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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라! (창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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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돈을 버는 것보다는 돈을 관리하는 것이 더욱 어렵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귀하지만 은혜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귀중합니다.

사무엘상 19:24절을 보면은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에는 벌거벗고 예언을 할 정도였습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임직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소멸시키고 말았습니다. 말년에는 사무엘의 옷자락에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을 하기도 했습니다.

삼손은 나실 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나라와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나중에 실수하여 나실 인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두 눈이 뽑혀 다곤 신당에서 맷돌을 돌리는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끝까지 은혜를 유지했던 아브라함의 생을 연구해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은혜를 받고자 하여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구원사역에 의하여 은혜를 주셨습니다.

1)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이었습니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 창세기 9:26-27절에서“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 후 셈은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의 후예 스룩은 나홀을 낳았습니다. 나홀은 데라를 낳았고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담의 21대 손이며, 노아의 12대손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중에 “셈파”에 속하며, 셈의 11대 장손입니다. 셈의 11대 장손이라는 말은 축복받은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듬뿍 담겨진 셈의 후손이라는 말입니다. 

2) 아브라함은 갈대아 사람이었습니다.

갈대아(Chaldea)는 남 바빌로니아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페르시아 만과 바빌로니아의 최남단 도시들 사이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갈대아인(Chaldean)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주변 국가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갈대아인들의 독립된 관습과 문화, 민족성이 유지되었습니다.

갈대아 인들은 세금 내는 것과 부역하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자기 부족을 넘어선 어떤 조직체에도 충성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도시의 부유한 자들을 약탈하고 대상들을 습격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갈대아인들은 모든 도시 문명사회에 타고난 적이었습니다.

갈대아인들의 통치자들은 주변 국가들과의 투쟁방법을 통달하고 있었습니다. 갈대아 인들의 거세고 교활한 통치자들은 부족 간의 밀통과 게릴라 전법과 갑자기 공격하고 후퇴하는 전법과 적과 맺은 조약을 완전히 무시하는 전법으로 다른 세력들에 대해 가장 위협적인 적수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2세기에 걸친 승리와 패배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통치자들은 애굽과 길리기아까지 뻗어나간 바빌로니아 제국을 이루고 이 제국의 확고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갈대아인들은 노아의 아들 셈파의 순수한 혈통을 지니고 있었던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었습니다. 그 민족이 조만간 주변의 제국과 열국으로 흩어져서 아랍민족으로 혼합이 될 것이 뻔했습니다. 

3) 아브라함은 귀족 출신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에서 가장 크고 유명했던 도시 우르(Ur)출신이었습니다. 그곳의 유지 데라(Terah)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아브람, Abram”이었습니다. 그 뜻은 “귀족의 아비, 지체높은자의 조상”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름만 보아도 아브라함의 아비나 조부는 상류층의 지도급에 속하는 신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4) 아브라함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가 주변 국가들에게 흩어져 혼합되기 전에 아브라함의 가정을 우르(Ur)에서 분리시켜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救贖事役)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에는 바벨탑 이후 전형적인 고탑 신전인 지그랏(Ziggurat)이 있었습니다. 언덕에는 두 개의 신전인 ❶ 달 신전(Nannar)과 달 여 신전(Ningal)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가장 번성했습니다.
                    <지그랏 신전>

여호수아 24:2절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의 동족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릴 적에 우상숭배를 거절하다 박해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계시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창세기 5장과 11장의 숫자로 보아 노아는 아브라함이 출생할 때에도 살아 있었고, 아브라함은 조상 셈으로부터 노아 홍수와 아담과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배웠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❶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의 첫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7:2-4절에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고 설교했습니다.

❷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재확인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 숭배를 벗어난 나라를 세울 땅을 찾아 길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면서 무조건 하나님을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히11:8). 그리고 아비를 따라 하란에서 정착했습니다.

하란은 우르의 서북쪽 960km, 가나안의 동북쪽 640km에 위치한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란은 이미 개척된 곳으로 바벨론, 앗수르, 수리아, 소아시아, 애굽과 통하는 길이 있었고, 대상과 군인이 계속 통행했습니다.

이미 하란은 우르와 다를 바가 없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란에 머무는 것이나 갈대아 우르에 머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세기 12:1-3절에 여호와께서 아르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➀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➁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➂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아브라함은 은혜를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예정과 선택은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은혜도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5대 교리를 주장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불가항력적인 은혜(Irresistible Grace)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자 하시면 거절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성장시키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생활은 스스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현실 안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1)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입성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갔다고 다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혜 생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창12:1-5).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에 들어온다고 하여 신앙생활이 다 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은혜생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학습 받고, 세례 받는다고 다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2) 아브라함은 세겜 땅에 머물렀습니다.

창세기 12:6-7절에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라고 말했습니다.

3) 아브라함은 벧엘 동편 산에 장막을 쳤습니다.

창세기 12:8절에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말했습니다.





4)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에 장막을 쳤습니다.

창13:18절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받은 은혜는 “❶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보이는 땅을 영원히 주리라(창13:15). ❷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창13:16). ❸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그것을 주리라(창13:17).”라는 축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점점 더 확실해 졌습니다. 점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은혜생활도 점점 더 발전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점점 더 확실히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신앙생활, 은혜생활도 분명해야 합니다.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 생수의 강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스며 나오는 물이 4천척을 흘러가면서 큰 강이 되어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은혜생활의 성장을 말해 줍니다.

3. 아브라함은 은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80세에 롯을 구하고 멜기새덱을 만났습니다.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99세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습니다. 10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137세에 사라가 죽었습니다. 160세에 야곱이 태어났습니다. 175세에 죽었습니다.

1) 은혜를 뺏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려 할 때에 전쟁이 터졌습니다. 시날(바벨론 전지역)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우르 근처의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위치한 Larsa)왕 아리옥과 엘람(이란 남부의 고원에 위치했던 나라로 수도는 Susa)왕 그돌라오멜과 고임(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약탈하던 떼거리)왕 디달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바벨론 연합군이 가나안으로 진격하여 가나안 연합군을 격파하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부녀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318명의 가신을 데리고 다메섹 호바까지 따라가서 바벨론 연합군을 격파하고 롯과 그의 가족들과 재물을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정예부대원 중 318명을 데리고 갔으니 장막에 남겨 둔 자들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줄잡아도 아브라함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군사가 500명은 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500명의 군사들과 그들의 가솔들을 합치면 2.000명은 족히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이 히브리족의 왕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은혜의 약탈자들이 있습니다. 은혜의 약탈자들을 대적하여 막아내되 은혜를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정착도 하기 전에 기근이 심했습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뺏으려고 했습니다(창12:10-20).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 땅에 다시 흉년이 들어서 그랄로 내려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습니다. 거기서도 아내를 뺏길 뻔했습니다(창20:1-18).

애굽이나 블레셋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이 아닌 곳에서는 언제나 위험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은혜생활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이했습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계시를 받은 그날부터 3일 3야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날이었으며, 요나의 고기뱃속의 날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이삭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3일 3야의 무덤속의 날을 예표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네 씨로 하늘의 별같이 땅의 모래와같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들을 죽인다해도 하나님께서 도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은 이삭의 생명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들었을 때 이삭을 대신 할 양이 나타났습니다. 믿고 행동할 때에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믿음의 결단이 있는 곳에  여호와이레의 축복도 나타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희생을 해야 할 때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은혜를 유지하지 못하고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삭이라는 제물도 없이 모리아 산으로 향하기도 하고, 모리아 산에서 칼도 없이 제물을 드리는 시늉을 하기도 합니다. 눈가림의 제단에는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여호와이레의 희생 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은, 땅의 모래와 같은 축복의 음성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끝맺는 말

아브라함은 예언을 하지도, 시편의 노래를 지어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선포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소개된 많은 성자들 중 유일하게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사41:8).

그것은 그가 받은 은혜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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