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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덴과 힛데겔 (창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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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0절에서 말씀합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비손과 기혼 그리고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처음강 비손은 뛴다 뛰다의 뜻입니다. 기혼은 은혜, 힛데겔은 결실, 유브라데는 능력입니다. 2006년 한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손의 뛰고 뛰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6년 한해 기혼의 은혜가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힛데겔의 결실에 대한 말씀입니다.

포로신세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포기하지 않고 왕의 진미를 거절했던 사람

사자굴 앞에서도 감사해버리고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그 다니엘이 계시 받은 강이 바로 힛데겔입니다. 다니엘은 이 강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큰 환상을 본 것입니다. 단10:4-6절에서는 정월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 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합니다. 저는 오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기도의 사람 다니엘이 큰 영감 큰 환상의 축복을 누렸던 힛데겔 강가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2006년 한 해 성도님들의 가정에 사업장에 공부의 현장에 비젼의 풍성한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결실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006년이 마무리되는 추수의 시절에는 많은 간증과 풍성함에 결실이 있는 한해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결실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결실을 입하시기 때문입니다. 마 25장의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 새 그냥 맡긴 것이 아니라 맡긴 것 만 큼 결실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남겼나요? 맡겨진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습니까? 회계하신 것입니다. 마21:19절에서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길가에서 한 무화가 나무을 보시고 그리고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곧 마른지라 열매의 원하심앞에 열매 없이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나무의 결국입니다. 잎만 무성한 교회여서는 안 됩니다. 잎만 무성한 성도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해동안 그냥 교회만 다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남겨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예배 때마다 함께 외치고 있는 우리교회 공동체 비젼선언문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 정신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어찌 그리 아름다운 외침을 주셨는지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함께 한번 외쳐봅니다. 우리는 빛들로 나타나 생명의 말씀을 밝혀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는 성도로 훈련되어 작은 예수로의 사명을 다하며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선교공동체로서 사명을 다할 것이다. 정신은 무엇입니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을 향하며 빛들로 나타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가고 어두워져가는 영혼을 우리는 구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 놓을 것이 있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좋아하는 잎만 무성한 교회는 안됩니다. 잊지마십시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맡기셨던 만큼 원하시는 결실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맡겨진 재능 앞에 무엇을 얼마나 남겼나 어떻게 살았나 입니다.

그렇다면 왜 결실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자신이 풍성한 결실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0.60.100배의 결실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면 우물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물이 나오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삭의 농사에 100배나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베드로에게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결실을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광야 40년 만나로 메추라기로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축사하시어 오천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참으로 작은 순종앞에 사르밧 과부의 가루 중에 가루가 넘쳐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을 경험하시면서 시편기자는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와 내 집이 무엇이관대 이런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하고 감동한 것입니다. 처음 에덴은 참으로 풍성한 참으로 풍요로운 동산이었습니다. 모든 나무마다 결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은 마땅이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존귀한 사람 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대상 4:10절의 말씀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시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처럼 기도의 결실을 거두었던 야베스였습니다. 이땅의 모든 많은 성도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본받고 싶어합니다. 아니 어쩌면 야베스가 기도하며 응답받았던 그런 복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삶에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사모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기도만으로 그것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그것을 구한 것입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결실을 원하신다면 삶으로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실을 맺기 위한 신앙적 삶은 어떠한가?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의 삶이어야 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였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성도입니다. 열매는 가지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중심의 신앙을 이야기 합니다. 복음중심의 신앙입니다. 열매맺음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지에 붙어 있는 가지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매여 있는 신앙입니다. 사람따라 다니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신앙의 목적 또한 복음중심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목적이 기복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목적입니다. 요15:7절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였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그리고 거하라는 자리를 잡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다시말해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처음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에 위해 하지만 하나님의 원하심이 중요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느날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원하심이 자리잡혀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욕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멜테리의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는 선교에 관한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원주민에게 성찬식을 해야되는데 포도주가 없어 물을 놓고 기도했더니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합니다. 또 길이 하도 질퍽해서 입고 있는 옷이 너무 지저분했지만 비누가 없어 빨 수 가 없어 기도했더니 옷이 눈같이 희어졌다합니다. 원주민 사역을 마치고 도심으로 돌아와 호텔에서 똑같이 옷을 세탁하고자 하는데 원주민 사역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나 기도했더니 옷이 그대로더랍니다. 아니 하나님! 왜 여기서는 옷이 희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테리야 여기에는 빨래비누가 많단다. 하시더랍니다. 하나님은 욕망에 따라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과실을 맺기 위해서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여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은혜 안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은 아무리 쓰러져도 뿌리만 시냇가에 내려있으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성도가 늘 은혜의 강가에 있어야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 안에 있음을 어찌 아는가? 지금 은혜를 말하는 자인가? 은혜를 보는 자인가?

은혜는 머리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슴이 식어 있으면 위험신호입니다. 온전한 과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은혜가 머리에 있으면 바리새인, 서기관, 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안에 심겨졌을때 우리는 여러종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시편1:3절에서는 “저는 시내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입니다. 가을, 봄, 여름에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나무가요? 바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은혜가 있는 나무입니다. 그 인생의 겨울에도 맺어야 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자굴 앞에서도 감옥안에서도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에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언제 어떤 환경에서도 열매 맺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매 예배시간마나 시냇가에 발 담그고 있듯 은혜에 잠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교회)에 심겨진 나무가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잘 심겨져야 합니다. 교회는 제 2의 성육신이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에 심겨졌다는 것은 그 교회가 내 교회요 함께 아파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는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을 보면 영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등등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주님과 하나입니다. 나와 주님은 하나입니다. 주님과 교회와 나는 곧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교회와 나는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누구와 교제권을 형성하는 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는 완벽한 곳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노회연합성회가 우리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노회연합성회니 노회의 많은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참석을 했겠지요. 사모님 한분이 저에게 우리교회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유아실에서는 대다수가 예배도 안드리고 떠들기만 하는데 어떻게 빛나교회는 본당보다 유아영상예배실에서 드리는 자모님들이 더 뜨겁게 기도하고 예배드리냐고 이런 모습에 감동을 했답니다. 역시 빛나교회가 부흥하는 이유를 알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교회는 애기엄마들의 영성이 대단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꼭 부부와 같습니다. 목사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사는 남편과 왜 삽니까? 남들보다 돈이 많아 삽니까? 아니면 남의 남편보다 잘 생겨서 삽니까? 하나님이 맺어주신 반려자이니 사는 것 아닙니까. 교회가 그러합니다. 다른 교회보다 훌륭해서도 아닙니다. 목사가 잘나서도 아닙니다. 더 좋은 교회를 선택해서 움직이는 사람은 나중에 또  더 좋은 교회를 찾아 방황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통해 있어지는 은혜와 복이 너무 큽니다. 교회안에서 그리고 교회안에서 누리는 교제권에서 그리고 헌신과 봉사의 자리에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한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힘듭니다. 왜요? 영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는 슬픈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잘 심겨져 아름다운 영적열매를 맺기를 축복합니다.

힛데겔의 결실의 축복은 ‘말씀에 의지하여’ 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있습니다. 소돔성의 롯의 사위들입니다. 롯의 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습게 알던 에서도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이제 한해동안 많은 말씀들이 들려질 것입니다. 결실을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인데 마13장에 씨뿌리는 비유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 가를 알려줍니다. 길가에 뿌려진 것은 뿌리를 내리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돌짝밭에 뿌려진 씨앗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열매가 없고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엇은 재리와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옥토에 뿌져진 씨앗은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을 들을때마다 힛데겔의 강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말씀은 소망이요 약속입니다. 옛날에는 처마밑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자 즉 씨앗입니다. 옥수수 씨앗을 묶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보리고개를 넘기면서도 그 종자씨앗만큼은 손대지 않습니다. 도둑이 들어와도 양심이 있었습니다. 그 종자씨앗만큼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것은 그 집의 소망이요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옛날도둑들은 어쩌면 바보스럽기도 했습니다. 왜요? 오늘날처럼 디지털열쇠가 아니라 창호지 안쪽에 문고리에 숟가락 하나 꽂아놓으면 못 들어가고 그냥 갑니다. 오늘날은요 창호지를 찢고 쉽게 열수 있을텐데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포기하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올 한해 약속의 말씀을 잘 지켜보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 안에서 기대하고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으면 결실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실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공급받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도 쓰러뜨리는 능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막9: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심으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수고하십시오. 열심위에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넘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힛데겔은 결실입니다. 에덴은 힛데겔로 인하여 한없이 풍요로웠습니다. 에덴에서 시작된 힛데겔의 강줄기가 우리 가정에 사업장에 교회에 넘치도록 흘러 밀려올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삶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의 삶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 산다는 것은 은혜안에 사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늘 가슴에 은혜가 젖어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집에 잘 심겨진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넘치는 결실의 축복이 있습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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