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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요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고후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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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해 “물질은 악한 것이다. 고로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신령하지 못하며 가난하고 청빈하게 살아야 거룩하고 신령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고 하셨습니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50:10)
모든 물질을 지으신 하나님은 신령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질에 부족함이 없고 신령하고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 그러면 가난은 어디에서 왔는가?

에덴동산에는 가난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부요하고 풍부한 환경 속에서 살도록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반역했기 때문에 에덴에서 쫓겨나고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2. 가난은 복인가 저주인가?

일제 36년 동안 수많은 조선인들이 가난 때문에 조국 땅을 떠나 간도로 이민 갔고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33.7세였다가 70년 후인 2004년 현재 평균 76.5세로 무려 43년이나 늘어났습니다. 현대는 그 때보다 경제적으로나 생활수준으로나 엄청난 발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재앙을 연구해 온 헤럴드 포스트는 6.25전쟁을 세계 역사 중 제4의 대재앙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은 신령과 거룩과는 상관없고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으며 가난과 굶주림은 엄청난 재앙이요, 저주입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7:9)
물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가난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지만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3.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난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을 꾀한 것으로 스스로 자처한 형벌인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예수님은 풍찬노숙을 하시면서 가난하게 사셨던 이유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심지어 주님께서 저주를 받으면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기원은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강건하고 범사에 잘되는 것입니다.

4. 신령하면서도 부할 수가 있는가?

부한 사람은 신령하면서 영적이면서 부할 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의 순서를 바로 하면 모든 물질을 소유해도 신령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먼저와 나중의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는 영원한 것을 먼저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삶의 절대 주인으로 모시면 신령하며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셨으므로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10)
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소유를 반드시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많이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든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6~7)
하나님은 우리 생애 속에 심는 것을 보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영적으로도 생명으로 심으면 생명으로 거두고 사망으로 심으면 사망으로 거둡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질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물질이 있으면 물질에만 애착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헌금과 구제에 풍부히 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실 때는 아낌없이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물질에게 끌려 다니는 인생은 비참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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