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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평강의 왕 예수 (사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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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션 학교에서 40여명의 학생들에게 단어 연상 질문을 했습니다.
즉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말해보라 했습니다. 그 대답은 각각이었다
<성탄추리> <가시나무> <선물> <칠면조> <공휴일>
<캐롤> <산타클로스> 등등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을 적어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탄절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이 분이 오늘 내게 누구신가를 깊이 상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nbsp;

예수님이 베들레헴 땅 말구유에 나셨다는 것은
참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요1:14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란 말씀 같이 하나님의 임마누엘 사건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사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임마누엘 사건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 이 땅에 오시기 전 약700년 경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사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말씀에서 보듯이
사7-12장은 임마누엘 장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란 뜻입니다.
주전 700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바라본 예수님은
이 땅에 어떤 분으로 오십니까?

이사야가 본 예수님은
1-2까지 고통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1절에 보니 [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과 납달리 땅으로 &nbsp;멸시를 당하게 하더니 후에는 해변의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하면
마태복음에서 해석을 해 줍니다.
마4:12절 이하에
[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
즉,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요1:5절 [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이 세상은 빛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3절에서 보듯이 바로 즐거움입니다.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추수하는 즐거움이 더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농부라야 알지요.
화분에 밀감나무를 키우는데
해마다 2-30개 정도 추수를 합니다.
아~! 그 즐거움, 농부의 즐거움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아요.
또 추가된 즐거움은 전쟁의 승리에서 얻는 기쁨입니다.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이란 곧 전쟁의 승리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 라는 말씀은 출애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되어 나올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 이다 ] 는 말씀은
미디안 족속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심지어 추수마저 굴에 숨어서 몰래 하던 시절에
기드온이 300 용사를 거느리고 미디안을 쳐부수었을 때 느꼈던 그 기쁨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구원의 기쁨을 영원히 누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이 세울 나라는 달리 말하면 전쟁이 없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입니다.
5절에, [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 라고 합니다.
갑옷과 피묻은 복장을 왜 불에 사릅니까?
빨아서 다시 입지 않고?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사야 선지자가 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입니까?

6절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 말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
결코 영화의 수퍼스타의 에수 같이, 성화에서 보는 예수님의 얼굴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남성미가 넘치는 멋있는 예수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
되려 사53:2절에
[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 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도
갈릴리 지방의 이름도 없는 작은 마을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그것도 맏아들로서 자랐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족속의 기업이 있는 땅을 지키지 못하고
유다 족속 사람이 멀리 북쪽 갈릴리에 가서 산다는 것
고향땅 등졌다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 살길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것도 대도시가 아니라
시골 마을 나사렛 출신이란 완전히 촌뜨기란 말입니다.
지금도 나사렛은 벽촌이기 때문에
성지순례를 위하여 이스라엘의 찾는 사람들에게 관광 가이드들은 성경적으로 매우 중요한 예수님이 사셨던 곳을
성지순례 코스에 잘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nbsp;
그것은 나사렛은 지금도 아주 시골 벽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46에 빌립이 친구 나다니엘에게
[ 모세의 율법이 말하고 여러 선지자가 말하던 그이를 만났는데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 고 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출생 성장과정 등을 살펴보면
가장 평범한 서민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의 눈을 뜨고 보면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의 귀한 예물을 가지고 경배 하듯이
말구유에 나신 예수는 참 하나님이신 분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했습니다.
정사-영어성경에는 Govement 정부라는 뜻이데
히브리어<미스라> 라는말은 통치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깨에 정부를 메고 오셨습니다.
사22:22절 [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쇄를 그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 ]
예수는 그 어깨에 하늘 보좌를 열 수 있는 열쇄를 메고 오셨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메고 오셨습니다.
본래-신약에 천국이란 말-바실레이야-바로 통치하다 란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 천국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내 가정의 호주로 모시면 마음 가정 천국..

대통령 위에 가장 위대한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인정하는 나라와 국민은 번영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nbsp;미국 달러는 오래 전부터 전 세계의 통용화폐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nbsp;
미국 달러의 동전에 보면 In God We Trust 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미국의 한 농부가 국회에 편지를 보내서
미국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모든 국민들이 탐욕을 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기 위해서는 [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 는 문구를
모든 화폐에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건의서를 냈는데
이를 좋게 여겨 국회에서 통과를 시켜
모든 미국 화폐에는 이 글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미국의 달러는 세계적인 화폐가 되었고
달러가 없이는 무역거래를 할 없게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화폐에는
마귀를 상징하는 용의 그림이나 불교의 탑과 연꽃문양을 새겨 넣어
우상 아닌 우상이 화폐 속에 담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려면 화폐부터 바꾸어야 한다. 통치권을 예수님께 드린 나라와 가정은
복 받은 나라와 가정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이름이 특이합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6절에 먼저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합니다.
이름은 속성을 말합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 것을 말합니다.
1) 기묘자 란?
펠레-영어성경-The Wonderful 신기한 분, 히얀한 분
이 말은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1)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에게 흠모와 놀라움의 대상이 되시는 분
예수를 믿게 되면-한번 쇼크를 받아야 정상입니다.
Oh! Wonderful! 그분의 위엄에 엎드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게 정상이지요
2) 인간사에 오셔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베푸시므로
놀라움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믿는 예수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뿐 만이 아니라
깜짝 놀랄만한 일을 내게 행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삿13: 단 지파 마노아
I am the Wonderful
얼마든지 아들을 낳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모사-Counsellor 우리말로 상담자란 뜻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령님-보혜사
옆에서 가르쳐 주고 변호해 주신느 분
나의 변호사란 말입니다.
지금 변호사는 선임료 주어야 변호해 주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하늘나라 국선 변호사입니다.
실감나게 말하면 <백 그라운드> 빽이란 말입니다.
빽 참 좋지요!-우리나라 사람들 빽 참 좋아합니다.
이어령 교수 말 빌리면-우리는 줄 문화라서 그렇답니다.
세상 빽은 변하지만
우리의 백 그라운드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히13:8절 [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인 줄 믿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기묘자 묘사란 말을 한테 묶어 해석합니다.
사28:29에 [ 그의 묘략은 기묘하며 ]
이 말은 기묘한 모사란 말인데
좀 실감나게 말하면-신기한 상담자, 히얀한 상담자
우리인생의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그분 앞에 내어 놓을 때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분인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3)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에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로 표현
여기서는 깁보르-힘있는 용사라는 말을 사용
대적과 싸우시는 예수님의 모습
사단의 권세와 싸우시는 예수님
그래서 요1서3:8절 [ 나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왔다 ] 고 합니다.
깁보르 예수는 승리하신 예수
우리의 군대장관 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 앞에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예수님 대장 되시고 우리 졸병 되면 얼마든지 세상과 마귀의 세력
이길 수 있습니다.

4)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합니다.
변함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약1:7절에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5) 평강의 왕이라 합니다.
눅2:14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예수님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이기 때문에-평강으로 다스리십니다.
요14:27절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하나님의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평강입니다.
빌4: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을 평강으로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7절에
[ 그 정사와 평강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하나님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사르게 되는 날까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릴 때만이
피 묻은 복장을 불에 사르는 일이 가능합니다.
내가 왕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는 이상
나의 감정, 나의 기분이 우선이 되면
날마다 피를 튀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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