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겸손을 사모하십시다 (벧전 5:5-6)

  • 잡초 잡초
  • 371
  • 0

첨부 1


겸손을 사모하십시다 (벧전5:5-6)

(요약)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의 첫째가 교만이라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의 첫째는 겸손이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싫어하시는 것은 모든 죄는 교만에서 나오기 때문이요, 교만하면 버림받고 멸망당하기 때문이요, 교만하면 자기를 죽이는 가장 미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겸손해야 할 것은 겸손이 깊은 영적 생활로 이끄는 최선의 길이요, 이것이 주님을 본받는 길이며, 겸손만이 교만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겸손함이 없는 것이 교만이라는 점에서 겸손을 더욱 사모하자.

(설교)

이 시간에 [겸손을 사모하십시다]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잠6:17을 보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6-7가지가 열거 되고 있는 그 중에 첫 번째가 바로 교만입니다. 얼마나 싫어하시면 싫어하시는 목록의 첫 번째일까요? 그렇다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싫어하시는 것 반대로 보면 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겸손입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볼까요? 미6:7-8에 미가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 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보다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교만을 싫어하실까요?

1. 모든 죄는 교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죄의 기원은 타락한 천사인 사단인데 그들의 죄가 바로 교만 죄였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럼 교만 죄만 짓고 끝났습니까? 모든 죄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아요.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주장하셔서 견고하지만 교만하면 악이 주장합니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사람의 성품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범죄하게 된 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범죄의 길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죄가 통제가 안 된다면 혹시 교만 죄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볼 때 우리 성도들은 교만한 분 한 분도 안 계십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의 겸손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지 그것은 우리 모두 기도의 제목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겸손 없음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입니다.

2. 교만하면 버림받고 멸망당하기 때문입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고, 잠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겸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절교육을 통해서라도 겸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혹시 나는 사람 앞에는 교만해도 하나님께는 겸손 한다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겸손을 말씀하면서 교회 지도자에게 순종하라는 말씀합니다. 교회 지도자만이 아닙니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씀합니다.

처음에 사울 왕은 겸손했습니다. 사람들이 왕으로 세우려고 했을 때 행구 사이에 숨을 만큼 자기를 숨깁니다. 행구란 여행도구입니다. 얼마나 숨을 곳이 없었으면 행구에 숨었을까요? 그만큼 그는 조그만 숨을 곳이라도 있으면 겸손하고 싶어 안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 붓기 위해 갔을 때도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삼상 9:20)하다고 자기를 낮춥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사울은 교만해져서 망령된 짓을 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사울의 왕권은 바로 우리의 영권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깊은 교훈을 줍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반드시 멸망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다가 7년 동안 짐승노릇을 합니다. 두로 왕도 교만하다가 멸망합니다. 애굽도 모압도 교만함으로 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1:23-24) 하셨습니다. 뭘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런 사건을 기록하셨을까요? 우리에게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믿음이 무너진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3. 교만하면 가장 미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행12:21에 헤롯왕이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할 때 백성들이 헤롯을 신처럼 추앙했습니다. 그 때 헤롯이 교만하여 그것을 당연시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충이 먹어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인생은 벌레만도 못함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을 천시하고 멸시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그 마음 오죽합니까? 자기 사랑 없는 들보는 모르고 남의 눈에 티만을 빼려고 합니다. 그러나 손해는 자기가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잠11:2에 교만해지면 욕이 온다고 했습니다. 잠언13:10에 교만하면 다툼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잠14:3에는 교만하면 미련하여 매를 자청한다고 했습니다. 잠29:23에 교만해지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잠16:5에 교만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 했습니다. 약4:6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사랑하는 자녀인 줄 알고 품고 있다가 그것이 구렁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증오하며 물리치겠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하면 자녀와 같이 사랑하시지만 교만하면 뱀처럼 물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잠15:25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교만해지면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갑자기 잘 살게 되니까 사람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못 사는 나라 비웃는데 겸손해야 합니다. 황우석 박사의 문제로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있는데 이 역시 다 같이 겸손해야 합니다. 논문을 조작한 황박사도 문제가 되지만, 황박사 영웅 만들려 했던 정치인들도 문제요, 사실 이하로 격하시킨 서울대 조사위도 문제요, 분별없이 떠드는 언론도 문제입니다.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해 주면 안 됩니까? 이번 서울대 조사팀이 황박사가 콜로니 수준까지 왔다고 분명히 발표하고도 그것을 한사코 격하시키려 한 것은 왜입니까?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의대교수라는 교만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용어이지만 콜로니 단계이면 배양만 하면 그것이 바로 그게 줄기세포인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황박사는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이제 문제가 있다면 배양을 책임 진 미즈메디 병원이 조사 받아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논문 사건도 줄기세포 기술 없는 짜 맞추기 허위논문과 기술은 있지만 세포가 죽어 사진 자료가 마땅치 않아서 짜 맞추기한 근거논문과는 윤리적 차원이 다릅니다. 아무리 학자적 양심이라지만 완전한 허위논문이 아닐진데 그거 하나 가지고 그렇게 죽여도 되는 겁니까? 지금 왜 수많은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는지 알아야 합니다.

장차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들은 더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기술을 빼앗으려는 국제사회의 음모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국가에 돌아올 이익이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배후에 무엇이 있다면 두고 보겠지만 검찰도 제 역할을 할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복도 불어버리는 결과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공학이 생명윤리에 합당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더 겸손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항상 겸손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이것이 신앙생활의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생활이란 은혜 없이 불가능한데 겸손한 자가 되어야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벧전5:5-6에 “하나님이 -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은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높여 주시기까지 하십니다. 겸손하면 신앙생활이 잘 되고 신앙이 잘 되면 거기에 와지는 결과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잠22:4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했습니다. 겸손하면 하늘의 복 땅의 복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 안 되어서의 일입니다. 길을 지나는데 앞쪽에서 한센병 환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복음도 전하면서 기도해주고 싶은데 왠지 더러운 생각에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 병자를 그냥 지나친 것이 잘못입니까?” “왜 그냥 지나쳤는데?” “더럽게 느껴져서 그랬습니다.” “그래? 너는 그 병자보다 깨끗하냐? 나은 게 있느냐? 너는 그 병자보다 더 더럽고 추한 냄새나는 죄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너를 그대로 받아주었고 사랑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그 병자에게 뛰어갔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병자의 손을 꼭 붙들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이런 겸손이 있었기에 그는 은혜로 넘치는 영성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2. 이것이 우리 주님을 본받는 길입니다.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3. 교만을 극복할 방법은 겸손을 구함이 아니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제가 보기에 우리 중에 교만한 사람은 안 보입니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다 은혜가 넘쳐야 하는데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면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 없음은 곧 교만으로 보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교만치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치고 교만의 시험에 들지 않는 사람 별로 못 보았습니다. 그 기도가 잘못이라기보다 좀 더 적극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과 같은 겸손을 달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옵니다. 교만은 있어도 오고 없어도 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 죄를 없애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겸손을 구함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겸손을 구하십시다. 우리 위해 사람이 되사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 구주가 되신 우리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본 받으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