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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 (출 8: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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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주에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제목으로, 오늘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 그런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편안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것 너무 힘들지 않냐?”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냐?”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결론부터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그런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데요......

6․25때 인민군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골라 즉결처형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심문차례를 기다리던 목사는 속으로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목사라고 말해버릴까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원수 앞에 설 때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아라.” 는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인민군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오?"
목사는 자신 있게 "나는 약장수 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무슨 약을 파오? "하고 인민군이 재차 물어왔습니다.
목사는 "구약과 신약을 팝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인민군이 무슨 말인지 몰라 골똘히 생각하는 척 하더니 "통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편하게 믿으라는 유혹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3일길 되는 광야에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는 요구를 합니다. 이에 대해 바로는 타협을 하자고 합니다. 제사를 드려라 그러나 편하고 쉽게 하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과 1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흘 길을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여러 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구출해서 가나안 땅까지 데리고 가려는 계획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정속에 사흘 길은 고센에서 시내 산까지 가는 거리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훈련시키시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이 성막도, 거기서 예배드리면서 이렇게 예배를 드려라” 라고 알려 주시잖아요.
그런데 애굽땅에서 시내산까지 가는데 사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사흘길을 인도해 가심으로 이들에게 가르치시려고 합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한번 가봐라’ 하나님은 연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리허설을 시키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하나님의 구출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이고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마귀가 얼마나 교묘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마귀가 유혹 하기를 “뭐 거기서 드릴 이유가 있느냐. 제사만 드리면 됐지” 제사를 드리는 것을 못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렇게 저렇게 드려라 ”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려는 바로의 유혹이 4가지가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고 합니다(8:25).
두 번째,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8:28).
세 번째, 장정만 가라고 합니다(10:11).
네 번째,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합니다(10:24).

첫째, ‘이 땅에서 예배를 드려라’이다

출8장25절을 보게 되면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라고 하십니다. 동물들을 숭배하는 애굽땅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요구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물들을 숭배하는 애굽의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라는 겁니다. 성경의 역사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 사람의 방법대로 하는 제사가 있습니다.

열왕기상12장을 보게 되면 솔로몬왕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쪽은 유다라고 하고 북쪽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쪽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민족들이 남쪽에 내려가서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쪽을 다스리는 여로보암이 백성들이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것을 막습니다. 혹시 이들이 유다의 사람들이 될까 걱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남쪽에 첩자들이 와서 북쪽을 무너뜨리면 어떻게 하는지.....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북쪽의 민족들을 위해서 “너희들 예루살렘까지 가지 말라. 뭐 그렇게 수고할 것 뭐있냐? 내가 너희들이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는 그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금송아지 2마리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는 벧엘에 또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것이 너희를 애굽땅에서 구출해 낸 하나님이다” 이 형상을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왕상 12:28-30에 보면 “(여로보암이)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성경이 해석하기로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이렇게 이런 금송아지를 섬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출32장에 보면 모세의 형 아론도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모세가 이 금송아지를 때려 부숩니다. 출애굽기 32장 5절을 보게 되면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에 화가 나셔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하고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금송아지를 놓고 하나님이라고 하고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끔 장례식을 가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사상을 차려놓고 그리고 예배를 드려달라고 합니다. 물론 그 가정의 형편과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을 일입니까? 이런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해 놓고 나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나님도 믿고 석가도 믿고 두루두루 믿으면 못할게 뭐 있겠습니까? 그런 겁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교인은 예배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는 교회를 보고 예배 공동체라고 하지 않습니다. 봉사공동체라고 합니다. 봉사하는 게 뭐 있냐고 합니다. 너희 예산에 봉사는데 얼마나 쓰느냐? 여러분, 예배하는 사람이 교인이고 예배드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중요한 겁니다.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 “너희가 너희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라 우리의 삶으로 봉사해라” 그 얘기입니다. 그것도 예배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일부만 빼서 교회가 봉사 단체인 것처럼 그것 때문에 비판하고 그것 때문에 판단하고 그것 때문에 주눅들어 있다면 그것이 금송아지랑 다를 바가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의 의무 중 첫째가 예배 참석입니다. 둘째는 헌금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치리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인 것이 예배자, 즉 예배드리려고 교회에 모이는 것이며,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요 성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마치 교회요, 이것이 마치 하나님을 믿는 것 마냥 생각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금송아지보고 예배드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8:28).

28절 말씀 우리가 한목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아멘
중간 쯤 가라는 것입니다. 광야와 애굽의 중간, 하나님과 바로의 중간,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광야와 바로가 있는 바로의 명령에는 애굽의 중간에서 제사를 드리라! 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중간이 있다고 봅니까? 하나님과 세상의 중간... 쉽게 말하면 너무 지나치게 믿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적당히 믿자, 광신자가 되면 어떻게 하냐는 겁니다. 중간쯤 하라는 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예수 믿으려고 하면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예수 믿는 것 좋지 그러나 너무 깊이는 들어가지 말라구” “깊이는 빠지지는 말아라” 그런데 이런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세요. 아브라함과 고향땅을 떠나서 큰 결단을 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돔과 고모라성에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소돔과 고모라성에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근처로 가서 살다가 점점 더 가까이 간 것입니다. 그 결과 유황불로 망하게 됐습니다.

바울과 함께하던 이들 중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 4:10)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22에서 말한 대로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한 것과 같습니다. 계시록에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토해 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합니다. 모양을 가지고 있으면 죄는 또 다시 찾아옵니다.

시편1편에 "죄의 길에 서지 말라"고 하잖아요! 죄의 길에 서 있으면 죄를 짓게 되고, 죄의 길에 서 있는 자체가 죄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 앉지 말라"고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오만해집니다. 이것이 멀리는 가지 못하는 비 신앙적 자세입니다. 이것은 반(半) 신앙적 자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 반은 없습니다. 완전한 신앙이든, 불신앙이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적당히 믿는 것은 믿지 않는 것보다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정적일 때.... 고난이 오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가 유리한 대로 해석을 하고 판단을 하고 자기 중심적 신앙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중간은 없습니다. 세상이 가까이 있으면 언젠가는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신앙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살 길이 있는 겁니다.

어느 집사가 세상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그대는 항상 선했는가?"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 역시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역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전신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눈을 드니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껴안고 보좌를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세상에서 항상 선하지고 못했고 의롭지도 못했고 깨끗하지도 못했으나 세상에서 이 사람은 항상 예수 편에 있었으니, 지금 이 곳에서는 제가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내 편이 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가 먼 길을 가서 제사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하필 한남제일교회까지 와서 예배드려야 합니까? 문제도 있습니다. 불편도 합니다. 더 가깝고 더 큰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122:1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그 기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세 번째는 “장정만 가라”고 합니다(10:11).

출10장 1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너의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아멘
편하게 믿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어른들만 믿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 네 자녀들은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의 신앙계승문제입니다. 참 의미심장합니다. 사단은 동일하게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믿으려면 너만 열심히 믿고 애들은 데리고 갈 생각하지 말라. 지금은 공부해야 하니까, 나중에 믿으라고 해라”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어린아이들은 나중에 믿으라고 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인즈 워드를 아시죠?
요즘 흑인 혼혈인으로 미국 미식축구에서 MVP가 된 하인스 워드는 우승소감으로 제일먼저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해서 신문 방송이 대서특필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김영희씨에게 한국에 대한 소감을 말하라고 하니 놀랍게도 이런 얘기를 합니다. 김영희씨가 어머니상이 나서 갔더니 지적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침을 뱉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 하인스는 미국에 살아서 한국 말도 못하고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래서 어깨에 한국말로 자기 이름을 문신을 새겼습니다.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김영희씨가 아들을 한국인이라고 가르친 자녀교육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어떻게 키웠습니까? 하루에 3가지 일을 하고 고생고생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요. 지금도 김치, 된장찌개 등 한국음식을 잘 먹고 수제비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집안에 한국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인형, 한국에 관한 용품들)로 가득 채웠다는 겁니다. 이 아들도 어머니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지 선물을 할 때면 다 한국 전통인형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들어가면 “이 집은 한국 사람의 집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집에 들어오면 이곳은 하나님 믿는 집이구나라는 인상을 줍니까? 아 집은 교회 다니는 집이구나 하는 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까?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과연 이 아들이 어머니의 조국 대한민국을 가고 싶고 그 대한민국을 잊지 아니하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 가야겠다고 하는 그런 믿음과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종을 그린 '밀레'가 파리 에 공부하러 갈 때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 긴다든지 믿음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화가가 되기 전에 먼저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어라. 그릇된 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림을 그리려 거든 영원을 위해서 그릴 것이며 늘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 소리가 들려 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라."
얼마나 귀한 교훈입니까! 하나님 제일주의 정신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 살아갈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밥을 한 그릇 먹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돈을 벌고 일을 해도, 이 다음에 무엇이 될지를 생각을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충성을 위하여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정예배 때에도 지난주일의 설교테잎을 틀어놓고 “목사님 말씀이 이랬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교회가 만든 구역교재를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재를 한 장씩 같이 보면서 말씀을 나누면서, 큐티를 하면서 성경을 보면......... 여러분 그것은 내가 사는 길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녀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께 근심과 고통이 되는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교육되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지혜는 물론, 부모의 영광이 되는 자녀로 성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후대를 잃어버리면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들 믿음이라고요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바로가 누구를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지 오늘 이시간 잘 봐야 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전략입니다.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전략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보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이 더 하게 하시는 축복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로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합니다(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 지니라”
하나님은 믿되 물질적으로 희생은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희생 없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물질의 헌신은 진정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단은 ‘시간을 바쳐라.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좋다. 그러나 물질은 바치지 말라. 살아가자면 제일 필요한 게 돈이 아니냐? 늙으면 돈이 있어야 돼!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야!’ 이것은 사탄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영육 간에 복을 내리십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이름이 남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 사랑의 옥합을 받친 마리아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에 이름이 빛날 것입니다. (요14:2-4)
- 사람이 주를 섬기면 하나님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고(요12:26),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시고 .(눅19:16,17) 쓰고도 남는 오병이어의 축복이 임합니다.
- 참 평안을 주시고(대하 15:15), 칭찬하시고(롬14:18),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고(계2:17),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계2:10),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계2:17),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하시고(계3:12),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십니다.(계3:21)

오늘도 사단은 헌신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헌신 속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축복이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주일날 워싱턴에 폭설이 내려서 교통이 완전히 두절됐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여인이 아이들과 함께 눈길을 뚫고 힘겨운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그들은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로 지금은 뉴욕의 상원의원입니다. 앞으로는 대통령도 될 수 있는 분입니다.
힐러리는 한 때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한 적이 있는 독실한 신자로서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중국을 방문중인 클린턴 부부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두 차례 설교한 바 있는 충원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사도행전 17장 26절을 인용해 소감을 밝혔습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교회는 집처럼 편안한 곳입니다." 이런 힐러리의 철저한 신앙이 오늘의 그녀를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미국의 백인들이 서부를 개척할 때,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엄청난 사금이 채취된다고 하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동부에 있는 백인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서 서부로 이주했습니다. 몇 달을 가야하는 먼 거리지만 남들보다 먼저 가려고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 가운데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사람 한 명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다가 주일이 되면 멈추고는 가족과 함께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안식을 취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아니, 저 사람 저러다가 언제 서부에 도착하려나? 아마도 저 가족이 도착할 때쯤이면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사금을 다 캐내 가버리고 말거야!"
남들이야 비웃던지 말던지 그는 상관하지 않고 주일이면 꼭 멈추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엿새 동안은 그도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와 그의 가족도 무사히 캘리포니아 목적지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자기들과 함께 출발한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함께 출발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와 그의 가족이 제일 먼저 당도한 것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던 사람들은 중간에서 다 병들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말도 지쳐서 쓰러졌습니다. 사람들도 골병이 들어서 다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마차도 다 망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늦은 것 같아도 종국에 가보면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방법은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믿음의 길입니까, 아니면 나의 지혜와 지식의 길입니까?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 55:8~9)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대로 살면 제일 편합니다. 아무리 세상과 더불어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상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중간정도 믿고 자녀는 믿지 않고 희생 없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편한 것 같아도 이건 절대 편한 것이 아닙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야말로 자기가 좇아야 할 유일하게 안전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합리적이고, 가장 인간에게 편안하고 유익한 것을 믿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녀라 주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심을 아노라
언제나 주님만을 찬양하며 따라가리니 시험을 당할 때도 함께 계심을 믿노라

주님이 뜻 하신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이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사랑 받은 자녀라 주께서 뜻 하신일 우릴 통해 펼치신다
주님의 일꾼 되어 기도하며 따라가리니 어려움 닥쳐와도 능력주심을 믿노라

(후렴)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주신다.
주의 뜻 이루어 질 때까지 믿음 더욱 굳세라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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