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 (롬 8:26-30)

  • 잡초 잡초
  • 416
  • 0

첨부 1


새해 첫 주간을 마석기도원에서 열린 성풍회 알파성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부족한 사람이 알파성회의 낮 시간 강사를 맡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고 영광된 일이었습니다. 사실 강사로 선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 많은 교우들 앞에서 정말 말씀을 잘 전할 수 있을까하는 무거운 짐이 저를 짓누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시간 날 때마다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도 매시간 성령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3일 동안 낮 시간 복음을 전하는데, 첫 날의 시간이 끝나면 다음 날을 준비하면서 다시 설교를 정리하고, 재작성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시간들은 성령께서 부족한 저를 사용해 주심을 실감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 마다 많은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오늘 귀한 말씀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해주셨습니다. 한 교회의 80세가 넘으신 원로 장로님은 제 손을 꼭 잡으시더니, “제 생애에 이렇게 좋은 말씀은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라는 과찬으로 저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다른 교회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교회 장로님, 권사님이 얼마나 저를 격려해주시는지, 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멘은 어찌나 또 크게 하시는지 참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들의 격려와 후원임을 알고 있습니다.

  첫 집회 때에는 ‘비전’에 관해서 설교를 했는데 마석 기도원을 위해서 5년 동안 기도해 오셨다는 이상순 집사님이란 분이 설교 후 쪽지를 저희 교회 방에 맡겨 놓으셨답니다. 읽어 볼까요? “영신교회 이영무 목사님. 사랑합니다...” 더 읽으면 여러분이 시험들까 봐 그만 읽겠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는 목회 초창기에는 늘 전도를 하려고 애썼다가, 지금은 전도를 포기하고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도전을 받아 다시금 열심을 내겠다는 격려도 받았습니다. 
  어제는 방으로 한 교회 집사님이 전화하셨습니다. 마석 집회 때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서 그냥 있을 수 없어서 감사를 표현하려고 하셨다는데 마지막 말씀이 “목사님~ 인상도 너무 좋으시던데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우리 영신 찬양단이 10번의 집회 내내 찬양인도를 담당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찬양했는지 거기 오신 모든 목사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마석기도원 집회에 참여한 것이 수 십년째인데 찬양 인도를 맡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우리 교회가 그리 큰 집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이젠 능히 소화를 해 내는 역량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청년들은 새우잠을 자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찬양을 준비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찬양율동 선교회와 여성중창단이 예배가운데 은혜로운 찬양을 드리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영신교회를 통해서 이리 큰 축복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에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성령께서는 저의 모든 허물을 감추어 주시고, 시간 시간 말씀만을 전하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통해서 성령님이 얼마나 고마우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작년 연말은 눈 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새성전에 입당하고, 사무실, 교역자실, 예배실 짐을 다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제 방의 책들도 뒤죽박죽이 되어 자료를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필요한 말씀을 주셔서 은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바로 교회의 영이요, 교회를 도우시는 영입니다. 또한 성령은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낙심과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은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부활하신 주님을 담대하게 증거 할 만한 용기와 능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40일을 거하시다가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아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놀라운 오순절 성령의 강림이 있었습니다.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양으로 성령이 회중가운데 임했고, 그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령강림으로부터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요, 성령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믿음의 터전입니다.

  성령은 무엇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중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을 세 가지 위격이라고 부릅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의 영이요, 성자의 영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는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한 때 미국에서 신학생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욕이 “성령 받지 말고 목회해라.”였답니다. 그리스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흉한 말은 바로 “성령 받지 말고 신앙생활해.”입니다.  성령이 뭔지도 모르고 성경 찬송만 들고 들락날락하니, 그 사람은 봉사하다가도 시험이 들 것입니다. 충성하다가도 낙심과 시험에 빠지고 불평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역은 무엇이며,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첫째로,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는 영입니다. 교사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잘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곧은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갈 때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또 우리가 그릇된 길을 선택할 때 성령은 그 길을 막으시기도 하십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보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라고 증거합니다. 결국 사도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 와서 복음을 전함으로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깨우쳐 주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경 읽을 때 소설 보듯, 신문 읽듯이 하면 안 됩니다. 성경 읽을 때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옵소서.”라고 도우심을 구할 때 그 때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감동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6년 새해를 승리하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령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게 하는 영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합니다. 
  영은 바로 성령입니다. 젊은이들이 본다는 환상은 바로 비전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들은 꿈을 갖게 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성령이 임할 때 그들이 비전을 갖게 되고 아프리카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선교사로 가서 봉사하기도 합니다.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나이 드신 어른들은 꿈이 별로 없습니다. 주무실 때 꿈을 꾸지만 그런 꿈 말고 미래의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연세가 70~80세가 되어도 성령이 그 마음에 임하면 거룩한 소원을 주시고 꿈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꿈을 위해서 남은 인생을 더 쪼개어서 열심히 살아가게 됩니다. 
  영신교회에 계신 많은 어른들에게도 이런 거룩한 꿈이 임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의 아름다운 비전을 꿈꾸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비전은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읽을 때, 묵상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이 부딪쳐 옵니다. 그것이 비전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 비전을 마음에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기도해야 합니다. 비전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 비전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리켜 비전의 산실이라고 합니다.

  셋째, 마음에 품고, 기도했으면, 이제는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분의 말로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언어로 선포하십시오.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번 말한다고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 인생에 늘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선포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마석기도원 집회 때 비전을 갖고 선포했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이 낡고 불편한 마석기도원 예배실이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서 여기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며 예배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고 선포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목사님이 뭘 믿고 선포하나?” 하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으로 선포하면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비전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말하는 대로 됩니다.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열 두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다녀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말대로 다 죽었고 다 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것을 보고 왔지만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니,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아름다운 말, 축복의 말로 여러분의 아름다운 비전을 선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비전이 이루어진 것을 상상하십시오.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거룩한 상상력을 가지고 이 비전이 이루어진 모습을 미리 보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상상력입니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봅니다. 여러분에게 믿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줄, 이렇게 멋진 강대상에서 설교할 줄 기대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혹시나 “목사님 지금까지는 어떻게 왔지만 앞으로 채무가 있는데 어떻게 하실려고요?”하는 걱정 있으신 분들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우리의 미래도 인도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우리가 비전을 이루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말로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 때문에 때로는 내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그것을 위해서 희생과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꿈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여러분들이 성령이 주시는 은혜가운데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한 해를 활기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세 번째 대답은, 성령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인간의 방법이나 조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흥하는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 가운데는 많이 배우지 못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표적인 예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은 일반 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인가도 못 받은 성경고등학교를 나오고, 야간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장로회 신학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학벌로는 내세울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을 의지하고 사모할 때, 성령께서는 그 분께 큰 은혜를 주셔서 많은 이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훌륭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교회의 부흥은 성령의 역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성령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의 사역이 성령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예배를 통해 성령이 기쁨을 얻으실 때, 성령은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이 예배당을 1년, 2년, 3년 해를 거듭하면서 가득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1부엔 좀 많이 빕니다. 2부엔 좀 더 차고, 3부엔 좀 더 낫습니다만, 아직도 좀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성령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목사님, 자리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할 때가 올 줄로 믿습니다. 아니 거룩한 비전의 눈으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전에 목회하던 교회에 처음에 부임했을 때는 교회에 문제가 많았고, 25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였지만 성령을 간절히 찾고 부르짖고 기도할 때, 몇 년 지나서 900명에 이르는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상 26장 25절은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찌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확신이 될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의지하되 전도에 힘쓰셔야 합니다. 성령은 내 힘으로만 안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성령을 사모하고 능력을 받아 전도할 때 이 교회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득 채워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 대답은,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아멘.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영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깨어지기 쉬웁니까? 질그릇같지 않습니까?
  개나 짐승들은 새끼를 낳아도 몇 달이면 다 걸어 다니고 자기 밥도 다 찾아 먹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태어나서 한 돌이 되어도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1년이 지나도 이제 걸음마 할 뿐이지, 자기 손으로 뭘 먹거나 행동을 못합니다. 적어도 6-7년은 지나야 가방 메고 유치원갈 정도가 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연약합니다. 아무리 큰 덩치도 감기만 들어도 이불 뒤집어쓰고 골골합니다. 조금만 낙심해도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시험에 듭니다. 이렇듯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늘 “성령님,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내가 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약하니 성령님만 의지하고, 그 때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도도한 물결의 중심에 섰을 때, 교황이라는 막대한 권력 앞에서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 때 그의 고백이 바로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저를 도와주옵소서.”였습니다. 그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는 종교개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아는 것부터 신앙이 시작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달을 때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사람은 늘 이중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착한 마음도 있고,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한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영국의 유명한 단편작가인 스티븐슨의 작품 중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있습니다. 영국의 한 동네에 아주 존경받는 의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지킬’입니다. 그는 많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의료 혜택을 베풀고, 고아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과부의 보호자 역할을 합니다.
누구든지 그를 보면 은혜를 받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 동네엔 저 지킬 박사님이 계셔서 참 좋아.”라는 칭찬이 가득했습니다. 
  동시에 그 동네엔 하이드란 흉악범이 밤마다 나타나서 아수라장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여자를 능욕하기도 하고, 물건을 빼앗고 부수기도 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하이드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고, 결국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 보니 그의 모습이 지킬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에겐 지킬 박사와 같은 선한 모습도 있고 하이드와 같은 흉악한 모습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연약한 모습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가 잘 못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은 성령의 도움 가운데 모든 것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고난도 아픔도 내게 축복이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도우심을 입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증언하며, 요한일서 4장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남을 사랑할 줄 압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고, 고아원이나 보육시설에서 혹 사랑에 궁핍해서 살았던 사람은 남을 사랑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남에게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모습이 나타납니까?

  먼저, 만나고 싶습니다.
  어제 만나도 또 만나고 싶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자주 만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배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일 낱, 오후, 수요, 새벽에배에 나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난 텔레비전만 볼께요!” 말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만나셔야 합니다. 여러분, 올해는 하나님 자주 만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주일 오후 예배든, 수요예배든 한번쯤은 더 나오시길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을 자주 만나는 사람이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화를 자주 하는데 있습니다.
  만나면 이런 저런 얘기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아들에게 애인이 생겼는데 전화 한번 붙들면 기본이 한 시간 이랍니다. 전화비가 30-40만원 나오는 가정도 있답니다. 이불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핸드폰으로 속삭입니다. 그래도 할 말이 남은 것이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어떤 목사님 가정의 우스겟 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그 집 딸이 전화만 잡으면 기본이 한시간인데 어느 날은 10분 만에 끊더랍니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아빠~ 잘못 걸려온 전화예요.”
  사랑하면 대화의 시간이 길어집니다. 바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5층 새벽 기도회실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한번 와 보십시오. 얼마나 근사한지 모릅니다. 새벽에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과 대화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면, 또 주고 싶어집니다. 도무지 아깝지가 않습니다. 언제 되받을까 생각하고 주는 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마음을 드리고 싶고, 시간을 드리고 싶고, 물질을 드리고 싶고, 생명까지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한 해 하나님 앞에 헌신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사랑하면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임하는 것을 움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성령의 도우심을 입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는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다 계획을 갖고 부르십니다. 오늘 성경 30절에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영광된 자리에 앉혀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부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면 날마다 성령의 도움가운데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는 영 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비전을 가지게 하는 영 입니다. 성령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영 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는 영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6년 혼자 걸어가시겠습니까?
  성령을 모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내 마음에 모시고 그 분과 동행하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지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