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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구세주 오신 곳 (마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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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밤중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평소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이 전나무 숲 사이로 영롱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를 보고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도 저 전나무와 같다. 한 개인은 초라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루터는 이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자 전나무 한그루를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 나무에 눈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형형색색의 종이별과 촛불을 장식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스며들면 보석처럼 빛나는 인생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곳이 어디일까요? 만왕의 왕이시니 당시 최고 권력의 도시인 로마에 오실 것 같은데 아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오셨을 것 같은데 그곳도 아니었습니다. 지혜의 왕으로 오셨으니, 지혜의 도시 아테네에 오셨을 것 같은데 그곳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오셨습니까? 예수님 오신 곳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누구이며, 즐겨 찾으시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사용하신 곳 세 곳이 있습니다.

1.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태복음 1:23) 하신 말씀대로 처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처음으로 대하시고 함께 하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처녀 마리아였습니다.
이는 여성 처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녀란 순결의 상징입니다. 정절의 상징입니다. 아름다움의 상징입니다. 순결한 처녀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 깨끗한 사람, 청순한 신앙인품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과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가리키는 교훈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에 관해 말하기를“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린도후서 11:2)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해볼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정결한 심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많은 죄로 인해 늘 괴로워하는 사람이, 나이 많은 한 수도사를 찾아가 하나님이 자신의 회개를 받아주실지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그에게 “당신은 옷이 찢어졌을 때 그것을 버립니까?”“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당신은 돈이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아닙니다. 다시 붙여서 사용합니다.”그러자 늙은 수도사는 그에게 말하기를“당신이 옷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며, 돈도 그 가치 때문에 찢어진 것도 버리지 않고 다시 붙여 사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어찌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람이 어찌 찢어진 옷만 못하며, 찍어진 화폐만 못하겠습니까?”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고쳐서 쓰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에는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목수는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장 난 것도 잘 고칩니다. 목수이신 예수님의 공생애는 고장 난 영혼을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장 난 심령들을 고치셔서 하나님의 고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회개함으로 깨끗해진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에“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의 육신의 신분도 순결한 처녀였지만 그의 속사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처녀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이 마리아입니다. 그 당시 법으로는 처녀가 잉태하면 그 사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께서 자신의 몸에 잉태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러한 대답은 하나님을 향해 생명을 건 담대하고 뜨거운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의 처지와 생명까지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러한 믿음입니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던 아브라함, 생명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던 다윗,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던 다니엘과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등 모두가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46-55까지는 마리아의 기도문입니다. 그의 기도는 성경에서 성경으로 이어진 말씀의 종합입니다. 그가 필요로 하는 성경구절을 자유롭게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과 생명의 희생까지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이 마리아였습니다. 썩어져 가는 세속에 물들지 않았던 사람이 마리아였습니다. 성경말씀을 가까이 했던 사람이 마리아였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2.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2:7 말씀에“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에 처음으로 사용된 도구는 말구유였습니다. 그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을 따라 모든 사람들이 호적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관 객실은 이미 다 차버리고 자리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하나님의 이들을 모실만한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했겠습니까? 만일 천사가 어느 가정에 들어가서 메시아의 나실 곳이 없음을 알렸다면 어느 누구가 천사의 지시를 거절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말구유에 탄생하시는 것 자체가 진리요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구유의 탄생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택하신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일생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영광이 가득한 하늘나라에서 추한 세상에 내려오시되 하려한 궁궐이나, 부자의 호화로운 저택을 택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요셉의 가정을 택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탄생은 말구유였습니다. 이처럼 가장 비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비천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멸시하고 천대하는 가난한 사람, 죄인, 고아, 병든 사람의 벗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두의 희망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61:1예 예수님께서 하실 사역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하셨습니다.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가난뱅이 록펠러가 세계적인 석유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웠던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기를“나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알고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때를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삶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도우십니다. 이사야 41:10에“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셨습니다.

3.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6 말씀에“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조금 전 드린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되 거룩한 땅 예루살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도시 로마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문화의 도시 아덴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유대 고을 가운데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오셨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곳은 작은 곳입니다.

사무엘상 15:17에“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의 교만함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의 모습은 자기 자신을 지극히 작게 여기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로 통해 사울이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듣고“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사무엘상 9:2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작게 여긴 사울을 들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사울은 변하여 교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울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자실 자가 되었고, 그의 가족은 멸족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되“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언 18:11) 하셨습니다.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할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망하게 됩니다.

1912년에 영국은 거대한 배 한척을 만들었습니다. 무게가 46,300t, 길이가 259m나 되는 초호화 여객선의 이름은 그 유명한 타이타닉입니다. 타이타닉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신족(巨神族) 타이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배를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며 호기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첫 항해에 나선 4월 14일 뉴펀들랜드해역에서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승선자 2,208명중 사망자가 무려 1,513명이나 되었습니다.“최고의 배”가 일으킨“최대의 참사”였습니다.
훗날 영화화 된 “타이타닉”을 보면 선장의 교만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전 속력으로 항해하라. 모든 신문들이 타이타닉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배로 기록할 것이다.”그러나 선장의 교만은 몇 시간 후 나타난 빙산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패망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달아 겸손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겸손함이 바른 삶의 지혜입니다.

바울사도가 회심한 후 몇 해 되지 않은, A. D. 59년에 그는 자기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고린도전서 15:9)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로부터 5년이 지난, A. D. 64년에 바울은 스스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베소서 3:8)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A. D. 65년에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디모데전서 1:15)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겸손입니다.

베들레헴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그 곳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는 출입문은 낮고 작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 문을 가리켜 “겸손의 문”이라 합니다.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 탄생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작은 자 즉 겸손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에 모태로 사용하신 사람은 마리아였습니다. 그는 정결한 처녀였으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에 따르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에 처음으로 누우신 곳이 말구유였습니다. 불쌍하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생애를 대변하는 도구였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때에 태어나신 곳은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즉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둔 지금, 내 마음의 자리는 어떠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계실 수 있는 믿음과 순종과 헌신의 자리, 주님께 소망을 둔 자리, 그리고 지극히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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