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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망찬 교회 (사 5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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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에 건 희망>
여러분은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1907)라는
오 헨리(O Henry, 1862-1910)의 단편 소설을 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화가 지망생 처녀가 폐렴에 걸려 날로 날로 병세가 악화되어 갑니다.
이 사람은 삶을 포기한 채 창밖에 있는 담쟁이 넝쿨의 이파리만 세면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순간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가 지망생이 사는 집 아래층에는 가난한 노인 화가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 노인은 세계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꿈이 있지만 현실은 너무나 각박합니다.
그저 싸구려 광고물이나 그리면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젊은 화가 지망생 처녀가 어느 날 창문을 바라보니 담쟁이 잎새가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이 처녀는 이제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나도 죽겠구나 하면서 절망합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보니까 그 마지막 잎새가 담벽에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자
이 처녀는 삶에 대한 애착을 다시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처녀가 그 마지막 잎새 때문에 생명에 대한 애착을 갖기 시작했을 때 병이 나았습니다.
드디어 의사가 이 처녀의 완쾌를 알려주던 날, 그 마지막 잎새는 진짜가 아니라
아래층에 사는 노인 화가가 담장에 그려놓은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잎새를 그린 그 노인은 그림을 마친 그 날 밤 폐렴을 얻어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 헨리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마지막 스토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反轉)을 이룬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도 그렇지 않습니까?
폐렴에 걸려 삶을 포기한 처녀 화가 지망생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자기도 죽게 될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런데 폐렴으로 진짜 죽은 사람은 이 처녀가 아니라
그 처녀를 살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인 화가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마지막 잎새 하나에 걸고 있는 처녀를 살리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잎새를 그린 노인은 되려 폐렴을 얻어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폐렴에 걸려 죽어가던 여자가 마지막 잎새
하나를 그려놓고 폐렴에 걸려 죽은 노인 때문에 살아났다는 것이지요.

저는 어제 신문에 난 오승윤 화백의 투신 자살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오 헨리의『마지막 잎새』를 갑자기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오승윤 씨는 국전에도 여러 차례 당선이 된, 세계 60대 작가에 들 정도로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오 화백의 아버지 오지호 선생도 인상주의 회화의 대가로서 아주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오 화백은 평소에 우울증을 앓아 정신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은 마지막 잎새에 희망을 걸고 살아 남았는데
오승윤 화백은 너무나 안타깝게 이 세상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내일에 대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것, 그것이 불치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비록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생명에 이르는 약은 희망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희망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희망의 등대가 되는 내리교회가 되기 위하여>
2006년도 우리 교회 표어의 세 번째 부분은 '희망찬 교회'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절망한 사람들이 희망을 찾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암울합니다.
온갖 죄악과 불의와 부조리한 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절망하지만 교회를 보면 희망을 갖게 해야 할 터인데
요즈음은 교회까지도 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희망의 등대'로 세워주셨는데
교회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절망 한 가운데 표류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2006년도에 우리는 다함께 우리 내리교회가
희망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신음하고 낙심하고 절망한 사람들이 내리교회에 와서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만 희망찬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금식
오늘 봉독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금식과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을 때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생활에 빠져 있었습니다.
딤후 3: 5의 말씀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열심히 금식은 했지만 금식의 정신대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금식했지만 그 생활은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가 왜 희망의 공동체가 되지 못합니까?
종교적인 위선과 형식만 있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정신대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심히 금식을 하기는 하는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다 읽지는 않았지만 사 58: 3-5은 잘못된 금식행위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을 기뻐하시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금식을 하면서도 자신의 향락만 찾았기 때문입니다.
일꾼들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면서 착취했고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다투고 싸우면서 못된 주먹질이나 하면서 금식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아서
힘써 금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도무지 이런 금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행위가 서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는 마음은 빠진 채 종교적인 위선과 습관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 교회가 왜 사회의 지탄이 되고 있습니까?
왜 희망의 등대가 되지 못하고 절망과 탄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신앙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할 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②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이제 하나님께서는 참된 금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6-7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여러분, 여기 보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금식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맘대로 조종하고 착취하는 멍에의 줄을 끌러주는 것입니다.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주고 멍에를 아예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우리의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옷을 입혀주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골육을 내 몰라라 하고 피하여 숨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술주정뱅이가 지하철을 탔는데 신부님 옆에 앉았습니다.
그 남자는 술독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알코올 냄새가 가득했고
넥타이며 옷매무새가 사정없이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룸살롱에 들렸다가 나왔는지 얼굴에는 빨간 립스틱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신부님 옆에 앉은 이 남자는 갑자기 신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읽더니만 옆에 있는 신부님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신부님, 관절염에 걸리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신부님은 순간적으로 이 주정뱅이에 대해서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건 말이요.
매일 술독과 여자에 빠져 엉망진창으로 살게 될 때 그렇게 되지요."

그랬더니 그 남자는 "아, 그렇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신부님은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신사 양반,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소.
그런데 관절염에 걸린 지는 얼마나 됐소?"
"신부님, 저는 관절염 따위는 안 걸립니다.
여기 신문에 보니까 교황님이 관절염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여러분, 우리는 이웃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까?
이와 같이 자기의에 빠져서 이웃을 멸시하고 천대하면서
하는 어떤 신앙행위도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봤자 조금 더 의로울 뿐입니다.
착해봤자 조금 더 착할 뿐입니다.
윤리적으로 살아봤자 조금 더 그러할 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신앙 생활은 우리가 겸비해지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종의 모습이 되어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금식과 기도와 예배와 찬송을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 아무리 세상에는 절망이 가득차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내리교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산 소망으로 가득차게 될 줄로 믿습니다!

<물댄 동산 같고 마르지 않는 샘물같은 교회여!>
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 생활을 하게 되면 어떤 축복이 주어집니까?

제일 먼저 8절 말씀을 보세요.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아,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리하면, 즉 우리가 이웃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며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우리의 상처가 신속하게 낫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 햇살이 얼마나 곱고 아름답고 찬란합니까?
이러한 햇살이 우리 앞에 두루 비친다, 얼마나 희망찬 일입니까?
2006년도에 우리 교회는 새벽 햇살같이 아름다운 빛이 두루 비치는 교회,
희망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급속하게 아무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에서 온갖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상처를 신속하게 치료받는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희망에 가득찬 일 인지요!
2006년도에는 우리 내리교회에 나오는 이들마다
모든 상처가 급속히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또한 8절 후반부에 보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뒤를 호위해준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희망에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의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2006년도에는 이와 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9절 전반부를 보세요.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여러분, 얼마나 좋은 희망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붙들고 진실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축복,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기도마다 응답하시는 교회, 얼마나 희망찬 교회입니까?
2006년도에는 우리의 중보기도를 비롯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체의 기도가 응답되는 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9절 후반부에서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세요.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기 보세요.
참 귀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멍에를 버리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허망한 말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교회가 희망찬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웃에게 멍에를 지게 해서 안됩니다.
모든 비난을 이웃에게 돌리고 자기만 빠지는 손가락질을 해서 안됩니다.
모든 폭언이 우리 입술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고 불쌍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빛이 어둠 가운데에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밝아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2006년도에는 우리 내리교회가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환한 대낮같이 밝은 세상을 만드는 희망찬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다음에 11절 말씀을 보세요.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아, 이 또한 얼마나 좋은 말씀인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자비와 긍휼을 실천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늘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메마른 곳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충족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뼈마디마다 힘과 원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치 물댄 동산 같고 물이 그치지 않는 샘같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2006년도에 우리 내리교회는 물댄 동산같은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희망과 기쁨이 물로 가득찬 동산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칠 줄 모르고 솟아나는 샘물같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2절 말씀을 봅시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에 돌아올 후손들이
이스라엘 재건운동에 나선다는 것이지요!
우리 내리교회도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미국 교회에서 희망찬 교회는 두 가지 소리가 크게 나야 한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헌금하기 위하여 개인 수표 찢는 소리.
우리 내리교회도 2006년도에 더욱 희망찬 교회가 되기 위하여
어린이들과 청년학생들의 소리로 가득찬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느 대학촌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대학생 한 명이 청바지에 티 셔츠 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아주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날 따라 예배당이 가득차 앉을 곳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앉을 의자가 없다는 사실을 안 학생은 복도 정중앙으로 걸어나가
카펫트 위에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싹 긴장해서 그 학생을 일제히 주시했습니다.
이 때 장로님 한 분이 그 학생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저 장로님이 그 학생을 틀림없이 교회밖으로 끌어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그 학생 옆으로 가더니만 함께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 학생 곁에 함께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학생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따스한 마음으로 배려했던 것이지요.
청중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들이 부끄러웠으며 그 장로님을 못내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내리교회가 희망으로 가득찬 교회가 되기 위해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행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세상에 찌들리고 상처받고 절망한 사람들이
우리 내리교회에 와서 모든 상처를 치유 받고
물댄 동산같고 마르지 않는 샘물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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