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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예수님을 경배한 사람들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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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2005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생업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더 신이나서 분위기를 띄우고 난리입니다.
저희가 사는 아파트 앞에 큰 춤을 추는 집이 있는데 성탄절을 맞이하여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성탄절 기념으로 할인을 한다면서 광고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호텔 앞에는 아주 화려하게 츄리를 장식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돋굽니다. 어쩌면 그 화려하고 분위기나는 장식을 하면서 우리 호텔에서 성탄절 밤을 멋지게 보내기를 기원하면서 그 장식을 하지 하였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듣는 많은 성탄관련 노래를 보면 성탄절날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하고 루돌프사슴코가 등장하고 전혀 예수님과는 관계없는 것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성탄절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헛된 것들을 경배하면서 속으면서 사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들은 진정으로 이 성탄절날 우리가 진정으로 경배할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누구인지 압니다. 바로 우리들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예수님은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당시에 예수님이 오셨을때도 예수님은 경배를 일반적으로 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예수님이 태어난 유대땅의 분위기는 특히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유대땅에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경배를 받은 사람들은 사람들이어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재산을 빼앗기고 억압과 불안 박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그들은 시기하고 모함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존경을 빼앗기기 때문이었습니다.오늘도 이런 현상은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성탄절 예수님을 경배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는 최초에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였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소개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내용이 누가복음과 오늘 본문에 소개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최초의 경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들이 최초의 경배자들이었습니다.바로 동방방사들의 경배입니다.이들은 위대한 경배자들이었습니다.
이 동방박사들은 누구일까요?
대부분의 주경가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와 박사들을 천문학자로 보고 있습니다.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가스팔(Caspar)박사,메키올(Mechior)박사,발디살(Barthasar)박사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동방박사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이엇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는 것을 유대인이 알지 못하고 이방인이 먼저 그 비밀을 알고 경배하였다는 것은 굉장한 충격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경배하여야 합니까?

첫째는,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2절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 배하러 왔노라
여기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나시는 이로 알고 경배하기 위해서 동방으로부터 왔습니다. 어떻게 이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시는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까? 본문 2:2에 보면 “그의 별을 보고”라고 했고,10절에서도 “저희가 별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동방박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동방박사들에게 우리하나님은 별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게 했습니다. 별을 통해서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심을 믿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복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방인들이었던 동방박사들을 전적으로 선택하셔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야로 이땅에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다는 것을 이미 구약에서는 400여회 이상 특별계시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예언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장소를 예언했습니다.
미가서5:2에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다스리는 자”“ 이스라엘의 목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님이 이땅의 메시야로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왕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문제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듣긴 들어도 그냥 흘렸고 배우기는 배워도 그것을 실제로 되어질 말씀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약속대로 이땅에 오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 예언을 성취하시는 가운데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주로 왕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흑인예수도 있고 백인 예수도 있고 잘 생긴 예수도 있고 못생긴 예수도 있고 자본주의 예수도 있고 사회주의자 예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개혁을 위해 투장하는 예수도 있고 살며시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예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도덕가요 선생님 정도로 우리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시고 삶으 본을 보여주신 분으로 이해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해방인 간디도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가르친 팔복의 메시지를 삶의 좌우명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그분의 가르침만 귀하게 받아들이는 정도였습니다. 오늘날도 교양과 나의 수양을 위해서 예수님을 그 정도에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합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 중에 다빈치코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사람이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선지라고 합니다.
그 책을 보면 상당히 논리적으로 예수님을 그렇게 소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와와 결혼하여 딸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고나서 막달라 마리아와 그 딸은 유럽의 갈리아라고 하는 곳에서 살면서 메로빙왕조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메로빙 왕조는 ‘시온수도회’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온수도회에 회원이었던 사람 중에 우리가 달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있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보면 예수님은 혈통을 간직한 막달라마리아가 교회를 이끌기를 원햇지만 베드로가 못마땅해서 결국 교회는 그녀를 창녀라고 하고 지도자 역할을 박탈햇다는 것입니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피신해서 갈리아에서 숨어 살았고 그래서 오늘날도 예수님의 후손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교회에서는 철저하게 암호와 상징속에 철저하게 은폐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온수도회일원으로서 이 진실을 알고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이 진실을 교묘하게 그림으로서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냥 예수님이 단순한 사람이라면 사복음서의 많은 이적과 기적은 모두가 거짓이 되고 부활사건도 거짓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많은 사람들의 그리스도이신 메시야이심을 우리 모두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신하고 의심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은 자연계시 속에 예수님의 오심을 보여주었습니다.여기 본문에 보면 동방박사들에게 별을 통해 나타났습니다.종말에 주님이 재림할때도 자연 역사가 있습니다. 마24장에 보면 “해가 즉시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24:29)고 하십니다.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난 별은 바로 예수님이 이땅에 왕으로 메시야로 오시는 것을 알려주고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동방에서부터 왕으로 탄생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방은 과연 어디인가에 대해서 여려견해가 있습니다. 애굽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메데바사로 보는 견해도 많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의 동쪽에 있는 나라중에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이 발달한 나라로서 이 메데바사가 가장 발달하였기 때문에 메데 바사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그러나 정확하게 어느나라로 결론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먼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짮게는 수백키로미터 길게는 수천키로미터일수도 있습니다.그들은 모든 사생활을 포기하고 시간을 바쳤습니다. 그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엄청난 시간과 몸을 희생하면서 인내하면서 이렇게 헌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분이 바로 이땅에 왕으로 오실 메시야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왕으로 메시야로 오실 것을 예언하셨고 그 예언대로 만왕의 왕으로 메시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이시간 우리의 왕으로 오신 그 예수님을 메시야로 만왕의 왕으로 믿음으로 보시고 마음에 믿으시며 경배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엎드려 경배하여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박사들은 요셉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이 역사의 비밀과 수수께끼를 천사들에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천사들에게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나를 경배하지 말고 주 하나님만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박사들은 아기예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세계에서 존경받는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그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아기예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베이커는 “박사들은 자신들의 무릎과 손과 심지어 입술까지 땅에 대고 경배했다.그것은 그들이 찾던 왕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 주님에게 경배할 수 있습니까?
나를 높이는 사람은 주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경배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스라엘으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여기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누구입니까? 제사장은 제사 집전을 맡은 지도자이고 서기관은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입니다.그들이야말로 종교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이 대망하는 메시아를 밝히 알고 기뻐해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하고 헤롯이 물었을 때 정확하게 그 장소를 알았습니다.
6절“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이 말씀은 구약 미가서 5:2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지식은 분명히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성경지식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높임을 받는 자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는 발달되어있지만 그 속에 진정으로 메시야를 기대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종교인입니다.
이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외적인 경험과 유전과 전통을 앞세워서 예수님을 강하게 대적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종교지도자들의 특징은 자칭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이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는가를 마태복음 23장에 가서 보면 “화있을진저”라는 말을 7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들을 향하여 마23:33“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진노하십니다.
왜 이렇게 이들에게 주님께서 진노하십니까?
말만 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거룩하게 사십시오.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하면서 자신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중 앞에서는 기도를 하면서도 진작 기도한 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자신들이 높임을 받고 대접받는 것은 좋아하면서 주님을 높이는 신앙의 모습은 없습니다.그리고 이들은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 사역하실 때 늘 “비판”하였습니다.진리의 문제가 아닌 것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전통을 따라 비판하고 대적하엿씁니다.왜 그렇게 비판을 하는 것입니까? 마27:18절에서 마태는 “시기심”때문이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들은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면서 자신들의 그 자리가 위협받게 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경배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대적하엿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들이 주님을 얼마나 대적하고 비판하였는가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2장에 보면 안식일에 밀밭길을 지나가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자 “율법을 어겼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제자들이 떡을 먹을때에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을 가지고 또 비판을 책망을 합니다.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자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탄식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마음 속에 탐욕과 방탕과 교만이 가득한 것을 아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누구에 의해 죽었습니까?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이들이 예수님을 심판합니다. 무엇이라고 심판합니까? “참람하도다”라고 합니다.신성모독죄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부여된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스스로 하늘로서 권위를 부여받은 제사장이요 지도자라고 인정을 합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님 당시의 이런 종교지도자들의 전통을 유전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경험과 직분으로 성경도 알고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경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경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동방박사들은 사회적으로 신분적으로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엿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로서 만왕의 왕이심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보다 높으신 만왕의 왕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결국 겸손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경배하려면 먼저 그분을 만왕의 왕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믿는다면 우리의 나이,사회적 지위,경험,지식을 다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경배하셔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가 만왕의 왕이라는 믿음이 들어갔음으로 그분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겸손하게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그분을 경외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예물을 드리면서 경배하여야 합니다.
황금은 최고의 가치로서,유향은 최상의 향료로서,몰약은 방부제로서 아기 예수께 바친 고가(高價)의 예물이었습니다.이 세 가지 예물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을 위해 바친 것들이었습니다.
이 예물은 이들의 최고의 정성이 들어간 예물이었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가장 존귀한 것들이엇습니다. 먼 여행을 오면서 이 예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께 맨손으로 나가지 않고 그분을 높이기 위해 최고의 정성을 모아서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에게 무엇으로 경배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여러분의 손에 있는 황금이 무엇입니까? 몰약이 무엇입니까? 비록 그런 물건이 없을지라도 낙심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사랑을 드리시십시오.여러분의 준비된 마음,헌신된 몸을 드리시십시오.“나를 드리오니 받으소서 그리고 주의 영광이 이땅에 충만하게 하옵소서”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인생의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이렇게 물질로 경배하기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헛된 탐욕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 동방박사들의 행동과 삶을 경제논리로 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이들은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그 먼거리를 소비하면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물을 드렸습니다. 만약에 이들 속에 세상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하엿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분들이 물질로 헌신을 합니다.
요즘 연말정산을 하면서 개인별로 지난 한해동안 물질의 헌신이 결산나는 것을 봅니다.
정말 한분 한분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물질의 헌신을 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것이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 듯이 부자일수록 더 물질에 짤 수 있습니다. 그래야 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적인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우리의 삶이 그분의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한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줄로 믿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경배하고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나가는 말)))))))))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서 먼거리를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죄에서 구원할 만왕의 왕으로 믿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가장 귀한 보물을 바쳤습니다. 우리 삶 속에 이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찬양의 모습이 회복되어서 위대한 경배자들로 기억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예수님을 풍성하게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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