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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라! (요 4: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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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주교 William Temple은 “➀예배란 거룩함으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➁예배란 모든 하나님의 진리로 우리 마음을 먹이는 것이다. ➂예배란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정화하는 것이다. ➃예배란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우리의 가슴을 여는 것이다. ➄그리고 예배란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헌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A. W. Tozer는 “예배는 겸손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놀라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를 겸손케 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겸손해 지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없다. 교회의 모든 규칙과 훈련과 순종하며 십일조도 하고 모임에도 참석하더라도 먼저 자신을 깊이 낮추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예배 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1.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께만 드려야 합니다.

James M. Houston은 “참된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이며 만일 그렇지 안다면 예배는 자기 숭배가 되어서 죄로 가득할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란을 가장 인간 중심적이며 자기도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릴 것을 주장했습니다(창14:18, 22:2).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B. C 400년경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 후 사마리아인들은 예배드리기 위해서 그리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B. C 128년경 유대인들이 “그리심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신12:5, 16:2).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3번이나 지었습니다.  ➀솔로몬 성전(B. C 957) ➁스룹바벨 성전(B. C 516) ➂헤롯 성전(B. C 20년경에 착공되어 1년 6개월 동안 본건물이 완공, 부속건물은 A. D 70년 파괴될 때까지도 완공이 덜 된 상태였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자라면 1년에 서너 차례씩 반드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성전을 찾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대인들은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상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셨습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께만 드려지면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 왕족과 귀족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단1:6)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갈대아식 이름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을 받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높이가 60규빗(약30m), 넓이가 6규빗(3m)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옆으로 세워놓은 것과 똑같은 크기였습니다.  신상의 재료는 솔로몬 성전과 궁에서 가져온 금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의 “두라평지”에 금 신상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의 낙성식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단3:3)을 참석하도록 불러 들였습니다. 찰나 유대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낙성식에 참석하였지만 금 신상에 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이들의 신앙을 심도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일제히 절을 하는데 세 사람이 그대로 서있다면 그들의 행동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왕앞에 끌려갔습니다. 왕 앞에 끌려가서 한 말을 보면 그들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➀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➁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와 왕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 내실 겁니다. ➂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왕의 신들과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을 줄을 아옵소서(단3:16-18).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 경배(예배)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셋이 결박되어 풀무 불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풀무불 속에는 천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결박한 필요 없는 밧줄은 흔적도 없이 타버렸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염하나, 눈썹하나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풀무불 속에서 영원한 자유를 누리며,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만을 예배했습니다. 느부갓네살도, 바벨론의 모든 훼방꾼들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자와 그들만의 세상이었습니다.

2. 예배는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게 드려야 합니다. 

휴스턴(Houston)은 “참된 진리는 그분의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 예배할 때에라야 깨달을 수 있다. 참된 예배는 창조주와 피조물, 초월적인 것과 유한한 것, 하늘의 영광과 땅의 우상을 대조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요4:24)고 말씀하셨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요4:24)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도 육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입술로, 눈으로, 귀로, 머리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건성으로 모양만 내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거듭남이 없습니다. 회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배드린다고 앉아서 죄만 더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영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고,  풍부한 감정으로 찬송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헌금하고, 마음을 열고 축복받고, 폐회 후에 용서와 화해의 인사와 악수를 나누는 참된 예배이어야 합니다.

휴스턴은 “기독교적 예배는 불가불 내면에 있는 ‘마음’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웨슬레가 지은 찬송 ‘내 마음이 죄에서 해방됐네’, ‘이제 내 마음이 주를 찬양하네’를 기쁨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이런 예배는 우리의 숨은 동기를 성찰하게 되고, 우리의 믿음과 신뢰를 심화시켜 줍니다. 이런 예배는 그저 오락적인 흥행수준에 지나지 않는 각종 프로그램을 가지고, 졸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많은 현대의 예배 형태와는 전연 다른 것입니다.
이런 현대의 예배들은 인간적인 제도와 장치를 추켜세움으로써 도리어 종교적 진정한 목적을 놓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하나님 아버지는 참 예배 자들을 찾습니다.

휴스턴은 “예배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 즉 하나님을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환호하는 모든 백성들이 다 같이 어울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말라”고 책망했습니다(갈5:26).  하나님은 지금도 주님의 말씀처럼 “참 예배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참 예배하는 자, 참 예배하는 가정과 가족들, 참 예배하는 작은 공동체와 주님의 진정한 몸된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스가랴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 머물 것임이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2:10-11)고 말했습니다.  스가랴선지자의 예언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오셔서 머무실 수 있는 참 예배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오셔서 머무실 수 있는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베르나르두스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세 번에 걸친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 첫째는 성육신이요, 둘째는 말씀으로 날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요, 셋째는 영광중의 재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인도자 Andy Park는 “나는 예배를 인도할 때 사람들에게 예배의 영을 전해 주고 싶다. 내가 예수님이 받으실 영광을 훔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싫다. 연주자들은 공연을 할 때 뛰어난 연주 실력도 추구해야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음악적인 실력이 예배드리는 마음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뛰어난 연주를 하려고 너무 애쓰다 보면은 예배의 본질이 사라진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을 굳건히 지키다 보면 음악 자체는 우리의 마음을 분산시키지 못한다. ”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예배 인도자 Matt Redman은 “그는 흥하여야 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를 예배인도자의 모토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끝맺는 말

Tommy Tenney는 예배의 요소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➀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방법이다(창14:18-20).”고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 아브라함 시대부터 실시되었고, 말라기 선지자가 확정적으로 예언했으며, 예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마23:23).

➁ “고난도 하늘 문을 연다.”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➂ “인내는 천국 문을 뚫는 효과적인 도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비오기를 일곱 번까지 기도했습니다(왕상18:42-45). 기도에도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➃ “연합이 천국의 창을 연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➄ “예배는 셋째 하늘을 여는 다섯 번째 열쇠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시24:7)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말한 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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