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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형벌 (레 2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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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찌라 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7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8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9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것이며 10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11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서론

레위기 26장의 구조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즉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에 순종하면 현세적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고 불순종 하면 현세적으로 형벌을 받는 것이다. 순종은 축복이요 불순종은 형벌이다는 구조입니다. 레위기보다 앞서 나온 출애굽기 23장 22-33절에도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레위기 뒤에 나오는 신명기 28장도 내용은 동일합니다.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은 26장 1-2절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에 보면 “하지 말라”하는 부정적인 내용도 있고 “하라”하는 긍정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내용은 우상이나 목상이나 주상을 만들지도 말고 세우지도 말고 경배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목상, 석상을 많이 만들고 마을마다 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목상 주상을 만들지도 말고 세우지도 말고 경배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저주와 형벌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라고 하는 긍정적인 내용은 안식일을 지키고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 가운데서 의식법을 제외하고, 도덕법과 신앙법이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레위기 26장은 “이 법에 순종하고 지키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형벌이다.”하는 간단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지만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1. 레위기 26장의 구조

이것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레위기 26장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은 우리가 이미 읽은 바대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시내산 언약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3-13절은 모세의 언약에 순종하는 자의 받을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하나님이 세 가지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물질적인 번영(prosperity)입니다. 4절에 보면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시후’란 시간과 때에 맞추어서 비를 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이것은 풍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작이란 보리와 밀의 타작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3월에 타작을 합니다. 그런데 포도는 7월에 땁니다. 보리와 밀의 추수가 3월에 시작해서 7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 달 동안이나 타작을 하니 얼마나 풍년이겠습니까?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친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파종은 10월입니다. 그러면 세 달 동안이나 포도를 딴다니 얼마나 풍년이면 세 달 동안이나 따겠습니까?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에 순종하면 물질적인 현세적인 축복이 오고 번영이 온다는 것입니다. 9-10절에도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번성과 창대 얼마나 좋은 단어입니까? 묵은 곡식으로 밥을 먹다가 햅쌀밥을 먹게 되면 얼마나 맛있습니까? 묵은 곡식을 내어 버리고 햇곡식을 먹게 된다는 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둘째로는 육체적인 평안입니다. 이것은 신체적인 안전과 평화(Peace and Security)입니다. 5절 후반부터 보니까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음식을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없다면 소화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배불리 먹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6절에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라 또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전쟁이 일어나긴 하겠지만 모두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적이 와도 승리하고, 내부적인 적이 와도 승리하고, 들짐승도 그들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안전하고 평안합니까? 율법에 순종하게 되면 신체적인 평화와 안전이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셋째로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임재(Presence of God)합니다. 11-12절에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입니다. 요컨대 시내산 율법, 십계명으로 요약된 이 율법에 순종하여 살면 현세적인 번영과 축복이 오게 되는 것이고, 이 율법에 불순종하여 살게 되면 형벌이 오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번영과 평화와 임재의 축복을 주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39절은 불순종하는 자가 받을 형벌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겠습니다. 형벌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마음에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십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언약을 배반하면 어떻게 됩니까? 형벌을 받게 됩니다. 형벌의 내용은 축복의 내용과 정 반대입니다. 형벌의 첫 번째는 물질적인 가난(Poverty)입니다. 앞의 축복은 물질적인 번영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벌은 반대로 물질적인 가난입니다. 심지어는 얼마나 가난한지 29절에 보니까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아들과 딸을 잡아먹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예레미야애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녀를 서로 잡아먹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정도의 가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평화와 안전이 변하여 육체적인 위험(Peril)이 온다는 것입니다. 육체도 병들고 생명도 쇠약하고 들짐승도 자녀와 육축을 해치며 대적을 당할 힘이 없게 되니 얼마나 손해입니까?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변하여 영적으로 하나님이 부재함(Absence of God)을 경험하게 됩니다. 24절을 보겠습니다.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 19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사람이 세력을 좀 가지면 교만해집니다. 정치적, 물질적 세력을 갖게 되면 교만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만을 꺾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런 형벌이 하나도 임하게 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의 구조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이 말씀대로 우리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과연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레위기 26장에 대한 오해

첫째로는 율법주의자들(Legalist)의 오해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면 천국이요 불순종하면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구원의 전체조건도 아니요 구원의 일부조건도 아닙니다. 오늘 레위기 26장은 기본구원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천국 지옥을 결정해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현세적인 축복과 현세적인 형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천국 지옥을 결정하는 기본구원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인 천국과 지옥은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한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자들의 오류는 치명적인 오류요, 이단적인 오류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수를 안 믿는 분이 없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적극적인 사고방식 학파의 오류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류인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라는 목사가 소위 “possibility thinking(가능적 사고)”라고 해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 바로 적극적 사고방식학파의 오류에 속합니다. 우리나라도 대형교회 목사님들 가운데 이것을 이용해서 교회의 부흥을 이루어낸 분이 있습니다. 이 사고는 사람들이 적극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성공과 번영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보장해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적극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사고 패배적인 사고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사고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장해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 번째로 건강과 부요의 복음의 오류입니다. 이것은 소위 ‘Health and Wealth Gospel’ 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건강하고 부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들고 가난한 것은 모두 죄의 결과요 허물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의 신학입니다. 그런데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사상을 약간은 지지해 주는 듯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을 볼 때에 믿음의 위대한 영웅들 가운데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희롱과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히는 시험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 가운데 죽고 맞고 망하고 가난하고 고생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원리가 오늘날 성도들에게 100퍼센트 무조건 적으로 다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현세적인 축복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 내세의 축복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론 사람들 가운데는 내세의 더 큰 축복을 위해서 현세의 축복을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이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는 현세적 축복을 희생해서 내세의 축복을 바라본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모세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건강과 부요복음, 예수 믿으면 무조건 건강하고 부요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도 대단한 오류입니다 치명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상당한 오류요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지 않는 오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레위기 26장의 목적

그러면 오늘 레위기 26장을 기록한 목적을 무엇입니까? 이것은 결국 시내산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질문입니다. 레위기 26장의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하고 그 속에서 그 목적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역사를 보게 되면 세 가지 명백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모세의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언약에 순종하면 약속하신 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순종 하면 약속하신 대로 형벌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수아서를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아모리왕 시혼을 정복하고 바산 왕 옥을 정복하고 요단 동편의 원수들을 다 정복하고 여리고성, 아이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 남부의 적을 정복하고 가나안 땅 북부의 적도 정복하고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기업을 차지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순종할 때 받는 축복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로 넘어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거역합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사사기의 핵심내용입니다. 이방나라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레위기 26장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신실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하여 살기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면 축복이라 그러면 순종하며 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번영도 누리고 평안함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순종해서 복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이상하리만치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꾸 불순종합니다. 불순종하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뻔히 잘 알면서도 그쪽으로 자꾸 나가는 것입니다. 불순종해서 벌 받는 쪽으로 자꾸 나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이사야서 1장 4-6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이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
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얻어터지고 또 터지고 머리 터지고 가슴 터지고 다리 절고 그런데도 불순종과 형벌의 길을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상합니까?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는 죄인이다.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 받고 구원 받아라 얼마나 쉽고도 간단한 복음을 주셨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 믿어 나는 천국 가도 친구도 없어” 그러면서 계속 죄악의 방향으로 갑니다. 그것은 인간은 아담 하와로부터 원죄로 인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결국 사람의 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주겠다고 명백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속에 있는 죄성은 순종 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꾸 불순종해서 벌 받는 쪽으로 가는 내적인 기질,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레위기 26장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0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므로 레위기 26장의 첫 번째 목적은 ‘인간은 복 받는 길을 주어도 못 가는 존재다.’ ‘인간은 형벌의 길을 분명히 경고해도 그 길을 가는 존재다.’ 라는 것, 즉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또 레위기 26장에서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서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레위기 26장 40-42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른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시내산 언약입니다. 시내산 언약은 모세의 언약입니다. 모세의 언약은 특징이 쌍방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쌍방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조건을 주셔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조건적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건적 언약에는 언제나 실패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조건적 언약에서 실패한 것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놓으시고 “저것 하나만 먹지마라 그러면 너는 영생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를 따먹은 것이 아담 하와요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입니다.

그런데 이 시내산 언약보다 430년 먼저 하나님이 맺은 언약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리신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특징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내가 너를 택하고 내가 너의 씨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얻게 할 것이라.” ‘아브라함의 씨’(The seed of Abraham)는 복수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씨, 그로 인해 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던 그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26장은 현세적인 축복만을 말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것이 아닙니다. 현세적인 축복의 길을 주어도 불순종하는 인간은 결국은 죄를 깨닫게 되고 허물을 짓게 되고 결국 ‘아하 내가 하나님이 조건하신 이 시내산 율법으로는 복을 받을 수 없는 존재로구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꼬, 나는 430년 전에 하나님이 맺어주신 아브라함의 언약, 아브라함의 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라 하는 그 언약을 의지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결론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언약의 특징은 사람은 율법에 순종해서 그 행위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복을 받게 된다는 이신득의의 원리를 확립시켜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레위기 26장의 목적은 요약컨대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 인간은 죄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 둘째로 죄성으로 말미암아 지은 모든 죄악과 허물을 인간은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인생에 임하는 모든 고통은 결국 자신의 불순종과 죄악의 결과임을 깨닫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저항하지 말고 고통이 있으면 ‘하나님 이것이 내 죄의 결과입니다.’ 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는 무엇입니까?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저주와 형벌을 축복으로 돌려주시는 구원자가 계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와 허물이 있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죄사함을 받고 저주의 길에서 돌이켜 축복의 길로 나아가라.” 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레위기 26장은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여 함이니라” 율법은 첫째로 우리의 죄성을 드러내는 기능이요, 둘째로는 결국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의 축복은 오늘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아무런 기능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이제는 영원한 축복 구원의 축복, 영생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도 율법은 아직도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대한 칼빈은 율법의 제 3기능(The third function of the law)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3장 3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영생의 복, 하늘의 복, 신령한 복을 이미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가기 다 틀리고 하늘의 복을 받은 우리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현세에서도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의 제 3기능은 구원받고 영생 얻은 사람들이 현세에서 복을 받고 사는 원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리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번영과 평화와 하나님의 임재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면 가난과 위험과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을 어기고, 간음하고 싸움하고 도적질하고 탐심을 부리고 욕심을 부리고 안식일을 어기고 주일도 안 지키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현세에서 잘 되겠습니까?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현세의 축복이요 불순종하면 현세에도 고통과 형벌이 초래된다는 법칙은 율법의 제 3기능으로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타당한 기능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시대와 오늘날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내가 불순종해서 하나님의 형벌이 초래되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우리를 구원해주실 구원자가 우리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은 순종해서 축복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혹시 불순종했으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축복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순종해서 축복받고 회개해서 축복받자” 우리는 영원한 복을 받았지만 현세의 복을 받고 살아야겠습니다. 현세의 복을 받아야 예수 이름을 증거 해도 힘 있게 증거할 수 있는 것이고 헌금을 해도 한번 크게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해서 복 받으시고 회개해서 복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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