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삽시다! (고후 1:12-14)

  • 잡초 잡초
  • 259
  • 0

첨부 1


검둥개 100마리가 우르르 길을 가다가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램프는 동화에서처럼 문지르자마자 '펑!' 하고 소리가 났고 이어서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왔습니다.  지니가 검둥개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겠다."  첫 번째 검둥개가 좋아하며 말했습니다.  "전 백견이 되고 싶어요."  두 번째 검둥개도 입이 귀에까지 찢어지며 말했습니다.  "전 하얗게요∼."  그렇게 99마리의 검둥개들이 소원을 말했습니다.
"전 흰 개요."  "백견요."  "하얗게요."  "백색 강아지요."

그렇게 드디어 100번째 검둥개가 소원을 빌 차례가 되었습니다.  지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넌 뭘 원하느냐?"  그러자 100번째 검둥개는 성질 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저것들 모두 검둥개로 되돌려 주세요!"

사실 개 사회에서야 검은 개 따로, 흰 개 따로 하면서 차별이 있겠습니까?  사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을 빗댄 이야기일 것입니다.  꼭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환경과 외부적인 조건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서는 이런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는 사람의 환경과 외부적인 조건을 가지고 판단하고 차별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가난과 혼혈인의 설움도 모자라 치명적인 육체적 고통까지 묵묵히 감내하면서 미국 슈퍼볼의 MVP가 된 하인스 워드의 이야기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하인스 워드는 주한 미군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흑인 친구들끼리 놀다가 어머니가 오면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에 닫혔던 마음이 열렸습니다.  지금 그는 어머니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워했고 감추려고 했던 것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신뢰의 가치, 정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글로 '하인스 워드'라는 자신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반쪽 한국인임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가 하면 하인스 워드는 선수로서는 불구나 다름없는 신체적 약점과 부상을 무릅쓰고 뛴 것으로 밝혀져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워드는 어린 시절에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를 크게 다 쳤습니다.  때문에 워드에게는 전방십자인대가 없습니다.  가난했고, 어린 나이여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바람에 인대 기능이 손실된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무릎 십자인대는 생명과 같습니다.  그러나 워드는 "울지 말자, 워드야.  나중에 슈퍼볼 정상에 올랐을 때 전 세계가 울고 있는 나를 보게 될 순간까지"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뛰어왔습니다.  하인스 워드가 지금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엄청난 가난과 멸시와 신체적인 약점을 이기고 일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우리들 주변에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삶의 좌절이나 회의와 실망, 암울한 인생의 늪에 빠집니다.  인생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가 먼저 암울한 인생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됩니다.  남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긍심을 세우는 길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긍심을 세우는 길이 무엇일까요?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믿음만이 자기 자긍심을 확실하게 해 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믿음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믿는 것입니다.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하늘의 복을 누리십시오.

모든 바른 믿음에는 확증과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셔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비전을 향해서 일어나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일어나 한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믿음이 분명하지 못하면 비전도 방향도 없이 허우적거리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흐릿한 사람은 비전과 인생의 방향도 안개처럼 흐릿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분명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두 갈래 길에서 방황만 하다가 끝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일어나 한 방향으로 달려가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불신을 버리고 믿음을 붙들고 나가야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환경을 붙들지 말고 믿음을 붙드십시오.  환경을 바라보면서 절망하고 한숨 쉬지 말고, 믿음의 주요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는 투표나 의견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도 투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또 행복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것만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내면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킴으로써 외부가 개선되게 하십니다.  세상은 사람의 외형의 변화를 중요시하지만 예수님은 본성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외부를 먼저 바꾸어서 내면을 개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참된 복은 내면의 중심이 변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기적의 열매는 변화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사고로 의식개혁과 자기 정립을 하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역사의 주역이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령의 무리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심령의 변화를 받았더니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예루살렘 도성에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성령 받고 의식변화와 체질개선이 일어나야 됩니다.  언제나 변화의 선두에 서야 됩니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담당한 사람을 보면 그 무리 가운데 그 사람의 믿음이 두드려졌음을 보게 됩니다.  기도가 두드려졌습니다.  헌신이 두드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나 환상의 결론은 언제나 변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나부터 변해야 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와 사회에서 막노동꾼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머리만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자꾸만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불행해지는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막노동꾼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자로서 막노동꾼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아골 골짜리라도 달려갈 수 있는 막노동꾼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믿음의 막노동꾼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는 사랑의 막노동꾼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는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경쟁은 결국 인간 경쟁입니다.  사람 경쟁입니다.  때문에 훈련되고 변화된 사람만이 역사의 주역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만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육신을 꾸미는 것도 변화입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도 변화입니다.  사회 제도를 바꾸는 것도 변화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변화는 하늘의 영에 의한 변화입니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갑자기 하늘의 거룩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자기 자신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자기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교회는 변화의 진원지입니다.  오늘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하면서, 종의 입술을 통하여 들려지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 변화가 없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발전을 모르는 사람은 정신적 장애인입니다.  자기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기 개혁을 해야만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민족이든 영원한 주역은 없습니다.  어느 사람이든 영원한 주인공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민족은 역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자기 개혁과 변화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은 역사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를 게을리 하거나 변화를 거부했던 사람과 민족은 역사에서 도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어떤 위기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현실을 정리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활동의 중심지가 있어야 되는데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언양 영신교회에서 이 땅의 그릇되고 죄악된 도덕 풍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같은 말과 같은 뜻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고 한 방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와 내 가정이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이 땅과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날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내 가정을 일으켜 주십니다.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정말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배우십시오.  예수님을 닮으십시오.  예수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긍정적인 약속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성취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잘 믿든 못 믿든 한 주간을 믿음으로 살면서 늘 한탄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계략과 책략 앞에 늘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법으로 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법 보다 더 계략적이고 책략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행위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들의 종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분가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을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동서남북을 가리키면서 우선권을 줍니다.  그랬더니 조카 롯은 인간의 눈에 좋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욕심 앞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를 키워주고 돌보아주었던 은혜도 인간의 욕심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인간의 지혜와 욕심을 따라 선택했던 그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아브라함이 차지하게 된 땅은 훗날에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하만의 대결을 보십시오.  어느 날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민족을 멸하기로 작정합니다.  인간적인 지혜와 잔꾀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높이 세웠던 그 단두대에 결국 자기가 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때로 우리의 환경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지혜와 방법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인간의 잔꾀와 욕심 앞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행동해야만 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제일 되고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모든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시대적인 복 주심이 나를 통하여 세상으로 흘러 넘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서의 귀한 삶이 될 수 있는 길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이 나를 통하여 가정과 세상으로 흘러 넘칠 수 있게 하십시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에 눈을 뜨시기를 축복합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삶에 눈을 뜨시기를 축복합니다.

부탁합니다.  인간적인 잔꾀나 재주나 지혜로 세상을 살지 마십시오.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 하나님의 사람아!"  성경에 보면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제는 기독교인 가지고는 안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종교꾼으로서는 안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에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의 체취가 물씬나는 사람 속에 자신을 채우시고 나타내십니다.

지금 이 시대는 마치 기아가 빠진 자동차처럼 행위와 태도의 통제가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음속에서 격동시키는 대로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절망합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마음을 격동시키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심령의 감동과 감화를 받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체취가 물씬 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태도와 행위가 마치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행위로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행위라는 말은 한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의 전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행위는 내적인 삶의 표현입니다.  결국 행위란 속 사람의 표현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미움과 분노가 쌓여 있으면 그 미움과 분노가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속 사람을 감정에 따라서 너무 쉽게 격동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 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합니다.  속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 믿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가 있는 것은 원리부터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선한 행위는 선한 성품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애시당초 속에서부터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질대로 살려고 하지 말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성품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목사인 저로서는 여러분들에게 가장 쉬운 인생의 길을 제시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갔던 가장 위대한 길을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옛 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과정이야 어떠해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빠른 성장 안에서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그런 의식이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해도, 사기를 쳐도 목표만 달성하면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서울을 못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가야 합니다.  바르게 가야 합니다.  존경을 받으면서 가야 합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인간의 계략과 잔꾀를 동원해서 '모'로 간다면 가면 갈수록 문제입니다.  크면 클수록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모로 가기보다는 돌아서 좀 더디게 가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로 가야만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통제된 행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내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이 우리의 자랑이라"

바울을 보십시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인간의 잔꾀와 재주를 부리려면 얼마든지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두 분토와 같이 내어버리고 사람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삶에 들어가게 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잔꾀와 책략에 의지해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강같이 흐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기 위해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이십시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이, 우리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이 소망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소망이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의 주, 심판의 주로 오셨을 때에 "주님, 저 집사님이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라고 예수님께 자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날에 "오주철 목사가 우리 목사님이셨습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예수님께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서로가 자랑거리가 되는 아름다운 관계가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강같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을 경쟁과 질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을 미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가게 됩니다.  서로가 받쳐주고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 무는 관계가 된다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단의 저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자랑거리로 여기는 은혜로운 공동체가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라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만약에 여러분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서 단호하게 떠나십시오.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사람에게로 흐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은혜로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교회의 일에 막노동꾼이 되셔야 합니다.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셨던 예수님처럼 성도를 섬기는 일에 주저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왜 갈등하고 싸우고 시험에 들고 상처를 받습니까?  서로가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려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섬기려는 사람에게는 싸우거나, 갈등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른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고 갈등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있어도 피곤하고 짜증만 납니다.  왜요?  대접받으려고 하는데 대접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른 자리를 찾는데 그 자리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피곤하다고 엉뚱한 소리만 하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가십시오.  그리고 내 입술에 있는 모든 비난과 정죄의 말들을 제거하고, 남을 자랑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복되게 사는 길은 서로가 서로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 심령에 천국을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덤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살고,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적절한 때에 높여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기 위해서는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교인들을 향해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자신의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고 충성되게 사명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충성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변치 말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변치 말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변치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첫 사랑과 첫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했다"는 말은 헌신과 희생을 말합니다.  밭가는 소는 밭고랑을 내고 또 돌아서서 또 다른 고랑을 내는 습관적인 행로를 아무런 불평없이 충실하게 감당합니다.  소의 방향은 전적으로 주인의 뜻에 달려있습니다.  주인이 가자는 대로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이십니까?  저는 분명히 고백하건데 제 인생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되신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하면 불같이 뜨겁고 생명력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열정이 회복됩니다.  무엇에든지 열정적인 사람이 창조적인 일들을 만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르고 나타한 사람에게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사명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예수를 위해 제대로 한번 미쳐보십시오.  아십니까?  예수께 미친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결코 한 점의 아름다움도 지킬 수 없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방법이나 수단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교묘하게 행동하거나, 환경의 변화에 약삭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바람개비처럼 방향을 바꾸거나, 남이 알지 못하도록 자신을 회칠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방법이란 꼭 한 가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자유를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지혜는 늘 불안을 줍니다.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절대 해방감!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타난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와 협력과 인정을 얻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연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에게서 동정 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지와 협력과 인정을 받으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믿음으로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시야를 넓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의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