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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 (요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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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있다면 이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우리들의 매일의 대부분의 삶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의 삶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는 세상에 대해서 크게 3가지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첫째는 분리의 자세입니다.세상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세상은 악하니까 모든 것을 끊고 관심을 갖지 않고 분리되어 살고자하는 자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끼리 집단적으로 모여 살기도 하고 세상사람들과 교제를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이 자세는 너무 극단적인 것입니다.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결국 세상에서 만든 모든 것들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만든 차도 타지 말아야 하고 책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로,세상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인정하고 세상나라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두나라에서 공존하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너무 세상을 인정하다가 보니까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화되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셋째로 세상을 인정하지만 세상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사탄이 역사하는 곳이므로 성도가 말씀 안에서 항상 복음을 증거하고 세상을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이 3번째 입장은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에 대한 관계에는 바닷물과 배와의 관계와 같습니다.배가 바다에 있지만 바다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바다를 거슬러 항해합니다.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이기며 항해하는 배와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오셨던 우리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도망가거나 세상에 속하거나 하지 않고 승리하면서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세상에서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 상에서 우리는 세상을 이긴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주님처럼 완벽하게 이기지는 못하였지만 분명히 믿음으로 승리하엿습니다.

오늘 본문은ㅇ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승리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까?

1.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사명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두십니다. 주님은 이제 곧 세상을 떠나 십자가를 지시고 결국은 하나님께로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을 세상에서 다 같이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세상에 두고 가십니다. 오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데리고 가지 않으시고 세상에 두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배정하여 주신 사명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부패한 곳이요 환난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은 부패한 곳이기 때문에 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필요하고 환난이 있는 곳이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많은 요구가 필요한 곳입니다.
부패하고 환난이 많은 곳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있어야 합니까?
세상을 향한 소명의식을 갖고 세상에서 살아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감을 갖고 세상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면서 날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셔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을 향해서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공부를 할때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대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카톨릭신학자 중에서 유명한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사역자들 사제들 목사들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서 파송된 성직자라면 성도들은 세상을 향해서 파송된 성직자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오히려 세상으로 파송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파송받은 소명의식을 갖고 사역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직장의 선교사를 나를 파송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학교에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가정의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외국에 선교사로 파송을 받으시는 선교사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명감입니다. 선교지가 비록 어렵고 환난이 있어도 선교사로서 그 나라를 섬기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파송받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그 물질의 어려움을 참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의식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면 분명히 그 직장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선교사들이 있는 가정이 달라지고 그런 사업체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실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에서 복음의 선교사가 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좋은 모델리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에 빚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에서 성공한 많은 주님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고 성공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사명자로서 삶을 살면서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다양한 방면에서 승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원합니다.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성공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습니다.

구약에 보면 다니엘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때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인간적으로 볼때에는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배후에서 역사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으면서 우등생 포로로서 믿음의 최선을 다합니다.그는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합니다. 물론 그렇게 할때에 다니엘은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자기를 분리시키지 않고 고립되지 않고 세상을 거슬러 도전하면서 결국 세상을 이겼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거룩은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고립되는 것이 아닙니다.거룩은 분리와 고립을 포용하는 길입니다. 결국 다니엘은 세상 바벨론에서 총리가 되는 복을 누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에서만 등장하는 너무 먼 하나님의 이야기로만 생각이 됩니까? 우리 나라에도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면서 서울시장이 이명박씨를 좋아합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히 밝힙니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에 많은 반대와 부정이 있을 것을 인식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가 언젠가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청계천 복원을 하고 나서 청계천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판하든지 관계없이 자기의 신앙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행동하면서 소신껏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어가는 것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높임과 인정을 받으니 얼마나 멋잇습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여러분들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는 이유가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네상의 빛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내고 그리스도의 소금의 맛을 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신뢰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지금 교회에 오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회는 바로 먹으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란 여러분의 영적식당입니다. 식당에 와서 먹고 나서 다시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세상입니다. 여러분의 일터로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으로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답게 사시고 일하시고 실천하셔야 합니다.

오늘 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은 우연한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놀라우신 뜻과 계획 속에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바라보시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를 좇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32절
여기 예수님은 세상에서 제자들이 자기를 혼자 둘때가 가까워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시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3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가롯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십시오. 세상에서 3년동안 동거동락했습니다. 그 3년동안 함께하면서 우리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 보여주신 기적과 이적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3년이 지나고 주님이 어려움이 오자 모두가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만일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엄청난 배신감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것 때문에 제자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혼자된 외로움 때문에 눈물흘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결국 우리는 혼자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내 옆에 아내도 있습니다. 남편도 있습니다. 자식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국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앞으로 가면서 결국 우리는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외로움을 사랑합니다. 그 외로움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종종 보면 세상에서 삶을 살면서 외로움을 못 견디어 하면서 외로움을 이겨보려고 범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술을 가까이하고 도박을 하고 범죄하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외로움을 지배할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에 지배당하면 점점 더 외로움에 포로가 됩니다. 외로움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외소해 집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외로움을 넘어 외로움 속에서 깊은 영성으로 세상에서 인생을 승리하면서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혼자된 주님께서 어떻게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이기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떠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이 믿음이 외로움과 모든 상처와 환난을 이기게 한 힘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바로 “임마누엘의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꼭 가져야 할 신앙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지금 꼭 가져야 할 신앙은 바로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내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을 잘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 주변에 물질이많이 있으면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으면 임마누엘이 잘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육신의 부모를 언제 가장 경험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힘들어보아야 부모임의 존재가 느껴지고 의식이 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도 갖습니다.
우리 인생에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때는 바로 내가 철저하게 외로움을 경험할때입니다. 내가 환난과 고통을 당할때입니다.그 자리에서도 결코 좌절하고 낙망하고 물러서지 안습니다.내가 간절히 의지하고 사모하고 구하는 그때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보면 요셉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은 17살의 나이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외국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졸지에 고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창세기31장 2절에 보면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고 합니다. 창31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가든지 요셉과 함께 하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여 주신다고 하여도 요셉이 믿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때 보디발은 애굽의 경호대장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정도의 직급이면 굉장합니다. 만약에 요셉이 그 부인의 말을 수락했다면 출세가 열릴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결코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깨하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힙니다. 그것이 바로 정직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결입니다. 여러분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거룩한 사람의 승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우리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함께 하여 주십니다.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 지금 내가 외롭고 힘든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주십니다. 나를 돕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내가 지금 사업이 힘들고 가정이 어려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세상을 이시기기를 바랍니다.

3.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해야 합니다.
33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기 우리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환난을 당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예수님도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환난이 없어야 하는데 환난을 당하셨습니다. 바울도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환난을 모두가 당하면서 환난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세상을 이기시고 환난을 이기시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땅에서 환난을 당할 때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로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한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먼저 환난을 당할 때 환난을 이기는 시작은 담대해야 합니다.
어떤 환난이 찾아오든 먼저 그 환난을 담대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먼저 그 환난을 바라보면 안됩니다.환난을 당할 때 환난으로 되어질 안좋은 결과들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환난 앞에서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나를 바라보면 약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땅을 들어가기 전에 40일동안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때 같은 시간 같은 상황을 보고 왓는데 10명은 두려워하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담대했습니다.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두려워하는 10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수기 13장 33절에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군들의 문제는 우리는 스스로를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메뚜기컴플렉스를 같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메뚜기같이 작다라고 열등감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학력의 열등감을 갖습니다. 어떤 분들은 외모의 열등감을 갖습니다. 어떤 분들은 물질의 열등감을 갖습니다. 이런 열등감을 갖으면 스스로 두렵고 위축되어서 앞을 향해 도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상황에서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습니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보는 것이 다릅니다. 민수기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승리하심을 볼때 담대합니다. 결국 믿음으로 확신하고 꿈꾸는 대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하나님을 확신하면 담대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승리주심을 확신하는 자입니다. 확신하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도망치고 흔들립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부흥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지도자 부흥의 확신이 있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세상에서 사업에 승리하는 기업을 보십시오. 지성이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바로 분명한 확신이 있는 기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 정주영같은 기업가들을 보십시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입니다. 그는 명문대 출신의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회장으로 성공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대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두려움없이 담대하게 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명한 확신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십니까?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26절 “그날에 너희가 내이름으로 구할 것이요”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도가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면 우리는 세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세상을 승리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자가 이기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환난이 오지만 환난의 문제를 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당할 때 그 환난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가 있을때 그 문제에서 나와서 합니다.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문제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그 문제를 좀 벗어나는 것이 해결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어떤 그림을 감상할 때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좀 거리를 두고 볼때 잘 보입니다. 우리의 환난의 문제가 올때 그 문제 앞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문제를 볼 수 없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 앞으로 오십시오. 세상으로 나가면 나갈 수록 점점 마음은 복잡합니다. 문제를 갖고 술집으로 가지고 가 보십시오. 노래방으로 가지고 가 보십시오. 문제가 더 문제가 됩니다. 마음이 더 힘들고 두려워집니다. 환난을 당할때에 두려워마시고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좀 그 문제에서 벗어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꾸 사람을 바라보거나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열심을 내면 낼수록 마음에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안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주님은 우리가 평안함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시간도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마음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나가는 말 )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먼저 세상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지로 여기시고 그리스도인의 대사로서 사명을 갖고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언제나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비록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함으로 도전하실 때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담대한 신앙의 승리자로 세상을 개척하면서 날마다 승리하시는 주님의 증인으로 매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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