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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증인의 삶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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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신.구약 66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보면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주로 신약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중요하지만, 이처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출판사에서 발행한 성경책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것과 구별해서 아예 붉은 색으로 인쇄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버릴 게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진리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욱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 ” 이런 표현이 붙어 있는 말씀들입니다.(요5:24 등)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남긴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해 보면 끝으로 갈수록 비중 있는 말씀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직전에 하신 말씀,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 등이 특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 직전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 즉 유언인 셈입니다. 사람이 헤어질 때 혹은 죽을 때 남기는 유언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정말 중요한 한 마디를 남기고 가는 겁니다. 일개 인간이 남기는 유언도 이렇듯 중요하다면 예수님의 유언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심지어 암송하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자신을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저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 전임 사역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 이 말씀의 수신자 위치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즉시입니다. 물론 불을 붙였을 때에는 작은 불꽃이라 희미할지 몰라도 나름대로 빛을 발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도 이 말씀을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되고, 영원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오늘 말씀이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시면 승천 직전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하는 장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실망에 빠져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 그들이 예수님 부활 후 다시 모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6절 보면,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새 이스라엘, 다시 말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7절~8절입니다. “ ...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

  그리고 그 직후 하늘나라로 승천하십니다. 멍하니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두 천사가 확인해 줍니다. 11절.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그 날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마28:18~20 등과 더불어 예수님의 유언적 말씀으로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흔히 이 말씀을 뭐라고 지칭합니까? 지상명령(至上命令) 혹은 대명령(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겉으로 볼 때만 축복으로 보이는 말씀만 지켜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씀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니, 이런 말씀을 더욱 더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축복된 신앙생활, 영광스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요구하는 바 증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1] 증인의 삶의 의미

  ‘증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 말은 본래 법률 용어로 ‘듣고 본 내용을 증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이란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등)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지옥 갈 영혼이 구원받고 영생과 천국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예를 들어 대형 참사가 발생되었을 때 사망자와 실종자 틈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사람들의 명단이 뜰 때 그 이름을 보고 가족들이 어떻게 합니까? 만세를 부르며 야단입니다.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는 것은 이보다 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을 가리켜 ‘복음’(Good News)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동시에 특권입니다.

[2] 증인의 삶의 당위성

  우리가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게 왜 당연합니까? 왜 필수적입니까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① 복음 증거가 구원의 방법이기 때문 :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무슨 말씀하셨나요? 요19:30  “다 이루었다!” 이 말은 본래 상업 용얼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죄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속죄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실제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기 위해서는 전파되어야 합니다.
 
  연전에 필리핀 군도 밀림에서 일본군 장교가 발견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전쟁 중인 줄 알고 산 속에서 숨어 지냈던 겁니다. 그가 패잔병의 모습으로 고생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미 전쟁을 끝났지만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속죄를 완전히 이루어 놓았어도 각 개인이 구원받고 영생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위해서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객관적인 구원’을 이루신 겁니다. 그것을 개개인이 ‘주관적인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복음 증거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증거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롬10:13~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②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빚진 자이기 때문 :
  우리는 무엇보다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내가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복음을 증거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분이 누굴까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 ...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은 나에게 복음을 증거해 준 전도자입니다. 나를 위해 눈물 흘려 기도했고, 전도했고, 양육했던 분들의 노고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처럼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효도가 당연한 인간의 도리인 것처럼 복음 증거는 성도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3] 증인의 삶의 구체적 방법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증거할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봅니다.

 ① 전도와 선교 :
  8절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다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는 가까운 동일 문화권입니다. 그 범위 내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켜 ‘전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와 땅끝은 언어, 문화, 관습 등이 다른 타문화권입니다. 이처럼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선교’라 지칭합니다. 국내에서도 특수한 환경이나 문화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는 선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군 선교’ 등이 그런 예입니다. 

  ② 입술의 증거 :
  복음 증거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직접 입술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을 만나서 보고 느낀 대로, 체험한 대로 증거하면 됩니다.

  ③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나의 주장을 펴거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아닙니다. 8절 “ ...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 ” 성령님이 복음 증거의 주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증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됩니다. 

  난치병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병상에서 고통 받던 중 복음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까 여전히 속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출석하지도 못하고, 전도와 봉사 등의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과 성도들이 심방을 왔습니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알게 된 목사님이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자매님,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밖에 나가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죠. 하지만 자매님의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음을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대신 기도하십시오. 병상에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 예배도 드리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마을에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교회에 나옵니다. 한편 소녀는 부쩍 교회 상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누가 새로 교회 나왔는지 캐묻습니다. 수개월 후 안타깝게도 소녀는 회복되지 못한 채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베개 밑에서 56명의 명단이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 앞에 붉은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녀는 병상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씩 응답되어 마을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다른 어느 사람을 통해 복음이 증거됐겠지만, 소녀의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께서 배후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④ 인격과 삶, 사랑과 섬김을 통한 감화 :
  가까운 사람일수록 복음을 증거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정말 조심스럽습니다. 입술의 증거보다 행동의 증거가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로서 본이 되는 모습 보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베풀고 섬기고 사랑을 줌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열어야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 증거의 노력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성령님이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증거 :
  복음은 항상 증거되어야 합니다. 딤후4:2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도가 참 어렵습니다. 전도의 시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 똑똑해지고(?) 심령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증거해야 합니다. 기회를 만들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복음 증거는 시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상대방의 인생도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바로 지금이 복음을 증거할 때입니다.

  구 소련 스탈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시베리아의 한 수용소에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용소에 ‘보리스 콘펠드’라는 유대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수용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일이 맡겨졌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건강 진단이지만 사실은 의사의 권위를 빌려 모든 사람을 강제 노동현장으로 내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병에 걸린 사람을 건강하다고 허위 진단하면서 양심의 갈등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 중환자로부터 복음을 듣게 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평안한 모습으로 오히려 자기에게 질문하는 것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는 겁니다. 결국 그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자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담대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를 만나 진단하다가 암환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동 현장으로 보내지 않고 정성을 다해 치료해 줍니다. 그 젊은이는 묻습니다. “선생님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실 어떻게 저를 이렇게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질문 앞에 의사는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바로 그날 밤 그 의사는 수용소 간수에 의해 처형됩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젊은이 역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솔제니친입니다. 만일 그날 밤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솔제니친은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⑥ 순교를 통한 증거 :
  하나님은 때때로 순교의 방법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게 하십니다. 순교는 역설적으로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복음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목숨 바쳐 복음을 증거하다가 죽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것 은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8절에 나오는 ‘증인’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말튀스’인데 이 단어가 나중에 영어의 순교자 (martyr)라는 단어로 굳어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복음을 증거하다가 수없이 순교했습니다. 당시는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곧 순교를 감수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공산권이나 모슬렘권에 많은 순교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1년에 전 세계에 15만 명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붙잡혀 죽지 않아도 오지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 목숨을 바치는 분들까지 합치면 순교자의 수는 더욱 많아집니다.
 
  지난 2월 1일 아프리카 부르기나 파소에서 사역하던 허태준 선교사(불어권 선교회 소속)가 미전도 종족 정탐을 다녀오다 차량 전복 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며칠 전 차드 선교여행 중 우리 교회 양승훈 선교사와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기가 막힌 일입니다. 차드에서 단기 사역을 마치고 파리에 나와 1박을 하는 동안 비보를 들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차드에서는 그렇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데, 왜 그 선교사는 하나님이 데려가셨는지! 그 선교사는 38세의 젊은이요, 다재다능한 분입니다. 불어도 잘 하고, 찬양도 잘 하고, 기도도 뜨겁게 하고, 성격도 상냥하고, .... 얼마나 아까운지! 사모님과 어린 딸, 태중의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조금은 하나님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목사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 현지인들이 큰 감동을 받고 선교사와 현지 교회가 하나 되어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묘소도 크게 조성해 주고 ... 유족들도 위로받고, 불신 가족도 돌아오고, 파송 교회도 더욱 선교에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순교를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한국교회도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의 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오묘하게 구원의 역사를 이뤄 가십니다. 그래서 주님 재림 이전까지 모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4] 증인의 삶의 축복과 영광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흘려듣지 마십시오. 증인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특권입니다. 증인의 삶을 살면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눅15:7 참조) 그리고 내가 증인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내 일을 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도 승리합니다. 더 나아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빛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 것은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간 삶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에서 늘 하는 일이지만 1대 1 구원 운동을 펼칩니다. 한 영혼을 품고 주님께 인도하는 이 일에 모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의 일’입니다. ‘교회 일’만이 아닙니다. ‘내 집 일’입니다. 부디 이 말씀 새기시고 증인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이 땅에서 승리하시고 저 천국의 영광을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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