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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은혜 (딤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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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창 6:5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말씀은 노아가 살던 시대의 형편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의 죄악이 세상의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 하였습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죄악이 관영하고 더러운 시대이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얼마나 시대가 악하고 더러웠으면 짐승과 하늘에 나는 새들까지도 다 죽이려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그와 같은 세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하는 것입니다.
노아뿐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은혜의 생활을 하신 분들은 모두 악한 시대에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분들입니다.
아브라함도 캄캄한 시대에서 살았기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떠날 때에 갈 바를 모르고 떠났다 하였습니다.
또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은 시대에 상관이 없이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볼까요?
그가 환경이 좋았던가요?
유학을 갔던가요?
아니잖아요.
노예 생활을 하려고 갔습니다.
종으로 팔려갔단 말입니다.
심지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소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악한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생애는 어떠합니까?
남자로 태어나면 다 죽여 버리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는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다가 목이 잘려 나갔고 우리의 대속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시대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한마디로 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신앙생활이 돈이나 많이 벌고, 세상에서 출세나 하면서 최고의 생활만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분이 백화점 2층에 옷값을 보니까 쇼 윈도우에 230만원이라고 적혀 있길래 너무 놀라니까 같이 가신 분이 그러더래요. 이상하다. 혹시 액수를 잘못 보신 건 아니세요! 하더랍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옷 한 벌에 230만원이나 하려고 하고 액수를 다시 보니까 0하나를 그만 빼 버렸다는 거예요.
그럼 옷 한 벌에 얼마라는 겁니까?
너무나도 놀라하는 집사님에게 또 그분이 말하기를 집사님도! 비싼 것은 1억도 넘는 게 있어요. 하더랍니다.
그런 옷을 입어야만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린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세에는 세계 도처에서 여러 가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실에 귀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바람을 보면서 아! 오늘의 날씨가 좋겠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겠다하면서 천기는 분변하면서도 주님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있습니다.
기계의 문명이 너무나도 발달이 되었습니다.
육신으로는 휴대폰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이상하죠?
마음이 이 마음은 왜 그렇게도 불안합니까?
마약은 더 창궐하고요,
깡패는 더욱 많아지고요,
술은 더 잘 팔려 나가고요,
젊은이들 뿐 아니라 이젠 아주머니가지도 남편 말고 다른 남자를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2명 정도 거느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현상이, 현대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요 종합적인 동물입니다.
정신을 지니고 있기에 교육이 필요합니다.
또 사람은 몸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음식도 있어야 하고요,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은 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그 어디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 그건 손으로 하늘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만 명을 돌파한 왕의 남자! 연산군보세요!
아무리 장녹수가 그 품안에 안아 주어도 공길이가 나타나니까 그 마음이 홀라당 빼앗겨 버리지 않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비 인간스러운 모습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과장하고,
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원한을 풀지 않고,
비방하고,
절제가 없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누구처럼?,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너는 이와 같은 사람에게서 돌아서라.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너는 돌아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간구해서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넌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도 “믿음의 착한 양심을 가지라” 하였습니다.

파도가 거셀수록 나침반이 정확해야 합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산 속일수록 나침반이 정확해야 합니다.
요셉은 자그마한 것까지도 성결하게 살았습니다.
다니엘도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에스겔의 생활도 그랬습니다.
세상을 탓하지 마세요.
내가 깨끗해야 합니다.
나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죄를 무섭게 책망하였습니다.
죄에 참여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악한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정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영혼과 생활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회개를 받아들이며 다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예레미야를 보세요.
그가 그 당시의 죄악을 얼마나 무섭게 질타하였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을 위하여 또 얼마나 울었던가요?
용서는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줄 때에 비로소 용서할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을 때 용서하세요.
평생토록 원수는 내 마음 속에서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죄악의 시대에 살면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매우 단순한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최선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쁨이 넘쳐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셔서,
죄악에서 돌아서고,
죄악 된 세상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시면서 많이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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