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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 그 품 안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가서는 연애편지입니다.
성경에 무슨 연애편지가 있겠는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술람미라는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야한 말도 참 많이 있습니다. 아가서를 읽다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 구절과 가운데 하나가 아가서 4장에 있습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아 4:1-5)
얼굴이 좀 붉어지죠?

저는 벌써 16년 전에 이 아가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제 아내와 연애할 때 이 편지를 썼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나와 함께 가자.” 여러분 어떠했겠습니까? 완전히 반했습니다. 그 편지 받고 반해서 이렇게 16년 동안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 아내는 제가 조그만 이벤트를 해 주어도 무척 감동하며 좋아합니다. 여러분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작은 감동을 먹고 사는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단순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술람미 여인은 신부되는 성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했냐하면 아가서 5장 8절의 말씀을 보면 병이 날만큼 사랑했습니다.
우리 함께 아가서 5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 5:8)
병이 날만큼, 사상병이 걸릴 만큼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사상병에 걸리셨습니다.

여러분 사상병에 걸려 보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때문에 사상병에 걸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000을(박성미, 함화숙)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병이 난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여러분 솔로몬은 왕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종입니다. 신분적으로 보면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신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미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술람미 여인은 까마잡잡하고 외소한 체구를 가졌다고 합니다. 미스 이스라엘 아닙니다. 몸짱이 아닙니다. 늘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이 여인을 ‘어여쁘다 아름답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왤까요?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여쁠만한 모습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입니까? 고운 모양도 없고, 사랑할만한 아무 짓도 못했는데,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아름답다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자격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어여쁜 자라 아름답다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기독교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여러분 하나님의 초청에 일어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혹시 앉아계십니까? 혹시 나태함 가운데 누워계십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8절에서 9절에 보면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아 2:8)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시기 위해서 …
옛날에 이런 말있죠? 물을 건너셔, 바다 건너셔, 산을 넘어서, 서서서…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해서 “산을 빨리 넘어오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산을 넘어 오는 것이 쉽습니까? 산에서 달리는 것이 쉽습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등산가라 할지라도 산을 빨리 달려서 산을 넘어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산을 빨리 넘어 오는도다. 할렐루야!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 8절에 말씀에 보면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어”
이 말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입으시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의 형체를 스스로 입으시고 자발적인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저희는 못가지만 동생식구하고 누님 식구들하고 한탄강에 물놀이를 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 때가 지나서 도착했기 때문에 어른들은 한참 밥을 준비하고 있는 중에 지금 군대 가있는 진규는 물놀이하러 들어갔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물 한가운데서 애들 3명에서 이 소용돌이치는 물 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예요.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모릅니다. 고기를 굽던 매형이 고기 팍 내팽겨 치고 막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소용돌이치는 그 물속에서 구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안하고 매형이 또 들어가서 억지로 조카를 구해냈습니다. 그런데 거기 두 명에 아이, 옆에서 놀던 다른 가족들 중에 아빠들이 구하려고 달려 왔는데 못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두 명의 아이들이 죽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 계시지만 우리 매형이 한 몸짓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빠르신지! 고기고 뭐고 다 내팽겨 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아들을 구해서 지금은 군대에 가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이 이와 같다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저하지 않으시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산을 넘고 그것도 빨리 달려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있었지만 그 발걸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험한 산들이 있었지만 그 산들을 넘어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서 주님은 산을 빨리 넘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산을 빨리 넘어 오신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아 2:9)

여러분 달려 왔다면 빨리 만나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산을 넘어서 어려운 길을 왔는데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특별히 솔로몬은 왕입니다. 그리고 술람미여인은 계집종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산을 넘어 왔으니 문을 부스고 빨리 들어가도 됩니다. 군사들에게 “여봐라! 저 문을 부스워라.” 그리고 강제적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충분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솔로몬 왕은 문 밖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인격적인 주님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우격다짐으로 몰아가시는 분이 아니시라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사춘기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지나가면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설레어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못 본척하고 지나갔던 것처럼 우리가 너무나!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산을 빨리 넘어 오셨지만 창살 틈으로 엿보면서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동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아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은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까 그 머리에는 이슬이 그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구나
문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아가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주님은 문 밖에 서서 기다리십니다. 밤이슬이 머리에 가득하도록 문 열릴 때까지, 내 마음이 동해서 주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할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화를 보면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는 성화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제가 설명을 듣기로는 이 문에 문고리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자세히 보니까 아직도 이 성화의 문에는 문고리가 없습니다. 이 말은 안에서 문을 열어 주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두드리면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애듯한 마음으로 우리를 엿보시면서 “문을 열어다오.”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에 이슬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주님 내가 문을 엽니다. 내 문을 활짝 엽니다. 오셔서 나와 함께 거하시옵소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좋은 곳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저희가 심방을 가면 때로 심방 후에 성도님들이 식사를 대접하려고 좀 좋은 곳에 갈 때가 있습니다.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누구 생각날까요? 예 아내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뭐라고 생각해요. “그래 다음에 꼭 데리고 와야지!”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곳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좋은 동산에 함께 있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동산에 우리가 없다면 이 동산에서 예수님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동산이 있다할지라도 거기에 사랑하는 성도들이 없다면 예수님도 행복하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일어나 함께 가자! 우리에게 초청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초청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11절부터 13절 말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 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름답다. 저 동산 우리 다 같이 가보세.”♬

아름다운 동산으로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곳은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다 거두어 가시고 이제는 쉼이 있는 그곳으로, 눈물도 슬픔도 한숨도 없는 그곳으로 주님은 우리가 오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풍성함이 있는 곳입니다.
지면에는 꽃이 피었고 새의 노래 소리와 반구(비둘기)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아름다운 소식이 들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습니다. 마음껏 따 먹을 수 있는 완전하게 익었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해석하지 않아도 아! 정말 좋구나!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는 그곳은 너무나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주님이 오신 목적은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율법 속에 가두어 놓고, 우리를 규율 속에 가두어 놓고 끌어가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지켜 주셨음을 많이 간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나에게 너무나 좋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늘 기대하고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무서운 하나님이십니까? 우리를 억지로 끌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아니요. 성경 속에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좋은 조건을 다 준비해 주시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동산을 예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셔서 함께 가자 초청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함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동산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좋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 그냥 과거에 있었던 하나의 이야기로 흘려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나를 향한 애달픈 주님의 초청입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의 본문의 말씀처럼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습니까?
낭떠러지 은밀한 곳이란 무엇입니까? 위태롭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다 버리고 숨어버리고 싶은 상태를 낭떠러지 은밀한 곳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오라! 일어나라! 주님의 사랑으로 나오라! 여러분 숨으면 숨을수록 여러분의 마음이 더 어려우니 이제 주님의 품으로 나오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어려움과 절박한 상황 가운데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가정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자녀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오늘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내게 나오라! 오늘 주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가진 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여러분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우리의 조건이 아닌 우리 자체를 사랑하시는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맞는 찬양이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함께 배우면서 함께 찬양합시다.

결단:

오늘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함께 가자!
우리를 초청하기 위해서 주님은 산을 넘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아름다운 동산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나태함과 실망으로 주저앉아 있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납시다.
우리 가운데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손을 내밀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풍성한 동산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고 조건 없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덕만 목사)

짧은주소 : https://goo.gl/XAef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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