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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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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의 일군은 고난과 수고를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감당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하며 수고합니다. 일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누구나 일하는 수고를 감당합니다. 그 일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도 있고, 우리의 육신을 병들게 할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 일이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기력을 진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은 곧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만드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다스리는 일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수고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수고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원망과 불평 속에서 감당합니다. 근본적으로 일이란 우리를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우리를 곤고하게 합니다. 돈버는 일, 집안 살림하는 일, 사람 관리하는 일, 보살피는 일, 직분 상 감당해야 하는 일, 자신의 취미와 쾌락을 위해 하는 일 등 일의 성격과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 일로 인한 기쁨을 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내가 선택한 일도 아니고, 내가 원하지도 않은 일들이 내게 주어지고, 내게 수고하도록 강요되어질 때, 그 일로인한 압박은 모든 기쁨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주어졌다는 판단이 내려질 때는 인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는 점점 더 일에 대한 포기를 쉽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과감히 포기합니다. 직장도 포기하고, 일도 포기합니다.

더 나아가 가정도 포기하고, 남편이나 아내까지도 쉽게 포기합니다. 자신에게 기쁨이 없는 모든 수고로부터 도피하는 삶이 가장 현명한 삶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상이 퍼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혼율의 급증, 평생직업의 포기, 손쉬운 가입과 탈퇴 등 모든 구석에서 기쁨이 없는 수고를 피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수고를 피해서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그 수고를 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의 불순종이며, 그나마 보존된 하나님의 질서와 평강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인간의 수고를 통하여 이 땅이 보존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수고는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이 사는 이 땅에서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창 3:16에서 하와나, 창 3:17에서 아담의 경우 모두 “수고”를 통하여 이 땅에 살아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범죄 이전에는 수고 없이 일을 통한 기쁨을 누렸지만, 범죄 이후에는 수고를 통하여 그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의 종류, 수고의 종류에 따라 우리에게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통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통한 하나님과 우리와 만물의 관계를 잘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며,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을 모를 때는 아무리 기쁨을 주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 일이 스트레스를 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바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골 1:24-29의 문맥에서, 바울은 자신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괴로움과 고난 중에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일을 괴로움, 고난, 수고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만큼 감당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기뻐한다고 증거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증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교됩니다. 아내를 향한 조금의 수고도 피하고자 이혼해 버리는 시대, 남편을 향한 조금의 수고도 감당하기 싫어 이혼해 떠나는 시대, 자식을 위한 수고가 싫어 자녀를 낳지 않거나 내버리는 시대, 부모를 향한 수고를 피하기 위해 각종 수법을 동원하는 시대입니다.

가정, 사회, 국가를 향한 수고를 피하기 위해 집단이기주의를 발동시키는 시대가 우리의 시대인데 어떻게 바울처럼 기쁨으로 수고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그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지만, 우리는 그 수고를 피하여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 수고를 피하는 일에 함께하며 세상의 공격과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수고와 괴로움을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감당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2. 교회 일군의 수고는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삶은 바울의 마음속에 간직된 비밀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 때문에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 때문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 때문에 그 일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골 1:26에서 그 비밀을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취었던 그 비밀이 이제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라고 밝힙니다. 바울의 마음 안에는 이 비밀의 영광이 풍성하게 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로 인해 자신의 삶의 방향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준 그 비밀로 인해 바울은 모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 비밀이 영광의 소망인 것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이 모든 이방인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것임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이 이방인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 비밀을 받은 자는 풍성한 삶과 영광의 소망을 받게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로 인해 수고와 괴로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수고는 이방인을 위한 것입니다. 골 1:24는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습니다. 골 1:25는 일군으로 일하는 것도 “너희를 위하여” 주신 경륜을 따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수고와 일은 남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교회를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일과 수고와 괴로움을 기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소망을 지닐 때 남을 향한 수고와 괴로움이 우리의 기쁨이 됨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기쁨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며, 그 소망을 지닌 채 남을 향한 수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방인 가운데도 풍성히 거할 것을 사모하는 자들은 그들을 향한 수고와 괴로움을 기쁨으로 감당할 뿐 아니라, 남은 고난까지도 더 채워 가려는 능동적인 수고도 아끼지 않으며, 그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갑니다. 즉, 영광의 소망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마음에 가득한 자는, 이웃과 세상을 향한 고난과 수고와 괴로움 까지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그 소망으로 가득한 자는 자신이 채워야 할 고난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까지 합니다. 그 소망으로 가득한 자는 모든 일을 감당하는 수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고자 하는 비전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영광의 소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비밀로 간직한 바울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여기서 “완전한 자”란 “성숙한 자”를 말하며,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모습을 갖춘 자를 말합니다.

영광의 소망을 지닌 자의 수고를 통하여 각 사람에게 그 영광의 소망이 가득하게 되고, 그 영광의 소망을 지닌 자들이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져 가는 것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비밀로 간직한 자들의 수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골 1:28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세 가지 역할의 수고를 감당하게 하셔서 완전한 자로 세워 가십니다. 즉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는 수고입니다.

첫째로 “그를 전파하는 것”이며, 둘째로 “각 사람을 권하는 일”이고, 셋째로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일을 하는 수고입니다. 괴로움과 수고의 일을 기쁨으로 하게 하시는 우리 안의 비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그들에게도 그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는 전파 사역이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웁니다. 이것은 입으로만 하는 전파가 아닙니다. 나의 괴로움의 일, 나의 수고하는 일, 나의 고통스런 일 가운데 나타나는 비밀을 통한 전파입니다.

그 비밀을 간직한 자의 기쁨은 체험이기 때문에 그 맛을 모르는 영혼들에게 강권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마음에 채우도록 권하고 충고하며 다른 이방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서게 합니다. 그 비밀을 간직한 사람의 기쁨의 체험 가운데 함께하는 하나님의 모든 지혜로 그들을 가르치며 교훈합니다. 소망을 갖고 모든 일을 감당하도록 교훈하며 가르칩니다. 기쁨으로 감당하는 수고, 영광의 비밀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행하는 수고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3. 교회의 일군은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라는 요구를 받은 자이다.

바울은 그 기쁨으로 인해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바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은 바울로 그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권하고 가르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요구에 순종함으로써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그 첫 번째 요구는, 우리가 무슨 수고를 감당하든지 우선적으로 “우리 안에 비밀의 영광이 가득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소망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이것은 소망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말하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있는 목표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때 분별하는 삶의 척도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무슨 수고를 감당하든, 그 일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든, 원치 않는 일이든,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든, 우겨 쌈을 당하게 하는 일이든, 그 일을 맞이하는 자신 속에 그리스도의 영광의 비밀이 가득한 상태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 안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보시며, 목적을 정하시며, 분별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원망, 불평, 짜증, 고민 등 악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 일들이 무엇이건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우리 안에 간직된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맞이할 때만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로 인하여 삶의 목적이 바뀌고, 삶의 질이 풍성해 지고, 삶의 방법이 바뀐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요구는, “우리가 다른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전하여 채우려고 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망되신 그리스도로 가득해질 그들의 모습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커야합니다. 그리스도로 가득하지 않은 형제자매를 볼 때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은 아예 등장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하는 일을 통하여 그들에게 소망되신 그리스도가 가득 채워진다면 그들의 변화된 인생이 우리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일은 소망되신 그리스도를 이방에 알리는 수단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일, 수고하는 일,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힘에 진하도록 감당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때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더 풍성히 이웃에게 채워집니다. 수고하는 일이 많은 자는 그리스도의 소망을 더욱 풍성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갚아 주십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바울처럼 수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요구는, “앞선 자들이 전파하고, 가르치고 권하는 사역에 헌신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자는 나이, 지식 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는 소망의 정도에 따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둔 자는 “전파하고, 가르치고, 권하는 사역”에 헌신합니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교회 일군이 감당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영광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 가르치고, 권하는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른 교회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요구, 즉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는 일, 다른 영혼을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채우려는 적극적인 마음, 이 소망으로 다른 영혼에게 전파하고, 가르치고, 권하는 실제적인 일이 풍성히 넘치는 사람은 모든 일 가운데 기쁨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의 몸된 교회가 완전해져 갑니다. 그로 인하여 그의 삶의 영역들이 회복되어 가고,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제 이러한 수고들을 피하지 맙시다. 자신의 인간적인 기쁨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피하지 맙시다.

우리의 인간적인 기쁨은 욕심이 잉태하여 낳은 기쁨으로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일시적입니다. 일시적인 기쁨은 이웃을 향한 수고를 포기하게 합니다. 이러한 기쁨은 자신의 영역을 병들게 합니다. 온 세상을 적으로 만들어 싸우게 하는 최악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이웃을 향한 수고를 합니다. 괴롭고 힘든 일들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망으로 인한 수고들을 기쁨으로 감당하도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수고를 통한 영원한 기쁨을 우리에게 선사하실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쁨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수고와 기쁨,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가장 귀한 것입니다. 수고를 포기한 기쁨에의 여행은 죽음에의 여행과도 같습니다. 수고 하고도 기쁨이 없는 인생은 죄인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인생은 일군의 수고를 통해 기쁨을 누리는 인생입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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