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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을 위한 요나단의 배려 (삼상 20:12-23, 롬 8:33-39, 요 16: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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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임금님께 소환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큰 죄를 지어 임금님을 크게 진노케 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몹시 두려워서 임금님 앞에 가서 자기를 변호해 줄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맨 먼저 찾아간 사람은 그가 평소 “없어서는 못 살 사람”이라고 할 만큼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내가 임금님의 소환을 받게 되었으니 자네가 나를 위하여 임금님께 변호를 좀 해주게”하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이 친구라면 당연히 자기의 부탁을 들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친구는 一言之下에  “함께 갈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찾아간 친구는 “떨어져서는 못 사는 친구”였습니다. 처음과 꼭 같은 말로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임금님의 소환을 받게 되었으니 자네가 나를 위하여 임금님께 변호를 좀 해주게”. 그러나 이 친구는 “궁궐 앞까지는 같이 가주겠으나 그 이상은 할 수 없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아주 미미한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그리하여 평소에 별로 생각지도 않던 그 친구를 찾아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임금님의 소환을 받게 되었으니 자네가 나를 위하여 임금님께 변호를 좀 해주게”. 그랬더니 뜻밖에도 이 친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암, 내가 목숨을 걸고 자네를 변호해서 용서를 받도록 해 주겠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여기 임금님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게 될 때, 또는 어떤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없어서는 못 사는 친구”인데 그것은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홍포 입은 부자를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 갔을 때 그 많던 재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이 극한 상황에서 그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우리 옛 부흥성가에 “안고가나 지고가나 헛수고로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떨어져서 못사는 친구는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가족들의 슬퍼하는 모습은 문상객들마저 울게 합니다. 관을 붙잡고 울기도 하고, 영구차를 붙잡고 뒹굴기도 합니다. 심지어 심한 분들은 무덤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못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세 번째의 “미미한 친구”는 다름 아닌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해석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최상의 변호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님도 “너희가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미미한 친구”는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변호해 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딤전2:5-6에는 “하나님은 한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증거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1 요2:1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새 번역 성경에는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3가지 중보의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한 중보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는 사람은 죄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 즉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우리 기도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롬8:34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겠노라”고 하신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도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 하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은 나의 연약함을 위한 중보자 이십니다. 히2:18에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 불쌍히 여겨 날 구원해 줄 이 주 예수 시니 오직 예수”라고 했습니다.

저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 “미미한 친구”같이 여겨왔던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일마다 때마다 구원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친구를 확실히 정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 삼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로 확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런 친구요 또 변호자이신데 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讒訴)하고, 세상에서 끈덕지게 우리를 유혹하고 위협하여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존재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라고 하는 이름 자체가 “참소자”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을 넘어뜨리는 것을 운명으로 타고난 존재입니다. 계12:10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 형제를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욥기 처음 이야기를 보십시오.  우스 땅에 살고 있던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칠남 삼녀의 자녀, 수많은 종들과 재산, 그리고 훌륭한 신앙과 인격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욥을 참소하여 결국 욥으로 하여금 엄청난 시련을 받게 합니다. 바로 그 사탄이 오늘도 우리를 밤낮 참소하고 유혹하고 위협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는 없애버리려고 헤롯을 충동했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기도하실 때도 접근하여 넘어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최측근인 베드로를 점령하여 예수님의 십자가행을 막으려고도 했습니다. 거짓으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정치지도자들을 충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구속의 대업을 이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모든 시도를 꺾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런 사탄을 성경에서는 “삼킬 자를 두루 찾는 굶주린 사자”라고 했고,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서는 “광명의 천사”로 변장한다고 했습니다. 이 두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단 두 마디로 이 사탄의 모든 궤계를 이기고 승리할 수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면 내 힘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마귀는 우리에게서 떠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안에 거함으로 주님의 그 놀라운 승리에 참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늘 사무엘서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 저 사탄의 끊임없는 참소가 있습니다. 위협이 있고 유혹이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울 왕입니다.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다윗을 넘어지게 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나중에는 온 왕권을 오직 다윗을 찾고 죽이기 위한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고 보호해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십니다. 먼저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들어 쓰십니다. 오늘 본문에만 해도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심지어 왕의 1급 비밀까지 다윗에게 누설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나서서 다윗을 보호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위하여 왕의 아들 요나단으로 하여금 다윗의 친구가 되게 했습니다. 다윗의 변호인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보호자가 되게 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이루진 것입니다. 또 사울의 딸 미갈도 역시 자기 아버지 편이 아니라 남편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하여 기적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바실레이아 슈링크라는 여인은 독일의 「마리아 자매단」이라는 작은 수도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1951년 그들은 교회당 건축에 착수했습니다. 교회당 건축이 중간쯤 이르렀을 때 여기저기서 공사비 지불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부금은 예정대로 들어오지 않고 청구서는 날아들고 하니까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부도직전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은 둘째로 하고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두가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한번은 큰 도시로부터 강연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났더니 한 여인이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여인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환상 중에 주께서 “「마리아 자매단」을 도와주라”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장래를 위하여 저축해 오던 중이었고, 또 「마리아 자매단」이라는 단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도 없었기 때문에 힘써 그 환상을 외면하고 거부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돈이 필요한가를 말씀드리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게도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에 통증이 왔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 여인은 기도했습니다. “다리만 낫게 해주시면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이상하게 다리의 통증이 나았습니다. 이런 체험과 함께 마침 바실레이아 슈링크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건축을 위하여 거금을 헌금했습니다. 이 기적이 계기가 되어 「마리아 자매단」의 교회 건축은 훌륭하게 완공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기적입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나타난 요나단의 배려를 보십시오. 이것이 왕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아무리 다윗과의 우정이 돈독하다고 할지라도 아버지와 그의 왕국이 망하더라도 다윗을 구하려고 한 이것이 어떻게 왕자가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을 위한 요나단에 배려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 지금도 나를 위하여 중보해 주시고, 변호해 주시고, 내 짐까지 대신 져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 오늘 나의 주님, 우리 교회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하신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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