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옥과 천국은 분명히 있음을 기억합시다 (계 21:1-8)

  • 잡초 잡초
  • 493
  • 0

첨부 1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또 싫어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싫어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그렇게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저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싫어하는 음식은 먹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만 먹게 되니까, 편식을 하게 되고, 일하는 것은 싫지만, 낚시하는 것은 좋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가 취미인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것은 전혀 하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해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자신의 취향대로 합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말씀을 읽을 때에도 자신이 싫어하는 성경은 아예 읽지 않고, 좋아하는 성경만 보는 경우가 될테고, 찬양도 자신이 좋아하는 찬양만 부르려는 경향이 될 것입니다. 찬양인도를 하는 경우에도 보면, 선곡의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찬양이 됩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찬양은 절대로 부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양인도 하시는 분들이 찬양을 인도할 때에 쓰는 말 가운데서, 제가 싫어하는 말 하나는, "이 찬양곡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인데.."라는 말입니다. 찬양인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자신이 싫어하는 찬양곡이라고 하더라도, 예배에 적합한 찬양곡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도 사실 설교자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과 좋아하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할 때에 설교자가 좋아하는 말씀만을 전하게 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 본문 같은 경우에는 수없이 하기도 하면서, 또 어떤 성경 본문은 평생에 한 번도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고 잘 듣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부담스럽고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내용의 말씀이 나오게 되면 마음과 귀를 모두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영 말씀이 은혜가 되지 않고, 엉망이었다, 괜히 교회 갔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설교자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씀이 아니라, 좋아하는 말씀을 전하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싫어하는 내용의 말씀, 예를 들자면, 질책을 하고,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건조하고 딱딱하게 예화 하나 없이 성경말씀만 전하는 그런 말씀을 전하게 되면, 성도님들이 싫어하니까, 은혜를 끼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의 말씀을 전하려고 자꾸 애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례를 들어보면, 미국 갈보리교회의 '척 스미스'라고 하는 목사님은, 종말에 관해서 강하게 설교를 하시는 그런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설교는 텔레비전에 방영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설교를 영상에 담아서 TV 프로로 만들어 가지고 가도, 중계소 심사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슐러'라고 하는 목사님의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같은 설교는 몇 년을 연이어서 계속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런 내용의 말씀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간에 신년교사강습회가 있어서 참석을 했었는데, 강습회를 가서도 느낀 것이 있습니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강사들은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아주 재밌게 가르치는 분입니다. 이번 강습회 첫날 저녁에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이 분은 장경동 목사님과 함께 기독교 TV 밀레니엄 특강 강사이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웃기고 재밌게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장경동 목사님과 쌍벽을 이루는 그런 분이십니다. 1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이 웃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마치고 그 다음 시간에는 어느 교회 유년부를 담당하시는 한 여전도사님의 강의를 듣게 됐습니다. 그 전도사님의 강의를 한 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하나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하셔서 1시간 내내 분위기가 딱딱하고, 재미도 없고, 약간 짜증도 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시간에 선택강의를 듣게 된다면, 어느 분의 강의를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재밌게 가르치는 분의 강의를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재밌게 잘 가르치시는 분을 비판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장경동 목사님 같은 분을 향해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비판하는 쪽이 아니라, 존경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싫어하는 말씀도 달게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재밌고, 유머 있는 말씀만 좋아하는, 말씀의 편식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 교회와 종말이라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종말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어렸을 때에 교회학교에서도 '예수님을 잘 믿어야지 안 그러면 지옥간다'는 내용의 설교가 많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서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도 종말과 심판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기 힘들어졌고, 오히려 종말에 대한 설교가 금기 시 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균형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성도들은 종말과 심판, 그런 말씀을 좋아하지를 않으니까, 어느 샌가 강단에서 종말과 심판,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씀을 전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약화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어리석고 위험한 것이다." 그 말씀처럼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애시당초부터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이었고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십자가와 복음을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과 지혜로운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 인해서 복음의 약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심판과 지옥에 대한 설교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 역시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복음과 미련한 기독교 대신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듣기에 좋아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지혜롭게 바꾸려고 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듣기 싫어한다고 해서, 그 이유 때문에 이제는 지옥에 관한 말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듣기 싫어도 우리는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입에 쓴 약이 몸에는 이로운 것처럼, 듣기에는 싫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 영혼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지옥과 천국은 분명히 있음을 기억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고 지옥을 나중에 얘기하는 것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지옥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명서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그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부분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은 거의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끝까지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으로만 너무 치우쳐서 인식을 해서, 우리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잊고 있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진노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 인식한다면, 어떻게 감히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정말로 두려워한다면, 감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늘 용서의 하나님으로만 생각을 하니까, 죄를 짓고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니까, 그냥 쉽게 죄를 짓고, 쉽게 회개하고.. 그러기를 반복해서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에, 절대로 악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을 하셔야만 하기 때문에, 지옥 형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지옥이 있다고 증거해 주고 있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옥에 대한 정보는 이렇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옥에는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아니하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 가게 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유황불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마가복음 9장을 보면,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은 꺼지지 않는 유황불못이 있고,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 당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옥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지옥이 있다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별로 경각심을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 백성이라는 생각만 하면서 지옥에 대한 생각들은 잊어버리고 삽니다. 물론, 지옥은 우리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곳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옥은 우리 때문에 만든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마귀와 사자들의 종이 되어서 마귀와 같은 일을 하게 되니까, 우리 인간들 역시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까 아무도 지옥에 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문제는 분명히 우리들 가운데서 지옥에 갈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지옥에 갈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22절 23절 말씀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면서 많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분명히 지옥에 갈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옥은 나와는 상관없는, 나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보다는 마귀의 종노릇할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지옥은 분명히 있고, 나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지옥은 영원히 고통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지 말아야 하고, 절대로 가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경각심은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기자를 통해서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또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덮어놓고 나는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심판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이 땅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배반의 자리에 있게 되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 나라 최초로 영세를 받은 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출발했지만, 그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계속되는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1791년 신해교난 때 배교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주교인이었다는 명목으로 참수형을 당했지만, 배교를 철회하지 않고, 순교자가 아니라 배교자로 죽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그는 안타깝게도 지옥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이 우리의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아무리 착하고 인격적이고 성격이 좋은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내 부모님, 내 사랑하는 남편, 아내, 내 자녀 가족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너무 안타까운 얘기지만, 예수님 믿지 않으면, 분명히 지옥에 갑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히 불타는 유황불못 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영원한 고통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의 그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분명히 지옥에 갈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절대로 지옥 백성이 되지 않도록, 사랑하는 내 가족 식구를 지옥에 보내지 않도록 기도하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천국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삶이 참 불공평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돈도 많고 잘 사는데,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나는 돈도 없고 고생만 많이 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믿음까지도 흔들립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걸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회의에 빠지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열심히 교회에서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내가 다시는 교회 일을 하나 봐라.' 그런 마음을 갖고 열정이 식어져서 열심히 봉사하던 일을 중단하기도 하고, 교회를 박차고 세상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묻기도 했었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이런 의문에 대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답은 '그래서 천국이 있다'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과, 또 의롭게 살고자하는 우리의 시련을 보면서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천국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우리는 세상을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공평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돈 많이 벌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악인이 잘 되고 형통하는 걸 보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은 모두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이 땅에서는 부요하게 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핍박도 당하고 어려움을 경험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나님께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형통한 악인들이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의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이 땅에서의 잘 먹고 잘 사는 시간은 너무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에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보낸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문명과 떨어져서 오랜 세월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치료해주면서 복음을 전하며 사셨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열심히 선교하시고 선교사님은 마침내 은퇴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사역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휴가를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어느 나라 대통령 일행과 한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과 어느 나라 대통령 일행을 태운 배는 항구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항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그래도 교회나 선교회에서 마중을 나와서 환영을 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었는데, 항구에는 선교사님 부부를 환영하는 현수막도 없었고,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를 파송한 교회 교인들도 아무도 없었고, 파송한 선교회 직원마저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선착장에는 요란한 환영 현수막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관악대, 빛나는 제복을 입은 의장대, 주지사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님은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흐느끼면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인생의 황금기에 헌신해서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공적으로 다 감당했습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성되게 일했는데, 고국에 돌아와서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대통령은 몇 주 동안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면서 코끼리 두 마리를 사냥하고 돌아온 것 뿐인데 영웅처럼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정말 너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고는, 선교사님은 쓸쓸하게 허름한 한 호텔에 돌아와서 짐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드디어 선교사님께 응답을 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라. 너는 아직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영원한 집에 돌아오는 날 네가 오늘 보았던 것보다 더 훌륭한 악대를 준비하고 너를 맞아 주마, 오늘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천사들과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서 너를 환영해 주마,"하고 말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남들은 지금 이 시간에 집에서 편하게 tv 보면서 쉬고 있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도 많이 갖는데,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새벽에도 추운 날 따뜻한 집에서 잠 잘 자면 좋을텐데, 추운 새벽에도 나와서 기도하는 삶을 삽니다. 친구들 만나서 술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면서 살지도 못하고, 사순절 기간이 되면, 금식도 하면서 그렇게 삽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이후에 천국에 가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한없이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 좀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천국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천국을 소망 중에서 바라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 있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을 했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는 천국행 티켓을 얻은 자들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다지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하는 마음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천국이 어떤 곳인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구체적으로 잘 모르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연한 천국보다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이 땅에서의 삶만이 우리에게 와닿고, 이 땅에서의 삶이 그리 싫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고통 가운데 있다면,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살겠지만, 이 땅에서의 편안한 삶에 너무 익숙하게 젖어 있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 소망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제가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꿈에 아주 하얀 불빛이 다가왔습니다. 정확한 형상은 없었지만, 저는 그것이 천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제 드디어 죽게 되었고, 천사가 날 데리러 왔다는 것을 직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쁜 마음으로 천사를 따라서 천국에 갔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발버둥을 치면서 "아직 안 돼요!" 그렇게 소리쳤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깼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환상적인 꿈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꿈을 깨고 나니까 악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그것은 내가 천국보다도 이 땅에서의 삶을 더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천국이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기엔 너무 시기상조이고, 커서 결혼도 해야 되고, 아들 딸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싶고, 손자도 보고 싶고, 그래서 나중에 할아버지가 돼서 살만큼 살고 난 후에야 가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제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정말 천국을 너무 사모하는 마음으로 지금 당장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분 계십니까? 천국에 가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은 할 일이 있어서 좀 더 있다가 가고 싶다는 것이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별로 천국에 대한 소망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이러한 모습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별로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한 것은 초신자들에게만 필요한 얘기이고,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을 믿어 온 우리들에게는 너무 기초적이고 단순하고 유치한 수준이라고 치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마치 천국과 지옥이 없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옥이 없는 것처럼 죄를 짓고, 마치 천국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하늘에 소망을 두지 못하고,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신앙보다 돈 버는 것이 더 급하고, 신앙 안에서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것보다, 수련회에 보내는 것보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서 어떻게든지 공부를 잘 해야 뭐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보게 됩니다. 기초적인 복음을 무시해 버리고, 의식하지 않고 잊고 살아가니까, 복음이 힘을 잃고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믿는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 외에는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실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지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죄악에 대해서 보다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경성해 있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있고,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도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이 땅에서 십자가 지는 삶을 살더라도, 그것이 불평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의식이 사라져 가고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세상과 짝해서 살다가 천국에서는 어떤 상급도 없이 그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정말 우리가 사모할 수밖에 없는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천국에는 황금길이 깔려 있고, 천국문에는 열 두 개의 보석이 박힌 열 두 진주문이 있다고 하지만, 어떤 신학자는 그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그 보석의 이름이 홍마노요, 홍보석이요, 녹옥이고, 담황옥이라고 하면서 보석의 이름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천국을 표현할 수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를 식당에 데려 가기 위해서 그 식당에 가면 정말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얘기를 해주는데, 상어 지느러미 요리라든지, 이름도 어려운 프랑스 요리라든지, 청평채, 팔보채, 궁중요리 같은 것은 아이들은 얘기를 해줘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주려면 식당에 가면 돈까스, 양념치킨, 피자, 자장면, 탕수육 이런 것이 있다고 얘기를 해줘야 아이들은 잘 알아 듣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아무리 표현하려고 해도 인간의 언어로는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홍마노 홍보석 같은 이름도 돈까스, 피자처럼 우리가 이해하기 좋도록 붙인 이름이지 천국에는 이 땅에 있는 보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보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보석들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는 어떤 보석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이 계시고, 천국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통치하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사모하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그곳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그 좋은 천국에 우리는 우리의 공로 아무 것도 없어도, 예수님만 믿으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원하기는, 지옥과 천국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감으로 인해서, 보다 깨어 있고, 감사함과 소망 중에 천국을 바라보면서, 천국 백성 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