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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Ⅰ(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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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면서 제일먼저 기도의 대상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기도의 대상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 때 이 속에는 하나님의 초월하심과 하나님의 내재하심, 하나님이 온 우주에 가득하시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나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셔서 가까이 갈수 없는 분인 것과 동시에 또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가장 친밀하신 분! 이 양면성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이 말속에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능력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폭군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만 있고 능력이 없다면 무능한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 둘을 동시에 다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주실 수 있고 아버지처럼 우리의 기도에 속히 응답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렇게 기도할 때 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대상을 불렀으면 기도의 내용을 말씀드려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들이 어떤 내용의 기도를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기도가 자기를 위한 기도만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를 급할 때 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입만 열면 “해 주소서!  주소서!”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달라고만 하는 사람을 누구라고 이야기합니까?  막달라 마리아라고 합니다.  “막 달라 마리아”  안주면 금식도하고 들어 눕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막 달라고만 하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순서에 있어서라도, 자기의 기도만 먼저하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겨우 몇 마디만 하는 사람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보면 기도의 순서가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기도의 양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위한 기도와 나를 위한 기도가 반, 반으로 50%, 50%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기도의 순서에 있어서 하나님을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 기도의 양에 있어서 너의 기도를 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라.  그렇게 암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기도의 순서에 있어서 기도의 비율에 있어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기도하여서 응답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에는 먼저 하나님을 위한 기도가 세 가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한 기도 세 가지 모두 다 원어는 “수” “당신” 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기도 세 가지에도 모두 “우리” 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성경을 번역할 때 나를 위한 기도에는 “우리”라는 말이 세 번 다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한 기도에는 “당신” 이라는 말이 세 번 다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누구의 이름인지,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 뜻이 누구의 뜻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무소속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신” 이라는 말을 2인칭으로 쓸 때, 물론 부부끼리 “당신” 이라고 하면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는 뜻으로 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당신” 이라고 하면 어감이 별로 좋지 않아요.  3인칭으로 쓸 때는 “당신”이 극존칭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3인칭이 아니고, 2인칭 아닙니까?  그러니까 2인칭으로 쓸 때는 존경의 뜻이 별로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 이라는 말을 번역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이나 쉬운 성경에는 모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그렇게 번역을 해놓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위한 첫 번째 기도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만물에게 이름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우리말로 짓는다고 하면서 이름을 아주 우습게 짓고 장난삼아서 짓는 그런 이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나라에서는 이름을 단순한 이름 뿐 만이 아니라 이름을 그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바라보면 마치 그 사람이 일생동안 다 살고 난 다음에 마지막 죽을 때 이름을 지은 것처럼 그 이름대로 살아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애가 이름을 따라갔어요.  그래서 이름을 제해 버리면 이름만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까지 제해 버리는 그런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욕하면 그 사람을 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레위기 24장 16절에 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그를 죽일지니”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만이 아니고 여호와 자체를 훼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죽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이 기도도 단순히 이름만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가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요즘에는 성경을 인쇄하니까 그렇지 않습니다만, 옛날에는 손으로 성경을 썼습니다.  그럴 때 성경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하나님의 이름을 쓴 그 붓을 하나님의 이름만 쓰고 꺽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쓴 이 붓을 다른 곳에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난번 성지순례를 가서 사진을 찍어왔는데 성경을 쓰다가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이름을 쓰지 않고 “....” 이렇게만 해 놓았어요.  여호와의 이름을 쓰지 않았어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쓸 수 있나?  라는 생각으로 이름을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야훼’인지 ‘여호와’인지 몰라서 지금도 ‘야훼’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여호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아버지 이름을 이야기 할 때 “아무개” 라고 하지 않고 무슨 자! 무슨 자!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쓰기조차 두려워하고 부르기조차 두려워할 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아주 귀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하나님’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귀하게 여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알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에게로부터 받은 ‘성명’이 있지요?  그런데 이 외에 ‘직함’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따라서 주어지는 또는 환경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주어지는 이런 여러 가지의 이름들을 모아보면 수십 가지가 됩니다.  그런 수십 가지를 다 모아보면 그 사람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도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크게 말하면 네 가지로 나옵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이름이 “엘” 이라는 이름입니다.  “엘”은 “강한 능력을 가진 통치자” 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엘로힘”이라는 말이 생기는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을때 그 하나님이 “엘로힘”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그 ‘엘’에서 ‘엘 엘리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이 세상의 어떤 신과 비교할 수 없는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 할 때 “엘 엘리온”이라고 씁니다.  “엘 샤다이”은 “백성의 궁핍을 채워주시고 축복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엘 올람’은 ‘영생 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엘’ 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라고 했을 때 모세가 물었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애굽에서 인도하라고 나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면 “너희 하나님이 무엇이냐?”  너희 하나님 이름이 누구냐?  그렇게 물으면 내가 뭐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럴때에 하나님께서 “내 이름은 여호와라! 스스로 있는자!” 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언약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을 때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시는데 그 뜻은 ‘나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나는 언약에 있어서는 영원하고 불변하다’  뜻으로 쓰일 때에 항상 ‘여호와’를 씁니다.

여기에서 ‘여호와 이레’ 라는 말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필요를 준비해놓으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다가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납니다.  거기에서 “여호와 라파” 는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시는 하나님’ 르비딤 싸움에서 “여호와 닛시”는 ‘승리해 주시는 나의 깃발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여호와 샬롬”은 ‘두려움과 걱정에 쌓여있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하” 인생의 초행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직접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는 “여호와 라하”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치드케누”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는 ‘거기 계시는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은 “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또, 이름이라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호칭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도나이”인데 ‘주’라는 이름입니다.  주인, 임금 이라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아버지”라는 호칭입니다.  우리를 아버지처럼 사랑하시는 그런 하나님이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네 가지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을 다 종합해보면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 백성을 책임지는 언약의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임금 되시고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대로 대접을 받게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에 맞는 영광을 얻게 기도 하라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인 것입니다.

여기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말을 칼빈은 ‘영광’이나 ‘높임’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기도하라’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이 이렇게 위대하시고 크신 하나님, 이렇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서 더 영광 받으시고 더 높임 받는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기도가 수동태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주체가 명시되어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인지, 아니면 우리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해 달라는 것인지 그것이 분명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개혁성경에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 새 번역에는 이 문장을 능동태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인간에 의해서, 우리들에 의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라는 이런 뜻입니다.
개혁성경 이전에 구역(舊譯)이라는 성경이 있지 않습니까?  구역(舊譯)에는 하나님이 능동태로 되었다가 그다음 개혁성경에는 수동태로 되었다가 다시 표준 새 번역에는 능동태로 되어져 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두 가지로 다 해석을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 36장 22절에 보면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내 이름을 더럽혀놓았다.  거기에서 더럽혀진 내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더렵혀 놓은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인간들에 의해서 더럽혀지고 짓밟힌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이 회복하옵소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하는 기도가 이 기도의 첫 번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낮춘다고 해서 낮아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부터 거룩하고, 하나님의 이름은 본래부터 높습니다.  그래서 레위기를 바라보면 전부가 다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천사가 나옵니다.  여섯 날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립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두 날개로는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의 노력에 따라서 거룩해지는 분이 아니라 본래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3장 15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9절에도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에도 보면 “여호와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과 같은 반석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99편 9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이렇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본체가 “거룩”이고 하나님 자체가 ‘거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이 인간의 잘못으로 가리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시옵소서!  하나님 자신의 거룩을 나타내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사실 종말론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속히 임하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소서!’ 하는 것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날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그날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계셨구나,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다고 하더니 위대한 분이 맞구나, 정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구나, 정말 하나님이 재림의 심판 주로 오시는구나, 하나님이 우리가 평소에 듣던 그런 하나님이구나! 그때에 모든 인류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과 거룩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드러내어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했습니까?  “마라나타!” “말 안하다” 그런 말이 아니고 “마라나타”는 ‘주님 오십니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이 첫 번째 기도는 그런 기도와 비슷합니다.  주님이 속히 재림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소서’  주님의 이름이 높임 받으시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가 이 첫 번째 기도의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셔서 우리 주님 속히 오셔서 주님의 주님됨! 주님의 거룩함! 주님의 영광스러움이 온 천하에 들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들을 통하여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로마서 2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서 우리들에 의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질 수도 있고 반대로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착하고 훌륭한 아이들을 보면 ‘누구의 집 자녀인가?  부모가 애 잘 키웠구나!’ 하고 부모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행실이 나쁘고 고약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저놈이 누구 집 새끼냐?” 그렇게 말하면서 그 자녀에게 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욕이 돌아갑니다.  자녀의 행실이 부모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삶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이 말 안에는 우리가 우리의 착한행실, 깨끗한 삶을 통해서 우리의 소금과 빛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혀 드리겠습니다.  하는 서약의 내용이 본문의 기도인 것입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황제가 부하들이 야영하는 막사를 방문했습니다.  다들 조용히 잘 지내고 있는데 어느 막사 안에서 심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말인지 자세히 들어보았더니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는 놈은 사기꾼이고,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이라고 욕을 해댑니다.  나폴레옹은 화가 나서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지금 뭐라고 했느냐!  어느 놈이 나폴레옹을 죽일 놈! 못된 놈! 이라고 욕을 했느냐!’고 하니까 당황한 부하들이 피하며 ‘우리는 폐하를 향해서 욕을 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너희들이 나를 향해 ‘사기꾼, 나쁜 놈, 죽일 놈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우리 소대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는 아주 질 나쁜 병사가 있습니다.  탈영도 하고 범죄도 한 자입니다.  우리는 그를 지금 욕하고 있는 것이지 황제 폐하를 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사실을 알아보았더니 거기에 자기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명령했습니다.
‘네 이름을 고치든지, 네 행실을 고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의 행실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 질수가 있습니다.
내 행실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 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이 기도는 ‘우리가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우리가 참되게 살겠습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겠습니다.’ 라는 서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많이 있지만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해야 되겠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결단하고, 결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높임 받았습니까?  짓밟혔습니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았습니까?  우리의 가정 때문에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 이름이 높임 받았습니까?  내 자녀에 의해서 하나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내 사업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천만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고 있습니까?

요즘 윤모라는 브로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운데 그분이 재판받을 때 아주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할렐루야!” 라고 말을 한답니다.  성경책을 탁 끼고 나와서 말입니다.  그가  듣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어려운 질문만 하면 “할렐루야!” 라고 하니까 이게 정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짓밟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도록,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면 몇 십분 동안이라도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나의 인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걸어가는 걸음걸이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입는 옷이나, 나의 머리스타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내가 먹는 음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마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차를 탈 찌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할지라도, 잠을 자도, 먹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그런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끝이 없습니다.

“내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가정의 가족끼리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가정의 경제생활을 통해서, 우리 가정의 건강을 통해서, 우리 부부 사이의 사랑을 통해서,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 가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내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내 자녀의 행실을 통해서, 내 자녀의 앞날을 통해서, 내 자녀의 신앙을 통해서, 내 자녀의 봉사를 통해서, 직장이나 사업이나 이웃이나 나라나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이런 기도를 하면 끝없이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기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통하여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이런 기도를 실감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언 4장 8절에 보면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고, 나를 영광스럽게 하고, 나를 존귀하게 만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이 기도인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것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으면 하나님의 이름만 높임을 받습니까?  자녀들인 우리의 이름도 같이 높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우리남편 잘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남편 예수 잘 믿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남편 직장 승진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해서 남편이 잘 되면, 남편만 잘 되는 것입니까?  아내인 본인도 똑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향한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가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아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좋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간다던지 높은 직위에 오른다고 하십시다.  그러면 그 자녀를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높아집니다.  아버지만 그렇게 되어집니까?  자기는 더 좋아집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라는 기도는 바로 우리 자신을 축복하시기 위하여서, 내 이름이 높아지기 위하여서, 우리의 삶이 존귀하게 되기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이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 위해서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 거룩해지기 위해서 기도하여서 자녀 된 우리까지도 따라서 그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를 보세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나라는 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높여 주고 그 나라를 높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짓밟고, 핍박하는 이런 나라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다 내려앉히고 그 나라를 낮추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셔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 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폴란드의 유명한 천재 음악가 쇼팽은 피아노를 위시해서 작곡에도 타고난 재능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가 스무 살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쇼팽아, 너는 폴란드의 자랑이 되어다오” 쇼팽의 선생님도 말합니다.  폴란드의 흙을 넣은 조그마한 컵을 주면서 “어디를 가든지 조국을 잊지말게!  이 폴란드의 흙을 네 따듯한 마음으로 사랑해주기를 바라네!  하고 보냈습니다.  쇼팽은 공부하다가 힘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폴란드의 사람이다.  폴란드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지!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그가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않습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폴란드의 이름을 높이며 살았습니다.  그는 외국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이 컵을 나의 무덤에 넣어주시오!” 라고 유언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나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내 삶을 통해서, 내 가정을 통해서, 내 자녀를 통해서, 내 신앙을 통해서, 심지어 내 죽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여서 주의 이름을 높혀 드려서 주께서 여러분의 삶을 높여 주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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