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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봉헌할까? (고후 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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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2절에 “연보(捐補)”라는 말이 나옵니다. 
연보의 원래 뜻은  ‘자기의 재물을 내어 다른 사람을 도와 줌’ 이런 뜻입니다.
이 연보라는 말은 나중에는 교회에서 예배가 있을 때마다 신자들이 내는 돈이라는 뜻으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연보라는 말과 함께  헌금이라는 말이 점점 더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2002년에 감리교회에서 「새 예배서」를 펴냈습니다.
「새 예배서」는 예배와 예문을 시대에 맞게 수정보완 한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성찬예식, 결혼예배, 장례예배 같은 것들은 모두 이 「새 예배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새 예배서」에서는 교회에서 많이 쓰는 용어들 가운데 몇 가지를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는 ‘찬양대’로, ‘주기도문’은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또는 ‘주님의 기도’ 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꾸라는 이유를 보면 타당한 것들입니다.
바꾸라고 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헌금’ ‘헌금 기도’입니다.
‘헌금 또는 헌금 기도는 봉헌과 봉헌 기도로 통일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오늘 저는 연보나 헌금이라는 말 대신에 봉헌이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시절, 글라우디오(Glaudius)라는 황제가 로마를 다스리고 있을 때 심한 기근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다른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을 돕기 위해 힘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도 이 일에 동참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의 내용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이와 같이 특수한 경우,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봉헌생활 전체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봉헌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5절 끝부분에는 “참 연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 참 연보는 아까 설명해드린 것에 따르면 ‘참 봉헌’이 되겠는데 참 봉헌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봉헌할 수 있는 것을 은혜로 알고 해야 합니다.

1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알리노니

“마게도냐 교회들”은 그리스 북부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를 말합니다.
이 교회들이 어려움에 빠진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힘써 봉헌했습니다.
이렇게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봉헌할 수 있었던 것을 바울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세요.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6절과 7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여기 나오는 은혜라는 말에는 ‘특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나오는 “연보”라는 말에는 ‘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9장 5절을 보세요.
“연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다 앞에 각주 번호 2)가 있습니다.
본문 밑에서 2)번을 보면 “헬,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헬라말로 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연보라는 말은 헬라어 ‘율로기아(εύλογια)를 번역한 것인데 사실 ’율로기아‘는 복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9장 6절을 보세요.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하였는데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앞에도 각주 번호가 있습니다.
본문 밑에서 찾아보면 “헬, 복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복으로 심는 자는 복으로 거둔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봉헌은 은혜요, 특권이요, 복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의 근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9절 앞부분을 보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셨습니다.
우리의 봉헌은 그것에 대한 대가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대가를 원하셨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또 우리가 아무리 많은 봉헌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구원에 대한 대가의 만분의 일도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갚을 길이 없는 은혜를 값없이 베푸신 것을 본받자는 것 가운데 하나가 봉헌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주는 자도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심야합심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막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시계를 보니까 새벽 한 시 반입니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일까? 틀림없이 초상났다는 전화일 것이다. 누구일까?’하면서 받았습니다.
초상을 알리는 전화가 아니고 목양교회 출신으로 미국에 가서 목회하고 있는 젊은 교역자 한 분의 전화입니다. 장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고 기뻐서 알리는 전화입니다.
한국감리교의 준회원 목사를 미국 감리교에서는 집사 목사라고 부르고, 정회원 목사를 장로 목사라고 부릅니다.  집사 목사에서 장로 목사가 되는 과정이 엄합니다.
그리고 장로 목사가 되면 다시 안수식을 합니다. 
그 목사님은 울먹이는 소리로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다음에는 목양교회의 은혜입니다.’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의 언어습관인지, 이 경우에 ‘은혜’라는 말이 합당해서 여겨져서 그런지 ‘은혜’라는 말을 열 번쯤 했습니다.
그 시간에 전화를 한 것으로 보아 그 목사님은 아마도 장로 목사 안수 받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기뻐서 제일 먼저 저에게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이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목양교회에서 배운 것, 교회의 분위기,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격려가 되고, 힘이 되고 자기 목회의 기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에게 이메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자다가 전화를 받아 제대로 응대를 하지 못했는데 장로목사 안수를 축하한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그렇게 된 것이 이 교회의 은혜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교회의 긍정적인 면들을 목회생활에 잘 살리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받은 은혜를 주는 은혜로 전환시키라는 것입니다.

은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받는 은혜와 주는 은혜입니다.
은혜 받기 원하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하고, 그런 것은 받는 은혜입니다.
내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은 주는 은혜입니다.
받는 은혜는 어린이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받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주는 은혜는 어른 은혜입니다. 봉헌은 어른 은혜, 성숙한 은혜입니다.

봉헌이 은혜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기쁨으로 봉헌할 수 있게 됩니다.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힘써 봉헌하게 됩니다.
2절을 보세요.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지방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사람들로부터 심한 압제를 받았고 약탈을 당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특히 이 지역의 지하자원물들을 많이 약탈하였다고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형편 가운데에서도 힘써 봉헌했습니다.
기쁨으로 봉헌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특히 칭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2장 44절에서 가난한 혼자 사는 여인이 힘써 봉헌하는 것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봉헌은 은혜요, 특권이요, 복입니다.
이것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힘써 봉헌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둘째, 봉헌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3절과 4절을 보세요.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마게도냐교회의 성도들은 억지로 봉헌하지 않았습니다.
자원하여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에게 ‘우리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돕기 위해 봉헌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간청했습니다.
그냥 간청한 것이 아니라 간절히 구했습니다.
자원봉사 신청서를 내는데 ‘내가 꼭 자원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에다가 사인펜으로 쓰고 밑줄을 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그런 마음, 그런 자세로 봉헌을 했습니다.

여러분, 봉헌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9장 7절을 보세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아직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으면  봉헌상에 봉헌봉투를 넣을 때마다 ‘하나님, 내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언제인가부터 자신도 모르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처럼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자원하여 봉헌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세요. 나는 명령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9절을 보세요.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절 앞부분을 보세요.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그저 나는 나의 뜻만 알리니 결정은 스스로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봉헌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여자속회공과를 보면 말씀을 공부하는 순서 앞에 ‘함께 생각하기’가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해서 자발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퍽 유익한 순서라고 여겨집니다.
자원해서 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박물관 같은 곳에 가보면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도 하고 설명도 해 주는데 유급직원들보다 더 성실하게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느 자원봉사자는 안내를 더 잘 하기 위해 박물관과 관련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30여 년 전에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4년 반 동안 했습니다.
그 때 제일 부담이 되는 것이 수업료를 독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은 돌려보내는 일도 있었지요.
지금은 교사들에게 그런 부담이 적을 것으로 압니다.
몇 번 독촉하다가 체질에 너무 안 맞는 것 같아 아예 독촉을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학교에서 게시판에  각반 수업료 납입상황을 붙입니다.
몇 학년 몇 반, 담임교사 누구, 오늘까지 몇 명 납부, 막대 그라프로 그려놓습니다.
60년대, 70년대에 중고등학교 학생생활을 한 분들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초기에는 제가 담임하고 있는 반이 맡아 놓고 꼴찌입니다.
교감 선생님과 서무주임은 저를 보면 눈을 흘기고 어떤 때는 헛기침도 합니다.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얼마 계속되면 담임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야, 우리 선생님 불쌍하다. 우리 힘쓰자!’
학생들이 자원해서 수업료를 힘써 내서 나중에는 그라프가 쑥 올라갑니다.
그 자원해서 내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1등을 한 기억은 없지만 2등을 한 기억은 몇 번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찬송은 그 뜻을 알고 불러야 마음을 다한 찬양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부른 찬송 356장 “성자의 귀한 몸” 이 찬송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이 찬송의 뜻을 생각하고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이 문제의 답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찾을 때 우리는 자원하여 힘써 봉헌하게 됩니다. 

5절 중간을 보세요.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주께 드리자’ 하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습니다.
아까 「새 예배서」에서 ‘헌금’이라는 말 대신에 ‘봉헌’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새 예배서」에서는 봉헌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봉헌은 단순히 물질만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참된 봉헌은 시간, 물질, 생명,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산 제사의 의미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우리는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지만 목양교회 성도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는 일에 참 모범적입니다.
더욱 모범적이 되기 바랍니다.

셋째, 봉헌은 교회의 중요한 요소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7절을 다시 보세요.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 때 박해가 심한 가운데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고린도와 같이 타락한 환경 가운데에서 엄격한 신앙윤리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을 가지고는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말과 지식이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교리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간절함, 사랑, 여러 가지가 풍성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풍성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은사가 제일 큰 것이냐?‘ 하는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그 위에 봉헌의 은사도 풍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범적인 사례로 등장하고 있는 마게도냐 교회들, 구체적으로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 사도행전 16장과 17절(행16: 11~17: 14)에 등장하고 있는 이 교회들은 여러 면에서 칭찬을 듣는 교회들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바울을 섬기고 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환난 가운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사도와 주를 본받은 교회였습니다.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어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나는 교회였습니다.
베뢰아교회, 마음이 너그러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교회였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오픈 마인드’를 가진 교회였습니다.
예전 성경은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그들은 봉헌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것들은 앞서면서 봉헌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면 실천이 약한 교회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로마서 15장 26절에서도 마게도냐 교회의 이와 같은 봉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그러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그것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양교회도 여러 가지로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 교회입니다.

지난 주일 남선교회 대회에 강사로 온 분은 저희 교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제가 그 강사님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메일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나 그 내용을 보고서 담임목사가 아주 젊은 줄로 알았답니다.
그런데 제가 나와 영접하니까 처음에는 이 교회 원로목사인 줄 알았답니다.
그 분이 남선교회 대회가 진행되는 모습이나 건물, 그밖의 몇 가지를 보고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지난 주간에 여선교회대회도 했는데 여선교회대회 강사는 감리교 여선교회 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전국 교회의 실정을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저희 교회 칭찬을 그렇게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안에 있으니까 목양교회가 얼마나 좋은 줄을 모를 것입니다.’ 하는 소리를 여러 번 하였지요.

아까 한밤중에 전화를 했다는 미국에 계신 이 교회 출신 목사님은 미국 볼티모어 연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 말이 목사가 되기 위한 심사를 받으면서 목양교회가 자기에게 준 영향을 너무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그 연회 목사님들은 목양교회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장로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 100쪽 정도의 논문을 냈는데 매 페이지에 목양교회의 이름이 거의 다 들어가다시피 했답니다.
오는 7월에 세계감리교대회가 한국에서 열려 미국 감리교 대표들이 한국에 많이 오는데 그 연회 대표들은 목양교회부터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 듣고 어제  미국유학 경험이 있는 임형준 목사님에게 그때 그 미국 대표들을 잘 안내하고 통역할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모두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들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모양을 갖추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모저모, 좋은 이야기를 들고 있는 목양교회, 마게도냐교회들 처럼 봉헌에도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해서 첫 번째 주일은 신년결단예배를 드렸고, 두 번째 주일은 임원임명예배를 드렸고 지난 주일에는 찬양대원 임명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봉헌서약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년결단예배 때에는 성찬예식을 했고 임원임명예배, 찬양대원 임명예배 때는 문답도 하고
선서도 했습니다.
오늘 봉헌서약예배에는 그런 순서가 없습니다.
전에는 봉헌서약서를 내게 했는데 없앴습니다.
그 대신, 봉헌은 은혜요, 특권이요, 복이라는 사실, 봉헌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봉헌은 교회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봉헌에 힘쓰겠습니다.’ 혼자서 주님께 서약하시기 바랍니다.

올해 저희 교회는 봉헌에 특별히 힘써야 합니다.
이제 헌당을 위한 행진이 시작되었는데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되어야 헌당할 수 있습니다.
채우기와 갚기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건축헌금, 특별히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빨리 갚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9절과 10절에서 고린도교회가 일 년 전에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결정한 것을 성취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약정한 것을 아직 다 하지 못한 분들, 이 권면을 나에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대출금 상환 진행을 보아서 필요하면 구체적인 방침을 마련하려고 합니다만 건축헌금을 약정하지 않은 분들, 자원해서 약정하고 봉헌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십일조헌금, 모두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일헌금, 그밖의 여러 가지 봉헌에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지금 경상비 지출을 될 수 있는 대로 절약하면서 융자금 상환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또 헌당을 위해 힘쓰면서 교회가 해야 할 전도, 교육, 섬김이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절기 헌금에도 힘쓰시기 바랍니다.
절기가 되면 주보에 ‘이번 절기헌금 예산은 얼마’ 간략하게 발표됩니다.
이것이 초과되는 일이 별로 없다가 최근에 와서 초과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절기 헌금이 예산을 초과하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몇몇 절기 헌금은 사용할 곳이 정해져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 헌금은 모두 장학금으로 쓰입니다.
사순절 금식헌금은 모두 타문화권선교에 쓰입니다.
재작년부터 중국 라이오닝성의 한 교회에서 건축을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는데 보내지 못했습니다. 중국교회의 사정들은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편인데 이 교회는 꼭 도와야 할 교회입니다.
성탄헌금은 전액 나눔에 쓰입니다.

절기헌금 가운데 추수감사헌금은 우리가 좀 더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추수감사헌금은 일 년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중요한 헌금입니다.
추수감사헌금을 위해 일 년 적금을 드는 사례도 있습니다.
추수감사헌금 집계를 볼 때마다 ‘성도들이 다른 봉헌은 정성껏 하면서 추수감사헌금은 왜 이렇게 약할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해외선교헌금도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가 타문화권선교에 여러 모양으로 힘쓰고 있는 것은 누구나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해외선교헌금이 적자일 때가 많습니다.
작년에 몇몇 성도가 해외선교에 대해 많은 은혜를 받아 특별한 헌금을 했음에도 적자로 마감되었습니다.
올해는 1월부터 적자입니다.
올해는 러시아에 파송한 선교사 가정의 생활비를 40% 가까이 올렸습니다.
러시아의 물가와 생활수준이 예전과 달라졌고 활동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처음 이 교회에 오시거나 오신지 얼마 안 된 분들, ‘이거, 이 교회는 봉헌을 강조하는 교회로구나!’ 하면서 부담을 느끼실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이 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봉헌하는 일에 큰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모처럼 마음먹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여러 주일째 오시면서 등록 안하고 계시는 분들, 결단을 내려 오늘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손님 상태가 오래 계속되는 것 유익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등록해도 좋은 교회입니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서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봉헌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일어나는 순서들이 있습니다.
언제 일어납니까?
세 번 일어납니다. 시작 부분에서 일어나고, 봉헌순서 때 일어나고, 끝부분에서 일어납니다. 원칙적으로는 성경을 봉독할 때도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일어납니까?
하나님께 특별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순서들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봉헌순서는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의 언어습관입니다.
하나는 그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봉헌은 그 사람의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봉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봉헌은 은혜요, 특권이요, 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봉헌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봉헌은 교회의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면서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봉헌에 힘써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귀한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바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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