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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 (눅 6: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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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영화 「간디」는 20세기의 위대한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그린 영화로 깊은 감명을 준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은 벤 킹슬리 라는 배우가 맡았습니다. 그의 외모는 간디와 매우 비슷하고, 촬영 전에 많은 준비를 하여 간디의 삶을 연기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는 간디가 생전에 살았던 곳, 방문했던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연구했습니다. 심지어 간디가 손으로 돌리며 솜에서 실을 빼내던 목화실 기계의 사용법까지 익혔습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의 역을 맡아 최대한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나타내려고 성심성의를 다하여 준비했던 것입니다.

한번은 인도의 남쪽에 있는 도시인 델리에서 촬영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데 그 마을의 한 여인이 킹슬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킹슬리 앞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킹슬리는 당황하여 자신은 진짜 간디가 아니고 배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연기를 통하여 그분이 정녕 다시 살아났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참된 것은 흉내만 가지고는 만들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주인공과 하나가 될 때에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찬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흉내 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과 하나가 됨으로서 좋은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누가복음 6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A.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4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못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를 맺는 나쁜 나무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는데 비슷한 말입니다. 이 외에도 “그 뿌리에 그 열매”, “그 아버지에 그 아들”등이 있는데 모두 나무가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짓은 위장할 수 있으나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위선을 강력하게 경계하셨습니다. 위선을 뜻하는 헬라어는 “휘포크리테스”인데, 배우 또는 연극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도의 삶이 흉내 내는 연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지 않더라고 진실하면 됩니다. 가장된 완벽보다는 서투른 진실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구제의 위선도 경계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구제를 경계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제할 때에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기도나 금식에 있어서도 위선을 경계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가식으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진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B.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4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유사품을 경계하셨습니다. 모양이 같더라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는 그 열매를 먹어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표현법에는 4가지를 열거할 때는 대각선으로 연결됩니다. 가시나무는 포도에, 찔레는 무화과에 연결됩니다. 즉 가시나무와 포도의 열매의 유사성을 경계하셨고, 찔레와 무화과의 유사성을 경계하셨습니다. 열매와 꽃에 모양에는 유사성이 있으나 그 열매를 먹으면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유사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빛이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의 열매가 있어야 빛의 자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참 크리스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흉내 내거나 유사품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하나가 되어 이제는 그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C.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4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여” 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주여”는 거짓 고백이 됩니다. 더구나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가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 테네시 주의 동쪽 작은 마을에 벤 후퍼 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체구도 작았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던 까닭에 동네에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를 놀렸고 멸시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어려운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가 교회에 처음 나간 것은 12살 때였습니다. 새로 오신 목사님이 자상하다는 소문을 듣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벤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 했습니다.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조용해지면서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알겠다. 네가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호기심에 굳은 표정으로 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 이 말에 벤 후퍼는 당황하여 빠져 나가는데 목사님은 그의 등을 향해 “이제부터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후퍼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아들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성장하여 훌륭한 크리스찬으로서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고 일을 잘하여 재선까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훌륭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R.A 토레이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많은 번역이 있는데 가장 훌륭한 번역은 나의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성경을 삶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말로 하는 해석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말을 해석을 잘 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말씀대로 살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D. 좋은 열매를 맺어야 삶이 든든합니다

47-49절의 말씀을 같이 봉독합시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도 이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반석을 강조했습니다. 반석이신 예수님을 기초로 인생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반석을 강조하면서도 깊이 파고 잘 짓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즉 반석이신 예수님을 기초로 하여 인생의 집을 짓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좋은 열매를 맺어야 든든하게 됨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따르는 사람들의 삶을 든든하게 하십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를 비롯한 윌로우크릭 교회의 스태프들은 초기에 편향된 가르침을 주다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듣기 쉽게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다가 거룩성이나 심판을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하이벨스 목사가 죄의 문제를 건드리려고 하니까 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반발하였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교회 리더들의 절반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체험했습니다. 그 후 하이벨스 목사는 카펫을 쥐어뜯으며 회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거룩성과 사랑을 동시에 강조하는 균형 잡힌 설교를 하였고 정직과 투명성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만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거룩성과 죄에 대한 회개를 가르쳐야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지금도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는 백악관을 건축하고 처음으로 입주한 대통령입니다. 그는 백악관에 입주하기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쓰면서 “앞으로 백악관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슬기롭고 정직하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을 때 “예수님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리셨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 후 100여년이 지나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애덤스의 기도문을 백악관 식당의 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기초위에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가장 든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을 때 가정도, 나라도 든든하게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황광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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