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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유의 말씀 시리즈설교 5] 귀신을 항복시키고 사탄을 떨어뜨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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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있습니다.

제가 전방 부대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대 안에 있는 간부 사택과 교회는 약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가로등도 없고 길옆 작은 야산에는 주인 없는 무덤도 있어 오싹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택에 사는 여 집사님 몇 분이 심야기도나 새벽기도 시간에 그 길을 걸어오다가 자꾸 뭔가를 봤다는 것입니다. 형체가 사람 같기도 하고 공중을 빙빙 돌기도 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그 부대에는 옛날에 어느 병사가 목매달아 죽었다느니, 하체가 없는 귀신이 부대 안에 돌아다니느니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터여서 다들 상당히 공포심을 갖는 모양이었고 교회 안은 귀신 이야기로 뒤숭숭해 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귀신같은 건 없어요. 걱정 마세요.”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귀신 정말 있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들어보세요. “하지만 아무리 상대가 귀신이라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찌어다!’라고 외치면 도망갑니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사나운 개를 만나 무섭다고 도망가면 오히려 따라오면서 물지 않습니까?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개를 노려보면 오히려 꼬리 내리고 도망갑니다. 마찬가지로 귀신도 무서워하고 도망가면 더 따라붙습니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말고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외치세요.” 과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교회 안에서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맞아 나도 옛날에 귀신을 본 적이 있어.” 하는 분도 계실 터이고 “에이, 귀신같은 게 어디 있어?”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귀신은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귀신’이라는 말은 안 나오지만 히브리말로 ‘악한 영,’ 우리말로 ‘악신’(惡神)이라고 번역된 낱말이 나옵니다. 삼상 16:14에는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또 신약에서는 ‘귀신’이라는 낱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특히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이 귀신을 내어 쫓은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귀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질병과 귀신의 역할

제가 방금 귀신은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들의 우두머리는 바로 ‘사탄’(사단이라고도 부름) 혹은 ‘마귀’입니다. 또는 귀신의 왕이라는 뜻으로 ‘바알세불’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마 12:24). 마귀 사탄은 모든 귀신의 우두머리로서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벧전 5:8) 인류 최대의 적이며 그리스도의 구원을 처음부터 방해한 원수입니다. 귀신은 이 마귀 사탄의 조무래기들로서 끊임없이 우리 성도들을 유혹하고 죄에 빠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우리를 영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죄 짓게 만들고 영적으로 약하게 만드는데 이것을 성경은 ‘시험에 든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시험에 들면 우리는 영적 무장이 해제되고 그 약한 틈을 타서 귀신이 들어와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인간은 영, 정신,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이 영, 정신, 육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약해지면 자연히 정신도 약해지고 육체도 약해져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우리 육체를 약하게 만들어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암 같은 큰 병에 걸리면 정신력이 매우 약해집니다. 나중에는 영적으로도 약해져서 신앙생활을 잘 안 하거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영과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 마음에 근심이 많으면 여기저기 아프지요?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질병은 영적인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참 많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마귀사탄은 우리의 영혼을 힘들게 하거나, 정신적으로 약하게 만들거나, 우리 육신이 병들게 함으로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병이 다 귀신이나 마귀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 드린 대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영과 정신과 육신이 연결된 존재이므로 육체에 병이 들게 되면 무엇보다 우리 영혼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정신적으로도 강해질 수 있고 결국 육신도 강해져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오늘도 끊임없이 마귀 사탄과 싸우고 귀신과 싸우는 영적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나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강건하게 지켜 마귀와 귀신을 제압하고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심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1절부터 보면 예수님은 칠십 인을 따로 세워서 각동 각처, 방방곡곡으로 둘씩 짝을 지워 파송하십니다. 주님은 이들을 보내면서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일군이 적으니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이 칠십 명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추수할 일군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칠십 인을 복음의 씨를 뿌리고 추수할 일군으로 만들기 위해 파송하신 것입니다. 요즈음으로 치면 전도훈련을 시킨 것이지요. 요즘도 어떤 교회는 전도 팀을 짜서 한 지역, 이를테면 경북 울진 지역에 보내 동네마다 파송합니다. 때로는 오늘 본문처럼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동네마다 가서 정말 맨손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전도방법을 ‘맨땅에 헤딩하기’라고 부르더군요. 아무튼 이런 전도방법은 정말 막연하기도 하고 너무 힘든 방법이라서 주님도 3절에 보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고 안쓰럽게 여기십니다. 하지만 일단 이런 전도를 한 번 해보고 나면 정말 전도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동네에 가서 집집마다 복음을 전할 때 환영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만하면 양반이지요. 심지어 어떤 경우는 심한 욕을 듣고 쫓겨나거나, 예수장이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고 소금을 뿌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들을 파송하면서 어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그 집에 평안을 선포하되 그 선포를 받아들이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할 것이요, 안 받아들이면 그 평안은 너희 것이 된다고 말씀하셨고, 어느 동네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고 박대하면 거기서 나올 때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그러면 그 거절한 동네에는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전도훈련은 나중에 엄청난 효과를 보게 됩니다. 막연한 마음으로 각 마을마다 가서 복음 전하며 때로는 박대와 핍박을 받아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지만 결국 성령이 놀랍게 역사하여 복음이 씨앗이 불모지에 뿌려지고 싹이 트고 열매까지 맺는 것을 보게 되면 누가 제일 은혜 많이 받느냐? 바로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전도훈련은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고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이만큼 효과 있는 전도훈련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잘 아셨기 때문에 칠십 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 지워 각 동네로 보내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전도훈련은 언제 빛을 보느냐? 사도행전 1:8에 보면 주님이 승천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바로 이 때 각 동네로 파송되어 전도훈련을 받은 칠십 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결국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생명 걸고 복음 전하는 전도자들이 됩니다. 예수님의 전도훈련이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제자들의 체험

그런데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0:17~20은 바로 이 전도훈련을 받기 위해 각 동네로 파송된 칠십 인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전도여행 보고를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대체 이들이 각 동네로 가서 어떤 체험을 했기에 나중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그토록 목숨 걸고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복음의 일군들이 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귀신이 자기에게 항복하는 놀라운 체험을 한 것입니다. 아마 어떤 동네에 가서 귀신 들린 자나 귀신 때문에 병든 자를 만났겠지요. 제자들은 그 귀신과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분명히 제자들이 싸워 귀신을 항복시킨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싸워 항복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귀신을 항복시키는 것은 절대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그의 권세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고를 받은 후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각지에서 귀신을 항복시키니까 그 우두머리인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사탄이 그 악의 왕 자리에서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권능에 의지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항복시키는 감격적인 경험을 한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험까지 했기에 나중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이 놀라운 경험을 바탕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고 병자를 고치면서 귀신을 제압하는 일을 담대하게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신 권세

이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남았습니다. 오늘 이 권세, 귀신을 항복시키고 사탄을 떨어뜨리는 권세를 칠십 인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19절을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창세기 3:15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마귀인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와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뱀, 즉 마귀 사탄의 머리를 짓밟고 승리할 것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인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 마귀와 귀신의 모든 능력을 짓누를 권세를 제자들에게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이름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진 제자들을 그 누구도 해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예수 이름의 권세를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특별하게 귀신 쫓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나 목회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내 이름으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능력으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마귀 사탄 귀신들은 끊임없이 우리 성도들을 괴롭히고 유혹합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힘들게 하고, 정신적으로 지치게 하며, 각종 질병으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귀신은 놀라서 항복하며, 마귀 사탄은 두려워 떨며 하늘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권세가 있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세가 있는지는 알지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 역사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명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는 은과 금은 많아졌으나 예수님의 이름과 그 권세는 잃어버렸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다른 것이 많아도 예수 이름의 권세를 잃으면 무슨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큰 소리를 쳐야만 귀신을 쫓아내는 줄 압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갈찌어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너무 큰 소리 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명령만 해도 물러갑니다. 목소리 크기나 내 능력으로 쫓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 그의 권세로 내쫓는 것이기 때문에 조용히 명령만 하면 됩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큰 소리 안쳐도 부하들은 잘 알아듣고 순종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나보다 계급이 높은 줄 아니까 그 권세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리 크기가 아니라 권위가 문제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20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여기에만 집착하면 귀신 중심적인 신앙생활이 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생활, 구원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귀신을 항복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기쁜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모든 권세를 받은 줄 믿습니다. 이런 엄청난 권세와 능력을 가진 우리가 세상에서 마귀나 귀신의 권세에 눌려 지낼 수 없습니다. 세상 유혹이나 죄에 눌려 지낼 수 없습니다. 어떤 질병이나 고민이나 문제에도 눌려 지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병이 있습니까? 실패나 상처가 있습니까? 고민이나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외치십시오. “나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모든 질병은 물러갈찌어다!” “이 모든 문제는 해결될찌어다!” “이 모든 고통은 사라질찌어다!” 그러면 여러분도 모든 문제가 물러가고 귀신은 항복하고 사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체험을 하심으로 여러분도 주의 이름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복음의 능력자, 복음의 사명자 되시기 바랍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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