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잘 살아보세! (신 30:11~20)

  • 잡초 잡초
  • 354
  • 0

첨부 1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피를 타고 났으나, 애굽 왕 바로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는 궁중에서 호의호식하며 애굽의 문화에서, 애굽 최고의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하며 자랐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왕에게도 아들이 없었고, 공주에게도 아들이 없었기에 양자로 삼은 모세밖에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는 애굽의 유망주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40살이 되었을 때에 사명감 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과연 바로의 궁전에서 일생을 편하게 지내야 되겠는가, 아니면 이스라에 사람으로 돌아가서 민족을 건지고, 민족이 당하고 있는 아픔에 동참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갈등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으니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여 그 명령과 법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2006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역사에서 도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예측 불허의 세상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자연적인 재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2의 쓰나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울산 앞바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눈이 3m나 내려 일본 서부 지역을 완전하게 마비시켰다는 이야기는 전라도 지역을 보면서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내일은 하나의 충격이요, 도전이며,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기!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의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두렵고, 위험하지마는 새로운 발전과 성장을 위한 새 창조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살렘 브라스를 통하여 이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장난을 치고 까불거려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이건 국가건 산다는 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이요,
문제에 대한 해결이요,
시련에 대한 극복이며,
도전에 대한 응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는 언제나 사탄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혹을 합니다.
․야! 쉽게 살 수 있는데,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꼭 그렇게 살아야 돼!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아! 자갈밭을 굴러도 이생이 제일인데!
정말인가요?
우리에겐 이생만 있는 걸까요?
사람의 말과 생각과 행동에는 언제나 거짓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에 거짓 위자를 보면 사람 인변에 행위 위자를 썼습니다.
인간의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인생을 바르게, 그리고 잘 사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하나 만들어도 성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한국에서 만든 물건이 세계시장에 나가게 되면, 세계 사람들이 마음 놓고 우리의 물건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나라에 거유 사마광의 제자인 유안세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는 수만개의 한자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했더니 그의 스승인 사마광은 서슴없이 바로 ‘성’이라고 했습니다.
또 제자가 스승에게 묻기를 선생님! 그러면 ‘성’이란 무엇입니까? 했더니 성이란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다. 성이란 말씀 언변에 이룰 성자를 씁니다.
자기가 한 말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성입니다.
성실은 인간의 전부입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실한 대화,
성실한 인격,
성실한 작업,
성실한 인간관계,
성실한 생활,
성실한 행동,
이럴 때에 힘이 있고요,
빛이 나고,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성에 감동을 하게 됩니다.
지성 앞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사람에 의해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 이것이 땅에서 잘사는 첫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는 서로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인간이라고 합니다.
왜? 사람 인 다음에 사이 간을 쓰는 걸까요?
사람은 누구나 사이 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지간,
부녀지간,
사제지간,
고부지간,
형제지간,
친구지간,
동포지간,
심지어 숨김없이 살아야 하는 부부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하여 부부지간이라고 합니다.
이 간격을 없애고 하나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아세요?
바로 화목입니다.
가정도 가화만사성이라해서 화목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도 인화가 있어야 하고요,
서로 화목한 인간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고급 주택에서 사는 것이 화목이 아닙니다.
서로 화목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말하면서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르시는 사람”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집도 하나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미신과 기독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신은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취하지만 기독교는 이 마음에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 하셨습니다.
화목하게 사십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공부를 하나 즐겁게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인생을 다 살고 있지만
똑같은 삶을 기쁘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같지 않습니다.
저도 가끔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 어떤 사람은 길바닥에서 즉사도 하는데 나는 이렇게 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인생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 긍정적인 마음에서 자신감이 나오고, 힘이 솟게 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한 그루의 꽃을 쳐다보세요.
․자연을 사랑하면 즐거움이 솟아납니다.
․내일을 사랑하면 기쁨이 솟구쳐 납니다.
저는 사람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르겠어요!
제 아내도 저에게 ‘아마 당신이 세상에 또 태어 난다해도 또 다시 목회를 한다고 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저는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디어도 떠 오르구요,
․좋은 사람들도 만나구요,
․즐거움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기쁘게 사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2006년도 새해입니다.
올해는 기쁨을 전해주는 2006년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웃음에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바이러스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성실한 사람!
화목한 사람!
즐거움을 나누어 주는 성도들이 되셔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잘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