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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이 하는 일 (출 2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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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사장이 존재하는 이유와 제사장이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제사장을 세우는 위임식을 진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부분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만인 제사장으로 세워져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기에 이것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1.제사장이 존재하는 이유

제사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사장은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필요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다. 이 세상에 죄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고 죄 사함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없이는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받은 제사장이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스라엘이 타락했던 것은 대 부분 제사장이 제대로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다. 사사시대의 혼란과 암흑과 같은 시대가 계속된 것은 그 시대에 세워진 제사장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사가 제대로 드려지지 못하고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손자와 아론의 손자가 살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함으로 온 백성이 함께 불행한 삶을 살았다.

제사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교회는 일시적인 안위를 주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도록 하는 거룩한 일을 위임받은 곳이다. 교회에서 끊임없이 죄를 지적하고 거론하는 것은 우리를 정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죄인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려는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거룩을 회복하여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려는 것이다. 교회에서부터 맑은 물을 세상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면 세상을 정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으로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고 세상을 죄에서 건지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요 성도들이 세상에 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죄 문제에 대한 해결은 결코 교육이나 다른 어떤 종교적인 행위로도 될 수 없다. 오직 예배를 통하여 거기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교회에서조차 죄 문제를 다루고 거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싫어한다. 만일 제사장이 피를 싫어하고 멀리하여 그 피 대신에 다른 것으로 대체시킨다면 제사장은 존재 의미가 없듯이 교회가 죄 문제를 지적하고 그 해결의 복음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다양한 많은 일을 해야하지만 우리의 본질은 결국 죄를 해결하는 문제이다. 이 본질을 잃은 상태에서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것을 행한다 해도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화려하고 멋진 프로그램은 세상이 훨씬 앞서고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 세상과 경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본질적인 것에 더욱 집중해야할 것이다.

교회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얼마나 교만하고 부끄러운 자들인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결정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고 숨기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끝까지 추적하시고 낱낱이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문제가 야기된 것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과 그를 믿음으로만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고 믿음의 자리로 이끌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2,제사장이 하는 일

제사장의 모든 임무는 구체적으로 제사를 통하여 실현된다. 그래서 제사는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세우면서 세 가지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이 제사 속에 제사장이 해야 할 일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제사는 오늘 우리의 예배와 같은 것이다.

1)속죄제 :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갈 때 가장 먼저 자신의 죄를 용서 받아야만 한다. 이를 위하여 수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받아 손가락에 찍어 단의 네 뿔에 바르고 나머지 피는 단 아래에 쏟는다. 간과 콩팥과 거기 붙은 기름을 단 위에 불사르고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살라야 한다. 이 송아지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는 존재다.

수송아지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귀한 제사이다. 특히 일년 된 수 송아지는 제사 가운데 최고의 제사이다. 수송아지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송아지에서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수송아지는 회막 문에서 잡는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곳 바로 그 앞에서 죄인을 위하여 한 생명이 대신 죄를 짊어지고 죽는 것이다. 송아지가 우리의 죄와 우리의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나를 위하여 다른 생명이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준다는 것은 분명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송아지를 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로 태우듯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 밖 곧 골고다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죄인 된 자가 거룩한 성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은 죄 값을 치룬 후에야 비로소 다시 진중에 들어올 수 있는데 죽음으로만 그 죄 값을 치룰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골고다 언덕에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과 더불어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서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것을 보지 않으려하신다. 그래서 죄인을 위하여 다시금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를 불러주시며 죄를 씻고 아버지 품에 들어와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살라고 하신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성소 안에 휘장을 찢듯이 예수님의 육체를 찢으시고 모든 길을 열어주셨다. 회복시키고 다시 만나고 은혜의 자리에 들어오게 하신 것이다.

송아지의 내장과 거기 붙은 기름과 콩팥 같은 것들은 단에 불사르게 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히 육신적인 죽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의 속 마음도 역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한탄과 상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심적인 부담과 영적인 고통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우리의 모든 문제도 그분이 대신 담당하시고 단 위에 모든 것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면서 우리를 거기에서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 송아지를 잡으면서 나온 모든 피를 단 아래 쏟아 부으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다 쏟으신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가 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예배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재현하는 것이요, 그 십자가를 우리들 각자가 경험하는 것이다. 그 십자가에서 흐르는 피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고 예수님의 십자가 지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죄 사함을 위한 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한 생명이 처절하게 죽음을 당해야 한다. 속을 다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잔인하고 무섭고 끔찍하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의 죄는 씻음 받을 수 없다. 인본주의적인 사람들은 이런 잔인한 이야기를 거론하지 말자고 한다. 끔직한 피 이야기를 자주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예배의 본질인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예배는 마치 수술과 같은 것이다. 의사가 피를 무서워하고 살을 찢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살고 할 수 있으며 의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의사를 향하여 잔인하다고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에 있는 무서운 질병을 제거할 수 없다. 사람을 살리려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예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재현이다. 사람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온몸을 씻어내지 않으면 누구도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

2)번제 :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제사이다. 숫양을 잡아 각을 뜨고 그 전체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한 속죄는 우리의 죄를 남김 없이 다 태워 없애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한 죄의 소멸로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렇게 말끔히 용서하시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 그래서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게 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정죄하면서 괴로워한다면 믿음이 잘못된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한번 고백하여 회개한 죄는 잊어버리라 결코 거기에 사로잡혀서 괴로워 할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과거의 죄를 들춰내서 누구도 공격해서는 않 되는 것이다. 혹 교회 안에서 자신의 지난날의 부끄러움들 간증한 것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않된다. 우리는 누구라도 우리에게 들어와서 자유함을 얻고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죄인이 들어오면 새로워지고 거듭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3)화목제 : 속죄의 제사를 드린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이웃들과 화목하게 된다. 죄는 관계를 단절시킨다. 그러나 속죄는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준다. 그래서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이 제물을 일부는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는 제사장에게 돌리고 일부는 자신의 이웃을 불러 함께 나누면서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정신을 우리의 삶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누리고 실천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모든 담을 헐어버리고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는 교회였다. 본래 이 둘은 하나 될 수 없는 원수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앞에 두고 서로 함께 만나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고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케 하며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거룩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죽음을 당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십자가 중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십자가 사건을 항상 재현하고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십자가의 피가 마르지 않고 흘러 마음을 적시고 영혼을 적시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 예배 속에서 항상 나의 모든 죄를 새롭게 씻음 받아야 한다. 그렇게 산 예배를 드린 사람들은 세상에 나아가 담대한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적용1.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나를 돌아보아 철저하게 죄를 해결받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2. 당신은 예배의 자리로 나아올 때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지하고 나아갑니까? 그 피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온 몸을 씻고 덮은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하여 십자가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3.혹시 다른 사람의 죄를 들춰내거나 그것으로 공격하고 정죄하지는 않습니까?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성도들의 본질입니다. 덮어주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세워주는 삶을 삽시다.

4.제사장의 삶은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화목해져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관계를 회복해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체적으로 적용해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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