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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심정을 알라! (호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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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일중 하나가 "요트"를 사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꿈꾸는 '호사'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하얀 요트의 돛을 올리고 미끄러지듯
그 잔잔한 수면 위를 달리는 기쁨을 최고의 꿈으로 여기고들 삽니다.
우리나라 사람 하나가 저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산타바바라)에서 자기 자가용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망망대해로 나가서 요트에 문제가 생겨 침몰 위기에 빠집니다.
급히 해안구조대에 조난신호를 보내고 무전기를 들었습니다.
구조대가 "곧 구하러 가겠다. 당신의 위치를 알려라"하고 무전을 보냈는데
"나는 한국의 모 은행 은행장이다"하는 말만하고 수신이 끊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를 구하질 못했는데 "What is your position?" 이라는 말을 이 분이
"당신의 사회적인 신분이 무엇입니까"로 오해하여서 벌어진 웃지 못 할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물에 빠져 배가 가라앉고 있는 마당에 자기가 은행장이라는 사실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건 자신의 현 위치 지금의 실정(침몰하고 있는 가라앉고 있는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한 아담이 에덴동산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내가 지금 숨어 있습니다."
지금 이 장면은 하나님과 아담이 숨박꼭질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묻고 계시는 것은 그의 위치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고 그의 상태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을 때 하나님이 듣고자 하는 것은 "제가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하는 대답이었습니다.
헌데 아담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벌거벗어 부끄러움이 무언지를 알게 되었기에 두려워서 숨었다'는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심각한 현실자백을 듣고 싶어 하고 계시는데 아담은 자신의 현재 모습만 말씀드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심각한 현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호세아 4장 6절은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망하게 된 이유가 '자본이 없어서도 아니고 가슴이 없어서도 아니고 돕는 이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지식" 즉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기도 하시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합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틴루터킹 목사님은 평소에 자신의 장례식에 무슨 "조사"가 낭독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그분은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분이셨습니다." 할 때 과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예수님의 역사에 남을 것인가?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자신의 지금의 'position' 이것은 직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비추어 나 자신의 현 상태를 살피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되어 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고야 자신에 대한 지식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것은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빈털터리 되었을 때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돌아가자" 그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매를 맞든 욕을 먹든 종살이가 시작되든 상관이 없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돌아가는 일뿐이다"하였습니다.

여러분 너무 복잡하게 계산하고 시간만 보내고 계시지 말고 이제는 아버지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오시길 바랍니다.
아버지께 가긴 가야겠는데 '내 과거가 부끄럽고 뭐라 드릴 말씀도 없고'
아버지께 가긴 가야겠는데 이제는 몸에 익숙해진 죄의 습성, 게으름을 끊고 갈 수 있겠는지 자신도 없고,
가긴 가야겠는데 뭐라고 말씀하실지 그것도 두렵고 얼마나 장애물이 많습니까?
아버지 사랑을 알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얘야 그냥 오거라" 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조건 사랑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는 사랑에 응답하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도 돌아가자 하고 ~2절에는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 안에서 경건한 자세로 주님 안에서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3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힘센 여호와를 알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생각으로만 아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지적능력을 동원하고 이성적 기능을 발동하고 비판하고 종합적으로 사고,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나 이것은 추상적 지식일 뿐입니다.
'아이 낳는 고통을 안다, 군대생활이 힘든 시간임을 안다'고 말할 때
아직 결혼안한 처녀가 출산의 고통을 안다면 얼만 큼 알까?  아직 군대 안 가본 청년의 군 생활을 알고 있다면 얼마큼 알까?
상상하는 만큼 알고 남의 하는 말 들은 만큼 알면서 나도 다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 아는 게 아닙니다. 반면 경험으로 아는 지식도 있습니다.
출산경험, 군복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어보고 직접 체험하여서 아는 체험적 지식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아는 것은 완벽히 다 아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체험한 지식은 완벽할 것 같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범위만큼만 알고 자기가 겪어 본 것만큼만 알고 마음을 쓴 것만큼 압니다.
그러므로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하는 것은 생각의 범주를 넓게 트고 시야의 한계를 뛰어넘고 마음 씀씀이를 넓이고
사랑하고 믿고 하나님을 알자는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지내십니까?
6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 체험으로 아는 하나님이 전부 입니다.
이제는 말씀 속에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진노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그 진노 속에 사랑을 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진도중에 사랑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전쟁과 지진, 기근, 질병, 테러공포 등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알면 그 사건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 속에는 말씀이 있고 경고가 있고 예언이 있고 언약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 우리가 알고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면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사랑을 읽어내야 합니다.
부모의 매를 맞으면서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자녀는 찾기 힘듭니다.
하지만 지금 세월이 흘러 우리가 자식에게 안타까운 사랑의 매를 들 때에 이제야
'그 진노 속에 사랑이 들어 있었구나'를 알게 되질 않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자녀는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은 진노와 동시에 사랑을 품으시는 분이시고 동시에 분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시고 싸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1장 5절 ~ 6절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였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아무리 징계의 채찍으로 내려쳐도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리시다가 아버지가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돼',
'내가 너 돌아오라고 정신 차리라고 손을 대는 것 아니냐 이제는 돌아와라 잘못했다고 빌어라 그래야 내가 널 살릴 것 아니냐'
여기 아버지의 진심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을 쉽게 풀어쓴 성경은 '이틀이 멀다하고 다시 살려주시며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주시리니'
즉 당장 회개만 하면 즉각 용서,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이 간곡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전달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 살고 있는 세상은 지식이 넘치는 세상 입니다.
알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인터넷 세상 입니다.
지식검색은 언제든 무슨 질문이든 풍부한 답을 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지식으로 알고', '경험으로 아는 것'이 전부인 줄로만 압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대하는 염치없는 사랑보다 더 놀라운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호세아"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입니다.
지금 이 책에서 에브라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분열왕조 시대의 북이스라엘을 부르는 별칭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번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사실상 이 민족은 영적부대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외국과의 동맹관계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시어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진노의 채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때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얄팍한 변화의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흉내만 내다말고 또 다시 힘 있는 나라를 찾아 헤매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진노케 하는 일일뿐입니다.

진정으로 저들에게 화급한 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일입니다.
'너희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하느냐 내가 오죽하면 너희 앞길에 이토록 비참한 일들을 예비하였겠느냐
이것은 내가 너희를 포기하고 버리고 외면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도 변함없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네가 알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현 위치는 어디입니까?
장소를 묻는 것도 아니고, 신분을 묻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얼만큼 알고, 자기 자신을 얼만큼 아느냐 하는 것을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결정, 행동, 사고방식 중 당장 중지할 것을 분별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 "흉내만 내는 신앙"'에 머무를 수 없고,
내 인생의 근본문제에서부터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아버지의 때리시며 눈물 쏟으시는 그 사랑의 심정 앞에 회개로 엎드리고 진정한 출발이 시작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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