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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을 선택하라 (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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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습니다. 성공도 습관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실패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첫 번째 습관이 무엇일까요? 주도적입니다. 수동적으로 끌려가거나 상황에 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을 만듭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일어납니다. 물론 희생을 치를 것도 각오합니다.

누구나 좋은 일이 저절로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 해줄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건 좋은 일이 그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내 입에 맛있는 것을 넣어주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하나 돌보기도 힘듭니다. 결국 좋은 직장을 갖고 잘 되는 사람은 올바른 원칙을 따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잘해주시기만 막연히 기다리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축복을 향해 일어나야 합니다. 성공하는 신자에게도 몇 가지 습관이 있습니다. 그중에 첫 번 것이 주도적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자신을 고결하게 만들려는 주도적인 노력처럼 신자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일도 없습니다. 주도적으로 축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1. 새로운 삶이 열리다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의 삶을 신분향상을 위한 몸부림으로 봅니다. 변두리의 작은 집에서 중심지로 평수를 넓혀서 움직여갑니다. 적금을 붓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낍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 합니다.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진급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한 마리도 말한다면 신분향상의 노력입니다.

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느라 십여 년을 보내야 하나요? 그리고 성적을 올리느라 밤을 새우고 죽도록 노력합니다. 이렇게 해서 신분이 향상됩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칭찬 듣는 것도 일종의 신분향상이지요 좋은 대학가는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좋은 데 취직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게 다 그래요. 모두가 신분향상을 위한 수고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누구나 운명적으로 한계 속에 태어납니다. 자신이 원해서 주도적으로 살 수 없어요. 잘 살고 못 사는 게 자기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생긴 거나 지능이나 재능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부모를 태어나는 나라나 시대를 선택 못해요. 그래도 누구나 잘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보았자,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울타리를 못 벗어나요.

하지만 기독교만은 모든 한계를 넘어서게 합니다. 신분을 확실하게 향상시킵니다. 밤새워 공부할 필요도, 죽도록 일할 필요도 없어요. 남의 돈 빼앗을 필요도 없고요 남 짓누르고 올라갈 필요도 없어요.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됩니다. 대단히 어려워 보이고 얻는 게 없어보여서 사람들이 피해갑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너무도 쉽고 빠르고 높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길이 험하고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값을 많이 내고 많은 희생을 해야 하며 얻는 것은 정신적인 보상뿐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에서도 누구보다 잘 되고 신분의 향상이 빨리 됩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멋지게 살 힘을 공급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세상의 왕이 되고 너무도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우선 예수를 믿는 본인이 달라집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거기에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나옵니다. 주인의 재물을 훔쳐서 로마로 도망합니다. 그냥 도망해도 십자가형인데 돈도 훔쳤어요. 다시 로마에서 범죄하고는 감옥에 갇힙니다. 아직 노예신분이 탄로 안 났지만 곧 밝혀집니다.

절망적인 상황인데 거기 감옥에서 바울을 만납니다.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리고는 생명의 말씀을 열심히 배웁니다. 자신의 상황이 절망스럽기에 그렇습니다. 절망스러울 때 이렇게 되면 복된 사람입니다. 대개는 자신을 망치는 방향으로 가고 말지요. 오네시모는 달랐어요. 그래서 바울이 주인에게 사정하면서도 돌려보냅니다.

그 후 오네시모의 삶은 달라집니다. 주도적으로 됩니다.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자유인이 됩니다. 그리고 계속 정진해 성직자가 되고 에베소 감독으로 대주교가 됩니다. 아주 극적인 변화로서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수십 년 즉 평생을 통한 과정이지요.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신앙을 받아들이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당신도 이런 삶으로 초대되었습니다.

2. 축복자로 선택되다

이상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외형적으로는 그대로이더라도 내용이 달라집니다. 기독교 신앙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는 양반 상놈 타령으로 수천 년을 보냈습니다. 상놈은 아무리 해도 상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양반은 죽어도 양반이라고 일도 안 합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다 못살게 마련입니다. 비참한 땅이었습니다.

여자들은 더욱 불쌍했습니다. 공부도 못했고 남자가 먹고 남은 것을 먹었습니다.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회교나 힌두교 문화권에서 여자의 위치는 같아요. 개인적으로 유능하거나 재능 있어도 주도적 삶은 없어요. 죽도록 일해도 삶의 굴레는 여자들에게 가혹해요. 여자들은 참으로 예수께 감사해야 해요. 그래서 교회에는 여자가 많은가 봐요.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외형적으로 즉시 바뀌지는 않았어요.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어도 노예는 그대로 노예로 있으라고 했으니까요.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취직을 시켜주고 돈을 주고 입장을 높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줍니다. 노예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요 그래서 세상 사람에게는 없는 생명과 능력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에서 머슴이 장로가 되어 존경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목사가 되고 유학을 하고 독립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수천 년의 인습과 미신의 민족은 세계사에 뛰어난 나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들어온지 단지 100여년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왔을 때 베들레헴 지역 한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두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그 지역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남자들은 다 죽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 그래서 과부만 셋이 남습니다. 당시에 과부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시어머니는 고향에 가서 죽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면서 젊은 며느리들에게 떠나 결혼하라고 합니다.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따릅니다. 떠난 이가 오르바, 따른 이가 룻입니다. 시어머니가 권합니다. “나 따라가 봤자 나올 게 없다. 늙은이 수발하느라 고생만 하다가 만다.” 룻이 대답합니다. “어머니 계시는 곳에 나도 있고 어머니 백성이 내 백성이고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분명한 선택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룻의 결단은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입니다. 요즘 아파트 이름들이 그렇게 어려운 이유가 시어머니 따돌리려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룻은 돈 한 푼 없는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따라붙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룻은 축복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주도적으로 삶을 살 힘을 공급 받습니다. 신비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룻은 고향산천 부모친척 다 떠나 이스라엘로 갑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어요. 이것이 첫 번 째 결단입니다.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은 놓고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삼아 따르겠다는 겁니다. 모든 기준을 거기 두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도적인 삶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 의지하는 데 무슨 주도적인 삶인가요?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3. 축복자로 도전하라

다음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원칙대로 행동합니다. 가난하다고 돕는 사람 없다고 거기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낮은 일자리도 마다 않고 나섰습니다. 추수하는 데 가서 이삭을 줍는 일입니다. 밀이나 보리단을 거두어야지 그들이 다 거두어간 뒤에 떨어진 이삭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룻의 주도적인 일입니다.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까? 적더라도 무엇인가 소득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가만히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없어요. 또한 일을 해도 원칙을 따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회도 생깁니다. 결국 룻은 그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과 결혼하고 구세주의 조상이 됩니다. 이방여인에서 선택된 백성이 되고 잘 살고 영원히 영광을 받습니다.

룻은 철저하게 신앙의 원칙을 따릅니다. 아무 남자하고나 어울리지 않았어요. 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어요. 시어머니가 가르쳐주는 대로 합니다. 친족 중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훌륭한 사람의 밭에 가서 일을 합니다. 그가 잠들 때 그의 발치에 가서 눕습니다. 부끄러운 짓인가요? 아니요,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회복합니다.

룻에게서 무슨 교훈을 받을 수 있나요? 우리는 이방 사람 가운데 미래가 없는 가운데 하나님 자녀로 선택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 째 신분 상승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높게 잘 되어도 우리의 첫 번 째 단계와도 비교가 안 됩니다. 성경은 말했어요. 불신자의 왕궁에서 천 날 사는 것보다 하나님 전의 문지기로 하루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이제 룻처럼 두 번째 세 번째의 신분 상승을 향해 도전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다음 단계로 가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유익을 주세요. 상황도 만들고 힘도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그 다음 일은 모두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우리는 언제든지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가는 룻 말고 다른 며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룻의 길인가? 오르바의 길인가? 룻은 하나님 백성 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복 받은 백성이 되었고 차츰 최고의 존재가 됩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룻처럼 움직이세요. 좋은 길을 선택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서 어렵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을까? 신학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이 낮추신 이유는 우리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중간에 머물지 말고 주도적으로 일어나세요. 있는 처소마다 하나님 의지하고 적극적으로 일하세요. 예배마다 행사마다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예수의 길을 걸으세요.

QT를 위한 질문

1. 자신이 삶을 주도적으로 사나요, 그 반대인가요?(서/1,2)
2. 사회학자들은 삶을 어떻게 본다고 했지요? (1/1,2)
3. 자기 신분을 빨리 최고로 향상 시키는 방법은?(1/4,5)
4. 기독교는 신자를 외형적이 아니라 어떻게 바꾸나요?(2/3,4)
5. 룻의 선택이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어떤 것이었나요?(2/7,8)
6. 룻처럼 신분을 상승시키려면 어떻게 할까요?(3/3-5)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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