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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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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명품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명품은 브랜드에 걸맞게 고급의 품질과 비싼 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품제품들이 인기가 아주 높습니다. 명품 옷 명품 신발 명품 시계 명품 보석 명품 가전제품들이 비싼 값인데도 불구하고 잘 팔립니다.

왜 이렇게 명품에 인기가 좋은 것입니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높은 기대만큼 좋은 질의 제품으로 만족시켜줌으로 인기가 좋습니다. 앞으로 선진국이 될 수록 점점 더 명품 제품들은 인기가 좋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교회와 기독교에 적용할때에 이제 기독교와 교회가 집중할 것은 질의 문제입니다. 이 사회에 많은 사람들에게 명품제품이 인기가 있듯이 이제 우리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양질의 교회 높은 질의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저의 목회에 참고서처럼 항상 지침서로 삼고 있는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미 5년전에 우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할때 나누었던 책이고 그리고 목자들과도 함께 나누었던 책입니다. 바로 독일의 교회성장학자 크리스티안A.슈바르츠가 쓴 자연적 교회성장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전세계에서 성장하는 1000개 교회를 집중 분석하여 어떤 교회가 성장하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여 발표한 책입니다. 그런데 성장하는 교회들은 중요한 8가지 질의 가치를 갖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8가지 질적인 가치를 우리 교회의 핵심사역목표로 우리가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은사중심적 사역,열정적 영성,기능적 조직,영감잇는 예배,전인적 소그룹,필요중심적 소그룹,사랑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이런 질의 교회가 될 때 명품제품처럼 명품교회가 될 것입니다.여러분 결국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학생이 학생답고,군인이 군인답고,학자는 학자답게 성도가 성도다울 때 가장 아름답고 보기가 좋습니다.
본문에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의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권면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이 말은 결국 복음의 질에 걸맞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일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이제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제 그 복음의 수준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활하라는 말은 “시민노릇하라”“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복음에 합당하게 시민노릇하라”는 것입니다. 그당시 빌립보 성도들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시민으로서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길어보았자 이땅에서 50-60년 동안 통치하는 왕에게 대해서도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영원하신 왕 하나님께 합당하게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 삶을 안보하시는 하나님,인도하시는 그분 앞에 바른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합당이란 말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본래 이 말은 의복에 대해서 사용하였던 말입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답게 나이든 사람은 노년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합당하지만 나이든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젊은이 나이에 합당하게 노년에 합당하게 입는 것은 결국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옷 자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로서 복음에 조화를 이루는 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자신들을 아름답게 빛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까?

1.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27절 하반절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협력한다는 것은 “누구와 함께 나란히 싸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들이 상대방을 이기려면 공격수대로 수비선수는 수비선수대로 골키퍼는 골키퍼대로 승리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서로 함께 뛰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듯이 2002년 월드컵의 감격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세계 4강이라는 큰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16강이 목표이었는데 우리나라로서는 기적같은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가 이긴 나라들을 보십시오.16강에서는 월드컵네서 3번이나 우승한 이탈리아는 연장전에서 극적인 골든골로 2:1로 이겼습니다. 8강에서는 유럽의 전통적인 강호 스페인을 경기에서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 끝에 5:3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정하듯이 우리 나라 선수들의 개인기는 이탈리아나 스페인같은 유럽선수들에게 밀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팀의 조직력이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볼때에는 떨어지지만 전체적으로 조직력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뛰어났던 이유는 개인기가 떨어지는 우리 팀을 잘 네트워크해서 전체적으로 강하고 뛰어난 팀으로 조직을 한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도 그렇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개인기를 부리기 보다 협력하고 연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목사 혼자 잘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협력해야 하고 교회는 잘 난 한 두사람이 끌어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까? 왜 직분을 주셨습니까? 왜 은혜를 주셨습니까? 나 혼자 그것을 누리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하여 협력하라고 준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 각자 서로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과 승리를 위하여 서로 협력하면 결국 복음이 흥왕하고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12:6 - 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합니다.

협력하면 내가 살고 교회가 살고 결국 복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한가지 일이 있어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럿이 자꾸 하다보면 팀웍이 생기는 법입니다. 팀웍이 생기면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고립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복음을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상대방 선수들을 맞이하여서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결국 자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협력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본문에서 바울은 “한 마음 한뜻이 되라”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협력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외모가 틀리고 성격이 틀리고 믿음의 분량이 틀리는데 어떻게 내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가끔 교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 가장 하나가 되지 않습니까? 바로 나를 앞세울 때입니다. 내 주장 내 뜻 내 생각을 앞세우면 안됩니다. 종종 교회들이 분란과 분쟁을 겪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가 교회를 위하고 주님을 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방식대로 주님을 위하여 내방식대로 교회를 위하는 열심이 때로 문제가 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가 깨어지고 나뉘어지는 교회에서 사역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교회가 싸우면서 성도들은 서로 마음이 나뉘어져 욕하고 비방합니다. 심지어 ‘이제 교회는 다신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믿음에서 낙오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이런 싸우는 교회는 나가기 싫다면서 옮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의 수가 그전의 3/1도 되지 않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나뉘고 싸우게 되면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없고 교회 봉사를 하여도 기쁨이 없어서 오히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고 어려우면 가정도 어렵고 사업과 직장생활도 어렵고 삶이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중심에는 “내가 항상 옳다‘라고 생각하는 문제의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독선적이 되는 것입니까? 피드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기 점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오염되고 잘못되어질 가능성이 많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교회는 일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되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서로 조금 양보해서 서로 하나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협력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분명한 한 초점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에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뜻을맞추어 가야 하나가됩니다. 문제는 초점이 문제입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흩어집니다.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면 한 마음 한뜻이 될 수 잇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교회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흐리지 말기를 원합니다.사탄은 이 시간도 우리가 협력하는 것보다는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이간질하고 공격하게 하고 비난하기를 원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복음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일에는 믿음으로 협력하시기를 바랍니다.

2. 복음과 함께 담대해야 합니다.

28절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대적하는 자들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교회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구원의 복음 능력의 복음 기쁨의 복음을 체험한 주님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복음에 걸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복음에 걸맞는 삶은 바로 담대한 삶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자 할 때 사람들에게서 공격을 당하고 외면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딤후3: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을 공격하고 핍박을 가하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바울은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핍박하는 대적자들은 멸망의 빙거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들로 인해서 두려움을 갖을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이렇게 복음으로 살다가 혹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두려울때가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에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군종병으로 있었습니다. 졸병때에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야 하는데 고참들이 싫어합니다. 일부어 주일날 아침이 되면 못된 고참들은 더 일을 시킵니다. 분명히 자유시간인데도 이런 저런 잔심부름 시키고 특히 운동경기 일정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회간다고 나가게 되면 완전히 분위기 깨고 눈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날 아침에 일직 일어나서 군복 다리고 워카닦고 미리 준비합니다. 내부반도 미리 정리하고 모든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좀 싫은 소리를 듣지만 “교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담대하게 말을 하고 교회를 나갔던 적이 잇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교회 갔다와서 이런 저런 핑계로 얼차례도 받곤 했지만 오히려 그때 타협하지 않고 교회를 나간 것이 저를 지키고 승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타협하고 그냥 같이 놀고 같이 주저앉은 분들은 계속해서 교회에 갈 수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는 함께 믿음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 중에서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먼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머저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4장에 보면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힌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렇게 협박합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오와 요한이 말을 합니다. 행4: 19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왜 우리의 신앙에 두려움이 일어날까요? 어떻게 해야 담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은 보면 그 비결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감옥 안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그 베짱이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바울은 빌4:13“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합니다.
나의 힘으로 의지로 담대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담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힘주시고 능력을 주시면 내 안에 모든 환경과 상황과 죽음까지도 이길 용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 안에서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합니다.
죽음까지도 복음에 온전히 포로가 된 바울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성정의 많은 성도들이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을 지키고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으로 살다가 갔습니다.

초대교부중에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로마의 시이저가 주가 아니라. 예수께서 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로마의 아르카디우스 황제 앞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아르카디우스는 크리소스톰에게 내릴 형벌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맨먼저 그를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폐하, 폐하께서 저를 저의 집에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전세계가 제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크리소스톰은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르카디우스는 크리소스톰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의 보화는 하늘에 있습니다. 아무도 그곳을 뚫고 도적질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나는 너를 감옥에 집어넣어 너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금지시키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저에게는 결코 저를 떠나시지도 않고 버리시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신 한 친구가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격노한 아르카디우스는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황제가 크리소스톰은 그의 환경, 즉 속박과 투옥,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상관없이 정말로 자유로왔고 담대했습니다.
담대하십시오. 어떤 환경과 상황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담대한 성도 담대한 교회가 있는 곳에서 복음의 역사가 이제도 앞으로 일어나서 주님의 위대하신 이름이 온 세상에 퍼지는 승리가 있을 줄 믿습니다.

3.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음으로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29절-30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안에서 듣는 바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을 수 있도록 은혜도 주시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십니다. 지금 바울의 경우에도 예수님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당합니다.
바울은 이 고난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바울은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것을 소원했습니다.

행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골로새서1:24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복음과 교회 때문에 당한 고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고후11장에 보십시오.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39번의 매를 5번 맞았으니까 약 200회의 큰 매를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여기 태장이라는 것은 로마의 형벌로서 가죽 끈 끝에 납덩이와 같은 쇠를 달아서 때리는 매입니다. 자칫 잘못맞으면 병신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엄청난 상처가 나는 매입니다. 한번 돌로 맞았습니다.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일 밤낮을 깊음에서 지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번 여행의 위험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분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땅에서 삶이 만물의 찌끼같았고 이 세상에서 삶은 세상사람들의 보기에는 불쌍한 사람같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고난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난받음으로 복음에 참예하는 것이요 고난받음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빌립보교회도 바울과 같은 고난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을 받을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속에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주와 같이 고난받을때 우리에게 주와 같이 영광에 참예할 것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그의 영광을 나타나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영광의 미래를 꿈꾸시며 고난을 이기시를 바랍니다.
로마서 8:18에서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합니다. 바울이 현재의 고난에 현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장래의영광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장래에 주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결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의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내가 주님 때문에 흘린 수고 복음 때문에 투자한 모든 물질 교회를 위해서 헌신한 모든 눈물의 고난을 기억하시고 영광 중에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내가 복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교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도 많은 분들이 복음 때문에 주님 때문에 봉사하실때에 알게 모르게 많은 고난을 받는 것을 알 수 잇습니다. 매일 새벽에 차량 운행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청소를 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힘들게 수고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있습니다. 주일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수고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찬양으로 안내로 이런 저런 역할을 수고하십니다.때로는 욕을 얻어먹으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몸으로 돈으로 어렵게 힘들게 수고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때에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어떤 고난이든지 주님과 함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머무는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인내하심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고난받음으로 복음의 열매가 맺어짐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내가 복음과 함께 눈물흘릴때 그곳에 구원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내가 주와 함께 고난받으면서 헌신하는 그 곳에 교회 부흥의 열매가 맺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복음과 협력하는 믿음의 질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하는 일에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두려워말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주님의 상을 기대하면서 우리가 바울처럼 소망을 갖고 우리 모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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