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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만한 믿음 (마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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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06년도 2월 첫 주일이자 은급주일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눈물과 땀 그리고 피를 뿌려 헌신하다가 은퇴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다 낭비하신 삶이요 한국 교회를 위해 ’몽땅 헌신한 삶‘이었습니다. 오늘의 감리교회와 미래의 한국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신 분들입니다.
감리교 은급본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5년도 말 약890여명의 목회자와 그의 유족들에게 은급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생명바친 은퇴하신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사람을 찾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찾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믿을 만한 것이 없는 세상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우리를 배신합니다. 믿었던 은행도 나를 배신합니다. 믿었던 증권도, 주식도, 믿었던 회사가 나를 배신합니다.
불신사회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도청하고 뒷조사를 하는 비밀경찰을 두고 스파이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불신의 시대입니다. 정부를 믿지 않습니다. 국회도 믿지 않습니다. 언론도, 지도자도, 국민연금도, 친구도 . . 시장가서 물건을 사도 주인은 싸게 판다고 하나 아무래도 속는 기분입니다. 불신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다 자기의 눈으로 보아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또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이렇게 불신의 세상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신의 자세가 몸에 배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것들을 의지하려 합니다. 또 하나님도 믿지 못합니다.

어떤 학생이 꿈을 꾸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절벽에서 아래로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았어요 다행히.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지금 힘이 자꾸 쳐지니까 나뭇가지를 잡고 소리를 칩니다.
‘거기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그런데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나 여기 있다’ ‘누구세요?’ ‘나 하나님, 네가 믿고 있는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래? 염려말고 손을 놓아! 내가 구원하마 손을 놓아!’
그러니까 자기가 한참 있다가 하는 소리가 ‘거기 누구 없어요? 하나님 말고’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자기도 웃겨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웃다 보니 잠을 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엘리베이터를 난생 처음 본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상자에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혔다 하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이 닫혔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문이 열리는데 아주 젊고 예쁜 여자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술과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들어가더니 젊고 예쁜 여자가 나오다니 . . . 그때 아버지가 흥분이 되어서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 너 집에 빨리 가서 네 엄마를 데려 오너라’ 아버지는 엘리베이터 안에만 들어가면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사람을 젊게 만드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엘리베이터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잘 믿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신용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잘 믿는 것이 주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 .(요6:29)

우리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이것이 믿음이다’라고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종종 ‘저 분은 참 믿음이 좋다.’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믿음 좋다고 칭찬해도 주님이 칭찬하시지 않으시면 다 소용없습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이 좋은 믿음이요, 큰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믿음이 적어서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던 사람과, 믿음이 좋아서 칭찬을 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하여, ‘오라’는 말씀을 듣고 물위로 걸어 가다가, 바람과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어 가게 되었고, 그 때 주님께로부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딸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으나 예수님께 무시하며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 . 그 때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할 때 예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마5:21-8)
그런가 하면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주님께 나왔다가 “지금까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님께 칭찬을 들었던 백부장의 좋은 믿음, 큰 믿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이 좋은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본문에 믿음의 칭찬을 받은 사람은 로마의 장교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나라에 파견 나와 있던 100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장교였습니다.
로마 군대는 한 군단이 6000명인데, 이것을 100명씩 60단위 부대로 하여 그 지휘권을 백부장에게 주었습니다. 백부장은 출세가도가 활짝 열린 행운아요, 엘리트였습니다. 지위가 대단했고, 부자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믿음이었기에 그토록 칭찬을 받았을까요?

1.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라

백부장은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존경은 어떤 재주나 기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게 사는 사람의 앞길은 안전합니다”(잠10:9). 반면에 위선은 언젠가 드러나고야 맙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존경받는 성공자 한 사람을 꼽는다면 다니엘입니다. 그가 존경받는 인물이 된 비결은 한 마디로 진실성 때문입니다. 그는 70년 이상 공직 생활을 해왔는데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단6:3-5). 다른 사람들 보다 사리분별, 신속, 지혜로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진실이 당신을 존경받게 만들어줍니다.

겸손함을 통해 존경받습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잘 해도 겸손해야 존경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을 절대로 존경하지 않습니다. 겸손만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존경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4:6)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있는 위세 높은 로마의 백부장은, 나사렛 촌에서 자란 무명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손을 보여 줍니다. 또한 “내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8)라는 고백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인간 예수로 보지 않고,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은 로마군대 장교인 반면에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 하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에게 무시 받고 천대 멸시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에수님을 높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초월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치료할 수 있는 권세자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존경받을 수 있는 조건은 초지일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가들이 왜 존경을 못 받습니까?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유리 최태섭 장로님의 사업성공 비결은 한 마디로 ‘신용’입니다. 그가 6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생명처럼 아끼고 지켜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용’이라고 말합니다. 사업에 있어서도 신용이 가장 큰 재산입니다. 성공한 기업인은 많아도, 존경받는 기업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존경받고 있습니까?
그는 유대인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적대 관계에 있던 유대 민족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로마인이었지만 유대 나라에 와서 지내는 동안, 본래 천품이 선하고 구도심이 강한 사람인지라 유대교로 개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고 하는 속담이 있듯이, 하나님을 사랑함이 유대인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눅7장에 보면 그 증거로 백부장은 유대인을 위하여 회당도 지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백부장을 유대인들도 자연히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최고의 인격적인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하나님의 사람은 이 백부장처럼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말씀에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라

백부장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다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 믿음이 없는 자가 있고 믿음이 적은 자가 있으며 믿음이 큰 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마17:1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 아래에서 군중들에게 둘러 싸여 귀신에게 사로잡힌 아이 하나로 인해 쩔쩔 매고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제자들에게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제어할만한 능력을 주셨습니다.(마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런데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변화산에 올라간 사이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의 삶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고, 결국 믿음이 없었습니다.

2) 또 믿음이 있긴 있지만 아주 적은 자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도 의심 때문에 믿음을 버린 또는 작아지고 작아진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유명한 줄타기 선수가 줄을 타고 있었습니다. 많은 관중들이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줄타기 선수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맨손으로 건너갔다 올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이 “예” 했습니다. 이번에는 의자를 메더니 “이 의자를 메고 갖다올 수 있다고 믿습니까?” 하니 믿습니다. 또 “예” 했습니다. 이번에는 “의자 위에 사람을 태우고 갔다올 수 있다고 믿습니까?” 하니 사람들이 “예 믿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곡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지원자 나오십시오” 하니 아무도 지원하질 못했다고 합니다.
중간에 의심 없이 끝까지 나아가는 믿음 그것이 훌륭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험한 세파 위에서 외줄 타는 우리에게 “내가 업어서 갈테니 업히기만 하여라.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수십년 믿음생활 한 사람들도 업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죄 중에 의심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입니다.
주님은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찬 민족을 통해서 일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 예수님은 믿지 않을 때에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마13:58) 의심을 이기십시오. 의심은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3) 믿음이 큰 사람이 있습니다. 백부장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마8:10)
그는 간구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고급 장교였지만, 자존심과 체면을 다 던져 버렸습니다. 시골 촌사람 나사렛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겸손히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간구하는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약5:16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3. 사랑을 겸한 믿음을 가지라.

6절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눅7:2을 보면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라고 했습니다. 5절을 보면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종은 로마인이 아닙니다. 그 당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였습니다. 종의 신분은 천덕꾸러기요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소유도, 자유도 주인의 것일 뿐 종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종은 백부장의 소유로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종을 사랑했습니다.
한마디로 도량이 크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당시의 종이란 괭이나 호미 등과 같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단지 말할 줄 아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는 ‘도구가 생명이 없는 노예인 것과 꼭 같이,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예수님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으로 취급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 백부장은 자기 노예를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잘난 척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자기 종이 병에서 낫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그릇에 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나쁘면 신앙태도도 나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인격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신앙태도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품성이 좋은 사람은 남을 돕고, 사랑하고, 배려합니다. 늘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너그럽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동기는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의 사람, 사랑을 겸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말씀을 붙잡는 믿음을 가지라.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 한 마디로 자기 하인의 중풍병이 나을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백부장의 신앙은 어떤 느낌이나 환상 같은 징표를 의지하는 신앙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말씀의 권위와 능력을 믿었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입니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사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종들이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안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종의 병을 고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답니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천국에서 하는 말이 성경 66권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곳은 천국입니다.
그러면 왜, 지옥의 전화번호는 11국에 1111번일까요?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일일이’ ‘내가 최고다’, ‘내가 다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천국의 사람들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백부장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기이히 여겨”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믿음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 있는 자를 만나면 감동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고객 감동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감동을 받으시면 모든 것이 OK입니다. 왜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셨겠습니까? 정작 하나님을 가장 잘 공경한다고 자부한 유대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큰 믿음을 백부장에게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때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마8:10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 . .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 .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 주십니다. 믿음의 분량을 키우십시오. 믿음의 그릇을 넓혀가십시오.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믿음의 그릇을 가지십시오.
“이만한 믿음”은 그릇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오럴 로버트 목사는 “당신이 준비한 축복의 그릇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면 주님은 당신의 모든 요구를 채워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그릇들이 되십시오. ‘이만한 믿음’의 그릇‘들이 되십시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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