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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떡집에 떡이 없다면 (룻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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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는 베들레헴이 살던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그 어느 해 그곳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가족을 이끌고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이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압 지방에 살면서 그 가족은 더욱 더 힘든 상황이 되었다. 가장이 죽고 두 아들이 죽어버렸다. 결국 그 집안은 아내와 두 며느리만 남았다. 모든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희망이 될 소식이 들려왔다. 고향 땅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풍성한 양식을 주셨다는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게 된 나오미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하였다.

고향에서 들려온 좋은 소식 하나로 룻기의 모든 상황을 다시 새롭게 만들고 가정을 회복시키며 한 나라의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역사가 시작된다.

베들레헴은 그 이름이 떡집이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베들레헴이 많은 곡식이 있고 그래서 먹을 것이 풍성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떡집에는 떡이 풍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떡집에 떡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떡집을 떠나게 된다.

떡을 찾아 떠났는데 그 사람들의 나중 형편은 점점 더 심각한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삶의 희망을 잃게 되는 것이다. 떡이 있어야 할 곳에 떡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다른 대안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더욱 치명적인 상처들을 남기게 된다. 남편을 빼앗아 가고 자녀들을 빼앗아 가고 가정을 몰락시킨다. 삶의 활력을 빼앗아 간다. 미래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 교회가 이렇게 빵이 없는 빵집이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세상은 분명히 생명의 빵이 없다. 예수님은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 빵이라고 하셨다. 이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 교회에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의 빵을 세상에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교회마저 빵이 없어 텅비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빵집을 외면하고 빵집에서 희망을 잃고 죽음의 세상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잃고 생명의 떡을 잃고 텅 빈 곳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빵을 얻기 위해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술집으로 시장으로 나이트 클럽으로 우상이 가득한 사이비 빵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교회의 생명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또한 예배를 통하여 가장 강력하게 경험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곳이라면 당연히 사람들은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사람들의 것만 가득한 교회, 생명도 없고 열기도 없는 차갑게 식은 교회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예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거짓 것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못할 것으로 우리의 속을 채우고 스스로 속으며 살아서는 않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목마름을 느끼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우리의 예배는 살고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 안에 비로소 생명의 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굶주린 세상에 빵이 있다는 소식은 광속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배고픈 세상에 빵이 있다는 것보다 더 소중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의 집은 빵집이다. 이 빵집에 생명의 빵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고 배고픈 영혼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시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임재 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시간이 예배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1.예배를 준비하라.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이다. 제물이나 형식도 다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 자신이다. 예배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을 정결하게 씻고 그 보혈로 온 몸을 덮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성경에서 처음 예배자로 등장하는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다. 아벨의 피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으셨다. 우리 인간이 죄인이기에 죄 된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드리는 예배만이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허락하신다.

솔로몬은 예배에 자신의 전부를 드렸다. 천 마리의 제물을 번재로 드렸고 정성과 최상의 것을 드렸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처소를 짓는 일에도 최고의 것으로 최상의 성전을 지어드렸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솔로몬에게 하나님도 최고의 축복으로 응답하셨다.

그러나 솔로몬의 예배에서 일천이라는 많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솔로몬의 예배의 중심에는 피흘림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제물의 피로 속죄함으로 드리는 제사였다는 것이다. 정성과 더불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피곤하고 힘든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마음과 목숨과 중심을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가? 아니면 찌꺼기들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찌꺼기 시간 찌꺼기 험금을 드리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의 보혈을 의자하고 드리는 예배인가 아니면 화려한 건물과 첨단 시설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자랑하는 예배를 드리는가?  예배는 예배자 자신을 드리는 것이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힘입고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2.예배를 통해 살아나는 시간이 되게하라.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수술하시는 시간이다. 나의 더러운 죄를 씻어내고 뽑아내는 시간이요 나를 죽이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인생은 응급조치로 빨간 약을 바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에 있는 심각한 죄들을 철저하게 밝혀내고 찾아내서 제거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수술해야만 살아 날 수 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예배를 통해 말씀이 옳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내가 변하고 살아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통해 변화되지 않으면 더욱 무서운 죄인이 된다.

가인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려놓고는 더욱 가증스럽고 뻔뻔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생을 죽여 더욱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예배를 통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많은 예배를 드린다. 나름대로는 잘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이다. 그럼에도 이 땅은 변하지 않는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배 속에서 내가 먼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수술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진정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내가 변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참된 능력임을 믿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생각에 어떤 생각으로든, 어떤 상태로 드린다 해도 다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멍청히 졸면서 드리는 예배, 딴 생각으로 드리는 예배, 합당하지 않는 재물을 드리면서 그런 예배도 하나님이 다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모스나 이사야 같은 많은 선지자들은 그들의 잘못된 예배를 중단하라고 외쳤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배를 드리는 자의 죄를 더하는 꼴이 된다. 헛 된 수고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더해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예배, 내가 드려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켜 살리시는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3.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감격과 기쁨을 누리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는 참된 기쁨을 준다. 감격을 준다.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된다. 또한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살아있는 감격이 있는 찬송 중에 하나님은 임재 하신다. 그래서 예배는 찬송이 중요한 것이다. 찬송이 살아나지 않으면 예배가 생명력을 잃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이 그토록 회복하기 원하는 것은 다윗의 장막에서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예배 자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난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세상에 생명의 떡을 전할 수 있다.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에 우리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 예배를 최우선으로 하자.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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