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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여, 나를 주장하시옵소서! (롬 7: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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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이가 아침을 먹다가 아빠의 머리를 불쌍하게 쳐다보더니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왜 아빠는 머리카락이 조금밖에 없어?"  아이의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건 말이야, 아빠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거야."  아이가 이번에는 엄마의 머리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묻습니다.
"그런데 엄마, 엄마는 왜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아?"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내 마음 깨끗케 하여 주사 주님의 길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당신의 기쁨이 되는 것"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오늘 이곳에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3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단순하지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가정을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찬양하면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주님의 만지심을 간절히 사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위로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만지심과 위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길에서 크고 작은 장애물들을 만납니다.  그 중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해결할 수 없는 장애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만나게 되는 수많은 강력한 장애물들 중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 속에 나타나는 분노의 장애물, 미움의 장애물, 자기 속에 있는 상처의 장애물, 의심의 장애물, 자신을 번민 가운데에 빠뜨리는 무서운 번민의 장애물, 이것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을까?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유용한 자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다름이 아닌 자기 마음의 자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똑같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자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삽니다.

가만히 보면 별로 감사할 것도 없고, 기뻐할 환경도 아닌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끊임없는 불평과 원망과 저주 가운데 빠져서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자기 마음의 자원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도 잘 넘어갑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훨씬 더 좋은 환경도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음을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그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이 이러하면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음이 저러하면 저런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에 대한 것을 학교에서 우리는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가정이나 기업에서 두뇌교육을 받고, 기술교육을 받고, 논리교육을 받습니다.  돈은 어떻게 하면 모은다고 하는 돈버는 교육은 받습니다.  그러나 죽고 사는 권세가 붙어 있는 마음을 다스리고 아름답게 만드는 교육을 받지는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간을 향하여 고발합니다.
"내 속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내 속에 나타나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내 속에 나를 웃기고 나를 울리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내가 불쑥불쑥 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손에 가시가 들면 뽑아내야 됩니다.  어쩌다가 나의 위 속에 바늘이 들었다거나 내 속에 뭐가 들었으면 수술해서 꺼내야 됩니다.  그런데 내 안에 쏘는 가시가 있습니다.  바늘이 내 마음속에 꽂혀 있다면 어떻게 무슨 수로 꺼내야 할 것입니까?

내 속에 나를 쏘는 가시가 있다.  내 속에 나를 썩게 하는 가시가 있다.  사람의 방법으로 뽑아 낼 수 없는 마음의 가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남이 나를 찌르기 전에, 남이 나를 괴롭히기 전에 내 안에 있는 내 마음의 가시가 나를 더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분이 꿈을 꾸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자꾸 따라다니면서 자기를 괴롭히더랍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데에도 따라와서 괴롭히고, 어디 가서 강연을 하자니 그 앞에 서서 괴롭히고, 일거수일투족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괴롭힙니다.  마침내 그의 결혼식장까지 쫓아와서는 신랑 신부 사이에 서 가지고 괴롭힙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난 나머지 그는 "넌 누구냐?"하면서 그 괴물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가면 속의 얼굴은 바로 자기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깊은 곳이 많습니다.  깊은 계곡도 있고 깊은 바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이 어디일까요?  인간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마음이면서도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 마음입니다.  이것들이 삶의 형태를 시간마다 때마다 결정합니다.  내 마음이 나를 결정합니다.

수많은 강줄기와 물줄기들이 인간의 모든 오염된 쓰레기들을 싣고 깊은 바닷가에 자꾸 던져서 잠겨 놓습니다.  그 바다 속에는 함몰된 수많은 생명과 배들이 가득가득 수장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인 바다도 매 한가지입니다.  이런 쓴 뿌리들이 얽혀서 마음 가운데에 있으면 수많은 상처와 고통들이 쌓이고 쌓여 갑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부모와 조상들의 여러 영역에서 유전된 것도 쌓여 있습니다.  유전된 부분도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인간이 쫓겨날 때에 아담과 이브의 행동이 우리 속에 재현되어 있는 원죄라고 하는 것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감옥보다 더 무서운 것,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감옥이 나를 가두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상처와 고통과 아픔과 부정적인 사건들이 쓴 뿌리를 만들어갑니다.  오호라, 이 쓴 뿌리, 이 쏘는 가시, 이것을 우리는 잠재 의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긴 가시들이 잠재 의식을 형성합니다.  이런 잠재의식의 형성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씨앗들이 현재의 생활과 삶에 언제나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잠재 의식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만지심 속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성화와 삶의 과정 속에 나타나는 자유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불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 앞에 이를 때마다, 일 앞에 설 때마다, 문제 앞에 이를 때마다, 일마다 때마다 묘한 방법으로 개입하셔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나보다 더 깊이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받는 것은 좋은 옷을 찾는 것보다도 더 시급하게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이것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쓴 뿌리들이 다 태워지고 사라지기를 기도하십시오.  "성령이여, 내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쓴 뿌리들을 치유해 주옵소서."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가지라고 해도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나의 지식, 경험, 성격, 가치관, 교회관, 물질관, 교육관, 사역관 등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내가 일하게 되면 '내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심히 교회에서 일하고, 가정을 섬기지만 주님께 붙어있지 않으면 의와 희락과 화평이라는 주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열매는 그 속에 평강과 성숙이 있습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내 열매는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은 죽고 맙니다.  사망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오늘 내 삶이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을 의지하는지에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빌려서 교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공급을 받지 않으면 결국 육신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돌멩이를 물 속에 던지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큰 나무토막에 돌멩이를 묶으면 물위에 뜹니다.  원래 우리 인간의 속성은 물위에 뜰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 접붙임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내 인생이 주님과 더불어 기적의 삶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생명의 삶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인생이 주님을 떠날 때에는 무기력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미를 찾지 못하면 육신에 심취하게 됩니다.  고집이 나오게 되고 자기 것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은 요란하게 육신의 외모를 가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교제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회복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시간마다 때마다 경험하십시오.  그래서 내 마음 깊은 곳, 내가 알지 못하고 내 남편도 모르고, 아내도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길만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이 길만이 내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만나게 될 가장 크고 강력한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자기도 주장하기 어려운 내 마음의 장애물을 누가 좀 처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영역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나만 알고 남이 모르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묘한 겁니다.  그래서 이리고 속이고 저리고 속이고 골탕을 먹입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저 남자의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저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길이 없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나는 모르는데 남이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 같은데 남이 나를 보고 고약하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아주 부드러운 사람 같은데 남이 나를 보고 신경질적이라고 합니다.  나는 전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네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마음이 내 속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이 마음을 잠재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 잠재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잠재 의식 속에 한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뿌리가 있습니다.  이 뿌리가 성장 과정에서 상처를 입으면, 고통스런 상처의 축적이 잘못된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 삶 속에 그 상처로 인해서 무서운 결과를 나타내고 맙니다.  가시덤불을 잘라내도 땅 속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의 상처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그 삶 속에 나타나는 어떤 특정적인 결과가 있습니다.  그 삶 속에 마음의 상처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람은 생활 속에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그 첫 번째 결과가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입니다.  내 성장과정이나 어떤 시기에 내가 남다른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대인관계가 힘듭니다.  무엇이든지 간섭해야만 합니다.  무엇이든지 주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의 마음이 안정이 됩니다.  타인의 주장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속상합니다.  신경질이 납니다.  집안의 물건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놓았던 대로 그대로 놓아야지 흐트러져 있으면 화가 납니다.

사람들과 깊이 사귀지 못하고 친구들도 별로 없습니다.  사람을 싫어하여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오는 것도 싫어합니다.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는 것도 모르고 그런 일에 익숙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언제나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남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보다는 야박한 점수를 많이 줍니다.

언제나 억울해 하기를 잘하고 남을 깎아 내리고 싶은 어떤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예민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교만한 모습으로 남에게 비추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부정적인 언어나 부정적인 태도가 늘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지금 자신의 고난도 고통도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피해자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배우자들이 많이 고난을 당합니다.  형제자매가 고난을 당합니다.  자식들이 고난을 당합니다.  세상이 다 모순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툭툭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제일 존경하고 가깝던 사람들 속에 무서운 못을 던지는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서운하고 불공평한 것은 물론이고 그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는 매일 싸늘하고 인정머리 없는 그런 성격으로 자꾸 발전해 갑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자기는 모르는 채 그렇게 초년을 지나고 중년을 지나가게 됩니다.

부정적이고 단정적인 언어의 표현 때문에 제일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상처와 고통을 주면서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꼬." 이런 고백들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상태가 나를 정복합니다.  강박적인 사고가 내 모든 힘을 신경에만 쏟기 때문에 신경과민에 걸립니다.  그래서 늘 수면 부족의 상태가 되고 이유 없는 우울증에 걸립니다.  대단히 밝은 줄 알고 결혼을 했더니 밝지가 않습니다.  대단히 변덕이 심합니다.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시편 32편에서는 뼈가 쇠하여 지고 여름 가뭄처럼 그 진액이 말린다고 했습니다.

늘 신경이 예민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없기 때문에 남에게 나누어 줄 것도 없습니다.  주변에 존중할 사람도 신뢰할 사람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끈기와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피곤하게 삽니다.  마음의 갈등이 뼛속 깊은 곳에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나 번민 가운데에 있습니다.  옷도 입었다가 갈아입고, 갈아입기를 잘합니다.  물건도 샀다가 바꾸기를 잘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말의 원 뜻은 "오호라, 나는 불운한 사람이로다"라는 뜻입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오호라, 내 속에 나도 지배할 수 없는 나쁜 사람이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나를 울리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자석을 땅에 끌고 다니면 여러 것들이 모여서 큰 덩어리를 형성합니다.  인간이 고난과 고통과 해결되지 않는 모든 마음의 아픔들을 그냥 자석처럼 끌고 다니면 다른 고통들이 끌려 다녀서 큰 덩어리를 만들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는 데 다른 사람의 허락까지 받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해 가운데에 삽니다.  내 마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데에 다른 사람의 허락이 필요한 줄 압니다.  내 마음을 정복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다른 사람이 꼭 개입해야 하는 줄 압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길의 첫 장애물은 자신이 세워놓은 정신적인 자기 마음의 장애물입니다.  내 마음의 장애물은 남이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장애물의 기준도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장애물에 내가 짓눌릴 뿐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내 마음의 장벽과 장애물 때문에 스스로 억눌려서 자유하지를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오늘 다 깨고 나오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 우리의 경험이 어떻든 우리의 지난날의 고통이 무엇이든 오늘 하나님의 영으로 자유 함을 받으십시오.  내게 모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꿈의 공급자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꿈쟁이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귀중하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꿈이 세계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오직 그 꿈을 따라서 조금씩이라도 변해 가는 행동만이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킵니다.  꿈만 안고 있는 사람, 꿈만 이야기하는 사람, 꿈만 꾸고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만이라도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터 당장 마음의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작은 행동하나가 역사를 바꿉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먼저 마음을 바꾸는 작은 행동 하나를 귀하게 생각하십시오.  아십니까?  행동하는 사람만이 언제나 하나님의 기회를 낚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바로 우리의 마음을 고치는 일에 행동으로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중년의 남자 분이 목사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의 아내가 대단히 맑고 명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나는 성격이 밝지를 못해서 이런 아내를 얻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까 아닙니다.  밝았다 어두웠다 합니다.  나는 차라리 한쪽으로 우울한데 이 사람은 양면으로 가서 도저히 맞출 수 없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정말 성격은 고칠 수 없는 것일까?  왜 갑자기 나도 모르는 잠재된 성격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일까?  먼저 알아야할 것은 성격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자신이 상처받은 아픔과 고통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경험하고 체험하며 우리에게 끼친 모든 영향들이 모아진 자기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이 나를 다스리게 하면 안됩니다.  성질대로 살면 곤란합니다.  성질대로 살면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령을 붙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기질이 나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내가 할 수 없는 내 자아가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 하나님의 영으로 씻어주옵소서.  물같이 불같이 씻어주옵소서.  성령이여, 내 마음을 주장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처받은 쓴 뿌리들이 다 치유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때마다 일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이여, 나를 주장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성령이 오늘 내게 임하여 하나님의 기름이 나에게 부어졌으니, 마음이 상한 자마다 고침을 받고,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고, 갇힌 자는 놓임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와 신원의 날이 전파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슬퍼하는 자는 위로 받고, 찬양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하며 의의 나무가 생명 받아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여정에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지금 울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지배권의 장악에 대한 그 놀라운 투쟁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투쟁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인간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임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눈을 뜨는 사람이 바로 영적인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와 성령의 만지심을 사모하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 앞에 설 때에, 입을 열 때에, 일마다 때마다 내 안에 나도 정복할 수 없는 내가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각과 뜻과 행동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깊은 곳에 죄악된 자아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성이 나를 지배합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쓴 뿌리가 나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하지 않는 바 악만 행하게 됩니다.  이 갈등과 고통과 모순에서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본연의 자아를 회복하고 싶은 몸부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안에 불같이 타오르는 육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하나님의 은혜로 시간 시간마다 감동과 감화로 살고자 하는 거룩한 바램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뜻대로 안됩니다.  어느 순간에 잠재되어 있는 쓴 뿌리가 나와서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만 힘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줍니다.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손길을 사모하십시오.  눈을 크게 뜨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손을 높이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나도 알지 못하는 쓴 뿌리들을 치유하기를 나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들의 깊은 내면을 만져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만지심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뜨겁게 경험하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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