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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 (사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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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날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으신 성도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서로 나누는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거든 먼저 살아계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날이 되도록 형제 자매지간에, 동서지간에 각별히 노력해봅시다. 명절날 형제간에, 동서지간에 불화하면 부모님의 마음이 아픕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는 시편 말씀처럼, 형제간에 연합하며. 동서지간에 서로 사랑함으로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존 포웰 신부가 쓴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란 책을 보면, 사랑이란 자기 주변 사람들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행복해질 것이랍니다. 이번 설날에 부모님의 행복, 형제 자매들의 행복, 동서의 행복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행복한 설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 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구절인 5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이 말씀이 설날을 맞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올해 내내, 나아가 일생토록 존귀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지금부터 약 2500여년 전,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비참하게 포로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실패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 너희들의 자리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위로와 축복의 약속을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실패를 경험해보았습니다. 세상에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일어서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 학자들이 정치, 종교, 학문, 경제적으로 미국 역사에 공헌을 남긴 사람들을 뽑아 보았습니다. 미국 지도를 펴놓고 그 사람들의 출신지에 점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미국 북동부의 뉴 잉글랜드란 작은 시골에 점이 가장 많이 찍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시골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을까?” 그 이유를 분석해보았습니다.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나 실수를 했을 때 타이르면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Boys, be ambitious! Girls, be ambitious!"
현재의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야망을 가지라. 포부를 가지라. 원대한 꿈을 가지라!
이것이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박힌 것입니다.
“그래, 무슨 일을 하든지, 꿈을 크게 가지고 살자.”
이런 생각을 갖고 살게 된 아이들이 그 힘으로 미국의 역사를 움직이는 인물들이 된 것입니다.

  학교에서 4과목이 F(낙제점)을 받았고, 한 과목만 간신히 낙제를 면한 D(60점대)학점을 받아 그 성적표를 들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아들아, 한 과목만 너무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 같구나!”

  하루는 어느 성도가 워치만 니를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는 주님 앞에 충성스런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해서 고민이랍니다. 이렇게 믿다가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만 같다고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워치만 니는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개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집안을 더럽히는 일도 없고, 집안에서 오줌 싸는 일도 없습니다. 이 개는 나를 무척 좋아하고 내 말을 잘 듣습니다. 나는 이 개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기쁩니다. 그런데, 저기 저쪽에 아기가 있지요? 제 아들입니다. 집안을 어질러놓고, 더럽혀 놓는 데는 선수입니다. 어떤 때는 먹던 음식을 던져 버립니다. 새옷을 입혀주면 금방 더럽힐 때도 있습니다. 참 말썽꾸러기지요. 자, 그런데, 누가 제 재산을 유산으로 상속받을까요? 귀엽기만 한 저 개입니까? 아니지요. 비록 말썽꾸러기지만 제 아들이 상속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늘나라를 유산으로 상속받을 자입니다. 당신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신앙생활이 말이 아닌데.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은 게 없어. 이렇게 믿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실 거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 뜨겁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죄를 짓고 문제를 일으켜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1절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여러분과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복주시겠다고,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라고 미리 선택해놓으셨습니다.

3절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축복의 아들로, 딸로 예정해놓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영어 성경(NIV)을 보니까, “내가 네 안에서 나의 찬란한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Israel in whom I will display my splendor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이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화려함과 찬란함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적으로 불순종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우상을 숭배하여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서 지긋지긋한 포로생활을 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믿음에 실패하고, 계속적인 죄악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사야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
이 말씀도 동일한 상황에서 주신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오늘도 죄인인 우리를 만나주러 하나님은 이곳에 와 계십니다.
여기에 보좌를 펼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변함없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란 자기 정체성, 믿음의 확신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웬수 같이 보이는 남편, 아내, 시어머니, 며느리, 동서도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그들 안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설날에는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시부모님, 며느리, 동서들을 우리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축복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고,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고, 관원들에게 종이 되어 있지만, 얼마 안 있어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우리를 세우실 것입니다. 열왕이 우리를 보고 일어서서 맞이하며, 세상 권력자들이 우리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셔서 그렇습니다.

3. 우리를 이렇게 존귀한 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쓰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다듬어가십니다.
2절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입을 훈련시키십니다. 날카로운 칼 같이 예리하게 만드십니다. 입이 중요합니다. 말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고, 세웁니다. 격려와 칭찬의 말을 통해 사람들은 힘을 얻습니다.
왜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신다고 하셨습니까?
칼은 적을 무찌르는 무기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입을 통하여 공격합니다.
“너는 안돼, 너는 가진 게 없잖아. 배운 게 없잖아. 성격, 미모, 실력, 뭐 하나 제대로 된 거 있어? 네가 뭐 할 수 있다고. 그만 둬. 포기해. 네가 안 해도 일할 사람 많아.”
이런 사탄의 부정적인 말을 물리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 입을 훈련시키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어.”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여기에서 “숨기시고 감추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기시고 감추시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환난에서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시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이스라엘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지키신 하나님은 우리가 환란을 당할 때, 그분의 손 그늘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또 다른 하나는, 준비와 연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쉽게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연단시키시고 준비시킨 후에, 때가 되면 우리를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감춤과 숨김의 기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연단의 기간, 훈련의 기간, 준비하는 기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을 피해 숨어지냈듯이 말입니다. 숨어지내는 기간은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밝히 드러내실 때가 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존귀하게 쓰실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실 때, 6절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하고 부흥시키실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가벼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부흥을 통하여 대구 땅에 빛을 비추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들어 쓰실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4. 대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작은 데서 시작됩니다. 나를 통하여 내 남편이 행복하고, 아내가 행복하다면, 시부모가 행복하고, 며느리가 행복하다면, 나를 통하여 우리 동네에, 대구시에, 전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이미 불고 있는 셈입니다. 대구에서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보잘것없는 날개짓이 미국 남동해안에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우리 주변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작은 몸짓이 지금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인 탕원씨가 쓴 <곁에 있어 행복한 50가지 이야기>란 책을 보면, 행복은 누릴 수 있는 ‘권리’ 가 아니라, 지켜가야 할 ‘의무’ 라고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는 분들, 우리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은 행복할 것입니다.
5절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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