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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의와 공의의 동역자들 (삼하 8: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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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나라 역사에서 제일 훌륭한 왕을 들라고 하면 어떤 왕을 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세종대왕을 듭니다.
중국 사람들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말할 것 없이 다윗 왕을 듭니다.
다윗 왕은 성경에 그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룻기에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다윗의 이름이 골고루 나옵니다.

각 나라 국기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기는 태극기, 미국 국기는 성조기, 중국 국기는 오성홍기, 이렇게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는 이름이 ‘다윗의 별’입니다. ‘다윗의 방패’라고도 합니다.
정삼각형 두 개가 육각형을 이루고 있는 모양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삼각형 하나는 하나님, 세계, 인간을 나타내고 하나는 창조, 계시, 구속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국기에 다윗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만 보아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얼마나 이상적인 통치자로 여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어떤 통치였습니까?
15절은 다윗의 통치가 어떤 통치였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 새

다윗의 통치는 정의와 공의의 통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백성을 공평무사하게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새번역성경」은 15절을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고 번역했습니다.
일부 백성에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 그래서 다윗은 백성에게 원망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신실하고 진실한 통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를 때 할 수 있는 통치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7장 18절 이하, 다윗의 기도를 보세요. 대표적으로 28절 앞부분,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이 한 말씀을 보아도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해 얼마나 겸손하게, 진지하게 기도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이 때 꼭 필요한 통치였습니다.
사무엘하 8장 앞부분은 다윗이 승승장구하며 영토를 확장하는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1절).
모압을 쳐서 그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2절).
소바 왕과 싸워 그의 군대 대부분을 사로잡았습니다(3, 4절). 
아람 사람들에게 조공을 받았습니다(5, 6절).
하닷에셀을 무찔렀습니다(7, 8절).
하맛 왕 도이에게서 은 그릇, 금 그릇, 놋 그릇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9절~12절).
에돔 사람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13절~14절).
이제 이스라엘은  유랑하던 부족, 굴러들어온 부족에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때 꼭 필요한 것이 정의요, 공의입니다.
강한 힘을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그 힘은 폭력이 됩니다.
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그 권력은 독재가 됩니다.
경제적인 풍요를 갖게 되었는데 정의와 공의가 따르지 않으면 향락풍조와 사치에 빠집니다.
강한 힘을 갖게 되었을 때 절제하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에 빠집니다.
폭력, 독재, 사치. 특히 독선과 오만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한 파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나라가 넘치는 힘을 갖게 되었을 때 다윗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마6: 33) 통치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다윗은 혼자의 힘으로 이런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군사, 종교, 행정, 각 분야에 적임자들을 임명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 하는 것으로 다윗을 잘 도왔기 때문에 다윗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군대 문제는 어느 시대나 중요합니다.
다윗 때는 태평성대가 아니었습니다. 밖으로는 이방부족들과 늘 싸웠습니다.
안에서도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유능한 군 시령관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군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요압은 용맹스럽고 유능한 군인이었습니다.
다윗 시대에 적과 싸워 이긴 기록에는 요압의 이름이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요압은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살해했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때 그의 용맹이 필요해서 참습니다. 그를 계속 중용합니다.
다윗은 세상을 떠날 때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 유언을 합니다.
그때 ‘요압은 이런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처리해라.’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왕상2: 5~6)
우리는 다윗이 요압에게 행한 일에서 다윗의 지혜와 인내와 사람을 활용하는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죽은 다음에 솔로몬에게 대적하다가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16절에 “사관”이라는 직책 이름이 나옵니다.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사관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조에도 사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옆에서 왕이 매일 하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의 왕은 그 기록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기록으로 남아서 후대에 전해진다.’ 하면 왕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사관은 또 고문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임금님,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처리했습니다. 임금님께서도 이렇게 하시는 것을 좋을 것 같습니다.’ 임금님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사관들의 이야기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왕하 18: 18, 37, 대하 34: 8, 사 36: 3, 11, 22).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독과 아히멜렉을 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사독은 그 이름의 뜻이 “의로운”입니다.
사독의 집안은 제사장의 가문 가운데 가장 명문이 되었습니다.
신구약 중간 시대까지는 대제사장이 사독의 가문에서 선출되었습니다.

17절 뒷부분에 “서기관”이라는 직책 이름이 나옵니다.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우리는 서기관이라고 하면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괴롭힌 사람들이 생각나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기의 서기관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의 서신 연락을 담당하고, 행정을 담당하고, 문서를 관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성경주석은 ‘서기관은 비서실장과 같은 직책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서기관의 이름이 여럿 나오고 이들이 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기록을 보관하고(렘 36: 25~26), 나라 일에 대해 조언하고(대상 27: 32),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기록하고(삼하8: 17), 성전 수리도 맡았습니다(대하 34: 18).
성전의 헌물을 계수했고(왕하 12: 10), 왕의 조서를 작성했고(에3: 12), 유사 시 왕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왕하 18: 18).
인구조사의 기록도 서기관들이 기록했습니다(왕하25: 19).
서기관이 왕을 잘 도와야  나라의 일들이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소수민족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우리 동포들, 조선족도 중요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은 소수민족들이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소수민족우대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는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소수민족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윗은 브나야를 시켜 그렛 족속, 블렛 족속 같은 소수민족들을 잘 관할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해 정의와 공의의 통치가 가능했습니다.
다윗의 통치는 독창이나 독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합창이나 교향악단의 연주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지휘자였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동명이인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사밧이 사관을 맡았는데 구약성경에는 열 명의 여호사밧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맡은 일을 잘 하고 힘을 합했기 때문에 그 시대는 정의와 공의가 행해진 시대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큰 일을 한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그를 정성껏 도운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시야 왕,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야기가 열왕기하 22장과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그것을 왕의 측근인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사반은 그것을 읽고 그것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책의 말을 들은 요시아 왕은 옷을 찢었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회개와 애통함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된 말씀에 대해 여호와께 물으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악볼, 왕의 시종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여선지자가 훌다가 날카로운 해석을 했습니다. 
요시아 왕은 이방예배를 폐지합니다.
이방신들을 위해 만든 모든 그릇을 태워 재가 되게 하고, 이방신들을 섬기던 제사장들을 폐하고, 아세라 상을 불살라 그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평민의 묘에 뿌립니다.
당시 성전에는 몸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남창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집을 헐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유다 왕국의 후반부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밝은 불빛이었습니다.
만일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책을 가볍게 여기고 한구석에 놓아두거나 아니면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면 이런 종교개혁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기관 사반이 그 책을 읽고 ‘왕에게 이 책에 대해 보고했다가는 왕의 성격에 틀림없이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테니 보고하지 말아야겠다.’ 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악볼, 왕의 시종 아사야, 여선지 훌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가 할 일을 정성껏, 성실하게 했기 때문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이 아름다운 일이 가능했습니다.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을 보면 그 일을 도운 사람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누가 어느 문을 중수했고, 누가 어떤 일을 했고, 모두 75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느헤미야 때에도 좋은 사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자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윗과 대조되는 것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때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제사장, 서기관, 사관, 군사령관,  궁내대신, 노동 감독관, 열두 지방 관장, 지방관장의 두령(왕상 4: 1~6),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가 확장되니 직제가 분화되고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이들이 솔로몬을 도와 나라의 번영을 이룬 것은 좋은 일인데, 성전을 건축한 것은 좋은 일인데 솔로몬이 그렇게 심한 사치와 향락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왜 막지 못했나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 때는 왜 나단과 같이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나단은 다윗을 혹독하게 질책했습니다.
다윗은 크게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가 없었더라면 다윗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다윗이 죽자 다윗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아가 선수를 쳐서 ‘내가 왕이다.’하고 즉위식을 했습니다.
이 때 나단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솔로몬을 도와 그가 왕이 되게 했습니다.
나단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아마 노쇠해서 활동을 못했거나 세상을 떠난 모양입니다.
솔로몬은 나단의 아들 하나는 지방관장의 두령으로 삼았고 하나는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나단이 자기를 도와준 것을 갚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단의 아들로 제사장이 된 사봇은 왕과 아주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열왕기상 4장 5절을 보면 그는 왕의 벗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버지와 달라서 바른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이 바른말을 했더라면 솔로몬이 그렇게 심한 사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백성들이 무거운 부역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라가 갈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후궁을 칠백 명이고 첩을 삼백 명 두었습니다(왕상 11: 3).
이것이 나라를 기울게 하는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들은 왕이 이렇게 여색에 탐닉하는 것을 왜  그대로 두었는지 안타깝습니다.
조선왕조 연산군 때 임금에게 아름다운 여인들을 뽑아 바치는 벼슬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채홍사(彩紅使)라고 불렀는데  전라도 쪽으로는 누가 나갔고, 경상도 쪽으로는 누가 나갔고, 이렇게 이들의 이름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솔로몬 때도 틀림없이 이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하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것이 솔로몬 통치의 오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큰 일은 지도자, 책임자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돕는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좋은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조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데 한 걸음 더 나가서 동역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다윗은 좋은 동역자들이 있어서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임원임명예배를 드리는데, 임원 여러분, 교역자들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선교회 임원들, 총남선교회 회장, 총여선교회 회장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선교회 지회원들, 지회장님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속도원들, 속장님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교사들, 각 부 부장님들의 좋은 동역들이 되기 바랍니다.
찬양대원들, 대장님, 지휘자님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좋은 목사가 좋은 교인들, 좋은 교회를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교인들이 좋은 목사를 만듭니다.
좋은 속장이 좋은 속회를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속도원들이 좋은 속장을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우리 모두 좋은 동역자들이 됩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통치는 장차 있을 예수님의 통치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이라고, 예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이루게 했던 것처럼,  교회의 일에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 교회를 부흥시키고, 이 교회가 꿈을 이루는 교회가 되게 하고, 나가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일에 동참하는 임원들이 되고, 성도들이 되기를,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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