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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성령의 폭발을 일으켜 주소서!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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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 공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 목사님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과 죄사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집중력이 산만해 진 것 같아서 목사님이 조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예수님이 왜 죽었죠?"  이 질문에 할머니가 피식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내가 그 양반 맨발에 머리 풀어헤치고 돌아다닐 때 알아봤다니까."

사람들은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서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극심한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캄캄한 밤에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시간마다 때마다 항상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 안에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교회의 힘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에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힘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다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단 한 가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을 능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를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보여주기를 힘썼던 스가랴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이 민족이 사는 유일한 길은 모두가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 경제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그만큼 더 공허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공허하다는 말은 마음이 텅 비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물질이 내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회 환경이 내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세상의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공허함만 느낄 뿐입니다.  결국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내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허감이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에는 비관주의에 빠져서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나라가 아시아에서 10대 흡연이 1위라고 합니다.  음주도 1위입니다.  여성 흡연도 놀라울 속도로 빨라집니다.  지금 이 땅의 심령들 속에는 담배 연기가 충만하고, 술이 충만하고, 욕심이 충만하고, 음란이 충만해 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아십니까?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도 그 심령이 공허한 사람이 있습니다.  직분을 받아도,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그 심령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엉뚱한 소리만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불평만 늘어놓게 됩니다.  그러니까 김빠지는 소리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 성령으로 채움을 받으십시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비우는 종교가 아니라 채우는 종교입니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성령으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암흑과 같은 세상을 밝은 빛으로 살아가려면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의 다른 무엇이 내 안을 채우게 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이 나간 빈자리에 성령을 채우지 않았더니 나갔던 귀신이 전보다 더 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악한 것이 자리를 잡을 수 없도록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이 시간 우리의 영적인 삶을 갉아먹는 모든 것들을 다 멀리 하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이든, 여러분 속에 어떤 일이 있든, 여러분의 심령이 어떻든, 어떤 권태와 외로움을 가지고 왔든, 어떤 낙심과 실패를 가지고 왔든, 지금 이곳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물같이 불같이 바람같이 구름같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생명도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아온 발길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생명과 축복의 길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그 심령이 공허한 사람은 그 심령에 성령이 임하시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감으로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희망과 비전을 향하여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지금 이곳에 성령의 홍수를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심령에, 내 심령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십니까?  오늘 이 곳에 성령이 임하시면, 내 심령에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힘줄들이 다 말라 가는 것 같고 소망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면 다시금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세워서 3년 동안이나 함께 했던 12제자들의 변화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들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과연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섬긴 그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 몇 안 되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재정 관리자였습니다.  그런 제자가 배반을 했다면 과연 예수님의 목회는 성공한 목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의 스승이 어디 보통 사람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의 향기를 맡으며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뿔뿔이 다 흩어졌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목숨이 아까워서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용서를 다시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줄줄이 고백했습니다.  그러고도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버렸던 그물을 챙겨들고 갈릴리 바다로 가버렸습니다.  그들은 많이도 들었습니다.  많이도 보았습니다.  많이 깨닫기도 하고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무력했던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비단 예수님의 제자들뿐만이 아닙니다.  솔직히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죄지으면서 좋을 리야 있겠습니까?  죄도 싫고 죄 짓고 사는 자신도 싫은 겁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끊어지지 않는 겁니까?  예수님을 닮은 향기로운 성품으로 살고 싶은데 왜 내 속에는 더러운 냄새만 납니까?  왜 내 속에는 감사와 기쁨 대신에 분노와 불평과 미움의 가시 엉겅퀴만 자라고 있는 것입니까?  사랑해야 할 줄을 몰라서 사랑이 안 되는 것입니까?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미워하고 사는 것입니까?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충성이 안 되는 겁니까?  뻔히 끊어야 할 줄 알고 있는데 왜 안 끊어집니까?  능력이 안 따라 주는 겁니다.  문제는 실천의 능력입니다.  문제는 삶의 능력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새로 지은 집에 지펠 냉장고도 갖다 놓고, 에어컨도 설치해 놓았습니다.  드럼 세탁기도 설치해 놓았습니다.  온갖 좋은 가전 제품을 다 들여다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에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조차 거치장스럽기만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오래 믿었다는 것조차 고집스럽기만 합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용기는 악이요 만용일 뿐입니다.  성령이 없는 교리는 율법이요 우상이 되고 맙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직분은 짐이 될 뿐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건물을 화려하게 짓고, 그래서 교회 안에 모든 좋은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서 교회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성령님이 그 교회에 임재하셔야 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배 드리는 중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말씀 중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찬양하고 기도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 교회가 정말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초대교회는 지금처럼 멋있고 우아한 크리스탈 강단도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초라한 건물에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명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교회였습니다.  민족을 살리는 교회였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교회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는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지체가 되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는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찬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한다고, 찬양한다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은 결코 성령의 역사를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령을 저버린다면 교회는 세속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세속화된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속화된 인간들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속화된 교회는 사회의 독버섯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잊지 마십시오.  개인이나 교회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때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저버린 때였습니다.  이름만 있는 것이지 생명은 없습니다.  지식은 있어도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도 마십시오.

단언하건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믿음은 어떤 믿음도 헛된 믿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내 안에는 참된 기쁨과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임하자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겁했던 제자들에게 신령한 용기가 넘쳤습니다.  하나님 외에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가두지 못했습니다.  유대주의의 전통도, 협소하기만 했던 민족주의도 그들을 가두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함께 예수님으로부터 들었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들, 그러니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능력이 바로 자신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이후에 자신들에게서도 예수님이 행하셨던 놀라운 사역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한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기억하고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고 현실로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믿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는 예수님이 하셨던 일도 할 것이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믿어집니까?  이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에서 현실로 보여지고 있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나도 주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던 것처럼 우리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셨던 것처럼 우리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병자들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도 행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살아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복음을 지식으로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복음은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이 땅에는 다시금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모인 이곳에 강력한 성령의 폭발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이 당당히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리십시오.  성령님을 환영하십시오.  인정하십시오.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님 사랑합니다 / 성령님 감사합니다.
성령님 채워주소서 / 당신의 사랑으로"♬

"성령이여, 이곳에 임하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안에 마음껏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모두가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성령의 역사가 중단된 빈껍데기 신앙이 되지 마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현장에서 뛰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성령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에 완전히 빠져서 나를 개혁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기 전에 직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의 뜨거운 경험을 하기 전에 사역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직분자가 되면 결코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생명을 걸고 주님을 향하여 달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보다도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뛰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면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금년을 시작하면서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더 많이 엎드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성령의 뜨거운 폭발이 우리 언양영신 재단, 이곳에서 일어나 이 땅에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는 발원지가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 폭발의 사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성령 임재의 사건은 인류역사상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스런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초대교회의 성령 폭발 사건이 일어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본문 1-4절까지를 다시 한번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 홍수 사건 이후에 인간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서 흩어지지 말자"면서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언어를 혼잡케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온 땅 위에 흩어버리셨습니다.  죄의 결과는 혼돈과 흩어짐입니다.

그런데 혼돈된 인간의 땅에 성령님이 오시자 언어가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9절 이하에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에 예루살렘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외쳤을 때에 최소한 열 다섯 나라 이상에서 온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교통케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은 인간들은 같은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고난과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만한 인간은 같은 말을 해도 결코 하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종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십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부부일심동체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부부, 부모 자식간에도 가치관이 통하지 않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 말이 안 통합니다.  왜요?  그 내면의 깊은 곳에 들어가 보면 다른 것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 성경을 보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정반대의 말을 합니까?  그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름을 내자"  자신의 말과 자신의 뜻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고 싶은 욕망, 자신의 이름을 내고 싶은 숨은 욕망이 가득 할 때는 교통케 하시는 성령님,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님, 부흥케 하시는 성령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성령 없이 성경을 읽으면 자기 주관적인 감정에 사로잡혀서 읽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자기의 음성이 들립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님은 다른 언어를 같은 언어로 통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하나되게 하고, 비전을 하나되게 하고, 마음을 하나되게 했습니다.  결국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고 사명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령의 폭발을 경험해야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불같이 뜨겁고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열정이 회복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오늘 우리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쌀쌀하고 냉랭한 불신앙의 길을 걸어가든지, 아니면 성령의 충만함으로 뜨거운 믿음의 길을 걸어가든지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무엇에든지 열정적인 사람이 창조적인 일들을 만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삶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열정이 없습니다.  종교인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쇼 윈도우 속에 진열해 놓은 마네킹 같은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사명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예수를 위해 제대로 한번 미쳐보십시오.  아십니까?  예수께 미친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짐 엘리엇은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붙지 않는 석면 같은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불이 붙을 수 있도록 성령의 기름을 내게 부어 주시옵소서.  또한 나를 주님의 불꽃이 되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세계의 교회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종교의 형태로 영적 무기력증으로 빠져 들어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이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고, 교인의 숫자도 줄고 있습니다.  저들은 이미 파송한 선교사도 속속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배와 기도, 사역이 뜨거워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통성 기도나 손뼉치며 뜨겁게 찬송하는 예배는 점점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병자를 위한 치유기도나, 각종 은사들이 개발되어서 사역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송이나 교회 개척사업도 더욱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뜨겁게 사모하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사도행전적 삶이 가능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사도행전적 교회가 가능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교회의 역사는 오래 전에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마치 자력없는 쇠붙이가 바늘 하나도 끌 수 없듯이 말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제자들의 모든 죄, 모든 실수, 모든 연약함, 모든 허물을 덮어버렸습니다.  성령 임재는 제자들의 모든 상처와 두려움과 공포를 씻어 버렸습니다.  성령 임재는 제자들의 미움과 불평을 거두어가고 용서와 사랑을 부어주었습니다.  성령 임재는 옹졸했던 제자들의 가슴을 넓혀서 열방을 품게 했습니다.  성령 임재는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에서 시시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했습니다.  땅 끝까지 뛰어가게 했습니다.  도시와 세상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알기에 오늘 우리도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의 폭발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99년 전 한국 땅에 임했던 뜨거운 성령의 폭발이 오늘 우리들에게서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을 시작하면서 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불길이 우리가 모인 이 언양영신 재단에서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 시간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서 더 많이 무릎을 꿇으십시오.  우리 교회, 바로 이 자리가 성령의 부으심을 강력히 경험하는 역사의 현장이 되도록 함께 더 많이, 더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에게서 성령의 뜨거운 역사들이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폭발을 이곳에서 우리들이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우리가 주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립니다.  주의 약속하신 부흥을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에게 성령의 폭발을 일으켜 주옵소서."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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