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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에 담은 예수님의 뜻 (마 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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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뜻이 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여전히 죄의 성품을 지닌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부패성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자신의 환경을 더 의식하게 합니다. 그의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으로 채워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점령당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며, 모든 생각이 그 환경에 지배당합니다. 환경과 상대하며 나타나는 모든 정황과 결과들을 마음에 품고 다닙니다. 그래서 기회만 주어지면 그 마음에 채워진 환경들을 입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자신의 환경에 지배당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자마자 일방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토로합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세상 환경 속에 알리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하는 내용에는 그러한 우리의 존재상태를 가장 잘 반영합니다. 즉 기도의 방법과 내용은 우리의 신앙상태를 잘 나타냅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은 우리의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중심 부분에서 이 문제를 다루십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새로운 법과 율법주의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의 과거의 법의 차이를 알려주십니다. 기도의 방법과 내용의 차이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맞이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본질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즉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마 6:5-6에서 “기도할 때 외식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은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 외식하는 것이지만 새 사람은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행하는 기도 방법과 내용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마 6:7-8에서 “중언부언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옛 사람은 기도의 양과 열심에 관심을 두고 중언부언 하지만 새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차이를 알려주기 위하여 마 6:9-13에서 직접 주기도문의 기도의 예를 말씀하셨습니다.

마 6:9의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잘못된 기도의 책망임과 동시에 정상적인 기도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마 6:8에 등장하는 “저희”에 해당하는 잘못된 기도를 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마 6:9에 등장하는 “너희”라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에 합당한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따라가라는 명령입니다. “너희”들은 “저희”들이 행하는 기도 속에 나타나는 외식과 중언부언의 신앙 형태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 속에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즉 마태복음에서의 주기도문은 기도하는 것을 배워서 기도하지만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도의 본을 따라가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깨닫고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산상수훈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1:1-4의 주기도문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서 기도하기를 배워서 용기를 내어 기도해야 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었지만 마 6:9-13의 주기도문은 잘못된 삶을 기도로 나타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예를 통한 가르침 속에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뜻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형태를 돌아보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저희”들의 외식하는 기도 속에 나타나는 외식하는 삶을 물리치게 하며 “저희”들의 자기욕심에 갇혀버린 중언부언의 삶을 물리치게 합니다. 오직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2.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운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마음을 환경에 빼앗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환경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하여 환경 속에서 자신의 승리를 얻으려고 하나님께 외식하는 기도로 나갑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나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기도제목을 들고 중언부언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갑니다.

주기도문의 기도의 예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내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만이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따라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주기도문을 통한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의 진정한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모든 환경과 욕심을 내어버리도록 요구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기도하러 나아갈 때 마음에 채워야 할 것은 자신의 환경이나 욕심이 아닙니다. 그 환경과 욕심을 향해 나타내 주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뜻으로 채워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할 때 그 마음과 뜻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잠잠히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가기 전까지 이미 자신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아내어 정리하고, 그 마음과 뜻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온전한 자세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의 가르침을 통한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알기 위하여 마 6:9-15의 말씀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지금은 주기도문 전반에 대한 이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 전반에 걸쳐서 기도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며, 기도의 삶을 통한 우리의 온전한 응답을 요구하십니다. 그 요구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성취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을 향한 요구입니다.

주기도문은 서언과 기원과 결론의 세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크게는 하나님께 대해서 드리는 전반부의 세 가지의 소원과 인간들에 대한 후반부의 세 가지 소원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소원이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순서 역시 자기의 성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구하는 기도의 순서입니다. 자신의 필요와 소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데 알맞도록 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서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언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성적인 선하심에 대한 신뢰감과 경외심을 품고, 자녀로서의 태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여러 자녀 중의 한 명으로서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기도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자기중심을 뒤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중 첫째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의 사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섭리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지도하시고 처리하여 주실 것을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중 둘째 소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으로서,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즉 둘째 소원은 첫째 소원이 이루어지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공의와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땅 위에서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통치권을 포기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중 셋째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질 때 둘째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그러나 땅에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갑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욕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복종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처음의 세 가지 소원 모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의 실현을 위한 것입니다.

3.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처음의 세 가지 소원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 이하에 이어지는 나머지 세 가지 소원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하는 기도입니다. 내용적으로는 우리들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지만,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욕심을 채우게 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원하는 기도입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기도인 반면에 나중 세 가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입니다.

결국 나중의 세 가지 소원 역시 우리에게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기를 소원하는 것으로서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 위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중 첫째이며 전체적으로 넷째 소원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주로 우리 자신을 위해 구하는 기도로 인식합니다. 우리들의 의식주를 비롯해서 지상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마음껏 구하는 기도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독립적인 기도가 아니라 세 번째 소원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같은 자기중심적인 욕심과 소원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셋째 소원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소원의 기도와 둘째 소원의 기도, 그리고 셋째 소원의 기도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 없이는 드릴 수 없는 기도가 넷째 소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앞의 세 가지 소원의 기도와 거리가 먼 넷째 소원의 기도는 외식적인 기도이며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우리들의 소원을 구하는 다섯 번째 소원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원죄의 용서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여전히 죄의 성품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 자범죄의 용서를 구할 때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원죄의 사함을 받은 은혜 입은 자임을 기억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죄 사함 받은 자로서 은혜에 빚진 자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갔는지 살펴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며 화평을 이루는 제자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수시로 범하는 자범죄의 용서함 받고 점진적인 성화를 이루어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이러한 사죄의 기도는 계속 드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열심이 없이는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우리들의 소원을 구하는 여섯 번째 소원의 마지막 기도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하게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거나, 시험을 당할 때에 우리를 보호하여 구원하여 달라는 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성취되어 갈 때, 그 역사가 각종 시험과 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방해받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까지도 “나의 시험 당함”이 아닌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우리로 인한 공동체의 다양한 영향과 결과를 생각하고 깨닫습니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며 기도합니다. 결국 주기도문의 방법과 내용을 따라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아옵나이다. 아멘”이라는 결론으로 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즉 주기도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더욱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의 기도의 본을 가르치신 후에 즉시 이어서 마 6:14-15에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마 6:12의 다섯 번째 소원 기도에 대한 해설로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의 사역 대상인 이 땅 영혼들에 대한 우리의 용서와 사랑을 통한 회복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 담긴 예수님의 뜻은 세상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그 마음과 뜻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나 오늘날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외식하며, 중언부언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역 대상인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사역에 동행하는 방법과 내용으로 기도하도록 요청하십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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