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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승천 (눅 24: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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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다니요? 하지만 이젠 이건 기적도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도 “죽어도 다시 살 것이요 살아서 믿는 자는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 약속을 따라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해야 되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 증거자요 축복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승천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하늘로 올라가려고 해도 이 몸으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축복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첫 마디가 “너희 가운데 평화가 있으라” 이었습니다. 그 주님은 제자들을 밖으로 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서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축복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참된 축복은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입으로 만의 축복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축복은 축복기도 즉 중보기도로 시작이 되고 칭찬과 격려로 마무리 됩니다.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그 사람이 수고하는 모든 일에 칭찬과 격려를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는 상대방을 축복한다고 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나 하고 있다면 어찌 참된 축복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능력을 주어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게 하시고 귀신을 물리치도록 하셨으며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지혜를 더해 주셨고 약해서 넘어질 때마다 그들을 붙들어주어 새 힘을 얻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참된 축복자가 되기를 위해서 주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축복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함께 만날 때 마다 받은바 은혜를 나눔으로 서로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함께 나눌 때 더 증가되기 때문이요 내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보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통당하는 자를 격려할 수 있는 학자의 혀를 주님께서 주시고 또한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학자의 지혜를 더하신다고 했으니 이 주님의 도우심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임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에 믿음의 고백과 더불어 힘찬 능력의 찬송이 있을 때 사단의 권세가 다 물리침을 받는 줄 알아 이렇게 함께 찬양함으로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내가 앞장서서 축복하고 찬양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세워주고 붙들어줄 때 우리를 축복하신 주님의 복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갖춘 자라면 어찌 보면 이런 축복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약한 모습이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모습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그 약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는 것 그것이 바로축복의 참 마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축복의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한 해를 시작하면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축복하는 것도 그만큼 복 받기를 우리가 소원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바로 “예수 믿으세요” 하는 축복입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 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부귀와 장수를 누린다고 해도 하늘나라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된 복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와 예수를 믿는다면 성령 안에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령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은 아무런 능력도 비전도 복도 없기 때문이요 고생만 될 뿐입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되면 모든 것이 힘든 것 같으나 오히려 더 신나게 보람되게 기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옆에서 힘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나를 돕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 안에 한 형제요 자매된 이들이 또한 성령의 도움 아래 살아갈 수 있도록 나 역시 성령 안에서 함께 도와야 할 것입니다. 달리는 말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일꾼으로 세움 받은 분들이 힘을 내어 일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항상 곁을 지켜주며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축복자요 협력자요 중보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하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것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요한복음 14장 12절로 16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할 것이다.”

이 약속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주님의 약속을 따라 주님 앞에 간구하는 자요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권능을 받은 우리는 불신앙에 매이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가득한 말을 하며 주님의 주신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다 주님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면류관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서로 사랑함으로입니다. 서로 사랑하기에 우리는 참된 축복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요 격려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칭찬에 인색합니까? 왜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성령을 힘입어 살아갈 때 우리에게 능치 못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도 주님의 힘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이 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까?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 이상 근심할 일이란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하나님 앞에 구하면서 주님의 도우시는 힘을 의지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어렵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야 합니다. 내 입술에는 주님의 권세로 가득차야 합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고통당하는 자를 격려할 수 있는 학자의 혀를 주셨다고 이사야서는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되시는 주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우리로 깨닫게 만들어 주시고 원수 앞에서도 온갖 모욕을 당해도 참고이길 수 있는 힘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원수도 사랑하게 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누구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감사하십시오.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 때문에 신경질 내지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니 내가 마땅히 사랑하지 못하고 오른뺨을 맞았다고 해서 안색이 변하고 속으로 씩씩댐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적이 또 얼마나 많이 있느냔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고 하지 말고 누구 때문에 감사하다고 하십시오. 누구 때문에 큰 탈났다고 하지를 말고 누구 때문에 걱정이라고 하지 말고 누구 때문에 더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하십시오. 참고이기는 자에게는 하늘나라 상급과 면류관이 있으리라고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바로 그런 모습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잘 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받고 귀한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천국 백성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땅히 부활과 승천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경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경배를 드려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또 하나의 모습은 순종과 중보기도요 중보기도의 또 다른 모습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인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건 곤란하다는 데서 출발하게 되면 믿음으로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되겠죠? 우리가 힘을 모아야 할 부분에서는 힘을 모으고 모자라는 부분에서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됩니다. 힘들 거 같아서 포기하지도 말아야 하고 돈이 많이 들거나 돈이 없어서 못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힘들다는 생각부터 하지를 마세요.  그건 안 된다는 생각부터 하지 말고 안 되면 되게 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믿음이 아니던가요? 어떤 부작용이나 반발이 있다고 해서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오히려 감사함으로 수고를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오히려 기쁨으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고 나의 가진 재물을 또한 아낌없이 투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다보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 되어 일을 이루어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될 것인가?”를 그 다음으로는 생각해야 되겠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일이라고 했냐고 하지를 말고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하지도 말고 정말 수고했노라고 앞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왕 하는 일 보다 좋게 보다 멋있게 보다 완벽하게 해 낼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일이든지 해 나가는 과정에 이렇게 하면 더 좋겠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는데 하는 것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러나 그런 아쉬움만 이야기를 하지 말고 “이만해도 정말 잘 한 거야” 라고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음에 할 때는 더 좋은 작품과 성과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생각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더해야 하는 것이요 잘 한다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주며 위해서 기도로 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안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핍박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이요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이 이제는 다 믿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어떻게요? 날마다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주님을 전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몰려올 때까지 그들은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그들은 전하기를 계속했습니다. 나중에 핍박이 닥쳐와 스데반이 순교하고 야고보가 순교했지만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하는 것을 힘써 전했고 이 전도의 불길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이 저들 가운데 함께 계셨고 성령의 능력이 저들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전을 찾아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요 힘을 모아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순종과 뜨거운 기도는 서로를 축복하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드려 그것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던 것이요 모일 적마다 공동 식사를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눴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를 축복해야 하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도 함께 식사하기를 즐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일에 앞장 서야 되겠습니까? 이 은혜를 깨달은 우리 모두가 앞장서서 모이고 앞장서서 주님을 찬양하고 앞장서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6절로 21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은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 성도들이 쓸 것을 공급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며 힘써 복음의 증거자요 축복자요 중보자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큰 칭찬과 상급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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