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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나무 신앙의 행복자 (요 1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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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 댐을 만들고 거기에 물을 다 채우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처음 7년 동안은 물을 내보내지 않고 계속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물이 다 찬 다음에는 그제야 비로소 그 물을 가뭄이 있는 지역에 물을 보낼 수 있었고, 그 물을 통해서 발전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 물을 통해서 경제가 융성하게 된 것입니다. 받고 난 다음에 줄 때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헌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앉혀 놓고 백날 "헌신합시다", "헌신합시다" 한들 소용없습니다. 문제는 은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은혜 받아야 됩니다. 많이 은혜 받으면 받을수록 마리아와 같이 더욱더 헌신하게 됩니다. 은혜 받지 않고 헌금을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헌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풍성할 수 없습니다. 인색합니다. 자기가 가진 향유를 절대로 다 부을 수가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합니까? 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워서 못 드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곳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으면 드리는 것이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과실나무로 평가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열매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종종 실례를 드셨습니다. 구약에서 노아는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에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송이 하나를 두 사람이 양어깨에 메고 가야만 했던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과실의 의미가 사용되는 곳에는 언제나 포도나무의 열매가 사용되었습니다. 현숙한 아내는 좋은 포도나무에 비유되었으며 극상품 포도는 언제나 최고의 가치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포도나무의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은 황폐와 곤핍을 상징했습니다. 새해에 포도나무 같은 영육간의 풍성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넘치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도 응답의 행복자
  본문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응답에 대한 보증을 하고 있습니다. 전깃불을 켤 수 있게 하는 전기가 제일 먼저 발생되는 곳이 발전소입니다. 발전소에서 변전소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집까지 옵니다. 그런데 이 발전소에서 집까지 전달될 때에 중간에 한 군데라도 끊어진 곳이 있으면 전기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철저하게 붙어 있으면 능력 있는 응답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모세가 모세 되었던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했던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철저하게 붙어 있어서 그분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능력으로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가면 조치 계곡이라는 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옛날 이 계곡에서 무릎꿇고 기도했던 한 명의 청년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그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조지 워싱턴입니다. 1775년 12월 추운 겨울날 영국군과 미국 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전황이 미국의 패배로 끝나기 직전이었습니다. 모든 미국 군은 지치고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이젠 전멸이고 끝이라는 그런 상황에서 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막사로 들어가서 4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총성이 오가는 그 전쟁의 상황에서 말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나라와 나를 살려주시옵소서."
  생명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조지 워싱턴이 후에 남긴 기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내 평생에 가장 절박한 위기가 그 전쟁 때였다. 내가 생명을 걸고 싸웠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총을 들고서 생명 걸고 싸운 것이 아니라 기도로 전투를 했다. '하나님. 우리를 살려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조지 워싱턴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고 했습니다. 조지 워싱턴처럼 우리도 이런 모습을 남겨야 합니다. 기도하면 삽니다. 죽을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큰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면 이깁니다. 기도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침체를 부흥의 상태로 바꾸어 놓고, 세상의 도전을 능가하는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과 비전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땀의 수고와 눈물의 기도와 피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죽어 가는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지 휫필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녹슬어서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어떠한 고난과 일과 사람들이 있어도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기도를 쉬거나 미루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더욱 기도합시다. 새해에 자신과 가정, 교회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특별히 영혼을 살리는 일에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기도 많이 하고 많은 응답을 받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사랑 충만의 행복자
  본문 9-10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이 말씀은 십자가 고난을 불과 하루 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당부의 간곡성이 더해집니다. 이제 예수님은 공생애를 마감하시게 되면서 향후 교회의 성장과 확장은 그 제자들을 통해 계속 전개되어 나가야 할 과제였으며 공동체의 핵심은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원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의 능력을 힘입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할 때 이웃과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으로는 결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다 욕심과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조건과 상황이 바뀌면 인간적인 사랑은 다 깨어집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제국을 건설한 후 더 늙기 전에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화가들을 모두 불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으나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더의 얼굴은 전쟁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이 흉터 때문에 알렉산더의 얼굴을 무섭고 잔인하게 그렸습니다. 그때 평소 알렉산더를 존경하던 한 화가가 나섰습니다. 그는 얼굴의 흉터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덕과 용맹을 갖춘 영웅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화가는 알렉산더를 테이블 위에 앉히고 손으로 턱을 고이게 한 후 손가락으로 얼굴의 흉터를 자연스럽게 가리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흉터를 감쪽같이 감춘 웅장한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 화가에게 큰상을 베풀었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알렉산더의 흉터를 감추어준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약점과 상처를 감싸줍니다.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중생의 역사가 있으면 성품의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철저히 붙어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처럼 포도나무 줄기에 철저히 믿으면 사랑으로 충만한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늘 우리 생각과 마음과 언어와 행동 속에는 미움과 증오가 가득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를 사랑하는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가득 채웁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충만케 합시다. 그리하여 사랑의 생각과 마음과 언어와 삶이 되게 합시다. 저주와 미움과 냉냉하고 차가운 사람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한 행복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기쁨 충만의 행복자
  본문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목적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쁨과 감격이 가득한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를 갈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를 갈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잘못되고 병적인 것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에는 찬송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위로와 치료를 위해 오셨습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를 떠나면 곧 시들어 죽는 것같이 예수님을 떠나면 절망과 억울함과 원통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꼭 붙음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예수님께 붙어 다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예수님께 붙어 다니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강하고 능력 있는 존재가 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선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궁전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궁전에 들어가고 싶어 매일 몸을 단장했으나 궁전의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궁전의 문지기가 소녀에게 귀띔해 주었습니다.
  "남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진단다."
  소녀는 그 날 늙은 거지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궁전으로 달려가 열쇠를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열쇠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낙심해 힘없이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신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정성을 다해 강아지를 풀어주었습니다. 소녀의 손과 발에서는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궁전의 문지기가 나타나 열쇠를 주었습니다. 소녀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저는 열쇠를 얻기 위해 강아지를 구해준 것이 아닌데요."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지금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잊은 채 남을 돕는 사람에게 열쇠가 주어진단다."
  진정한 선행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선행은 감추어질 때 더욱 빛납니다.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지금 한 눈 팔 때가 아닙니다. 우상숭배자들이 들끓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게 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날마다 점쟁이들이 많아집니다. 무당들이 많아진다 하면서 그것을 비난만 하고 있겠습니까? 점보는 까페가 널려 있습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우리 책임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아와서 기쁨으로 찬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고 죽어 가는 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바랍니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 기쁨 충만한 행복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2006년 새해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과 사랑 충만과 기쁨 충만한 행복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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