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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전절에 주신 말씀 (요 1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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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수전절(The Feast of Dedication)에 하신 말씀입니다. 수전절은 성경 여기에만 나옵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을 제외하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누카라고 부릅니다. 하누카는 그 단어 자체 속에 “봉헌”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전절을 봉헌절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전절을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설명이 필요합니다.

원래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이때가 BC 586년입니다. 바벨론은 유다 백성들에게 매우 혹독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잔혹한 정책을 쓰던 바벨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합니다. 바벨론 지배 아래 있던 유다는 페르시아의 지배로 넘어가게 됩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과는 달리 유다에게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 백성들을 고향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하게 허용합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의 황후까지 되었습니다. 이렇게 관용정책을 쓰던 페르시아가 그리스에게 망합니다.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그리스의 왕은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유다도 그리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치 군사적인 정복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정복한 나라들에게 그리스의 문화와 철학과 종교까지 가지고 들어갑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가는 곳마다 그리스 문화와 종교가 도입되었습니다. 이것을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부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가 로마에게 망하게 될 때(BC 31)까지 약 300년간 세계의 정신문화를 지배하게 됩니다. 

천하를 지배하던 알렉산더 대왕은 BC 32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맙니다. 그는 상속자를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생전에 정복하여 이룩한 그리스 제국은 그의 수하에 있던 4명의 장군들에게 4분되고 맙니다. 이때 유다는 시리아 지역을 관할하는 세루쿠스(Seleucus) 가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셀루쿠스 가문의 지배 기간은 유다로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박해를 받은 기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박해자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Epiphanes IV BC 175-163)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수전절 절기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놀랍고도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다니엘서 11장에 모두 예언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1장 3절은 말합니다.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니라.” 여기서 한 능력 있는 왕은 알렉산더 대왕을 말합니다. 앞으로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나서 큰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11장 4절입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도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  알렉산더 대왕이 한창 때에 죽고 그 나라는 아들에게도 돌아가지 못하고 4개로 나누일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21절에 이르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예언도 나옵니다. “그 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할 때를 타서 궤휼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많은 주석가들은 이 구절에 나오는 한 비천한 사람은 아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고 말합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부정한 방법으로 나라를 통일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그의 여러 가지 악한 일들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BC 6세기 경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수전절과 관련되어 일어날 일들을 4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안티오커스는 이름이고 에피파네스는 별명입니다. 에피파네스는 “보이는 신(The visible God)"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자기가 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Zeus)를 제일 높은 신으로 간주했습니다. 제우스는 쥬피터(Jupiter)라고도 부릅니다. 같은 신을 두고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라고 불렀고 후에 로마 사람들은 쥬피터라고 불렀습니다. 안티오커는 자기 자신을 제우스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들어와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무자비하게 유다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 종교를 따르라고 강요했습니다. 유대교를 없이 하려고 율법책도 불태웠습니다. 할례를 금지시켰습니다. 안식을 지키는 것일 금지시켰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돼지를 잡아 그 피를 지성소에 뿌렸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다니엘 선지자는 이미 11장 31절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유다 땅 전역에 이방 신상이 세워졌습니다.
언티오커스의 극악무도한 박해에 대처한 유다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굴복했습니다. 명령에 불순종하면 죽인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야손(Jason)과 같은 사람들은 권력에 붙어서 아부합니다. 출세의 기회로 삼습니다. 야손은 안티오커스에게 뇌물을 주고 대제상직을 샀습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여호수아(Joshua)인데 그리스 이름인 야손으로 바꾸었습니다. 일제시대에만 창씨개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에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정부에 붙어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그리스화된 제사장(Hellenized Priest) 노릇을 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둘째로 순교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지키다가 순교했습니다. 한나(Hannah)라는 여인과 그녀의 일곱 아들들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안티오커스는 한나와 그녀의 일곱 아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에 큰 아들이 비록 죽을지언정 돼지고기는 먹지 않겠노라고 항거했습니다. 그러자 왕의 신하들이 그의 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도 잘랐습니다. 다음에는 몸 전체를 화덕에 던졌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어머니 한나와 다른 형제들이 말합니다. “고귀하게 죽어라...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어머니 한나와 나머지 여섯 아들들도 모두 돼지고기 먹는 것을 끝까지 거절하고 먼저 간 아들들처럼 순교했습니다. 그들은 순교하면서 한결같이 이러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순간적인 고통은 당하지만 영생은 소유하게 되었다.”

셋째로 경건한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때 저항한 사람들을 하시딤(The Hasidim)이라고 부릅니다. 하시딤은 히브리 말로서 경건한 자들, 충성스러운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맛디아스라는 인물인데 그는 모딘(Modin)이라는 성읍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안티오커스의 관리들은 유다인들을 제우스 신상 앞에 모이게 하고 돼지를 잡아서 제우스 신상에다가 희생제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맛디아스는 유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생제물을 드려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맛디아스는 분노한 나머지 그의 다섯 아들들과 함께 그리스의 관리들과 헬라화된 제사장들까지도 모두 죽였습니다.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 제국의 권위에 저항한 폭동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맛디아스와 다섯 아들들은 산속으로 피했습니다. 맛디아스는 나이가 들어 죽고 독립운동의 주도권은 그의 아들 가운데 유다(Judah)에게 넘어갑니다. 그의 별명은 마카베오스(Maccabaeus)인데 망치라는 뜻입니다. 마카베오스라는 별명으로부터 마카비라는 이름이 기원됩니다. 유다, 즉 마카베오스가 이끄는 독립군들이 마카비들입니다. 날이 갈수록 마카비들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그리스군에 대항해서 결국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방 신상으로 더러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합니다. 성전을 다시금 성결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마카비군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일에 대해서도 예언했습니다.

다니엘 8장 14절입니다.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낮과 밤이 2,300번 지나가면 성소가 성결케 된다는 말입니다. 안티오커스가 그리스의 왕이 되어 유다 백성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해가 BC 171년입니다. 이때부터 2,300일이 지나면 성소가 깨끗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300일은 약 6년의 기간입니다. 약 6년 후에 성소가 성결케 된다고 했는데 과연 BC 165년에 마카비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예루살렘 성전을 성결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성전에 있던 제우스 신상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BC 165년 12월 25일에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만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성전 봉헌식으로부터 수전절 축제가 시작됩니다. 해마다 12월 25일이 되면 유다 사람들은 수전절(하누카)절기를 8일 동안 지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수전절 절기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역사적인 기념일에 나라를 걱정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아직 그리스도임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내 말을 믿지 못하는가. 내 말을 믿지 못하면 내가 행하는 일들을 보고라도 믿으면 되지 않는가.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죄 값으로 AD 70년에 로마에 망하여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섭리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5월 24일 2 천년 만에 다시 지구상에 이스라엘나라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의 역사를 복음의 빛에서 조명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예수 복음이 들어온 것은 통일신라시대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1956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신라시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돌로 만든 십자가였습니다. 천년 전에 운명을 다한 신라왕조의 유물 중에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미 이때 전래된 기독교는 경교(景敎)였을 거라고 봅니다. 초기 기독교 감독이었던 네스토리우스(Nestorious)의 교리를 따르던 종파를 말합니다. 이 종파가 중국 당나라에서 크게 전파되었기 때문에 당나라와 교역하던 통일신라에 경교가 들어왔을 것이라고 봅니다.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돌십자가는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6세기 임진왜란 중에 처음으로 천주교와 관련을 맺게 됩니다. 그것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첫째는 전쟁 중에 서양인 성직자가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고 둘째는 전쟁 중에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간 많은 한국인 포로 중에 상당수의 천주교 개종자가 나왔으며 그들 가운데 순교의 영광에 이른 사람도 많았습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30년이 못되어 우리나라는 또다시 외족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청나라의 침략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것입니다. 남한산성에 피해있던 인조가 왕자들을 데리고 나와서 항복합니다. 삼전도의 비극을 말합니다. 그때 소현세자가 볼모로 끌려갑니다. 조선의 세자가 볼모가 된 것은 마지막 세자 영친왕과 소현세자뿐입니다. 당시 청나라의 수도는 심양에 있었습니다. 심양에 있던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게 됩니다. 소현세자도 심양에서 북경으로 옮겨졌습니다. 볼모로 잡혀 온지 7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그가 북경에 머무는 동안 예수회 신부 아담  샬(Adam Shall)과 사귀게 됩니다. 소현세자는 서학에 관심이 있었고 아담 샬은 선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소현세자가 북경에 머문 것은 기껏해야 70여 일이었으나 그에게 있어서는 7년에 버금가는 변혁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귀국할 때 선교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는 대신 소현세자 일행 속에 교인을 배행시키는 방법을 썼습니다. 즉 중국인 궁녀 감독관으로 선발된 환관 5명을 교인들로 구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70여 일만에 돌연 득병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도 역사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독살 당했다고도 합니다. 만약 그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후 천주교 선교사들이 와서 여러 번 포교를 하려고 했으나 조선은 예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무서운 박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나라가 망해가는 때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라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웠습니다. 1886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학교 교훈으로 삼아 배제학당을 세웠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희전문학교를 세웠고, 스크랜톤 부인은 이화학당을 세웠습니다. 독립협회를 이끈 이승만, 김규식으로부터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기독교 학교를 토대로 문명개화 운동과 독립운동을 이끌고 펼쳐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립학교들이 개정된 사립학교법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개방형 이사를 도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외부이사 자리는 전교조가 장악하리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입니다. 사학 재단 이사회에 들어온 전교조 출신 이사들이 ‘신앙은 자유 아니냐“며 한 주에 한 번 있는 예배시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리라는 것은 뻔히 눈에 보이는 일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제한당하는 위기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천주교 정진석 대주교는 ”통제를 하고 감독을 하는 것이 공산주의인데 공산주의는 통제 강화 때문에 망했다“고 현 정부를 질타했습니다. 통제보다는 자율이 더 귀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지도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북한이 남침했을 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끼리 통일도 하고 잘 살았을 것이다”라는 장정구 교수의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릅니다. 통일이 귀하지만 아무렇게나 통일만 되면 된단 말입니까?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예수 복음 안에서 통일되어야 합니다.  민족, 민중지상주의의 역사관은 위험합니다. 진리지상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민족 사학자인 이기백 교수도 후학들에게 “민족과 민중이 지상(至上)이 아니라 진리가 지상이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나라를 구원합니다. 지금 이 나라가 정체성의 위기 앞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예수 복음입니다. 공산주의와 싸워 이길 힘은 예수 복음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라로 둘러싸여있고 북쪽은 북한으로 막혀있어서 외국에 나가려면 배를 타든지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경제 12위에 속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열정이 있는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기독교 학교가 일조했습니다. 예수님이 국가 기념절기인 수전절에 주신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의 복음을 거절하면 불행이 옵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나라가 통일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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