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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합 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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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성경을 인류 역사이래 가장 위대한 책으로 인정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인류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미래는 어떻게 되는가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은 성경 외에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어떤 이야기도 꾸며낸 것이 없습니다. 신화가 아니고, 드라마의 대본도 아닙니다. 모두 실제입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인류의 모든 궁금한 것을 풀어주기에 성경이 위대한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지식의 보고가 되기 때문에 위대합니다. 성경에는 학문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등,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위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위대한 이유는 언어적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언어로 깊은 감동으로 주는 힘이 있습니다. 보거나 듣지 않고도 이렇게 감동을 주고 영혼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경 외에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한마디, 한마디가 문학적 서술이요, 문체의 예술입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 하나가 깊은 설득력을 주기에 성경은 위대한 책인 것입니다.

  본문에는 그 대표적인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그것을 표현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이 한마디 속에 지금 성경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한마디 속에 하나님의 깊은 의도를 보게 합니다. 이 말속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의 메아리가 울려 펴집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뭔가 이 세상에 충만하고, 가득하고, 넘치는 은혜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을 우리 마음에 심어줍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소원을 찾고 있는 이 시점에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넘어, 세계와 열방을 향한 꿈과 기도제목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경이 넓어지는 사람입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를 가슴에 품고 크게 보고 넓게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방을 향하여 어떤 꿈이 있어야 할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충만입니다. 하박국서는 하박국 선지자가 유다의 멸망을 보면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 선지자는 유다의 사악함을 언제까지 벌하지 않고 내버려두실 것인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유다의 지은 죄를 징벌하기 위해 잔악한 바벨론을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같은 대답에 대하여 선지자는 당혹해 하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훨씬 사악한 나라를 시켜 유다를 징벌하는지를 또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바벨론의 죄도 알고 계시며 그들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유다와 바벨론을 포함한 당시 세계의 죄악상을 열거하십니다. 교만과 탐욕, 착취와 강탈, 폭력과 부도덕, 그리고 우상숭배가 온 세상을 덮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 죄악의 한 부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통해 성경은 이 모든 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에서 오는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본문 마지막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한 날이 도래할 것을 선포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빠져 있습니다만 원문에는 원래 여기에 ‘지식’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냥 ‘여호와의 영광’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표준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바다에 물이 가득하듯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 위에 가득할 것이다”

  당시의 세계나 오늘 이 세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와 갈등과 다툼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 민족, 나라가 있고, 하나님을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지금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방을 향하여 우선적으로 이 세상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시고,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이 세상에도 역사 하시며,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유다가 멸망할 때, 그리고 바벨론을 비롯한 모든 세계가 멸망할 때, 그 중요한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망하는 것이라고 모든 선지자들은 진단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런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촉구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이제 우리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득한 민족과 열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면 살고, 하나님을 모르면 죽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과 열방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하면서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평화의 충만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6절부터 바벨론의 포악한 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8절에 먼저 그들의 죄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라 또 땅에, 성읍에, 그 안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나라를 노략하고, 사람의 피를 흘렸고, 성읍의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했다고 말합니다.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피로 나라를 건설하고,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들이라고 진단합니다. 여기 이 모든 말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한마디로 평화롭지 못한 상태를 알려줍니다. 전쟁과 싸움과 강포가 가득한 세상을 말합니다. 이런 세계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있고, 다툼과 갈등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화해와 평화가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충만,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가 본 환상이었고, 당시 백성들이 갈망하던 간절한 바램이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오늘 이 시대를 향한 여러분과 저의 간절한 소원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평화를 깨는 역사로 얼룩져 왔습니다. 과연 평화를 깨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먼저 전쟁입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역사 속에 크게 작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뼈아픈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6. 25 전쟁’이라는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한 민족입니다. 아직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고, 아직도 그 고통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아직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압니다. 그래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전쟁은 무서운 것입니다.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세계가 두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갈망하며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전쟁이 터질 지 모릅니다. 전쟁은 결국 평화의 적입니다.

  또 평화를 깨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테러입니다. 전쟁이 수그러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세계는 테러로 더욱 불안하고 있습니다. 이미 911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곳곳에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지금은 전쟁보다 테러가 더 무섭습니다. 세계 어느 곳도 테러가 피해가는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테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에서 터지기 때문에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깜짝 놀라게 합니다. 선전포고도 없기에 더욱 무섭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테러가 평화를 깹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전쟁과 테러는 말세의 징조로 보아야 합니다. 결국 전쟁과 싸움과 약탈과 포악이 온 세상을 덮을 때 세상은 끝나고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아직 아니라면 이제 무고한 생명을 해치는 전쟁과 테러가 없어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까지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만들어 평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쟁과 테러는 계속됩니다. 결국 세계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세계에, 우리 나라에, 교회에, 가정에, 그리고 우리 심령에 임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없어야 합니다. 가까이는 우리 나라에, 그리고 온 세계에 전쟁과 테러로 아픈 일이 없어야 합니다. 평화를 소원하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셋째, 구원받는 자의 충만 입니다. 본문의 결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선포하며 끝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구원받는 자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방을 향하여 이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구원받는 자가 세상에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모든 사람, 모든 종족, 모든 민족, 모든 나라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더하고, 온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수고해야 합니다. 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우리가 사용되고, 내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해외선교연구센터’라는 기관의 지난 2005년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60억 가운데 단일 종교로는 이슬람이 가장 많다고 발표했습니다. 약 12억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약 20억이 믿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 것입니다. 여기에 천주교, 개신교, 독립교, 정교, 유사기독교, 심지어는 기독교이단까지 모두 포함한 것입니다. 그리고 힌두교가 8억, 불교가 3억, 무신론자가 7억, 그 외의 유대교와 신흥종교가 약 3억으로 추정합니다. 세계에 믿는 자가 많은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목 할 것은 세계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모슬렘인구가 급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종교 성장비율로 보면 가장 높습니다. 이것에 비해 기독교는 힌두교에 이어 4위에 그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기독교가 이제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감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유럽교회들이 많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도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2003년 뉴욕주립대의 사회학과 교수인 로빈슨 박사가 발표한 종교 분포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신자 현황은 1990년 이후 매년 평균 0.9%식의 감소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연 200만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2042년에는 미국도 기독교의 힘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나라도 여기에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옛날처럼 교회가 급성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우리도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이런 통계와 함께 지금 하루에 15만 명이 죽는데, 그 중에 14만 명이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를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님을 믿는 자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자가 더해지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지금도 일하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나만 행복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다른 사람도, 다른 민족도 주님을 믿고 우리처럼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온 세상에, 온 나라에, 온 지역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그것을 품고 이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발이 닿는 곳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 대신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실한 주님의 일꾼들, 열정적인 복음의 헌신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가 존재하고, 성도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그렇게 이제 우리가 세계와 열방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충만함이, 전쟁과 테러가 없는 평화의 충만함이, 그리고 구원받는 사람의 충만함이, 세계와 열방 가운데 가득 임해야 합니다. 이것을 꿈꾸고 소원하면서, 기도하고, 나에게 주어진 몫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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