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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 성탄, 하나님의 큰 사랑 (요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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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절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세계 최대의 뉴스
최근에 우리나라는 황우석교수의 뉴스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타임지는 최신호(12월5일자) 커버스토리 ‘2005년 세계 의학계뉴스 A에서 Z까지(사진)’에서 황우석 교수가 생명과학계에서 이룬 성과를 올해 최고의 뉴스로 선정했습니다.
타임지는 “황우석 교수는 난자 취득과정에서 불거진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궈낸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스너피를 탄생시킨 복제기술은 올해 의학계 최고의 뉴스”라고 꼽았습니다.

인간에게는 병이 참으로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암환자 인구가 30만명이라고 공식 발표하였고, 실제로 50만명 즉 국민의 1% 이상이 암환자일수 있다는 비극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까지 합치면 대략 20% 이상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희귀병 환자는 국내에 100여 종에 걸쳐 100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희귀병은 치료가 어렵고 또 치료를 하더라도 성공률이 굉장히 낮고 또 거기에 비해서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는 굉장히 높습니다. 세상은 살기가 편해지고 넉넉해 져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또 다른 장벽들인 난치병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우석 박사의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연구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할 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의 빅뉴스였습니다. 의학계 경제계가 굉장한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교수의 논문이 조작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희망을 걸었던 난치병 환자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충격에 휩싸였고, 배신감, 허무감과 혼란과 불신의 분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세계의 최대 뉴스는 무엇이겠습니까? 인류가 진정으로 바라고 기대하는 굳 뉴스는 무엇일까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진짜 난치병 중에 난치병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줄기세포 연구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인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의 문제의 해결을 놓고 고민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철학이 시작되었고 여기에서 종교도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죄는 이런 방법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오신 하나님
오늘의 죄는 인간을 이기주의로 변질시켜버렸습니다. 온 세상이 자기중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me generation”, 자기중심의 세대라고 합니다. 이런 유모어가 있습니다. “엄마, 나 나 맞아?” “그럼. 맞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나보고 너래?”
“너니까 너지.” “아냐,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져 가는 시대입니다. 대화도 없어지고, 관심도 없어지고, 그래서 관계가 끊어지고, 사랑할 수가 없게 된 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 관광하러 오신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한 사건입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주님은 십자가 지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원수같은 나를 사랑하셔서 오신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 남편이 주일저녁에 교회에 갔다 오자마자 아내에게 너무 친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 . . 아내는 목사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과일바구니를 들고 다음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주일 저녁예배말씀이 굉장히 좋았나 봐요? 목사님, 주일저녁 설교말씀이 아내를 사랑하라였죠!” 그 때 목사님 왈, “아닌데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요. . . . ”

크리스마스의 사랑의 이야기는 결국, 원수 같은 우리들을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나 이유를 따질 것 없이,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 죄 용서함을 받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의 생명을 내어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대속적인 희생이 바로 그의 생의 목적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찬송가 126장 이 찬송가는 저 유명한 챨스 웨슬레(C. Wesley 1707-1788)가 지었고, 또 유명한 멘델스죤(F. Mendelssohn 1809-1847)이 작곡하였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는 평화의 왕이시고 세상 빛이 되시며 우리 생명 되시네 죄인들을 불러서 거듭나게 하시고 영생하게 하시니 왕께 찬양하여라 영생하게 하시니 왕께 찬양하여라<3절>”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벼락을 막는 피뢰침입니다. 밑으로는 인간의 백 가지 죄악을 소멸하고 도말하는 능력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탄을 기뻐합니다. 성탄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십니까?
눈부신 백설의 설악산을 보면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카메라에 담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찍어서 집에 가서 현상해 보면 작은 인화지에 담긴 그 풍경은 너무나 초라하게 보입니다. 장엄한 자연 경관을 35mm짜리 필름으로 재생해 보겠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욕심입니까?
우리는 우리 주변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일곱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1. 지구는 한 시간당 1600km의 속도로 지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구가 시간당 160km로 자전한다면 밤과 낮의 길이가 열 배나 늘어나서, 태양은 모든 식물을 태워 죽일 것이며 밤의 추위는 모든 생명을 얼어 죽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매 시간당 1600km의 속도를 유지하며 지금도 돌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2. 지구와 태양이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태양의 표면은 섭씨 6000도입니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지구는 다 타 버릴 것이요 멀어지면 지구는 곧 얼어붙을 것입니다.

3. 지구가 23도 기울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4계절을 만들어 줍니다. 기울지 않았다면 대양에서 증발된 증기는 전부 남쪽과 북쪽으로 이동하여 우리에게 얼음 덩어리 대륙들을 쌓아 줄 것입니다.

4. 대기권의 두께입니다. 지금보다 얇았다면 하루에도 수백만개의 별똥별들이 대기권을 통과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표면에 떨어져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5. 동식물이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연어는 몇 년을 바다에서 보낸 뒤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옵니다. 반드시 자신이 태어난 강물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침내 목적지에서 여행을 끝내게 됩니다. 장어는 성숙기에 도처에 있는 모든 호수와 강으로부터 심지어는 수천 마일 대양을 가로질러 유럽에서부터 버뮤다 근처의 깊은 바다를 향해 출발합니다. 그때 장어 새끼들은 물살의 깊은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세계의 바다에 항상 장어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미국의 장어가 유럽에서 잡힌 적이 없고, 유럽의 장어가 미국의 바다에서 잡힌 적도 없습니다.

6. 지구의 동식물의 억제 관계가 알맞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먹이 사슬 관계를 통해, 천적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종류의 동식물이 골고루 공존합니다.

7. 모든 동식물의 신체적인 성장이 적절하게 제한되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수천 억의 곤충이 있습니다. 그런데 곤충들이 지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소유한 폐가 없기 때문입니다. 관을 통해서 호흡하는데 곤충들이 성장하면 몸은 커져도 호흡하는 관은 커지지 않기에 성장의 제한을 받습니다. 만약 곤충들에게 신체적 성장의 제한이 없었다면 사자처럼 큰 벌을 만날 것입니다. 인간은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연히 되었겠습니까?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시19:1)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 하나만 가지고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희생의 사랑
펠리칸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부리 아래가 주머니처럼 늘어나는 것 달려 있습니다. 먹이를 특이하게 생긴 부리 주머니에 담아 새끼들에게 날라다 주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것 이상의 파격적인 것이 있습니다. 펠리칸은 먹이가 궁하여 새끼를 돌보기 어려워지면 자신의 가슴의 털을 뜯고 살을 찢어 새끼를 먹인다고 합니다. 아무리 새지만 정말 이런 모성애를 발휘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겠습니까?

새끼가 병약하여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되면 어미는 자신의 가슴살을 찢는 정도가 아니라 핏줄을 끊어 흐르는 피를 새끼의 입에 넣어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새끼를 살리고 자신은 기꺼이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런 펠리칸의 모성애는 창조주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 그 속에 작게나마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이 한번은 북극 근방 바다의 깊이를 재려고 동아줄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해저에 닿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동아줄보다 더 깊음” 이라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더 긴 줄을 가져다가 깊이를 재 보았으나 역시 해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같은 작업을 며칠 계속하였지만 북극의 깊은 바다의 깊이를 잴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난센은 그의 일기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근방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같다. 끝없이 깊은 바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잴 인간의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오직 병든 자에게 필요합니다. 죽을 죄인에게는 생명 주시는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죄의 삭은 사망’입니다. 죽음입니다. 죄인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죽는 자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죄인인 인간은 누구나 구세주를 찾고 있으며 어느 종교나 인류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한 연재만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목욕요금이 좀 다릅니다. 술 취한 사람이 들어오면 삼천 원, 거지가 들어오면 사천 원, 일 년에 목욕 한 번 하러 오는 사람은 오천 원, 이 사람은 때가 더 많으니까, 그런데 정치인이 들어오면 칠 천 원입니다. 정치인 한사람이 와서 ‘왜 나는 더받느냐’ 하니까 ‘여보시오 당신 같은 사람을 닦는데 물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압니까?’ 정치인의 부패를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내가 들어가면 물이 얼마가 들어갈까요? 나의 죄를 씻기 위한 물은 얼마가 필요하겠습니까? 과연 물로 씻을 수 있겠습니까?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 . 오직 믿으면 됩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을 감사하고 그분을 기쁨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사건은 천지를 흔들어 놓은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몸을 입으시고 인류 역사 안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전(B.C)과 주후(A.D)를 나누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만 있어도 잔치를 하고, 축하를 하고, 꽃다발을 전해 주고, 선물을 주고받는 등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창조주시오, 인류를 구원하러 구세주로 오셨지만, 아주 조용하게 오셨습니다. 아주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소리 질러야 합니다. 외쳐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말은 그리스도(Christ)와 마스(mas) 의 두 말이 합하여 된 말이다. “마스”란 말은 “예배”란 말과 같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얼마나 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온전히 경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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