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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 (요 1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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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 (요16:7-15)

(요약) 

실족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곁에서 보호해 주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하나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 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은 먼저 우리와 동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데 그것이 곧 영생이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려고 구원의 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 되신 아버지와 예수님을 경험케 하시고 그 말씀이 실상이 되게 적용하시며 성경의 진리 역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게 하신다. 

(설교)

이 시간에 [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면 실족일 것입니다. 가령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실족하여 떨어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육신의 실족도 실족이지만 신앙의 실족은 더욱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6-8)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실족이 얼마나 큰 것이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무슨 일 있다고 함부로 하나님 안 믿어 그런 소리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진실로 감사한 것은 우리 주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결코 실족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말씀이 있지요. 시37:24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어떤 분이 당뇨의 합병증으로 발이 괴사상태에 오자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구나 하면서 자살을 결심했지만 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욱 붙드셔서 당뇨병을 이기도록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8:35-37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 곁에 와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 온전함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령님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실까요?

1. 우리와 동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요14:16-17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여기 한번 성도를 찾아온 성령님은 절대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울에게서 보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은사로 찾아오셨을 때는 떠나실 수 있지만 생명으로 오실 때는 결코 떠나실 수 없습니다. 사람들도 자식이 태어나면 아직 2키로 3키로도 안 되는 핏덩이도 자식이라고 병들면 온갖 비용을 아깝지 않게 여기지 않습니까? 한 번 자녀로 나면 예쁘든 밉든 잘하든 못하든 그 입장은 불변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성도를 성전 삼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렇게 찾아오셔서 성도에게 믿음 주셔서 거듭 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겔36:26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일어날 일들을 에스겔을 통해서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37장의 여호와의 군대의 환상입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는데 그 환상은 에스골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였습니다. 골짜기에 뼈가 심히 많은데 아주 말라 있었습니다. 이 골짜기의 뼈는 바로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마른 뼈가 소생함을 얻습니다. 주님이 뼈들에게 명하시자 생기가 들어가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나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됩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흥을 가리킨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러분이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능력 있는 선한 군대가 됩니다. 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보혜사 성령님께서 구원의 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요16:8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성령님의 3대 책망이 나오는데 이 책망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책망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책망이란 우리 안에서 가슴 치며 회개케 하시는 그 역사를 그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임하시면 나도 모르게 가슴 치며 복받쳐 나오는 강력한 회개의 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이 그토록 죄송하게 느껴지고 혹은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분이 교회 나와서 이상하게 눈물이 자주 나오면서 자기 시어머니가 그렇게 안타깝게 여겨지면서 잘못한 것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어머니에게 잘 해드리게 되었는데 그것 역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책망의 구체적인 내용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인데, 죄에 대하여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하신 것처럼 예수 안 믿었던 것에 대하여 강한 회개 현상을 주십니다. 즉 성령이 오시면 내가 왜 이제 예수를 믿게 되었지 하면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적극 모시고 된다는 말입니다. 이 회개의 역사가 내적인 으로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것은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하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자기 의를 찾지 않고 높이 되신 예수 안에서 거룩하심과 영화로우심을 찾고 입게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마치 바울이 십자가에서 나는 다 사라지고 오직 자기 안에 예수로 가득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그 갈망이 바로 의에 대한 책망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시면 데굴데굴 구르면서까지 죽든지 살든지 예수 안에서 온전케 되려는 갈망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하신 말씀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승리했음을 믿고 감격하는 승리적 확신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육신적인 눈이 아니라 신령한 눈으로 사물을 보고 사건을 보고 환경을 보면서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복음에 서서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나타납니다.

그 뿐 아니라 원수 마귀의 나라를 정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 간절히 갈망하게 하십니다. 이 마음을 갖게 되는 교회에서 작은 것 가지고 서로 안 하겠다고 옥신각신 싸우는 일은 없습니다. 모두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헌신하고 충성함을 갈망합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을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그 구원의 순서를 이루어 온전한 사람 만들어 가시고 계십니다.


3. 성령님께서 성도들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17:17에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셨고, 요14:6에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성경을 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아니시고는 이 진리를 알 수가 없고 또 그 진리를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란 주관적인 것인 듯해도 이것만큼 성경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객관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성경해석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성령의 조명입니다.

그래서 벧후1:20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오직 성령으로라야 풀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지만 또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방법이므로 주관이 아닌 객관입니다. 다만 인간 생각과 악령의 역사가 가미될 수 있으므로 내가 전한 말씀이 100% 옳다고 교만할 수 없는 것이지 성령님으로 해석하는 그 방법만은 장려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성경 진리를 알게 하시고 나아가 진리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경험케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고전2:13)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사랑도 성경의 약속도 다 허상이 되고 맙니다. 오직 성령만이 진리를 진리 되게 경험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명도 성령으로 부어지고 아버지 사랑도 성령으로 부어지고 예수님이 이루신 공로도 성령으로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없는 영적 축복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상을 사는 우리에게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잘 섬기고 승리하며 복되게 살아가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 보혜사가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 속에 와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엎드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을 실상으로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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