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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출 3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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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입> 지난시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이라고 하였나? 바로 “회개의 과정”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지시하신 땅에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는 결연의 의지를 나타내셨을때에 이스라엘은 이로 인해 슬퍼하며, 황송한 마음으로 회개하였다.

이런 회개의 겸손한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마음이 녹아내리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이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 모세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은 드디어 당신의 원계획인 진노와 멸망을 접으시고, 다시금 이스라엘에게 회복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장면을 볼수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할수있는 최고의 기도의 영성/능력은 바로 “중보기도”에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수 있다.

오늘 본문 34장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가장 먼저 취하신 행동은 “새 언약의 돌판”을 만드는 것이다.
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의 관계를 재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언약관계를 상징하는 돌판을 새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의 돌판을 만드는것은 단지 하나님의 수고/노력으로만 되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고/노력도 동반함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는 것입니다.

1. 회복하는데는 항상 노력/헌신이 따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첫 번째 요인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하나님은 대노하셨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모세의 실수/과오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는 인간 모세의 연약함이라 하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언약의 돌판을 홧김(?) 집어던져 버림으로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을 초래하였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면 결국 후회한다!!!)
32장 19절에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어찌 “그 온유함이 지면의 어떤 사람들보다 승하니라”로 칭송되었던 모세가 큰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엄청난 과오를 져지른다 말인가?
그러나, 이 장면에서 우리는 모세탓으로만 할 수가 없다. 얼마나 화가 나고, 속이 상했으면, 40일동안 수고한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아픔을 참지못하고 분노하였을까? 라는 인간적인 연면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수한 것은 실수한것이었다.

<예 증 - 합성교회 매년 여선교회 1일 야유회를 가는데, 작년에 간 관광지에서 한 집사님께서 그만 길을 잃어버렸는지, 노시는데 열중했는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서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하지 못해 전체일정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이 얼마나 죄송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 분은 워낙 성격이 걸걸하셔서 그런지, 자신을 찾으러 오지않았다고 도리어 역정을 내면서 욕을 해대어다고 합니다. 다들 깜짝 놀라서, 누가 잘못을 했는데, 도리어 역정을 내느냐?고 하면서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나중에 노를 삭이고, 제정신이 들고보니, 자신의 한 행동이 너무나 후회가 되어서, 올해에는 청남대로 야유회를 떠났는데, 그 잘노시는 집사님이 얼씬도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만큼 순간적인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결국 큰 후회를 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도 회복의 기회를 주셨지만, 대노하여서 과오를 범한 모세에게도 회복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은 “직접 돌판을 새겨서 만드는 작업”이었다.

상상해보라!!! 제 아무리 돌깍는데 기술자라 하더라도, 돌판에 십계명의 글을 새기는 것은 엄청난 수고와 헌신이 필요한 부분임을 감안할 때, 모세에게 두 돌판을 새기는것은 엄청난 수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회복하는데는 항상 수고/헌신이 동반한다”는 것을 말이다.

<예 증> 쌀찌는 것이 어렵습니까? 쌀빼는것(다이어트)가 어렵습니까? 다들 동의하실것입니다. 찌는것은 쉬운데, 빼는것(원래의 날씬한 몸매)이 훨씬 힘들다는것을 다들 공감하실것입니다.

어저께, 저희 집사람이 막 한탄을 하는것입니다. 셋째 건우를 낳고 난후에, 건우에게 양질의 젖을 먹일려고 저희 집사람은 지금 사명을 가지고 먹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하루 5끼(?) 정도는 먹는것 같습니다. 그러니, 집에서 애보고 막 먹어대니, 이제 야들야들한 집사람의 허리도 배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혜진이때까지는 출산이후에도 예전에 입던 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지금은 허리에 꽉 배겨서, 도저히 바지가 맞질 않다고 하소연 하는것입니다. 45Kg밖에 안되었던 집사람도 회복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 증> 바로, “십자가 사건이 회복의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셨던 십자가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시고, 깨어진 관계를 재회복하기 위해 하나님편에서 노력하시고, 헌신하셨던 모습인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절)

그런데, 여기서 또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수 있는것이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시간대”입니다.
그것은 바로 “새벽”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판을 깍아 만들라고 하신 시간이 바로 새벽이며, 또한 관계회복의 시간도 새벽입니다.
2절에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보이되...
4절에도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이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성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창조와 회복의 역사시간대는 새벽”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예수님에게도 말입니다.

<심 화> 감리교회의 신앙적 특징중에 손꼽히는 전통이 “바로 새벽기도회”전통입니다. 원래 종교개혁자였던 마틴루터는 새벽기도회를 하였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영성훈련 차원으로만 남았지, 교단적인 영성훈련으로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웨슬리안(감리교도)들은 창시자 죤웨슬리로부터, 신성구락부 운동을 거쳐, 모든 감리교회 목회자/신도들은 처음부터 새벽기도회를 생활화하였습니다. 감리교회를 메도디스트(규칙주의자)라고 하는데, 이 어원은 “감리교도들은 매일 새벽 규칙적으로 성경묵상/기도회를 함에서 유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장로교나 다른 교파에서 좋은 신앙적 전통으로 영입하게 된것입니다.

<적 용>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어머니들의 새벽기도 회복/부흥”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남편들은 하루종일 바깥일을 하느라고, 집에 들어올때는 거의 파김치(?)가 되어있습니다. 내일 해야할일들로 온 정신과 육신이 피곤해 있습니다. 물론, 가사일도 너무나 중요하고, 힘든 일이지만, 바깥일하는 남편들의 수고를 생각한다면, 가정에서 어머니들만이라도 새벽을 깨워, 나라와 민족, 교회와 사명,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 새벽을 깨워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즘 타교회를 섬기고 있는 성도님들의 새벽기도 참석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반면에, 용호교회 성도님들의 새벽기도 참석율은 줄어들고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회복하는데는 노력과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새벽일찍이 노동/수고의 댓가로 돌판을 깍아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야합니다. (저는 매일 새벽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푹자라”는 마귀의 소리에 귀기울일것인가? “어서 일어나라”는 성령의 소리에 귀길울일것인가?

2. 회복하는데는 순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10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시금 언약의 갱신사건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앞에 행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11절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백성들로서 금해야 할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부터 17절까지는 내용의 핵심은 1)이방인들과 언약을 세우지 말것이며 2) 우상의 헐고, 깨뜨려 버릴것이며 3)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할 것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음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될, 금지강령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될, 순종해야될 사항들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도 전> 지금 언약을 체결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의 모습들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애굽을 떠나 정처없이 광야에서 유랑하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 광야의 거민들을 만나게 될지, 그래서 전쟁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또한,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도 이미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 히위 족속/ 브리스, 여부스 족속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입니다.
이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이 화친을 목적으로 언약을 맺을수도 있습니다. 또한, 정략적 결혼/통혼등을 해야할 상황이 있을수도 있고, 원치않는 문화적 흡수(우상을 인정/우상제사 인정)를 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요청은 “이런 모든 것들을 금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적 용> 믿음을 가진자로서 세상살이 하는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선양양심을 가진자로서 탈법이니 범법을 하지않고 직장생활/사업하는것이 쉽지만 않습니다. 때로는 영업을 하다가 세상인들이 요구하는 접대문화나 뒷돈문화 때문에 우리는 힘들어 할수 있습니다. 또한, 직장에서 노조활동등이 요구될때에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갈등이 힘들게 할수도 있습니다. 집안이 아직 기독교로 개종되지 못한 상황에서 “믿음의 순결과 집안의 화평”을 위해 우리를 넘어야할 산과 건너야할 강은 아직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요구되는 주일잔업의 요구들과 가정의 생계를 꾸리기도 힘든데 “온전한 주일성수의 요구와 십일조와 절기/감사예물”등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하나님께서는 단 한번도 당신의 생각/입장을 번복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환경에 지배를 받거나,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미/아비를 절대적으로 의존하는것처럼, 세상의 환경/위치등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때론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아픔이 되고, 결국 죽음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예 증> 어저께, 현진이, 혜진이를 재우기 전에, 어린이 성경동화책을 읽어주었는데, 말씀의 내용이 다니엘이었습니다. 저는 현진이에게 성경동화책의 내용을 다 읽어준 후에 물어보았습니다. “현진아!!! 다니엘이 왜/무엇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어지?”
현진이는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왕에게 절하지않고 하나님께만 기도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순간적으로 벼락을 맞은듯한 거룩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 믿음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구나라는 도전과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1장 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결 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뜻을 정하는 의지/결단”이 필요합니다.
나는 비록 세상적으로는 출세/성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은 세상/마귀에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살리라”는 거룩한 신앙말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필사각오의 자세를 가질때, 하나님께서 분명 도우실것입니다. 결국 의의 최후 승리는 끝까지 변절하지않는 믿음을 가진자의 것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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