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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방주 이야기 (창 6:9-14, 히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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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시42편은 “하나님을 바라라?” 라고 말씀을 했고 히12장은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둘째로 중요한 것은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들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믿음의 조상들인 아벨을 바라보고 에녹을 바라보고 노아를 바라보고 아브라함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라고 분부합니다.

  그래서 “아벨의 순교 이야기”를 했고 “에녹의 동행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더 핑크라는 신학자는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삶을 밀접하게 연결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벨의 예배 후에 에녹의 동행이 있고 에녹의 동행 후에 노아의 전도와 간증이 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예배는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예배 후에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어야 전도도 있고 간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도하고 간증한 하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하심과 심판하심을 전도하고 증거한 하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노아는 히브리서 저자가 기록한 믿음의 조상들 중에서 세 번째로 나오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노아를 소개하면서 노아는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히브리서의 저자는 노아를 소개하면서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한 사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11:7). 이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히11:7을 중심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6장과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경고의 말씀을 길게 하셨고 노아는 도무지 볼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긴 경고의 말씀을 그대로 다 듣고 다 받았습니다. 6장 13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시면서 22절까지 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긴 경고의 말씀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고 그 끝 날이 이르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혈육 있는 자들을 홍수로 땅과 함께 멸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잣 나무로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과 밖에 칠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방주의 장은 삼백 규빗, 광은 오십 규빗, 고는 삼십 규빗으로 하고 방주를 삼 층으로 하고 문들과 창문들을 만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방주를 만든 다음에는 노아와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이 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들을 암 수 한 쌍씩 들어가게 하고, 새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동물들도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방주로 들어가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먹을 음식물도 다 방주로 가져다가 저축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7장 1절에서도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라고 하시면서 4절까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긴 경고와 분부의 말씀을 그대로 다 듣고 다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강변교회 성도들은 별로 재미도 없는 긴 책망 섞인 설교의 말씀을 거의 한 시간 동안 해도 요동함이 없이 끝까지 잘 듣고 있지만, 다른 교회 신자들은 30분이 지나면 시계를 보다가 뒤로 빠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새로 온 오영대 전도사님은 강변교회 성도들이 ‘무서운’ 성도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노아는 별로 재미도 없는 그리고 도저히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긴 경고와 분부의 말씀을 끝까지 다 듣고 마음에 그대로 다 받아 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노아가 의인이었고 완전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인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을 가리키고, 완전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법도를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을 가리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란 지난 주일 설명 드린 것처럼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주님만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마음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일 아침과 저녁에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말씀의 강단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는데 익숙하고 새벽마다 기도의 강단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데 익숙한 사람이 하나님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긴 말씀을 그대로 들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그대로 받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은 후 경외함으로 말씀을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6: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노아는 순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내용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세상이 홍수로 다 망하게 된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고, 비도 오지 않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산 꼭대기에서 커다란 방주를 짓는 것도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데 120여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120여년 동안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그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조롱을 받는 것도 힘이 들었을 것이고 그 큰 방주를 120여년이나 걸려서 만드는 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거의 불가능한 일을 그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믿음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서 잠간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노아 다음에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행함과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주석한 아더 핑크의 말을 여기 다시 인용합니다. “참되게 회개한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앞으로 있을 분노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고 아직 세상에 있는데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유혹과 쾌락이 넘실거리고 있다.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서 걷는 길이다. 영혼의 구원은 복종의 길 끝에 있다.”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5장 8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고 지적했습니다. 야고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함과의 불가분적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2,24).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은 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믿음과 행함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그 당시에는 자기 집만을 구원했지만 그 구원의 사건은 누구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받고 순종하면 구원을 얻고, 누구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도 받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중요한 진리를 가리켜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즉 노아는 방주를 지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하심과 심판하심을 전도하고 증거한 하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여기 노아가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다는 말은 노아가 믿고 순종하므로 의의 유산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의의 유산을 받아 자기처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의를 전해줄 수 있는 의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는 모세의 성막의 모형이었고, 솔로몬의 성전의 모형이었고, 신약시대 이후 교회의 모형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를 방주 모양으로 짓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받고 순종하면서 그래서 교회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중요한 진리를 가리켜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노아라는 말의 뜻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성경 학자들은 노아라는 말에는 ‘평안’과 ‘위로’와 ‘구원’이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노아와 노아의 방주는 구원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노아의 사건은 말세의 구원과 심판을 나타내 보여주는 예표적 사건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노아의 사건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노아처럼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듣고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노아처럼 순종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와는 내가 언약을 세우리니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6:18). 이것이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언약이고 우리들과 맺은 언약입니다. 방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7장 1절에서도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과 사도들이 세운 교회 안으로 그리고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14:23에서 산울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분부했습니다. 방주를 떠나서는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에 바쁘기 때문에,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사업하는 일에 바쁘기 때문에 방주 안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다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받을 것을 다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 안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할 것을 다짐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새벽마다 80여명 90여명의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날 새벽에는 102명이 나왔습니다. 5개월 된 수혁이와 7살 된 동혁이도 나흘 동안 새벽에 나왔습니다. 나이가 제일 많으신 김정숙 권사님은 새벽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기도하시는데, 김정숙 권사님은 새벽에 120명이 나오는 것을 새해 첫번째 기도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강변의 성도들은 새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 안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도록 새롭게 다짐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셋째, 우리도 노아처럼 세상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노아는 “오직 의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벧후2:5). 우리도 온 세상을 향해서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 구원을 얻으라는 전도의 말씀을 전파하여야 할 것입니다. 노아에게 주셨던 구원의 은혜와 노아에게 주셨던 전도의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도곡동과 강남 지역에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오늘의 방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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