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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가지의 마음 (렘 1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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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8절은 시편 1편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이 시편과 마찬가지로 지혜 문학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본문의 저자가 적어도 시편 1편을 읽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쨌든지 간에 이 부분이 예레미야 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신앙 고백이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먼저 5-8절 말씀을 살펴봅시다. 5절 도입부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씀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예레미야라는 인간의 입술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들으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5-8절은 악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날카롭게 대조하는 짧은 시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저주받은 삶이 될 수도 있고 축복받은 삶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반대 되는 두 가지 길을 뚜렷하게 비교함으로서 두 가지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그 마음을 잘못 써서 헛된 것을 의지하는 데서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마음을 바로 써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삶을 두 개의 나무로 비유합니다.

⑴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인생은 도대체 어떤 인생입니까? 우리 다같이 6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사막의 떨기나무는 영어로 'desert shrub'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목을 말합니다. 키가 작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이 나무는 바늘과 같은 잎이 많기 때문에 '벌거벗은 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이와 같이 떨기나무는 물이 없는 사막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메마른 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막에서 자라나는 나무에게 좋은 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비가 오는 일입니다.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나기 위하여 적당한 수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사막의 떨기나무는 이와 같은 물을 거의 얻지 못합니다. 제 때에 물을 공급받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리 만무합니다.

저주받은 사람의 운명도 꼭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떨기나무가 목말라 하는 물도 얻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하듯이 기쁘고 좋은 일을 보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②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게 됩니다.
사막의 떨기나무가 메마르고 삭막한 땅에 살 듯이 저주받은 사람의 운명도 역시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첫째로, 사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 NRSV를 보면 'mere mortals,' 즉 '단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믿고 의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mortal'의 반대말은 'immortal,' 즉 '죽지 않는 영원자,' 하나님이십니다. 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을 의지하는데 불행의 씨앗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기 때문입니다.
혈육은 말 그대로 'flesh,' 즉 우리의 몸을 말합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을 피난처로 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흔히 내 뒤에는 든든한 '빽'이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는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사람을 믿고 혈육으로 권력을 삼는 사람'은 한마디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버리고 보이는 사람들과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지적할 때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다 왕국은 바벨론 제국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주변의 강국들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 본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있어 보이는 강국들에 기대려고 했던 것입니다. 앗시리아나 애굽과 같은 강국들이 혹시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의존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 31: 3은 이와 같이 사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국가적인 위기를 당해서 애굽과 같은 강대국들을 의지하다가 도리어 배신을 당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할 때 우리의 운명은 떨기나무와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아도 사람일뿐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반석이요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⑵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사막 위에 앙상하게 모습만 보이는 떨기나무와 달리 싱싱한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8절에 있는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또 하나의 길이 있는데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인생입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는 도대체 누구를 말합니까? 7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요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한 분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물가에 심기는 나무는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세 가지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수원(水源)에 깊이 내려있기 때문에 가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중동의 사막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비가 잘 오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합니다. 불볕더위가 계속될 때 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불볕더위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가 물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뿌리를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서 불볕더위와 같은 환란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 뿌리는 수원에 가 있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근원을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떤 인생의 위기와 시련도 두려움 없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② 그 잎이 청청하게 됩니다. 
청청(靑靑)하다는 말은 '푸르고 또 푸르러서' 싱싱하다는 말씀입니다. 앙상하고 메마른 떨기나무와 얼마나 좋은 대조가 됩니까? 뿌리를 강변에 내린 나무는 사시사철 푸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푸르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뿌리를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내리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 싱싱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앙상하고 메마른 모습으로 살아가신다면 혹시 뿌리를 어디에 내렸는지 살펴보십시오! 혹시 강변의 수원이 아닌 돌짝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아닌 사람과 혈육에 의존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릴 때에만 청청해질 수 있습니다!

③ 가무는 해에도 걱정 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무는 해에 나무는 열매를 그치게 됩니다. 그래서 과수원 주인들은 가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뿌리를 강변에 뻗친 나무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수원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그치지 않고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까?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내리십시오. 그리하면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결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혹시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하고 침체에 빠져 계십니까?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지 않고 세상의 혈육에 의지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계속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⑶ 저주와 축복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이와 같이 두 가지 뚜렷이 대비되는 인생길을 말씀한 뒤 9-11절에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마음은 거짓되고 부패해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9절을 보세요. "만물보다 거짓 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인간의 마음이 모든 거짓과 부패의 근원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자연 상태의 마음은 특히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거짓과 죄악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마음으로부터 오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렘 4: 4은 스스로 할례를 받아 마음의 가죽을 베라고 말씀합니다. 신 10: 16도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육신의 할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부패하면 그 할례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행위가 이와 같이 마음에 뿌리를 박고 있는 까닭에 잠 4: 23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옳습니다. 저주와 축복은 전적으로 우리 마음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밭을 악하게 갈면 떨기나무가 나옵니다. 그러나 마음밭을 선하게 갈면 잎이 청청하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나무가 나옵니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깊고 신비해서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 한 분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본문 10절을 다같이 봅시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우리는 남을 속이고 우리 자신을 속일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을 훤히 꿰뚫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위에 따라 벌을 주시기도 하고 상을 주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 139: 7-10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폐와 간을 보듯이 훤히 헤아리고 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③ 그러므로 어리석고 거짓된 행위를 그쳐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훤히 아시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선악이 모두 마음에 달려 있음을 아시고 마음에 따라 벌을 주시기도 하고 상을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분, 11절 말씀을 다같이 보세요.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자고새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추라기처럼 생긴 새라고 합니다. 자고새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어 봤자 때가 되면 알에서 나온 그 새끼들이 다 달아납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한창 때가 되면 그 많던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년이 되면 필경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1절 말씀은 마음을 잘못 써서 생긴 결과의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든 것입니다. 마음을 악하게 써서 재물을 많이 모았다고 해봅시다. 우리의 마음을 폐간(肺肝) 보듯이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불의를 다 아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그 운명이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되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한국에서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아서 많은 국회 의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한 때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도 검찰에 구속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국회 의원에 당선되어서 국민들이 잘 아는 분들이 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분은 목사 가정에서 자라난 기독교 신자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 부패해서 불의한 자금을 받았습니다. 진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법 자금을 꿀꺽 꿀꺽 받을 때는 좋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해 보였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자고새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었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바로 써서 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아니, 바르게 사는 동안 고난을 받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보응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되는 길이 있습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같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걷는 가는 여러분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제 때에 잡풀을 뽑아주고 물을 주고 정성스럽게 관리하지 않으면 엉망이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모아 날마다 깨끗케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마음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축복하실만한 성도님들이 바랍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잎이 언제나 푸르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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