음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빨리 달려갔습니다. 
기쁨의 소식, 예수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는 그 현장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처럼 놀라운 사건, 천사가 경배하고 찬송하는 위대한 구세주가 나신 것을 안 이상 주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서 가서 현장을 확인하고 경배를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목자들은 좋은 일을 실천함에 있어서 내일로 미루고, 내년으로 미루고, 먼 훗날로 미루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로 실천하였습니다. 즉시로 결단하고 행동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 중 어떤 사람에게 찾아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다른 방법으로 해도 될 것이다. 다음에도 기회는 많이 있다."
"예수는 젊어서 돈벌어 놓고 천천히 믿어도 늦지 않다. 꼭 그렇게만 예수 믿어야 되느냐? 봉사도 다음에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

본문의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가되 빨리 뛰어 갔습니다. 그들은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증거는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은 이러한 신앙의  결단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곤고하고, 힘이 들며, 추위와 더불어 싸울 때에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즉시 찾아 향하는 여러분의 베들레헴은 어디입니까?

둘째. 이루어진 일을 본 신앙의 확신입니다.

예수께서 나신 날 밤에 베들레헴에 찾아간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인지라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오늘 날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거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웃기는 소리 다 하네."하고 조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즉시로 행동을 옮겨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하여 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루어 진 일을 보기 위하여 간 것입니다. 
이미 천사의 계시대로 이루어 진 그 일을 보러 간 것입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기 전에 벌써 말씀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져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만큼 저들은 순수하였습니다.
큰 믿음은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절대적인 신앙은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상대적인 신앙은 상대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되고 작게 믿으면 작게 됩니다. 목자들은 크게 믿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의심 없이 믿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경배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말씀 속에 이루어 진 결과를 보러 가는 기쁨이 있는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루어 진 기쁜 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셋째. 사실을 말한 신앙의 증인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달려 가 보니 천사의 말은 이미 그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들은 숨을 몰아 쉬면서 아기에게 경배하며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말한 대로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탄의 첫 목격자요 증인인 것입니다. 그들이 증언 한 것은 이 아이가 인류를 위하여 탄생한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증인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헬라 말뜻에는 "순교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즉 사실을 밝히고 증언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바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이 두렵고 외부의 압력이 두려워 증언의 내용이 뒤바뀐다든지 표절이 되면 나는 살는지 몰라도 이 허위 증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는 역사에서 사라져 간 하나의 위인이었다 라고 하면 출세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무덤에서 부활 하셨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다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에 타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자의 밥이 되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도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에 관하여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헤롯의 눈치보고, 아첨하느라고 메시야의 탄생을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들은 대로 본대로 증거하였습니다.
오늘 날 인류의 영원한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증거하기 위한 개인이나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나 여러 종류의 선교 단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증인들의 뒤에서 말 없이 주어진 사명을 다 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연말이면 여러 단체에서 많은 우편물을 보내옵니다. 성탄 카드나 달력을 보내 오는 단체도 있는가 하면 선교 사역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도움을 호소하는 인쇄물도 눈에 띄게 많습니다.
그 중에 이러한 것도 있습니다.
"GO or SEND!" 우리 말로 하면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종류의 증인입니까? 
피하여 도망가는 비열하고 나약하여 자기를 속이는 증인입니까? 아니면 용기있고 정직한 증인입니까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 되기 위하여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신앙의 완성입니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본문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마태 2:11 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박사들이 집에 들어 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동방의 박사들은 마리아와 요셉에게 경배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예수를 낳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리워져야 하였습니다. 
예수만이 높아지고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우리도 목자들처럼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영광을 가로채면 죽습니다. 행 12:20 이하에 보시면 당시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백성들 앞에서 찬란한 왕복을 입고 일장 연설을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연설을 시작하자 아첨하는 사람들이 "이는 신의 소리이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고 소리를 지르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우쭐대다가 벌레가 먹어 죽고 말았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합니다.

다섯째. 생활 속에 돌아가는 신앙의 실천입니다

20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동방의 박사들도 와서 경배하고 돌아갔고, 목자들도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다는 것입니까? 일터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들 본연의 일터. 본래의 자세대로 돌아갔습니다.
흥분하고 들떠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생활 속으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 난 후 들뜨고 흥분하여 그 자리에  움막을 치고 기도원을 세우고 안수하고 병을 고치고 신유 은사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거기 머물며 법석을 떱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변화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변화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초막 셋을 짓고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리고 거기에서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 오셨습니다.
거기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자기 생활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자기 가정을 돌아보고, 자기 직업에  성실하고,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사명에 성실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의 할 일 때문에 아기 예수 나신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양 떼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목자들은 비록 천한 직업의 소유자이지만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서 마음이 뜨겁게 움직인 정열과 감정의 사람인가 하면 즉시 결단하는 의지의 소유자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지 어떠한 체험을 하던지, 결코  흥분하거나 당황하여서는 안됩니다.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거기에 과감한 결단력이 요구됩니다. 사람들에게는 주어 진 자기들의 일터에서 힘써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것입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선하신 뜻을 좇지 않는 것이 잘 못이지 일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학생은 학원에서,  교사는 강단에서,  군인은 전선에서,  그리고 경찰은 경찰대로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집단 난동을 버려야 합니다. 거기에 대처하는 기업가는  그들과의 대화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고도의 대화의 기술이 부족합니다. 노조의 결성과 그들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은 대화를 이끌어 갈 만한 철학과 그럴만한 위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피하여 도망하여야 할 곳이 아닙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송하며 돌아가야 할 장소입니다.
예수는 온 인류의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믿고, 전하며,  또한 삶의 현장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 드릴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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