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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 (행 22: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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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잉그랜드 맨유에서 뛰고 있는
폭주 기관차, 산소탱크, 축구선주 박 지성 - 제가 펜입니다.
박지성의 무쇠 체력을 궁금해 하는 축구팬들이 많은데박지성의 체력은 타고났다는 말도 있고
아버지기 개구리 엑기스를 먹여서 라는 말도 있지만
지켜 본 스포츠 기자가 하는 말이 [ 딴 짓을 안 해서 그렇다 ] 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메니저의 답도
[ 지성이가 아무래도 축구 외에 다른 일은
일절 하지 않기 때문에 체력이 좋은 것 같다 ] 고 말합니다.
박 지성 생활패턴이 오로지 축구라는 것입니다.
훈련과 경기를 마치면 무조건 집으로 오고
집에서는 혼자 책을 보거나 게임을 즐기는 게 전부며
맨체스터에 온 지도 꽤 됐지만 근처 관광을 다녀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박 지성이를 사도 바울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만
사도 바울의 전도 열정도 원리는 같은 것 같습니다.
바울에게는 오직 예수, 오직 전도 패턴 밖에 없습니다.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에게
교회의 환영과 더불어
적대감을 가진 수만 명의 유대인들의 손에 붙들려 죽을 뻔한 찰나에
로마 군인에게 인계되어 두 겹 쇠사슬에 묶여 영문으로 끌려갔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오직 관심은 환영받고 핍박받고,
결박당하고 풀리고 상관없이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에게 허락을 얻어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관심을 재조명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천부장의 허락을 얻어 백성들 앞에서 말하는
바울의 간증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이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자 대부분이 유대인들인 청중들이
더욱 종용히 듣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출생부터 가문, 그리고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중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간증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간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2>
그것은 8절에 [ 나사렛 예수님 ] 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아나니아를 통해 들려 준 메시지는
21절에 [ 이방인의 사도 ] 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바울의 관심은 오직 예수 밖에 없고
바울의 마음은 오직 전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울이 가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하면
오직 그곳에 집중될 때 눈을 감아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환상 보기를 원합니까? 예수님께 집중하세요.
<금세기 최고 피아니스트 작고가 루빈스타인 - 성공비결 무관심>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는 어떤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이 이민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누가 권하기를 당구를 치면
스트레스가 회소된다고 해서 당구를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한다고 당구를 한두 번 치다가
그만 당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기도할 때에도 교인들의 머리가 당구 다마로 보였습니다. 설교할 때에도 교인들 머리가 당구 다마로 보이고,
[ 내가 설교로 김 장로를 탁 치면 김 장로가 맞고 나서
다시 이 권사를 치고, 스리쿠션 해서 나중에는 박 집사를 치겠지! ]
이쯤 되니 교회가 점 점 더 어려움에 빠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아니구나 싶어서 마음을 바꾸어 먹었답니다.
어떻게 - 당구 다마 되신 예수님께 집중하자
그러니 스트레스가 날려 가버리고 교회도 부흥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 이해되십니까? - 저는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달려보니 너무 좋으니깐
친한 사람에게는 꼭 달리기를 권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이 아하~! 전도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생긴 말이
일 속에 신앙 배우고 신앙 속에 일을 배워야 한다.
살면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좌우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질을 좌우합니다.
극심하게 힘들 때에는 예수님이 환상 중에 보일 정도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초점이 더욱 뚜렷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길이 열리고 보일 줄 믿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오직 예수 밖에 관심이 없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오직 예수, 오직 사명! <3>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미친 사람들 -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물론 역설이기는 하지만 일리는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윤동주의 시 - 십자가의 한 구절을 가끔 떠올립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비록 십자가를 지는 일이 괴로운 일이겠지만
그 십자가에 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울같이
오직 예수, 오직 사명에 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울이 청중들에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간증의 핵심이 무엇인냐? 하면

바울의 간증은 나의 변명을 들어 달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나면 당신들도 이해가 될 것이다.
라는 뜻에서 히브리 방언으로 예수 믿기 전의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이야기 합니다.
저희 주보에 매주 간증이 실립니다.
물론 교구 교역자가 부탁을 합니다.
성도님, 요사이 보니 은혜를 많이 받았는 것 같은데 간증 부탁합시다.
그러면 아이구~! 내가 어떻게, 하면서 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이래서
간증을 다 써는 것 있지요.
간증은 너무 자주 하면 안 되지만 간증하므로 또한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대략 한 페이지 정도면 됩니다. 라고 하면
어떻게 제 인생이 한 페이지로 다 요약되겠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만
그러나 꼭 쓸 만한 이야기가 한 페이지 안 되는 인생이 많지요.
오늘 바울은 한 페이지도 안 되는 간증을 통해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시 인생을 이렇게 정확하고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 만나 정리된 인생은
자기 인생을 간략하고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의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4>
자신은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학문적 배경으로서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아.
하나님께 대하여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출신이 어디이고 배경이 무엇인냐? 이런 것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당신들과 같이 예수를 핍박하든 자라는 것입니다.
4절에
내가 기독교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잡아넣기도 했다.
당신들은 지금 나를 죽이려고 충동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5절에
이런 사실은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인데
내가 저희들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에 끌고 와 형벌을 받게 하려고 가던 중
그러니 예루살렘 뿐만이 아니라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쟁이들 잡아오는 열심을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다 알고 있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
한 가지 특색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자신이 옳다는 생각되는 일이면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이 전에는 율법에 목숨을 걸고 기독교인들을 핍박했고
예수 믿은 이후에는 복음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에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인생을 바꾸어 놓은 돌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 언제 어떻게 라는 육가원칙을 써서
정확하게 간략하게 간증합니다.
6절에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 오정 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절에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소리가 나는데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 하거늘
8절에 내가 대답하기를 [ 주여 뉘시니이까? ] 하니
[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 하더라
거기서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과 만남이 있기를 바랍니다.
왜? 주여 뉘시니이까? 라고 질문해야 합니까? <5>
그 분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분이 누구인 줄 알아야 합니다.
[ 내가 핍박하는 예수인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예수인지 ]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저명한 크리스챤 작가 <C.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그 분은 위대한 사기꾼이든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결코 중간은 있을 수 없다 ]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예수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중간인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를 나오는 건지 안 나오는 건지,
예수를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예수를 사랑하는 건지 무관심하는 건지
왜? 주님께서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십니까?
혹 내게 하시는 말씀은 아닌지?
[ 나는 네가 무시하는 예수다
나는 네가 무관심 하는 예수다 ]
이런 충격적인 만남이 있을 때
나의 신앙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 만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우리가 예수를 만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먼저 주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9-10절에 보면
다른 사람은 빛은 보면서도 주의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
바울은 주의 음성을 듣고 하는 말이
[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 라고 묻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즉 부르심, 사명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10-21절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 너무 강한 빛 때문에 눈을 뜨지 못했지만
들려오는 음성은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누가 네게 일러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갔는데 <6>
거기서 유대인들에게 칭찬 듣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
네가 예수의 증인이 되어라
그리고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라 고 해서
세례 받고 죄 사함 받고 예수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때
비몽사몽 간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로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가
네가 내게 증거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럴 때 바울이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주의 증인 스테반의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이 말은 바울이 감히 나같이 핍박자요 훼방꾼이 내가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 너무 과분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하는 말이
[ 떠나가라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 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에게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는
새일 더 큰 일을 하리라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만나게 되면 새일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바울의 간증은 내가 예수님 만났다
예수님 만나서 부르심 즉 사명을 받았다.
이것이 예수님 만나 자에게 일어나는 변화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왜? 사는지 몰랐는데
예수님 만나고 보니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반드시 사명의 삶을 산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예수님 만나게 되면
새일 더 큰 일을 행하게 되는 사명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이
갑자기 바울을 향해 죽이라 고 달려듭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22-23절에 보니 [ 이런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둘 자가 아니다 ]
왜? 이렇게 종용히 듣고 있던 군중들이
갑자기 바울을 향해 폭도가 되어 죽어라고 악을 씁니까?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이 나를 이방인에게로 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7>
그만 옷을 던지고 티끌을 날리며 이런 놈은 살려 둘 수 없다 하며
분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 라고 할 때
유대인들이 옷을 찢으며 참람하도다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선민의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말에는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에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복음을 자기들 편의대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잘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좋고 우리 교단만 옳고 우리끼리만 하는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장로교회의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침례고 성결교 순복음교회 하나님도 되십니다.

로마군대 천부장이 이러한 소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바울을 체포하여 심문하여 그 사건을 전말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영문 안으로 데리고 가서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애기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를 채찍질 하여 심문을 하려는 백부장에게
바울이 하는 말이 [ 나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데
죄도 정치 않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
그래서 백부장이 이 사실을 천부장에게 알린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가진 로마 시민권이 바울의 비전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하는 말이
[ 정말 로마 사람이냐? ] 하고 물으니 [ 그러하다 ] 고 대답합니다.
[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 고 하니
[ 나는 나면서 부터로라 ] 고 합니다.
그러니 심문하려는 사람이 물러가고
천부장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로마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함부로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 하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가진 로마 시민권, 그것도 나면서부터 취득한 로마 시민권이
바울의 비전, 즉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바울의 비전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지난주일 설교 제목 기억나십니까? <8>
로마행 특급 하루시스
바울이 결박된 쇠사슬 - 하루시스가
바울의 비전인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로마행 특급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로마행 특급 티켓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로마 시민권
-즉 Roma Politeia 가 바로 로마행 특급 티켓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토가>라는 긴 겉옷을 입고 다니므로
로마 시민임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토가를 입고 다니지 아니한 것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것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직하고만 있던 로마 시민권이
로마행 특급 티켓이 될 줄은 바울도 몰랐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
1) 당장 채찍질 앞에서 신변 보호를 위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겠지만
2) 그러나 여기서 로마 시민권을 나타낸 것은
결국 이 폴리티아가 로마행 특급 티켓이 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 자임을 나타냄으로
결국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결박하고 있는 하루시스도 로마행 특급으로 바꾸어 놓았고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폴리티아도
바울의 꿈을 이루는데 한 몫을 더했던 것입니다.

로마 시민권이 바울에게
로마행 특급의 또 하나의 티켓이 되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척 콜슨은 젊고 똑똑하고 야망이 컸던 변호사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변호사로서는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워터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콜슨은 감옥에서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교도소 선교를 하게 되었고
지금은 교도소 선교에 가장 앞장서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도소 사역을 하게 된 것은 <9>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힘으로 감옥 선교에 눈이 뜨여졌고
또한 그가 변호사였기 때문에
더욱 교도소 선교에 더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결정된 인생길을 달려가려고 할 때
우리를 결박하는 하루시스도 로마행 특급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또한 남다른 재능이나 은사를 통해서도
로마행 특급 티켓을 만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시스도, 폴리티아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룩하는데
복음의 진보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장점과 남다른 탁월성
하나님은 로마를 향해 가는 바울에게 로마 폴리티아가
로마행 특급의 또 하나의 티켓이 되듯이
나에게 주어지는 사명을 이룩하는데
사명 폴리티아가 된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바울의 폴리티아가
자신의 삶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 아니라
결정된 인생 길을 가는 사명자의 삶에
왕 되신 주님께서 주신 마패가 되듯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다른 폴리티아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천국마패가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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