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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기쁨 (빌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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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여행자가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순경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들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신앙인들의 얼굴 표정이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오실때에 여러분의 얼굴을 보셨을것입니다. 우리들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 예쁘고 안예쁘고는 별개입니다. 우리의 인상은 웃는 인상입니까? 우는 인생입니까?여러분 얼굴은 최고의 전도지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기쁨의 기독교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성경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빌립보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삶은 기뻐할 수 없는 정황이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에베소서,골로새서,빌레몬서 4권과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바울이 죄수로서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쓴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 “기쁨“”기뻐하라“는 말을 16회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안에서도 기뻐하였습니다.바울이 누리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요 영광이 넘치는 기쁨입니다.그 기쁨은 조금 기뻐하다가 마는 정도가 아니고 항상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얼굴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삶의 전부로 기뻐하는 완전한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을 기대하는 기쁨도 아니고, 감옥 생활의 만족에서 오는 기쁨도 아니었습니다.생각할 수 없는 곳에서 기뻐하고,상식을 초월하여 기뻐하고,삶을 초월한 그 기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요구요 명령입니다. 기쁨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화약없는 총과 같습니다. 기쁨이 없는 교회당은 음식없는 잔치집과 같습니다. 기쁨이 없는 예배는 제물없는 제사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들중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 앞에는 산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감옥 안에서 누리는 그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오늘 바울의 기쁨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뻐해야 합니까?

1.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이 어디에 가서 항상 내놓는 자신의 명함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바울”이라는 명함입니다.

바울이 쓴 로마서나 고린도전서나 후서나 에베소서나 빌립보서 모든 바울이 쓴 성경에 소개되는 바울의 소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바울입니다.
로마 감옥 안에 있는 죄수의 상황인데도 그의 명함은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바울이 흔들리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그 삶의 비결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기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서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쁨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그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우리가 좋은 영화를 볼때 그 순간 얼마나 눈이 기쁩니까?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들을때 그 순간 얼마나 귀가 기쁩니까?
우리는 이런 기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늘 어떤 분들은 새옷을 사 입고 교회를 오면서 기분이 좋으신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기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우리를 기쁘게 합니까? 우리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 욕망을 결코 만족 시킬 수 없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1:8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결국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기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그런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먹는 것,입는 것,자는 것,보는 것, 육체로 얻어진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얻어진 기쁨이었습니다.
바울 서신에 보면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13절 “그리스도 안에서 “
2:1 “그리스도 안에”
바울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습니다.
바울은 길을 걸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밥을 먹어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복음을 증거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어도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먼저 우리의 신분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그리스도안에 분명히 있는 자입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분 지위 소속으로 인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가면서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사람들을 받을때 무비자로 통과시키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을 보면 보통 선진국들입니다. 그런데 못사는 나라 아직 신뢰하지 못하는 나라는 비자를 발급하여 줍니다. 돈을 내고 비자발급받는 것도 복잡하지만 통관절차도 복잡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직도 우리나라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에 갈때에는 입장이 다릅니다. 성지순례를 갈때에 이집트에 갔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왓다고 하니까 너무 환대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대한민국국민이라고 하는 것에서 자부심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정말 나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참예한 자가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은혜의 반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주신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적인 복들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결코 받을 수 없는 엄청난 복들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우리를 삼아주셨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일꾼 삼아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내가 이런 복을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내가 오늘 이 세상에서 인생을 마친다고 하여도 이 받았고 누렸던 복으로 인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신분과 지위로 인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세상 나라에 속해서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저절로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쁨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교제”입니다. 바울은 감옥안에서 고독 속에서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영이신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찬송하면서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서 그 사랑과 은혜의 주님과 만나고 교제하면서 바울은 내가 누구인지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외적으로 환경적으로 로마의 감옥안에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렵고 인간적으로 외롭습니다. 밤마다 추위가 힘들고 매일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기를 힘썼습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내 인생의 블루 오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 “블루 오션”이라는 말은 “푸른 바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푸른 바다를 보면서 인생을 기회로 여기고 매일 새로운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을 말을 합니다. 이 책의 저자 곽종운이라는 사람은 실업계야간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20대에 서울대학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입니다.그런데 그분이 푸른 바다의 인생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생각의 힘을 믿는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강조하는 키워드가 이것입니다. “It is possible"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강의를 할때마다 사람을 만날때마다 ”당신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인사시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이 자신감이 최고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고의 무기 그것은 기술, 지식,돈이 아니라 바로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 태도는 어떤 태도입니까?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어디에서 이런 태도를 얻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만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 있는 위대한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주님을 무기로 삼고 날마다 믿음으로 주님과 교제하시면서 기쁨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라고 합니다.
여기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 마음에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니시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를 사랑했습니다.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빌립보교인들 때문입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교제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5절에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여기 복음안에서 교제였습니다.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날부터 바울이 본서를 기록하는 그 순간까지 복음 안에서 계속 교제하였습니다. 빌립보교인들과 바울과의 교제는 금방 끓다가 식어버리는 냄비같은 교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교제는 가마솥같이 지속적인 뜨거운의 교제였습니다.그것은 복음을 위한 교제였습니다. 복음을 흥왕하게 하고 복음을 왕성하게 비젼을 위하여 서로가 열정을 갖고 나누는 진리의 교제였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가 기쁨의 교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바울과 빌립교 교인들이 고난중에서도 계속 지속되엇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기뻐하는 큰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7절“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고 합니다.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그복음을 위하여 변증하고 방어하고 확정하는 일이 일어날 때 빌립보교인들도 함깨 교제하면서 그 일에 협력하였습니다. 복음위하여 고난당하는 자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물질과 몸을 버리지 않고 헌신하는 충성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소수가 아니라 “너희가 다” 그일에 협력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에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감옥 안에 있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뻐합니다.
사방이 막혀 있어도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자유롭고 행복한 것입니다.아무리 우리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곳이 바로 감옥인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웨슬레는 “그리스도를 고독한 종교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교제가 없는 교회,교제가 죽은 성도의 신앙은 공동묘지같은 어두움을 가지고 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지속적인 교제가 없다면 결국 우리신앙에 큰 기쁨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12명의 제자들을 택한 이유가 3가지 있는데 복음을 증거하고 귀신을 내어쫓기 위해서 그리고 함께 잇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 있기 위함은 제자들과 교제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교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마음의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
예수님의 심장으로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심장은 어떤 심장일까요? 바로 사랑의 심장이었습니다.따뜻한 사랑의 심장으로 교제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교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가 있을때 진정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크게 두부류의 교제의 그룹이 있습니다.
한부류는 목회자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교회에서부터 선배이신 한분 목사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면서 목회를 나누는 분이 있고 그리고 신대원시절부터 교제하는 동기목사님들이있습니다. 지역에는 저랑 비슷한 연배의 목사님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분들과 일년에 서너번 만나면서 교제를 나눕니다. 얼마전에는 우리 교회에 오셔서 1박 2일동안 같이 목회를 나누면서 교제하였습니다.이번에 서울에 세미나 올라가서 점심시간이 1시간인데 만나서 오셔서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목회를 나누면서 교제를 하였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제가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교제하기도 합니다.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기쁩니다.

다음 한부류는 교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강동교회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장로님들과 만나서 교제하면 기쁩니다. 집사님들과 만나서 교제하고 권사님들과 만나서 교제하면 기쁩니다. 같이 차를 나누고 같이 음식도 나누고 대화하면서 교제하면 너무 기쁩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들을 만나거나 성도들을 만나면 강동교회에 대해서 기쁨의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지금의 교제를 기뻐하면서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교제를 생각하면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에 내가 바울처럼 감옥 안에 갔을때에도 지속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여러분도 한번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할때에 나와 함께 하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같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좋을때는 모든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교제는 어려움이 올 때에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강동교회의 교제가 예수님의 사랑의 심장으로 서로 교제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피차에 마음에 서로가 새긴바되어 항상 삶에 기쁨이 되는 만남의 교회가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기도를 통해 얻어집니다.

9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감옥 안에 있는 바울에게 풍성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기 바울이 기도하는 내용들을 보면 먼저 풍성한 사랑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의 바른 분별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가 의의열매가 풍성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더욱 기쁨의 교회가 되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먼저 저와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 기뻐하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그 수만큼 불완전합니다. 여기에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의 불완전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200명이 모이면 200가지의 불완전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불완전함 때문에 낙심하고 슬퍼하기보다는 기쁨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빌립보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직도 빌립보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 사랑이 부족하고 아직 분별력도 부족하고 아직 의의열매가 부족한 교회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빌립보교회는 사랑의 부족으로 서로 싸우는 집사들 때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그 교회가 더 풍성한 기쁨의 교회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속에서 기쁨의 일들을 만들어가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우리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강동교회를 바라볼때에 우리가 기뻐할 것도 많지만 아직 부족하고 더 회복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물론 최선을 다해서 사역하고 노력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궁극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비판입니까? 욕하는 것입니까?
제가 저희 교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저희 교회를 잘 홍보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또 부족하고 아직도 미숙한 저를 잘 선전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아직도 제가 부족함도 많고 우리 교회가 부족함이 많은 교회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기쁨으로 섬겨주시는 그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교회에 기도의 일꾼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쁨의 일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신령한 기쁨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기쁨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 저희 교회에서 시찰주관으로 연합제직세미나를 갖았습니다.
두분의 외부강사목사님들을 모시고 우리가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좋은 도전과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적으로는 참여하신 분들이 많은 은혜를 받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미나에 오신 분중에 타교단 교회 집사님들이 여러분 오셨습니다. 그중에 어떤 한여집사님과 잠깐 교제를 하면서 제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둘째날 저녁에 오신 강사목사님이 너무 시간이 늦어서 서울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펜션에 초대하여 기쁨으로 방을 내주기 위해서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밤 12시가 넘었는데 자기 교회로 좀 태워다 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날만 특별하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기도에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을 깊이있게는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느낌은 기도하는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말을 하기는 쉽고 비판하기를 쉽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기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좋은 기도의 일꾼들을 부쳐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기도하는 분이 아니고 진정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동역자처럼 든든하고 기쁜 사람들이 없습니다.저는 우리 교회 속에 기도의 일꾼들을 하나님이 더 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비록 현실의 삶은 바울처럼 어렵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기드온의 300용사같은 기도의 용사가 우리 교회속에 많아지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쁨으로 믿음 생활합니다. 우리 교회가 점점 기쁨이 충만한 교회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으로 인한 주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 풍성한 사랑의 교제로 인해서 누리는 기쁨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그리고 날마다 기쁨이 회복되고 기쁨의 일로 역사하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모두 승리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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