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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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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도 을유년(乙酉年)도 지나고 어느덧 새해 병술년(丙戌年)이 밝았습니다. 독일 격언에 ‘시작이 좋으면 모두가 좋다’(Anfang ist gut, alles gut)는 말이 있고, 한문에는 ‘일년지계는 재어춘’(一年之計 在於春)이라 해서 음력 정월 초순에 입춘이 있어 정초에 출발을 잘하면 그 해가 복되고 형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시작과 끝을 완전하게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새해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3:1-3]에 보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사늘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오늘 본문 9절에 ‘사랑’ 즉 ‘아가페 사랑’이 나옵니다. 이 ‘사랑’은 10절에 나오는 ‘형제 사랑’인 ‘필레아 사랑’보다 더 넓은 의미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존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섬김’입니다. 이 ‘섬김’에 있어서 본문 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열심을 품고’라는 헬라어 ‘토 프뉴마티 제온테스’라고 하는데, ‘토 프뉴마티’를 번역하면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니까 원어대로 번역하면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먼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말은,

1. 나 자신 안에 ‘영적 열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서 ‘영적인 열심’이 식어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는 종교가 아니라 열심으로 일하고 움직이는 열정(pathos)의 종교입니다. 정열로 넘쳐나는 종교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열정’이 없었다고 하면 어떻게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자신에게 욕하고 죽이는 이들을 향하여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사랑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서신을 띄워 보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열정이 식어진 두 교회를 책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책망은 이렇습니다.

[계2:4-5]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떻습니까? [계3:14-16]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 치리라."
성령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메세지를 주셨는데, 그 중에 이 두 교회에 처음의 ‘영적인 열정’을 다시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하신 것을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갈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여러분의 심령에 ‘영적인 열심’이 있습니까?
‘열심’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 데오스] 즉  [in God]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곧 ‘열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열정이 식어지고 있다고 하면 이는 곧 하나님 안에 있지 못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열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여야만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열심있는 사람이 됩니다. 바로 ‘영적 열심’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을 적어도 160회 이상 그러니까 수없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적 열심’ ‘영적 열정’이 있습니까?

2. 신앙생활에 있어 자발적인 봉사를 하고 있는가? 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였습니다. 휼륭한 성도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고전16:2], 은밀하게[마6:1-4],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함으로[고후9:6-8]로 봉사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3. 우리의 신앙의 자세는 흩트려지지 않았습니까? 흩트러진 자세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체험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허리띠를 동여매라”, 기도를 드리되 “깨어서 기도하라”고까지 권면하였습니다.

1) 신앙의 자세가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모습입니까? 소망이 없는 자에게는 기대할 만한 자세가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잠언서에서도 “묵시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왜 방자히 행동하여 빈축을 사게 할까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실에 방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소망으로 즐거워하고 있는지요?

2) 환난중의 인내하고 있습니까? 3)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에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시요 방패가 되시고 산성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어떻게 증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무리들에게 “네 믿음을 나에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곧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말대로 그는 기도를 통해 ‘사무엘’이란 위대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그녀의 서원한 대로 성전에 바치면서 기도한 내용 중에서 [삼상2:3]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하나님은 행동을 달아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본문 13절 말씀을 중심으로, 첫째로 “대접 하기를 힘쓰라”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황금율이라는 말까지 붙은 귀한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접하기를 즐겨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돔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의롭지 못한 롯도 죄악의 도성에 살았지만 그도 대접하기를  즐겨하다가 천사를 대접하고 구원을 받은 일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둘째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셋째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삶입니까? 우리의 삶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데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개인의 믿음(신앙심)이 새로워지고, 사회가 보다 낳은 선을 향하여 나아갈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보다 성실하고 신실한 노력이 다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온전한 신앙의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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