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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주여, 이 땅에 복 주소서! (눅 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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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충청도 이발소에 미국인이 찾아갔습니다.  미국인이 들어가자 이발사는 "왔시유?"(What see you?)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인은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뭐 보느냐고 물어오니까 "미러"(miror)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발사는 미국인의 머리를 아주 빡빡 밀어버렸습니다.
아주 황당한 경험을 하게된 미국인은 "다음부터 이발소에 갈 때는 한국말을 배워 가야지" 하면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웠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다시 그 이발소를 찾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발사는 "왔시유?"(What see you?) 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번과 똑같은 말을 들은 미국인은 순간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침착하게….  미국인이 이발사의 발을 보고 있었으니까 발을 보고 있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발'이라는 단어는 생각이 나는데 도무지 보고 있다는 한국말이 생각이 안 나는 것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미국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I SEE 발."

오늘 복된 성탄주일을 맞은 모든 심령과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앞 뒤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 듯이 오늘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직히 우리가 성탄절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이해를 한다면 이것이 정말로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점점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려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집에 태어나서 살고 싶어합니다.  실제로 우리들 보다 지혜로운 동방 박사들은 이 평화의 주님을 만나겠다고 헤롯 궁전으로 달려갔었지 않습니까?  동방 박사들이 궁전으로 찾아간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기가 태어날 장소로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 구석진 곳에 있는 천한 마구간을 선택하셨습니다.  지금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성탄절을 휘황찬란하게 장식을 하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날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초라합니다.  분명히 성탄절은 이 세상의 이치에는 맞지 않습니다. 

너무 높고 너무 귀하고 너무도 바라던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 버리시고 아주 낮고 낮은 곳에, 비천한 자의 자리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신 참된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성탄절이 아름답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아무도 성탄절을 그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사람이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아니 생각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양을 띠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이치에는 안 맞는 쇼킹한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필립 얀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이치에 맞지 않는 탄생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조자가 지구상의 피조물 가운데 한 부분이 되신다는 이 사실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도 견줄 수 없고 전혀 생소하며 유일무이한 사건이었습니다.  춥고 어두운 어느 날 밤 베들레헴 굴곡진 언덕 위에서 영계와 물질계가 극적으로 교차되었습니다.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계신 하나님께서 시골뜨기 아이가 되셨습니다.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똑 같이 걷는 법과 말하기와 혼자 옷 입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음으로 의도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결함 속으로, 약점 속으로 들어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전지하심은 당시 통용어였던 아람어 발음 하나 하나를 배워야 하는 한정된 두뇌로 바뀌었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그의 편재하심은 두 발로 걷고 때로는 나귀를 타야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의 전능하심은 나무를 켤 정도의 힘은 있었지만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나약한 상태로 변하셨습니다.  한 눈으로 온 우주의 별들을 바라보시던 그분이 나사렛의 좁은 오솔길과 유대 광야의 바위들과 예루살렘의 복잡한 거리를 쳐다보셨습니다.  물질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물질의 형태를 취하셨습니다.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의 한 점이 되듯, 극작가가 자신이 쓴 연극 대본의 한 등장인물이 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도무지 우리의 이치에는 맞지 않는, 그래서 이해할래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의 그 마음을 여러분은 읽을 수 있습니까?  내가 무엇이길래 저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별들 가운데 거하시던 하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의 그 마음에 담긴 사랑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참된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온갖 스트레스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갇히고 포로된 자들에게는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성탄절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베들레헴 들판의 목동들에게 찾아와서 천사가 외쳤던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복되고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여러분에게도 임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찰스 알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로도 성령의 불은 끌 수 없는 것처럼 세상 모든 근심 걱정으로도 성령께서 인간 마음에 가져다주시는 기쁨은 누를 수 없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은 기도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사랑입니다.  기쁨은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랑의 그물입니다"  기쁨은 정말로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1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그렇습니다.  즐거운 마음은 얼굴을 밝게 하지만 근심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과 영혼을 사로잡아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이 큰 기쁨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팔레스틴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작은 시골 베들레헴도 고요히 잠들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도 양들의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때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온 땅을 두루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목자들은 처음 당하는 이 일에 크게 무서웠습니다.  그때에 하늘로부터 천사의 음성이 우렁차게 들렸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는 밝은 낮도 있지만 캄캄한 밤도 있습니다.  인간 생활에도 낮과 같이 광명한 때가 있는가 하면, 밤과 같이 캄캄한 때도 있습니다.  환난의 밤, 고통과 질병의 밤, 실패와 낙심의 밤, 고독과 번민의 밤, 궁핍과 가난의 밤, 슬픔과 배신의 밤, 어둠과 혼돈의 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중에 누구 하나 이런 인생의 밤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나라도 매한가지이고, 사회나 기업도 매한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밤길을 걸어 본 적이 있습니까?  밤길은 주의해야 합니다.  밤길은 낮길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 됩니다.  밤길은 훨씬 더 무섭습니다.  특별히 밤에는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밤길은 넘어지기도 잘 합니다.  밤길은 함정이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앞을 집중해서 살펴야 합니다.  그래도 이런 밤길은 괜찮습니다.  어쨌든 내가 조금만 조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생의 밤길입니다.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불 때 /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척이 떠나가니  /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이 노래는 김활란 박사님이 일제 시대에 나라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우리 나라의 암담한 실정을 광풍노도가 몰아치는 캄캄한 밤에 바다를 떠다니는 외로운 한 척의 배로 비유하여 작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일제 시대에 나라만을 의미하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는 이 노래처럼 사나운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캄캄한 인생의 밤길을 걸어가는 분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를 휘감아 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캄캄한 어둠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더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힘들고 지친 모습으로 캄캄한 인생 길을 외롭고 힘들게 걸어가는 인생들을 위해 영원한 한 빛을 주셨습니다.  이 빛은 바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빛을 바라본 사람들은 인생의 밤길 가운데서도 깨어서 용기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길을 걸어갔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절규하는 그 순간에도 이 빛을 바라본 사람은 다시 희망을 향하여 힘차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심령에 모십시오.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내 안에 있는 모든 어두운 영들을 다 몰아내고 밝은 성령의 빛이 강하게 비추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아십니까?  절망과 낙심에 빠졌던 수많은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마음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품고 비전을 향하여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날마다 때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때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더 좋은 소식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주저앉아 있는 인생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셨다는 소식은 수고하고 지친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들려주시는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 좋은 소식은 잘 배운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어쩌다 좀 못 배운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이 좋은 소식은 높으신 분들에게도 필요하고, 좀 부족한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이 좋은 소식은 좀 가지신 분들에게도 필요하고, 못 가지신 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이 좋은 소식은 평화 중에 있는 나라에도 필요하고, 전쟁 중에 있는 나라에게도 필요합니다.  이 좋은 소식은 죄 중에 있는 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실패와 질고 중에 있는 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지는 가장 크고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 이루어진 날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빛을 받은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 빛을 붙든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 빛을 붙든 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이 빛을 보고 붙잡았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다"고 부르짖어면서 붙들고 늘어졌던 야곱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붙잡으십시오.  이 길만이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  이 길만이 이 민족이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밤 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대기 오염 때문에 영롱한 별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별은 캄캄한 밤에 더욱 그 가치가 있습니다.  별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입니다.  저희가 어린 시절에 길을 걷다가 방향을 잃어버리면 별의 방향을 보고 걸으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별은 시대의 이정표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힘들고 혼란하고 어렵더라도 별을 보고 있는 사람은 방향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별은 모든 생명에 평안과 안심을 줍니다.  저희는 어릴 때에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아빠 별, 엄마 별, 내 별', '별 하나, 별 둘, 별 셋'  그렇게 별을 헤아리면서 동심을 키웠습니다.  별은 시대의 신비를 표현하는 하늘의 상징입니다.

이 평화의 별이 오늘 우리 모든 심령 위에 떠올랐습니다.  실의와 낙심과 좌절과 낭패와 질고 가운데 있는 곤고한 심령과 가정에 하늘의 별이 떴습니다.  이 별을 평화의 별이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왕이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혼란과 흑암과 낭패와 좌절 가운데 있는 모든 심령들은 이 별을 보셔야 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예배 드리러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고개를 들고 하늘의 별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위하여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귀로 듣지 못하고 미처 우리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크고 기이한 대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흉하여 산이 흔들릴지라도 이제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담대하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환난과 질고와 병마와 낙심과 실패와 고통과 빈곤도 저 소망의 별을 보고 어떤 자리에서든지 용감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승리의 별, 생명의 별을 보고 산을 옮길 믿음을 붙들고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온 세상이 아무리 캄캄하고 답답하다고 할지라도 소망의 빛을 따라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힘차게 일어나십시오.  원수 마귀가 나를 향해 치고 달려들어도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일어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안식과 평안과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평안을 얻은 사람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강같이 철철 흘러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늘의 신령한 힘들을 사모하십시오.  하늘의 신령한 꿈을 붙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깨뜨리고 인간이 되셔서 우리들 가운데 오신 이 사건을 놓고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리고 이어서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11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주목하셔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가 "누구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여기에서 '너희'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과 영어 성경에 보면 2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를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그것도 아주 작은 말 구유에 오셔야만 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오늘 죄인된 나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선언!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오셨다는 말씀.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 복음이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스타는 마를린 먼로입니다.  이 먼로와 겨루는 최고의 배우가 있는데 콜린 다운젠스 에반스라고 하는 배우입니다.  두 사람이 헐리우드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먼로는 자신의 육체를 믿고 세상을 향해 살아가 어느 날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에반스는 예수를 믿고 젊은 목사님과 결혼을 해서 선교사로 갔습니다.  이 분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버리고 갈 수가 있냐고, 괜찮으냐고.  그때 에반스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 저는 영국 여왕보다 더 행복하고 미국 대통령보다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 아닙니다.  소유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실 때에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놀라운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살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밥도 전기 압력 밥솥이 있어서 시간을 맞추어 놓고 자면 밥솥이 알아서 제 시간에 밥을 해 줍니다.  빨래도 옛날 개울가에 가서 시린 손을 입김으로 데워가면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끝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가지 좋은 조건을 갖추었는데도 지금 우리의 사회가 도덕적으로 길을 잃어버리고 퇴폐 문화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은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 시대의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물질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그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행복을 찾아갔던 먼로는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인기를 찾아가고 온갖 부귀 영광을 누리려고 했지만, 그는 그 곳에는 행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책에는 나는 늘 한 손으로 잡으려고 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심령에 주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의 빛이 주님의 은혜가 주님의 사랑이 주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힘든 이웃 가운데 거하여야 합니다.  고난과 실의와 염려와 근심과 좌절과 흑암 가운데 있는 세상 속에 있는 저들 속에 우리가 찾아가서 함께 거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하나님의 교회들이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눈이 멀어지면 안됩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고 교인이 많아도 교회와 성도가 그 시대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역사를 주도하지 못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갑자기 복을 받아서 잘 살게 되는 그런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지만 내가 일체의 자족하는 비결을 알고, 남이 갖지 못한 천국 지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저 고난의 한 중심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 속에 거할 수 있는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용기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저들 가운데 거하러 나가십시다.  이 땅에 하늘의 평화 그리스도 예수의 가득한 평화를 선포하러 세상을 향해 나가십시다.

1.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아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
4. 은혜와 진리되신 주 다 주관하시니
  만국 백성 구주 앞에 다 경배하여라
  다 경배하여라 다 경배 경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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